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치 없이 푸르기만 하던 여름의 울창함도 어느새 지나가고, 알 수 없는 멜랑꼴리함이 11월의 단풍과 함께 불쑥 찾아왔습니다. 마무리하지 못한 일에 대한 우울함일지, 혹은, 속절없이 흘러가는 시간에 대한 아쉬움일지, 명확하지는 않지만…. 어김없이 이런 계절이, 이런 추위가 찾아오면 반드시 무언가를 마무리 지어야만 한다는 재촉이 단전에서부터 올라옵니다.
2025년의 하자랜드는 어쩌면 저에게 그런 행사였을지도 모릅니다. 스쳐 지나간 한 해를 끌어모아 모두에게 보여주지 않고서야 밤잠을 설치겠다는 심정이었지요.
하자랜드는 하자센터의 청소년동아리가 2025년 한 해 동안 이리저리 펼쳤던 이야기를 한데 모아 엮어보는 시간입니다. 도시녹색탐구회, 드로잉뭉치, 세계텔레비전의날, 엉터리, 진로연구모임, 칼럼단 공짜, 휴학밴드, LBD, nou.mov, P.eye... 열 개의 동아리가 모여 그들의 노래를 부르고, 그들의 영화를 선보이고, 그들의 그림을 그리고, 그들의 글을 씁니다.
우리 손으로 만드는, 우리들의 페스티벌, 꿈은 여기에 있어.
하자랜드의 슬로건이 이 일체의 것들을 잘 담아냅니다. 하자는 스스로 미래에 뛰어드는 청소년에게 마음껏 꿈꾸고 방황할 수 있게 해주지요. 저 또한 그에 동참했고요. 청소년들이 직접 만드는 행사는 좌충우돌, 뒤죽박죽, 우왕좌왕, 동분서주, 그 자체입니다. 어떠한 매뉴얼도, 어른의 지시도, 규제와 강요도 없지요. 그저 그들의 노래를 부르고, 그들의 영화를 선보이고, 그들의 그림을 그리고, 그들의 글을 쓰는 거예요.
그러다 보니 이리 튀고, 저리 튀고, 일사불란보다는 실체 없는 분주함이 동승자입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하고 싶은 일을 하자!'는 마음 하나만으로 맨땅에 헤딩할지언정 기어코 무언가를 만들어냅니다. 그 과정이 너무나 찬란한 젊음이라 다시는 이런 순간이 돌아오지 않을 것만 같아 아쉬운 마음이 절로 올라옵니다. 그렇기에 모든 어른들이 하고 싶다는 마음 하나만으로 일을 벌였던 어린 시절을 그리워하는 거겠지요? 그렇기에 우리가 어린 시절 보았던 영화가 더 재미났던, 혹은 슬펐던 거겠지요….
행사 1부 사회자를 맡아 휴학밴드의 개막 공연 두 곡과, nou.mov의 영화 두 편, 도시녹색탐구회의 영화 한 편을 함께 보았습니다. 어린 청춘의 첫인사, 그들이 그리는 사랑에는 사진으로 담을 수 없는 아름다움이 있습니다. 또한 그들만이 담을 수 있는 시선이 있지요. '어림과 젊음'. 그 어드메에서 나오는 어설픔, 부끄러움, 어른답지 못함이 생성하는 에너지가 가득 담긴 시간이었습니다.
칼럼단 공짜는 체험 부스로 느린 우체국을 열었습니다. 그리고 내년 1월의 칼럼에 담을 느린 편지를 서른네 편 정도 받았습니다. 불확실한 내일에 보내는 편지에는 어떤 사랑이, 어떤 우정이, 어떤 바람이, 어떤 마음이 들어있을까요?
해피뉴이어, 고생 많았어, 용기 내서 해보길 바라, 잘 지내보자, 행복하게 지내자, 늘 고마워, 열정과 행복 가득하게 보내자, 나는 글을 쓰고 싶어, 올해도 좋은 영화 많이 보고 좋은 얘기 많이 하자, 다가올 겨울이 기대된다, 변하지 않는 건 널 엄청나게 사랑한다는 거야, 몸 건강했으면 좋겠다, 늘 나는 널 응원할 테야….
가장 확실한 것은 편지 속 어떤 사랑은, 어떤 우정은, 어떤 바램은, 어떤 마음은 영원히 그 순간에 남아 지나가는 시간에도 바래지 않으리란 것이에요.
칼럼단 공짜의 단원들에게도 간단한 소감을 받아 함께 보냅니다.
이렇게 안전한 놀이터가 있다니 아름답다고 생각했어요. 전 세계 어린이들이 하자에서와 같은 유년기의 경험을 할 수 있길 바라며 세상을 바꾸는 데에 일조하고 싶습니다.
- 지유
함께 고생한 결과물을 즐길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공짜 친구들과 활동 오래오래 하고 싶어요.
- 지훈
매주 진행됐던 회의에서 이런저런 아이디어를 굴려주신 기획팀, 긴박한 일정 속에서 애써주신 디자인팀, 처음부터 끝까지 하자랜드를 위해 힘써주신 이든, 하자랜드 개최에 도움 주신 하자센터 판돌, 그리고 하자랜드에 찾아와주신 모든 분께 감사 인사드리며 짧은 후기를 마무리 지으려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