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한 작가의 문체를 상습적으로 도둑질해 왔다. 세상에는 나보다 훌륭한 작가가 너무나 많다.
일단, 조은주 씨가 그러하다.
조은주 씨의 글은 유쾌하다. 작가의 인터뷰에서, ‘어린이가 쓴 것 같은 순진한 글처럼 읽히기를 소망한다’라고 했던 말 그대로다. 그는 일상의 아주 작은 꼭지를 이야기처럼 풀어내는 재주가 있다.
까투리와 그의 새끼들이 줄지어 아스팔트 도로를 지나다가 막내 혼자 엉뚱한 길로 가자, 어미 까투리가 “꾸웍! 꾸워어억! 꾸워어어어얶!”하고 울었던 일을 “이.리.오라고! 이리와! 이 지지리도 말 안 듣는 시끼!”라고 훌륭하게 번역한다든가, 집 마당에서 살다가 차 앞유리창에 올라탄 메뚜기가 도로에 들어서 점점 속도를 높여만 가는 작가의 앞유리창에 뒷다리를 끼우고, 대가리를 숙여가며 톰 크루즈처럼 붙어 버틴 이야기를 메뚜기의 시점에서 긴박하게 서술하기도 한다.
조은주 씨의 글을 읽다 보면 실제로 웃음이 나거나 눈물이 났다. 하루에도 몇 번이나 완전히 무표정으로 ‘ㅋㅋㅋㅋㅋㅋ’를 연타해 보내는 세상에서, 작가는 자신이 머물렀던 감정의 주파수에 정확히 도달하도록 독자를 이끄는 힘이 있었다. 위험천만한 도로를 겨우 건넌 엄마 까투리의 속 썩음이나, 메뚜기의 후달거리는 뒷다리를 생각하며 손에 땀을 쥐게 만들 수 있는 이유는, 그의 글 속에 ‘다양한 삶이 굴러가는 모습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세상을 바라볼 때 느끼고 싶지 않아도 느끼게 되어버리는 연민의 마음’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작가에게는 동물이든, 식물이든, 사람이든, 생을 가진 것이 어떻게 생을 굴러와서 자신의 눈앞에 이런 모습으로 나타났는지 이면을 바라보려는 시선이 있었다. 그의 글을 읽으면 내가 인구 천만의 오만한 도시에서 여전히 ‘애틋한 마음’을 가지고 있는가 점검해보게 되었다.
하지만 작가는 글쓰기를 제대로 배운 적이 없다고 했다. 자신은 다른 작가들처럼 화려한 수식이나 한자어도 쓸 줄 모르고, 요상한 의성어 의태어를 쓰기 때문에 사람들이 보기에 멋들어진 글은 못 된다고 말했다. 필요하면 개스끼니, 빌어먹을 땡땡이니 (작가 본인의 어휘를 그대로 발췌) 욕설도 서슴지 않기 때문에 보는 사람에 따라서는 무식하고- 아주 못 배워먹은 것으로 볼지 모른다고 했다.
하지만 나는 조은주 씨의 글이 참 좋았다.
화려한 한자어가 없어서 쉽게 잘 읽혔고, 요상한 의성어 의태어는 사실 조금 샘이 나서 내 문체에 녹아들도록 도둑질을 했다. 거침없는 욕설이 아주 적절해서 귀엽게 느껴졌다. 그가 좋아하는 권정생, 로얄드 달, 김용택 작가의 특징들을 꽉꽉 눌러 담아 옛날 도시락처럼 짤짤 흔든 결과물 같았다. 게다가 글 마지막에는 꼭 직접 찍은 사진들이 들어가 있었는데, 문외한인 내가 보아도 구도나 타이밍이 마치 수풀 속에서 그 장면을 기다렸다가 찍은 사람처럼 자연스러웠다.
그는 자신의 삶도 스스로가 쓰는 글처럼 살아 나가는 것 같았다. 생활과 글이 일치하는 사람이었다. 매주 초등학교에 찾아가 동화책을 읽어주고, 혼자 바다를 걷고, 도서 위원장을 맡아서 학교에 책축제를 열었다. 나무와 꽃과 새의 이름도 많이 알았고, 동물들의 울음소리 위에 더빙도 곧잘 했다.
그래서 브런치에 가입해 좋아하는 작가로 팔로우 신청을 걸었다. 매주 글이 올라오는 날이 되면 일 번으로 업로드 알림을 눌러 하트부터 찍었다. 맨 첫 번째 글에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후원도 했다. 글을 열 때마다 이번엔 무슨 내용일까 두근거렸다. 어렴풋이 아는 이야기가 다루어질 때는 공개 수업에서 선생님이 아는 내용을 질문했을 때의 초등학생처럼 엉덩이가 들썩거렸다. 그러면서 댓글에는 천연덕스럽게 평범한 독자 중 하나인 척을 했다. 나는 아닌 체하며 내심 그의 글이 발행되기를 기다렸다.
그러던 어느 날, 글이 뚝. 끊겼다.
삼 주. 사 주. 넉 달. 다섯 달. 일 년.
내가 휴대폰을 바꾸어 더 이상 브런치의 알림을 받을 수 없게 될 때까지
엄마는 글을 쓰지 않았다.
직접적인 이유를 알 수는 없었지만 아마 엄마가 일을 시작했기 때문일 것이다.
엄마 아빠는 승마장을 완전히 접었다. 아끼고 아끼던 말들과 작별 인사를 하고, 애쓰고 애쓰던 장소의 장비들을 거두었다. 이렇게 한두 문장으로 정리되지 못할 마음들만을 남기고서.
더 이상 두 사람은 새벽부터 한 바구니 반만큼의 사료에 여물을 더해 아침밥을 나누어주지 않아도 되었다. 제주의 뙤약볕을 맞으며 모래사장 먼지 속에서 구령을 세지 않아도 되었다. 혜성이와 쿤타와 대박이의 이름을 부르지 않아도 되었고 태풍에 밤새 말들의 안위를 걱정하지 않아도 되었고 서열 싸움과 망아지의 탄생과 회원 시간표와 발의 물집까지, 너무나 크면서도 사사로운 일들에 걱정할 일이 사라졌다.
생각해 보면 마장 사기, 할아버지의 죽음, 릴리의 실종까지 마장이 우리 가족의 삶에 끼어있는 동안은 모두에게 힘든 날들의 연속이었다.
엄마는 아빠에게 마장을 그만두자는 말을 꺼내며 “이제 충분하지?”라고 말했다고 했다. 애초에 아빠가 말 사업을 해보고 싶다고 시작한 일. 엄마는 최대한, 최선을 다해, 쥐어짜서 더는 아무것도 나오지 않을 때까지 도왔다. 내가 보기에는 그랬다.
엄마와 아빠는 마장을 그만두고 나서 몇 주를 내리 아팠다고 했다. 하지만 현실은 추스를 시간을 따로 마련해주지 않는 것 같았다. 엄마는 이제 가장이 되어야 했다. 생활비와 등록금과 이자와 어쩌구 저쩌구. ‘나가야 할 돈’이 이름만 바꾸어 산더미처럼 매달 밀려들었다. 정확한 액수를 알 수는 없었지만 아무튼 가족의 상황이 좋지 않다. 라는 것은 나도 느낄 수 있었다. 아무래도 작가는 본업을 할 짬이 나지 않았을 것이다. 마음이 곪아있을 때는 글 한 줄 나오기 어렵다는 사실은 나도 너무나 잘 아는 일이었다.
‘특이한 삶,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전형적인 제주 도민의 생활’을 해봤다는 것 이외에는 얻은 것이 없다고 했다. 완전히 헛수고라고 했다. 엄마는 그 시간을 ‘후회한다’고 말했지만 내게는 그게 ‘상처였다’라고 들렸다.
작가를 인터뷰할라치면 늘 내가 너무나 잘 아는 중년 여성이 대신 받았다. 어떤 날은 식당 일을 나갔는데 손이 빨라서 칭찬을 들었다고 했다. 또 어떤 날은 재료 손질을 미리 해놨다고 엄마한테 더 일해주면 안 되겠냐고 말했다고 했다. 잘 지내니 걱정하지 말고 살라는 얘기를 이렇게 서술하는군. 다재다능한 조은주 씨는 여러 군데를 돌아다녔고, 최종적으로는 제주 생활을 시작했을 때부터 놀던 함덕 앞바다의 대형 리조트에서 청소 일을 시작했다. 나인 투 식스로 우리 가족의 추억이 뭍은 바닷가에 일을 하러 갔다.
전화를 걸 때마다 엄마는 ‘힘들지 않다, 차라리 해야 할 일이 정해져 있고 혼자 하는 일이라 재미있다’라고 했다. 어느 정도는 진심이었다. 하지만 나는 조은주 작가가 글로 성공하기를 바랐지 청소로 성공하기를 바라지 않았다.
한 해가 갔다. 12달 동안 내 통장에는 매월 10일에 엄마가 베개를 정리하고 머리카락을 주우며 번 월세가 들어왔다. 글을 쓰고 사진을 찍을 재능을 내가 야금야금 갉아 서울에서 한 달 한 달 몸 뉠 자리를 연장하는 것 같아서 마음이 편치 않았다. 그러면서 나는 무언가를 열심히 쓰는 사람이 되려고 노력했다는 점도, 왠지 나만 쏙 빠져나와 여유를 누리는 것 같았다.
여하간 은주 씨는 은주 씨대로, 나는 나대로 각자의 자리에서 ‘잘 살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한바탕 전쟁이 소강된 후에 남은 후유증들을 추스를 시간이 필요했다. 그것을 위해 당분간은 나도 엄마의 상황을 알면서 뻔뻔시럽게 월세를 그대로 받아먹는 불효를 저지르겠다고 결심을 해야 했다. 모든 지원을 거부하면서 내가 전부 알아서 할 수 있다고 뻗대다가 학업과 일상을 동시에 그르치는 일은 한 번으로 족했다.
나는 엄마가 무엇을 하고 사는지 궁금해하면서도 아무것도 깊게 묻지 않았다. 중요한 것들을 먼저 묻지 않으니 여전히 대화는 겉돌았지만, 이제는 나도 쓰는 사람이 되어 있었고, 우리의 말이 지난 몇 년과는 달리 곪은 채 공회전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적당히 힘들고 느리게 회복하는 나날이 지나갔다.
“엄마아아아아앙.”
설날에 안부 전화를 했다. 제주도 푯값이 천장을 찔러, 이번 명절은 따로국밥이었다.
엄마가 먹을 김치는 있냐, 밥은 먹었냐고 캐묻는 동안 나는 글감과 빈 화면을 반반 켜놓고 커서가 깜빡깜빡하는 것을 노려보고 있었다.
“너 엄마 글 올린 거 봤어?”
엄마가 오랜만에 글을 올렸다고 했다. 1년 만이라고도 했다. 그동안은 그럴 힘이 나지 않았는데, 이제는 안에 있는 이야기를 써야 할 것 같아 쓰기 시작했다고.
때가 되었구나.
그래? 읽어봐야지. 하자 엄마는 머뭇거리며 너 읽으면 눈물 날 텐데? 하고 멋쩍게, 느헤헤헤 웃었다.
통화가 끝나자마자 자동 로그아웃되어 있던 브런치에 다시 들어갔다. 종 모양 아이콘에 빨간 점이 들어와 있었다.
조은주 씨의 귀환이 반가웠다.
일 년 만에 올라온 글은 총 두 편이었다. 하나는 한동안 가족의 금기어였던 릴리에 관한 이야기, 그리고 다른 하나는 마장을 접으며 떠나보낸 우리 말들에 관한 이야기였다.
그곳에는 내가 아는 이야기와 모르는 이야기가 함께 쓰여 있었다. ‘잘 정리했어’로 일축되었던 다섯 글자 사이에 마장에서 떠나지 않겠다고 트럭 앞에서 버틴 우리 말들의 이야기와 이차선 도로로 탈탈거리며 멀어지는 트럭의 꽁무니를 보며 눈물을 닦아내고 닦아낸 엄마의 이야기가 적혀 있었다. 쿤타, 혜성이, 대박이. 익숙한 말들의 이름이 줄줄이 나오는 동안, 나는 상처만 남긴 채 휑해진 마장에 앉아 있는 조은주 씨를 상상했다.
엄마는 아주 오랫동안 떠나보낸 말들을 찾아가지 못했다고 했다. 마장을 정리하고 말들이 뿔뿔이 흩어진 지금, 혼자 남은 혜성이의 외로운 뒷모습을 차마 마주할 수 없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혜성이가 기다린다는 생각에 가슴앓이를 한 것도 참 엄마다운 속앓이였다. 내가 차마 전화로 물을 수 없었던 속마음이 글에 다 들어가 있었다.
일 년 만에 엄마를 만난 혜성이는 엄마 어깨에 목을 두르고 자기 쪽으로 당겨 가만히 서서는 나름의 방식으로 조용히 엄마에게 안부 인사를 건넨 모양이다.
일 년 만에 올라온 엄마의 글은 혜성이의 말로 마무리되어 있었다.
모두 떠나가고
아무것도 남지 않았지만
그건 절대 헛된 시간이 아니었어요.
‘헛수고’를 바라보는 마음은 걱정이었다가, 책망이었다가, 응원이었다가 했다.
하지만 사실 내가 바라본 것은 헛수고가 아니라 애쓰는 엄마, 좌절하는 엄마, 강단 있는 엄마, 유쾌한 엄마, 써내는 엄마였다.
파도에 뿌리내린 나무가 되고 싶다. 일기장 맨 앞 장마다 쓰는 말이므로 마땅히 이곳에도 남긴다.
인생이 파도치면 거기에 뿌리를 내리는 나무가 되겠다는 뜻이지만, 사실 바다 위에 뜬 나무라면 배라고 불러야 하는 것 아닌가...? 그렇다면 배를 타고 어느 곳이든 여행하는 사람이고 싶다.
눈 내리면 휴교하고, 산책하다가 감귤을 따 먹고, 집에 노루가 들어올 정도의 깡촌에서 희고 대박 큰 흰색 개와 깡총거리다 보니 어느새 2메다 조금 못 되게 장성했다.
사려깊고 터무니없는 것이 좋다. 단전이 이글거릴 때 쓴다.
글감: 헛수고
2월의 글감은 ‘헛수고’입니다. 해가 바뀐지 얼마나 되었다고 초장부터 김새는 글감을 내놓는 것이 겸연쩍지만, 매도 먼저 맞는 게 낫다고 실패를 위한 예행 연습을 해보면 어떨까 하여 꼽아봤습니다.
됐다, 헛수고다 생각해 본 적이 모두 있으시겠지요. 여러분들은 어떨 때 내 노력이 무용하다고 느끼시나요? 더 이상 오고가도 못하는 상황일 때 억지로 수고를 밀어 붙여본 적이 있나요? 그것은 그대로 헛되었나요? 되려 잊지 못할 경험이 되었나요. 각자가 정의하는 헛됨 또한 다를 것 같아요. 사회의 기준과 자신의 기준이 충돌할 때도 있겠고요. 나에겐 충분히 의미있는 일이 다른 사람들의 눈엔 쓸모없는 짓으로 비춰질 수 있는 것처럼…
질문을 남발한 것은 여러분을 통해 듣고 싶기 때문이에요. 아나바다가 무용한 것, 무용해질 것들과 더불어 살아가는 법이 궁금해요. 늘 그렇듯 주제에서 멀리 벗어난 글도 기대하겠습니다. _진실
후속모임 〈아나바다〉
하자글방 후속모임은 정규 과정 이후에도 스스로 글감과 마감을 굴려가며 글쓰기 공동체를 꾸려가고 있습니다. 2025년 후속모임 〈아나바다〉는 아껴 ‘쓰고’, 나눠 ‘쓰고’, 바꿔 ‘쓰고’, 다시 ‘쓰는’ 마음을 담아 올해 모임을 열었습니다. 글방지기인 죽돌(청소년)이 제안한 글감으로, 함께 쓰고 읽는 합평의 시간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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