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자기, 건강하기. 티백 곽에 작은 메모를 써 붙여주던 친구를 오랜만에 만났다. 처음 먹어보는 파이는 무척 맛있었고, 다른 친구 한 명을 더 만나서 새벽 두 시까지 수다를 떨었다. 배도 부르고 입도 아팠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친구가 올해의 감상을 물었다. 아무것도 남은 게 없는 것 같아. 나는 그렇게 대답했던 것 같다.
올해는 유독 정신없이 지나갔다. 어떤 의미도 남아 있지 않은 것 같다. 글을 쓰는 일이 이렇게나 어색할 수 있구나 싶다. 연말이 됐는데도 무엇 하나 정리하지 못했고, 연초를 앞두며 모든 일을 새해로 미루고 있다. 정말 지긋지긋하다. 시간이 엄청 빠르게 지나간다. 올해 내가 한 게 뭐가 있는지 모르겠다. 정말로. 나는 뭘 많이 읽지도 못했고, 애매하게 이리저리 방안을 휘젓기만 하며, 소리를 지르고, 영화처럼 물건을 던지고, 유리컵을 깨기도 했던가. 머리를 헝클이며 모든 걸 깨버리고 싶다는 생각을 하며 유리컵을 노려보기만 했던가. 자주 아팠고, 아프다는 핑계로 잠을 많이 잤다. 변명컨대, 정말로 아프기도 했다. 면역력이 바닥을 쳤다. 온몸이 아팠다. 월수 오전 수업 두 개를 최소 여섯 번은 빠졌던 것 같다. 그런데 딱 한번 빠진 수업은 비쁠을 받고, 그 수업 두 개는 에이쁠을 받았다. 뭐야. 대학에 대한 불신만 더 커졌다. 아, 열심히 했던가. 열심히 하지 않기도 했던가.
나.
어느 수업에서는 허수경의 시집으로 소논문을 썼다. 대학원생분과 글쓰기 상담을 했다. —님, 허수경 시인을 정말 좋아하시나봐요. 글에서 깊은 애정이 보여요. 그런데 논문에 비판적 거리가 부족한 것 같습니다. 도무지 자문하고 계시질 않아요. 사랑만으로 쓴 글 같습니다. 의문을 왜 갖지 않으시나요. 허수경의 세계가 아주 완전하다고 생각하시나요.
—님, 비판적으로 질문을 던지는 일은 허수경의 세계를 비난하는 일이 아닙니다. 허수경이 견딜 수 있는 세계를 넓히는 일이지요. 이런 의문과 비판과 회의를 제기해도, 허수경은 이런 답을 줄 거라는 확신이 있어야 합니다. 스스로를 많이 사랑하시는 것 같아요. 이 작업은 —님께, —님이 사랑하는 세상에게 상처를 입히는 일처럼 보이지만, 마냥 그런 일은 아닙니다. 밟고 서 있는 땅을 스스로 두들기고, 무너뜨려보기도 하면서, 그렇게 해야 자신의 세계를 또다시 넓힐 수 있는 것 같습니다.
교수님께서는 아름다운 글이라고 하셨다. 그 말은 내가 그 글을 쓰면서 가장 경계했던 감상이었다. 아름답게 쓰지 않으려고 했다. 화려한 미사여구를 다 덜어내려고 했다. 나, 허수경을 정말 너무 사랑하는구나, 계속해서 깨닫는 작업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애정은 최대한 체에 걸러보려고 했다. 그게 너무 안 됐다. 내가 나를 너무 사랑하는구나. 내가사랑하는 이 세계를 망가뜨리고 싶지 않구나. 그게 허수경이 견딜 수 있는 세계를 넓히는 일이라던 선생님의 말씀이 마음에 못처럼 박혀버렸다. 내가 견딜 수 있는 세계는 한 뼘 정도의 땅이었다.
스무 페이지가 넘어가는 글을 써본 건 처음이었다. 마감 기한보다 이틀이나 늦게 제출했다. 그러나 그 글을 끝내지 못했다. 부족한 부분을 알고 있다. 어디를 어떻게 조금 더 보충하면 좋을지도 알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다시 쓰고 싶다. 처음부터 다 다시. 나를 부수고 싶다. 그 글을 부수고 싶다. 시인의 세계와 나의 세계가 공유하는 어떤 지점들을 죄다 부수고, 다시 시작하고 싶다. 올해 안에는 어려울 일이다. 내년에도 아마 못할 것이다. 그럼 언제쯤 할 수 있을까. 나는 또다른 미지의 세계를 견디기 위해서 언제쯤, 주먹을 쥐어볼 수나 있을까.
다.
누군가의 글을 읽으면서 안아주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함께 웃어주고 싶다는 생각도 했다. 같이 엉엉 울고 싶다고도, 손을 잡아주고 싶다고도 생각했다. 그 손을 잡고 춤을 추고 싶었다. 나는 박자나 리듬 같은 건 전혀 모르지만 눈을 마주치며 작가의 몸짓을 따라가고 싶었다. 그 마음만치 읽었던가. 사랑하는 마음만치 사랑했던가. 되는 만큼만 하자고 하긴 했었지만, 그래도 나는 되는 만큼보다 훨씬 더 많이 아끼고 있는데. 내가 그 마음을 지켜주지 못했다. 후회돼. 나는 연말이면 이런 글이 아니고서는 도무지 쓸 자신이 없다.
라.
나를 쌓아올리는 것도, 그 시간이 아무것도 아니었다 말하는 것도, 전부 너무 쉽고, 또 너무 어려운 일이다. 내가 그를 알고 지낸 스무 해보다 그와 둘이서 서울의 작은 단칸방에 함께 살았던 육개월 남짓이 더 많은 걸 알려준 것처럼. 안다는 것, 그리고 모른다는 것, 둘 모두 지난하고 지극한 일이지만, 그것 역시 찰나일 뿐이다.
마.
무언가가 끝났다거나 끝나지 않았다고 쓸 수 있을까. 매듭을 짓고 이게 진짜 끝이라고 마무리하고 나면 그건 정말 끝이 되는 걸까. 처음 이 글감을 받았을 때, 끝난 것에 자신있게 “나를 버리면서 사랑했던 습관”을 적었다. 그런데 글을 쓰려고 앉아 보니 나는 그걸 끝내지 못했다는 걸 알게 됐다. 완전히 없애버리기엔 너무 오래 함께한 마음이라서 슬퍼졌다.
나는 아무것도 모르고 싶다. 끝나지 않았다고 믿고 싶고, 끝났다고 믿고 싶다. 믿는 일만큼은 할 수 있을 것이다. 올해 새롭게 알게 되었다고 말할 수 있는 사실들. 그런데 금세 모르게 되었다고 말할 수도 있는 사실들.
이랬다 저랬다 도대체 이게 무슨 말이야.
딱 그 정도 감상이 이 세상을 대하기 적절한 태도 같다.
그렇게 말하고 싶지 않다. 명료하게 밝히고 싶다. 세상의 참혹으로부터 그저 그런 쉬운 태도로 눈 돌리고 싶지 않다. 어차피 모르는 일이라고 일관하거나 대충 아는 정도의 마음가짐으로 살고 싶지 않다. 더 알고 싶다. 더 읽고 싶고, 듣고 싶고, 쓰고 싶고, 보고 싶다. 내 세계를 계속해서 흔들고 싶다. 그 진폭을 전부 내 세계라고 하고 싶다. 지진계를 매달아 기록하고 싶다. 울먹이며 흔들리는 마음을 끝까지 따라가보고 싶다. 그 펜촉 끝에 무엇이 있는지 궁금하다. 끝없이 이어지는 선으로부터 눈을 돌리고 싶지 않다.
나는 그런 사람이라고 확실히 말할 수 있다. 그걸 일년, 어쩌면 스물두 해에 걸쳐 깨달았다. 나는 언제나 이런 글을 써 왔기 때문이다. 안고 싶은 마음을 담아, 함께 웃고 싶다는 마음을 담아, 울고 싶은 마음, 손 잡고 싶은 마음, 춤추고 싶은 마음, 그 모든 마음을 담아. 언제나 마음의 끝을 향해 달려갔다. 그 도착한 끝에서 또다시 출발했다. 그러니 모든 것이 끝났지만, 모든 것이 끝나지 않았다고 쓸 수 있다. 끝났거나 끝나지 않은 스물두살의 벼랑 끝에서 그렇게 써 본다.
글 · 사진_ 다정(둥글레차)
포항에서 태어났다. 돌아갈 바다가 있어 어디로든 갈 수 있다. 문학을 사랑한다. 쓰는 일이 읽는 일을 넘어설 수 있을까? 답을 내리기 위해 평생을 바칠 수도 있을 것만 같다.
글감: 끝난 것과 끝나지 못한 것
여러분! 글감 공지 글을 쓰는 것은 무척 오랜만이네요. 글감은 연말 분위기에 맞게 ‘끝난 것과 끝나지 못한 것’으로 정하였습니다. 해가 마무리 되는 상황을 빌려 글과 대화 나눠요! _하루
후속모임 〈둥글레차〉
하자글방 후속모임은 정규 과정 이후에도 동료들과의 유대를 바탕으로, 스스로 글감과 마감을 굴려가며 꾸준히 글쓰기 공동체를 꾸려가는 모임입니다. 2024년 가을학기 하자글방 후속모임 〈둥글레차〉는 어느덧 두 번째 해를 맞이했습니다. 매달 모임을 통해 서로의 글을 합평하고, 한 권의 진(Zine)으로 엮어내며 이야기를 더해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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