안녕하세요. 충남대학교 건축학과 4학년이자 마을 이장을 꿈꾸는 조은정, 에건입니다. 고등학생 때부터 건축을 전공했고, 마을 이장이 되는 것을 목표로 지역으로 내려와 동네를 활성화하는 일을 조금씩 해보고 있어요. 요즘은 대전의 카이스트와 충남대 사이 동네에서 청년 모임을 만들기도 하고, 동네의 다양한 행사 일을 돕기도 하면서 로컬 크리에이터*로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언제든 놀러 오세요. (웃음)
*로컬 크리에이터: 지역의 문화적 특성이나 자원 등에 혁신적 아이디어를 접목하여 지역 문제를 해결하거나 새로운 경제적 가치를 창출하는 사람.(네이버 오픈사전)
하자와는 어떤 인연이 있으신가요?
고등학교 2학년 때 학교에서 라이프디자인캠프*를 알게 되어 참여한 게 처음이었어요. 캠프 후에도 하자에서 하는 활동이 너무 재밌어서 토요일마다 그냥 놀러 왔어요. 저는 판돌* 중에 미라클이랑 친했는데요. 미라클의 제안으로 버려진 자전거를 새로 칠하고 정비해서 다시 사용할 수 있게 만들었던 일이 기억에 남아요. 23살쯤에는 하자에서 잠깐 프로젝트 매니저(PM)로 일하기도 했었고요. 라이프디자인캠프의 추억이 너무 좋아서 캠프에서 함께했던 친구들을 초대하고 만나는 ‘다시 라디캠’이라는 프로그램을 기획하기도 했어요. 그 후에는 대전에 있는 대학에 가게 되어서 자주 오지는 못했네요.
*라이프디자인캠프: ‘만나고(Meet), 만들고(Make), 움직이자(Move)!’라는 슬로건 아래 청소년들이 먹을 것, 탈 것, 쓸 것, 입을 것을 직접 생산하는 체험 워크숍으로 10일 동안 진행된 캠프.
*판돌: 하자센터 직원을 부르는 말. ‘판을 만들고 돌리는 사람’이라는 뜻
판돌 미라클과 에건
특성화고를 졸업하셨다고 들었어요. 고등학교에서는 어떤 공부를 하셨어요?
제가 다닌 학교는 디자인 특성화 고등학교예요. 전공으로 시각디자인, 컴퓨터디자인, 실내건축디자인과가 있었고, 저는 실내건축디자인을 전공했습니다. 특별한 이유가 있어서 디자인고에 간 건 아니었어요. 그냥 어렸을 때부터 만들고 그리는 걸 좋아했죠. 근데 예고나 미술 쪽은 돈이 많이 드니까 만드는 쪽으로 간 거예요. 그러다 공간이나 인테리어에도 호기심을 갖게 된 것 같아요. 제가 암기를 잘 못 하는 편인데 어떤 공간에 가면 기억에 잘 남더라고요. 그래서 ‘나는 공간에 관심이 있구나’ 하는 생각을 했어요. 일반 교과목 공부는 별로 재미가 없고, 하고 싶은 걸 빨리 하고 싶다고 생각해서 고등학교에 진학할 때 건축을 전공하기로 했죠.
에건은 어떤 청소년이었나요?
중학생까지는 평범하고 조용한 편이었는데요. 고등학생이 되어서 좋아하는 걸 하니까 최선을 다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어쩌다 보니 전교 1등을 하기도 하면서 흔히 말하는 ‘우등생’의 삶을 살았어요. 월화수목금 학교에 다니면서 주말에도 하자에 계속 왔으니까, 하고 싶은 일, 꿈에 미쳐 있었던 것 같아요. 건축을 공부하면서 ‘멋있기만 한 건축보다 나와 같은 평범한 사람도 행복할 수 있는 건축을 하고 싶어’ 이런 생각을 하게 되더라고요. 그 마음이 ‘행복한 마을을 만들면, 마을에서 지붕이나 문짝을 고치는 것만으로도 행복할 수 있겠다’ 이렇게 이어졌고요. 그래서 저는 마을 이장이 꿈이에요. 그냥 건축에서 누구나 행복한 건축, 또 행복한 마을을 만드는 이장으로 꿈을 구체화한 거네요. 네. 건축이 재밌으니까 계속 스텝을 밟아 나가고 있는 것 같아요.
“좋은 학벌이나 직장은 이미 포기한 지 오래인 것 같으니 계속 꿈을 좇아보자고 생각했어요.”
고등학교 졸업 후 바로 취업하셨던 것으로 알고 있어요.
고등학생 때 성적이 괜찮았고 다양한 활동 덕분에 생활기록부도 좋았거든요. 그래서 그런지 선생님들이 공기업 지원을 추천하셨어요. “한국전력공사라는 ‘신의 직장’이 있는데 여기 가면 성공한 거다”라고 하셔서, 한 번 넣어라도 보자 싶어서 지원했는데 붙어버린 거예요. 주변에서 좋다고 하니까 다니게 됐고요. 그런데 사람들이 그렇게 대단한 직장이라고 하니까 그에 비해 제 꿈이 너무 작아 보였어요. ‘이 회사를 나갈 만큼 내 꿈이 대단한가?’, ‘내가 여기서 나간다고 대단한 사람이 될 수 있을까?’ 이런 생각을 하면서 스스로를 의심하고, 무시한다고 해야 할까요? 자존감도 낮아지고 1년을 못 버티겠더라고요. 앞으로 세상에서 경험하고 싶은 게 많다는 생각이 들어서 1년 근무 후에 도망치듯이 나왔어요.
그렇게 백수가 되고, 제 소식도 전할 겸 모교에 갔는데요. 마침 한 대형 설계사무소에서 처음으로 ‘고졸’을 뽑는다는 이야기를 듣고 지원해서 다시 운좋게 일하게 됐어요. 설계사무소에서 일할 때는 주로 돈이 되는 아파트를 설계했죠. 그때 했던 일은 순수하게 사람을 위한 건축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 부분이 제 가치관과 맞지 않기도 했고, 젊음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어서 1년 반 정도 일하고 나왔어요. 그 후에 하자센터에서 잠깐 일도 해보고 대학 입시도 준비하고 그랬습니다.
스무 살 때 대학보다 취업을 선택하신 건데요. 직장생활 후에 다시 대입을 생각하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을까요?
설계사무소를 그만뒀을 때가 23살이었는데, 마침 입시에 내신을 쓸 수 있는 기한이 3년이었어요. 원래는 대학에 갈 생각이 없었고 오히려 여행을 가거나 더 많은 경험을 하고 싶었어요. 그러다가 ‘서른 살쯤 돼서 대학에 가고 싶어지면 어쩌지?’ 하는 생각과 ‘대학에 가보지도 않고 별로라고 하는 건 아닌 것 같다’ 싶은 생각이 든 거예요. 대학에 가보고, 별로면 그만두고 다른 일을 하자는 작전으로 입시를 준비했어요. 그때 서울에 있는 학교랑 대전에 있는 충남대에 붙었는데요. 서울에 있는 학교에 갈지, 아니면 제 꿈인 마을 또는 지역과 관련이 있는 충남대에 갈지 고민했어요. 그때도 도시가 아닌 작은 마을에 살고 싶다는 꿈을 계속 갖고 있었거든요. 고민하다가 ‘나중에 지역에서 뭔가 하고 싶은데, 지역에 연고가 하나도 없으니 대학을 연결 지점으로 삼아야겠다’ 싶었어요. 나는 좋은 학벌이나 직장은 이미 포기한 지 오래인 것 같으니까 계속 꿈을 좇아보자, 해서 대전에 있는 학교에 갔죠.
근데 막상 가보니까 제가 하자에서 이것저것 했던 재밌는 일들이 당장 대전에선 보이지 않았어요. 그리고 대학의 친구들은 대부분 좋은 학점을 받아 서울에 가는 걸 목표하고 있더라고요. 다양성이 부족하다고 해야 할까요. 그래서 초반엔 좀 암울하고 방황했던 시기가 있었어요. 요즘은 재밌는 일이 많아졌지만요. 지역에 살고 싶다는 계획으로 대학을 결정했다는 게 재미있네요. 이때도 마을 이장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계셨던 거예요? 어떻게 될 수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도시를 벗어나 자연과 가까운 작은 마을에서 행복하게 살고야 말겠어’ 이 마음이 되게 컸어요.
건축 프로젝트 중 에건과 친구들
“교수실에 가서 ‘교수님, 동네에서 재밌는 일 하시는 거 없으신가요? 뭐라도 도와드리고 싶어요’ 라고 말했어요.”
요즘 일상은 어떠세요? 대학에서 만난 분들과 프로젝트를 하셨다고 들었는데요.
대학에 처음 입학했을 때는 할 수 있는 게 없다고 생각해서 휴학도 하고 그랬는데요. 제가 복학했을 때 마침 저희 학과에 도시재생* 활동가로 유명한 분이 교수님으로 오신 거예요. 새로운 교수님이 오셨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교수실에 가서 “교수님, 동네에서 재밌는 일 하시는 거 없으신가요? 뭐라도 도와드리고 싶어요.”라고 말했어요. 저에게는 늘 그런 활동을 하고 싶다는 마음이 꿈틀거렸으니까요. 그렇게 교수님을 도와서 스태프로 시작한 게 ‘어궁짝꿍’이라는 프로젝트예요. 어궁짝궁은 저희 학교 근처인 어은동, 궁동에서 가게를 운영하는 사장님들이 주인공인 세미나를 열어 그분들의 이야기를 공유하고, 다른 지역의 사장님들과 짝꿍으로 연결해서 교류의 장을 만드는 행사예요. 프로젝트를 하면서 타지로만 느껴졌던 동네와 저 사이에 관계가 생기고, 여기서 뭔가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요즘은 동네에서 청년들을 모아 커뮤니티를 만들어 가고 있어요. 같이 마을지도를 만드는 프로젝트를 하기도 하고, 함께 산책도 해보고, 동네에서 재미난 것들을 이것저것 하고 있죠. 평소 여행을 좋아하는데 지금 하는 일이 너무 재밌어서 여행도 못 가고 있습니다. (웃음)
*도시재생: 인구 감소, 산업구조 변화, 무분별한 도시 확장, 주거환경 노후화 등으로 쇠퇴하는 도시를 지역역량 강화, 새로운 기능 도입·창출, 지역자원 활용을 통하여 활성화시키는 것.(서울시 도시계획용어사전)
<어궁짝꿍> 프로젝트 중
어떤 점이 그렇게 재미있으세요? 어떤 매력이 있는지 궁금해요.
일상이 풍요로워져요. 어궁짝꿍 프로젝트를 하면서 제가 평소에 좋아하던 가게의 사장님을 인터뷰했는데요. 그분들과의 인연이 더 깊어지더라고요. 집 가는 길에 와인 가게 사장님을 만나 인사하면 들어와서 와인 한잔하고 가라고 하신다거나, 엄마가 해주신 반찬을 사장님들과 나눠 먹기도 하고요. 이런저런 고민을 나누기도 해요. 즐거운 친구가 생긴 느낌? 이렇게 관계와 애착이 쌓이니까 동네에서 해보고 싶은 아이디어도 샘솟고 실행하게 되더라고요. 이게 제가 하는 일의 매력인 것 같아요. 동네 친구가 많이 생기는 거네요. 든든한 가족이 생긴 느낌이었어요. 이곳에서 재밌게 살고 싶고, 여길 더 재밌게 만들고 싶다는 마음이 들어요.
요즘은 동네에서 청년 커뮤니티를 만드는 중이라고 이야기해 주셨는데요. 조금 더 자세히 소개 부탁드립니다.
‘어리궁절’이라는 프로젝트를 하고 있어요. 아직 서툴고 어리둥절하기도 하지만 함께 성장하면서 어궁동에서 재미난 일을 해보자는 취지의 모임이에요. 그동안 어궁동에서 활동하면서 동네의 이야기를 좋아하는 청년들을 만날 수 있었는데요. 프로그램이 끝나면 만남이 이어지지 않아서 아쉬웠거든요. 아쉬운 마음에 방학 동안 재미난 일을 해보자고 몇몇 친구들을 꼬셨죠. 첫 활동은 이번 여름방학부터였고요. 우리가 사는 동네를 알아가기 위해 좋아하는 가게나 공간을 손으로 그리고, 이야기하고, 마을지도를 만들고, 같이 산책도 하면서 약 두 달간 3번의 워크숍을 열었어요. 이 모임을 통해 청년들의 20대가 어궁동에서 더욱 가치 있는 시간이 되길 바라는 마음이에요.
<어리궁절> 프로젝트 중
그럼 프로젝트를 진행하시면서 에건이 재밌다고 느끼는 부분이나 하기 싫지만 해야 하는 일, 이런 것도 있을까요?
재미를 느꼈을 때는, 동네에서 행사를 하면 평소 쉽게 듣지 못할 이야기를 듣게 돼요. 지난번 워크숍에서도 한 참가자분이 "제가 바라던 게 이거였어요!"라고 하시는 거예요. 무슨 말일까 싶었는데 “저는 여기서 4년을 살면서 동네를 미워했어요. 그런데 사실 좋아했기 때문에 미워한 것 같아요. 사람이 행복하기 위해서는 개인 간의 사랑을 넘어서 지역사회의 사랑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았어요.”라고 이야기하시더라고요. 그렇게 워크숍이 너무 좋았다고 하셔서, 이런 프로젝트를 하길 잘했구나 싶었죠. 사람들의 솔직하고 감동적인 이야기가 에너지가 됐어요. 그리고 워크숍이 끝나면 친구들이랑 “우리 진짜 해냈네?” 이렇게 보람을 나누면서 혼자였으면 못했을 일인데 함께해서 가능했구나, 생각하죠. 뿌듯함이 저에게 좋은 원동력이 돼요.
힘든 부분도 있어요. 함께해서 좋지만 아무래도 함께이기 때문에 갈등이 생길 수밖에 없잖아요. ‘좋은 리더가 되려면 더 필요한 게 많구나’ 싶고 항상 배우는 것 같아요. 최근 팀에서 갈등이 있었는데 돌이켜 보면 저는 (마음에 걸리는 일이 있어도) 좋게 좋게 넘어가려고 했던 것 같아요. 중간중간 적절한 채찍질을 안 해서 갈등이 쌓인 것 같더라고요. 좋은 리더가 되려면 당근만 주는 게 아니라 적절한 채찍도 필요하구나 싶었어요. 앞으로 마을 이장이 되고, 더 많은 일을 하려면 점점 발전해 나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나의 커리어, 내 작업의 일대기를 그려본다면 전환점이 되는 것들이 있잖아요. 뭐가 있을까요?
이런 것들이 터닝 포인트가 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하자센터에 다니면서 환경이나 성평등처럼 사회를 바라보는 능동적인 시각을 갖게 된 것 같아요. 사회의 요구에 맞춰 살기보다 ‘나다움’을 생각해 보게 됐고요. 그전에 저는 남들이 봤을 때 소위 ‘성공한 사람’이었죠. 전교 1등에 취업도 빨리 한. 근데 저의 개성을 막 키우기 시작한 시점에 한전에 들어가게 된 거예요. 그때가 (삶에서) 가장 어두운 시기였지만 한편으로는 나답게 살겠다는 마음을 굳힌 시기이기도 해요. 그리고 설계사무소를 나온 다음부터 저만의 방식으로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전공인 건축 설계는 저의 베이스로 계속 발전시키고 있는 것 같고요. 그러면서 (전환점은 아니지만) 제가 했던 다양한 경험과 어궁짝꿍, 어리궁절같은 동네 프로젝트가 전환점 사이를 쭉 지나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어리궁절> 프로젝트 중
지역 활성화 혹은 도시재생과 관련된 일이 가까운 미래에 겪게 될 변화가 있을까요?
저는 지역을 위한 일은 대기업이 할 수 없다고 생각해요. 서울에 본사를 둔 회사가 지역의 일상을 알고 활동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잖아요. 그래서 점점 지역에 필요한, 지역을 위한 회사가 많아질 거라고 생각하는데요. 이것을 도시재생 쪽에서는 지역관리회사*라고 말하거든요. 이런 기업이 주민의 다양한 의견을 듣고, 지역과 주민을 위한 재미난 일을 하는 거예요. 그리고 이 기업이 구청 같은 공공기관과 협업하고요. 기업이 공공기관뿐 아니라 지역의 다양한 주체와 협업하고, 마을을 위한 일을 하면서 시너지 효과가 일어나는 거죠. 이런 회사가 곳곳에 생기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어요. 저도 제가 사는 동네에서 이런 회사를 운영하고 싶고요. 하자 청년들도 지역으로 내려오세요! (웃음)
*지역관리회사(Régie de Quartier): 프랑스에서 발전한 개념으로 지역 주민이 주체가 되어 만든 기업을 말함. 지역에 필요한 일을 하며 지역경제 및 지역 커뮤니티를 활성화하는 기업.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내가 가진 기술을 계속 활용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 생각해요.”
아무래도 하고 싶은 일을 하다 보면 진심이 될 수밖에 없잖아요. 그러다 보면 좌절하거나 실망하는 일도 생길 것 같아요.
항상 주변에서 “너 이렇게까지 해야 해?”라고 하거든요. (웃음) 쉬지도 않는 일 중독자라고 해요. 가끔은 저 자신도 이렇게까지 꿈을 좇아야 하나 싶을 때도 있고요. 아니면 저랑 비슷한 일을 하는데 잘하는 분들을 보면 비교하면서 힘들어할 때도 있죠. 그럴 때마다 친구들과 이야기하면서 위로받기도 하고, 여행을 가서 잠시 떨어져 생각하면서 환기하는 것 같아요. 일과 관련된 책을 읽다가 '이런 방법이!' 하면서 새로운 자극을 받고 회복하기도 하고요. 근데 저는 힘들다고 하던 일을 멈추지는 않아요. 감정을 살짝 배제하고 잘하든 못하든 일단 해내요. 그렇게 마무리하고 ‘어떻게든 끝은 올 거야. 항상 그랬던 것처럼 끝은 있어’라고 생각하면서 극복하는 편입니다. 불행과 행복은 항상 함께한다고 해요. 그래서 (어떤 감정이든) 받아들이려 노력하고, 힘들면 힘들다고 열심히 말합니다. 그렇게 이겨내고 있어요.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먹고 살 수 있을까요? 금전적인 부분에서요. 에건의 경우는 어떠신가요?
저 진짜 현실적으로 이야기할 수 있어요. 저는 건축 설계를 전공했으니까 로컬 프로젝트를 하면서 아르바이트나 프리랜서로 설계 관련 일도 하고 있거든요. 근데 로컬 일은 기존에 체계가 없던 것을 해나가는 일이기 때문에 설계보다 더 많이 애쓰고 시간도 들이지만 돈은 안 돼요. 지역에서 청년 활동을 할 때도 (지자체나 관련 기관에서) 사업비를 받지만, 팀원들이랑 회의할 때 식사하거나 행사 준비 비용으로 다 쓰거든요. 그래서 생계에 필요한 돈은 설계 일을 하면서 버는 거죠. 대학에 오기 전에 일을 하면서 쌓아온 스킬을 활용하고 있어요. 그래서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한 편으로는 내가 가진 (생계에 도움이 될 만한) 스킬이나 기술을 활용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 생각해요. 저는 꿈을 이어가면서 제가 가진 기술도 계속 발전시키고 가져가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요즘 에건의 일상에 대한 만족도는 어떤가요?
하고 싶은 일을 한다고 해서 특별하진 않은 것 같아요. 직장 다니는 친구들도 일하면서 하고 싶은 것 하면서 살잖아요. 퇴근하고 뜨개질 할 수도 있고, 저보다 돈 많이 버니까 더 맛있는 것 먹고 더 좋은 물건을 사기도 하고 그게 행복일 수 있어요. 저도 하고 싶은 일 하면서 행복하지만 힘든 게 있고, 힘들지만 행복하기도 하다는 점에서 똑같은 것 같아요.
저는 제가 결핍을 원동력으로 움직인다고 생각하거든요. 지금 상태에 만족해버리면 아무것도 안 하게 되니까 너무 만족하는 건 싫더라고요. 그래서 100%라면 70% 정도 만족합니다.
앞으로의 계획이나 미래에 대한 고민이 있을까요?
일단 학교를 졸업하고 지금처럼 다양한 활동을 할 예정이에요. 고민하는 건 아직 정착할 동네를 찾지 못했어요. 학교 생활하느라 많이 돌아다니지 못해서요. 그래서 제가 뿌리를 내리고 살고 싶은, 이장이 되고 싶은 마을을 찾는 게 고민이자 계획입니다.
“하고 싶은 일을 소중한 보물처럼 잘 간직했으면 좋겠어요.”
괜찮을까요? 하고 싶은 일 계속 해도.
해도 된다고 생각하는데요. 저는 스무 살부터 세상에 많이 치이면서 적응해 왔기 때문에 현실에 잘 적응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대신 (현실을 살면서 하고 싶은 일에서 멀어진다면) 하고 싶은 일은 소중한 보물처럼 잘 간직했으면 좋겠어요. 언젠가 피어날 꽃 한 송이처럼 잘 돌보는 게 좋다고 생각해요. 그러다보면 좋은 동료를 만나게 된다든지 언젠가 꼭 기회가 생기거든요. 제가 교수실 문을 두드린 것처럼요. 저도 조급할 때가 많았어요. 근데 꾸준히 오래 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하잖아요. 지금 당장 잘 돼서 행복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꽃은 피면 지기도 하니까요. 너무 꿈만 좇는 게 아니라, 꿈을 잘 간직하고 꾸준히 돌보면서 현실에 잘 적응하는 것도 중요해요.
그렇다면 하고 싶은 일이 없는 사람도 있잖아요. 하고 싶은 일을 찾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내가 순수하게 좋아하는 것, 사소한 것 하나하나에 관심 갖는 게 시작이지 않을까 싶어요. 저에게 9살짜리 조카가 있는데요. 조카를 보면 다른 사람의 시선이나 평가 때문에 좋아하는 게 있어도 ‘이거 하면 안 될 것 같아’, ‘나 이거 잘 못할 것 같아’ 이런 생각을 쉽게 하더라고요. 당연히 처음에는 잘 못하죠. 제가 초등학생 때부터 앞으로 도면을 잘 그리게 될거라고 생각해서 건축을 공부한 건 아니잖아요. 저는 정말 사소한 이유에서 점점 발전했거든요. 어렸을 때 그림 잘 그린다고 하니까 괜히 십자수, 뜨개질도 해보고, 하다 보니 손재주가 있다는 것도 발견하면서 그런 사소하고 작은 이유나 계기를 계속 키워왔던 것 같아요. 너무 큰 걸 생각하니까 하고 싶은 일이 없다고 생각하는 거 아닐까요? 무슨 일이든 큰 것 먼저 하려고 하면 잘 안되는 게 많은 것 같아요.
마지막으로 이 글을 읽는 청소년들과 나누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저는 20대 초중반까지 스스로를 사랑해 본 적이 별로 없었어요. 사랑받고 싶으니까 저를 막 썼거든요. ‘너 왜 못 해, 이것도 못 해?’라고 하면서 쉽게 자책하고 자존감도 낮아졌어요. 근데 나를 위해 가장 고생이 많은 사람은 나 자신이니까, 청소년들이 자신을 사랑하고 응원했으면 좋겠어요.
저는 전문 상담사분께 한 달에 한 번씩, 거의 1년간 상담을 받았는데요. 상담은 저를 이해하는 과정이었던 것 같아요. 내가 나의 이런 부분을 미워했구나, 나는 이런 걸 좋아하는구나. 이런 것들을 알면서 저를 더 사랑하게 됐어요. 자기를 먼저 알고 이해하는 시간이 가장 값지고 필요하지 않을까 싶어요. 상담을 받다 보면 어린 시절의 나와 지금의 내가 결국 연결되어 있더라고요. 근데 오랫동안 그 기억을 닫아두면 나 자신과 오해가 쌓이기도 하니까 늦기 전에 들여다보는 과정이 중요한 것 같아요. 나를 덜 미워하고 상처 주지 않으면서 성장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