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트랙 지원서 파일 아래에 뉴트랙 후기 파일을 만들었다. 후기라니. ’나의 뉴트랙은 아직 진행형인데.’ 섭섭했다. 하지만, 이 섭섭함은 분명 좋은 감정이니까. 그만큼 끝났다는 것을 믿고 싶지 않다는 뜻이니까. 뉴트랙 지원서 파일에 들어갔다.
새록한 기억이 떠올랐다. 나는 2024년 뉴트랙 공고를 꼼꼼히 읽으며 2025년 공고를 기다렸었다. 제주도 강정마을에서의 3년 살이를 마치고 육지로 올라가기로 마음이 정리된 때였다. 미래는 항상 계획대로 되지 않았고, 그래서 따로 계획 세우지 않는 삶이 익숙해졌는데. 뉴트랙은 확실한 나의 계획이 되어주었다. 나는 혹시라도 그 프로그램이 이번 연도부터 갑작스레 사라질까 봐, 또는 이례적으로 19세까지의 청소년까지만 지원할 수 있게 될까 봐 걱정되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뉴트랙 6기의 공고가 떴다. 그날 뉴트랙 지원서 파일을 만들고 질문에 답을 적었다.
뉴트랙을 신청하게 된 이유나 동기를 적어주세요.
(중략) 여러 소리가 난무하는 합주를 하고 싶습니다. 4인조 밴드를 하면서도, 기타 하나와 목소리 두 개로 노래할 때도 느낀 것은 함께 노래를 만들기 위해서는 시끄럽게 해도 괜찮은 연습실, 음향, 미세한 도움, 열정, 끈기, 악기, 격려, 친구, 공연을 할 수 있는 자리, 노래를 들어 줄 사람… 등 갖춰야 할 것이 생각보다 많다는 사실입니다. 뉴트랙에 참여하며 제가 누릴 수 있는 여러 지원과 기회와 만남이 이번 뉴트랙에 참여하고 싶은 이유이기도 합니다.
음악 작업장을 참여한다면 이 기간 동안 음악적인 목표는 무엇인가요?
(중략) 저에겐 제주 강정에서 마주친 세상이 정말 슬프고 아름다웠는데요. 그래서 제가 육지로 떠나며 물리적으로는 그곳과 떨어지게 되었지만, 마음은 계속 이어져 있는듯한 그 느낌을 정말 소중하게 느끼고 있어요. 강정을 만난 많은 사람들이 강정에 살고 있지 않아도 여러 방식으로 연대하고 있고, 그 힘들이 강정 마을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전해지며 운동이 이어질 수 있구나, 그곳에서 인간띠가 끝나고 밥을 먹을 때마다 느꼈어요. 그 덕분에 제가 그곳에 닿을 수 있었던 것처럼, 저도 지금의 제 마음과 앎에 대해 노래로 작업해 보며 누군가에게 제가 보고 느꼈던 이야기를 노래로 나눌 방법을 고민하는 시간도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중략) 6개월의 시간 사이에도 제가 세상과 연결되어 살아가는 한 존재로서 하게 되는 고민을 노래로 작업하고 싶습니다. 그렇게 계속되는 음악적 고민을 성실히 그리고 기꺼이 함께하며 서로를 즐겁게 지지할 수 있는 동료가 되어가는 시간도 제 음악적인 목표 중 하나라고 느껴집니다.
강정마을에서 마주한 노래들은, 그리고 불렀던 노래들은, 또 들었던 노래들은. 내가 지금 노래하는 것에 가장 큰 영향을 줬다.나는 노래가 가진 진정한 힘을 강정에서 깨달았다. 12시마다 하는 인간띠잇기에서는 매일 노래와 구호와 춤이 있었는데, 나는 처음부터 그것이 참 좋았다. 함께 노래하는 동료 모레를 만났고, 모레도토요일 이라는 듀오로 노래를 불렀다. 그 시간을 지나오며, 노래가 좋다는 감정을 넘어선 것들이 나를 지나갔다. 어떤 노래는 내 인생을 통째로 다시 생각해야 했고, 어떤 노래는 내가 몰랐던 이야기를 들려줬고, 어떤 노래는 나의 무지를 부끄럽게 했다. 내게 말을 건네는 노래들은 나를 쉽게 지나치지 못하게 하는 종류였다. 누군가의 다짐도 누군가의 고통도 누군가의 인생이 노래를 통해서 들려오면 나는 속수무책으로 귀가 기울여졌고 그렇게 지나갈 수 없게 나를 붙잡는 이야기들로 나는 변하기 시작했다. 잊혀질 수 없게 위로하고, 사라지는 존재들을 다시 부르고, 평화로운 평화가 아닌 지키는 평화를 부르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만으로 나는 건강해지기 시작했다. 나도 끊임없이 잊어버리지만 잊고 싶지 않은 다짐 같은 노래를 불렀고, 고통을 불렀다. 누군가에게, 또는 나에게 말하고 싶은 것들을 노래하기 시작했다. 사실 그렇게 살며 건강해진 내가 뉴트랙도 계획할 수 있게 된 것이었고, 뉴트랙도 마칠 수 있던 것이라고 온통 감사하게 된다.
뉴트랙을 하며 만난 노래의 세계는 깊었고, 신났고, 정말 호화로웠다. 무진장 시끄러운 우리를 품어줄 연습실이 있었고, 계속해서 만남을 지속하기 위해 약속을 관리해 주는 후멍이 있었다. 노래라는 세계를 다정하고도 단호하게 설명해 주는 모호와 혜지가 있었다. 지난한 시간들을 견디며, 또는 견디기 위해 노래를 택한 사람들이 있었다. 그 아프고, 슬프고, 무진장 멋진 사람들이 때때로 나를 삶으로, 노래로 이끌었다.
날마다 꼭꼭 씹듯이 하자에 나와 있는 모레비를 마주칠 때마다 그 성실함과 부지런을 따라 하고 싶어졌다. 내게 목 푸는 방법을 전수하고, 녹음 전 체크 사항들을 꼼꼼하게 짚는 코코를 마주했을 때, 그 슬기를 닮고 싶었다. 겸이의 녹음 준비를 위한 드럼 필인 연구지를 발견했을 때, 한울의 자작곡 합주를 훔쳐 들었을 때 나는 그들이 자신의 노래를 아끼는 모습을 빌려 내 노래로 돌아가고 싶어졌다. 수료 공연 날 찍힌 지곧의 반짝거리는 얼굴을 보며, 파란 조명 아래 높이 팔 벌리며 노래하는 유월을 보며, 이렇게 노래 속을 자유로이 날아다니는 이들과 함께한 무대가 내게 너무도 역사적이라 생각했다. 현진이 노래에 바치는 세레나데를 들으며. 사랑하는 이의 마음은 어찌나 복잡한지, 나도 그렇게 사랑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내가 하는 말들을 드럼으로 구현하는 체코를 볼 때 경이롭고 짜릿했고, 기타 위를 미끄러지듯이 옮겨 다니다가 천으로 넥을 닦고 있는 소이의 손을 보며 손가락의 근육은 저렇게 생기는 구나를 느꼈다. 자꾸 지나치는 섬세한 감정들을 노래로, 말로 끄집어내는 능력을 가진 서울을 들으며 옅은 용기가 차곡차곡 쌓였다. 마지막까지 함께 하진 못했지만, 강 같은 노래를 부르던 강가가 마음속에 앉아 있다.
어떤 친구는 틈만 나면 과정이 전부라고 했다. 나는 그 말이 떠올랐다. 내게는 만남이 전부였던 것도 같다. 내게는 공연을 준비하며 까칠해진 사람들과 헤어지지 못하고 다음 날 또 만나는 일도, 뭔가 구린 나의 노래를 견디며 고쳐나가는 일이 전부였다. 항상 그냥 지나가지 못하는 괴로운 여름을 밖에 나가며, 웃으며 지나간 일이, 지쳐버린 나를 돌보는 동료들과, 무엇인가 일을 자꾸 만들고 끝내기 위한 사투를 하는 동료들에게 배우는 일이 전부였다. 나도 몰랐던 것들이 터져 나오는 순간을 기대하게 되는 일이 전부였다. 우리는 언젠가 함께 진동했고, 또 어떻게 공명하게 될까.
1976년 저널 <퀘스트>에는 ‘노래는 청중에게서 그 어떤 기사나 연설과도 비견하지 못할 정도의 에너지를 이끌어낼 수 있는데, 이는 음악이 우리의 지성을 향하는 만큼이나 우리의 영혼을 향해서도 말을 걸 수 있는 정서적 힘을 지녔기 때문이다.’라는 글이 적혀있다. 그런 노래가 우리 사이 사이를 지나갔고, 노래로 연결된 우리들은 우리의 여름을 구했다. 그 구조는 나만의 것이 아니었다. 나는 그 사실이 눈물 나게 좋고 또 좋다. 나를 말하고 너를 듣는 구원을 온몸으로 알아버린 잊을 수 없는 시간을 가지게 되었다. 정신없이 흡수된 시간들이 몸에 남았다. 우리에게 흐르는 음악이 우리를 느슨하고 넉넉하게 연결했고, 아직 하지 못한 이야기들이 많다는 것을 안다.
귀를 닫지 않고, 눈을 감지 않고, 입을 막지 않고, 솜털을 세우며 노래하고 싶다. 평화로 가고 싶다. 평화로 가는 길을 노래하고 싶다. 폭력을 거부하는 노래를 하고 싶다. 무엇이든 나의 하루부터 시작됨을 알고 있다. 결국 모든 것이 오늘부터라고. 뉴트랙으로 함께하는 시간은 그런 오늘을 보내는 것에 가까워지는 날들이었다.
더운 여름 기타와 베이스를 짊어지고 땀을 송골거리며 나타난 이들의 얼굴을 보는 것이 즐거웠다. 노래의 결말은 결국 사랑 같다. 땀이 송골거리는 얼굴들로 시작해 목도리를 둘둘 만 얼굴들을 정말 사랑하게 되었고, 이 사랑은 결국 노래를 계속하게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