밉고 고운 열여덟. 토리가 허공을 향해 짖으면 그 소리는 깜짝 놀랄 만큼 날카롭다. 큰 덩치의 나는 작은 몸집의 토리가 무서웠다. 둘 다 원체 겁이 많아서 그렇다고 이나는 옅게 웃었다. 그가 무서워하는 것은 내가 아니라고. 그는 요새 모든 것을 무서워한다며, 낯선 이를 비롯한 이나, 이나의 어머니를 향해서도 짖는다고 했다. 토리를 살피는 이나는 늘 분주했다. 수액을 맞추고 밥을 조리하고 먹으면 다행, 안 먹으면 먹여야 하는 약까지 먹이고서야 유아차를 끌고 산책에 나섰다. 이나의 한쪽 어깨는 늘 토리를 향해 기울어져 있었다.
희고 곱슬곱슬한 털,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 검고 둥근 눈, 밝은 분홍빛이 도는 귀. 토리는 만화 『땡땡의 모험』 속 밀루를 닮았다. 하얀 개 밀루는 종군 기자인 땡땡을 따라 온 세상을 누비는데, 내 앞에 나타난 토리는 나고 자란 인천을 벗어난 적이 손에 꼽을 정도였다. 토리가 갈 수 있는 세계는 넓어지기는커녕 점점 좁아졌다. 집 앞 도서관 산책로에서 집 안 부엌부터 화장실까지. 토리를 위해 네모나게 펼쳤던 큰 담요는 절반을 접고 또 접어 조그만 네모가 되었다. 작고 폭신한 담요 위에서 토리의 하루가 다 갔다. 어느 날은 옆으로 길게 드러누운 채 고개만 살짝 들었고, 그것도 어려운 날에는 검은 눈동자만 이리저리 움직였다. 차라리 짖는 게 나을 것 같다고. 가끔은 너무 조용해서 살아 있는지 덜컥 의심하게 된다며 우는 이나의 등을 살살 쓸었다. 토리의 얇은 뱃가죽이 조금 부풀고 살포시 가라앉았다.
석 달 전, 이나의 집은 우리 집이 되었다. 우리는 동거를 시작했고, 그 시기 즈음 이나의 어머님은 창고 물류 작업 중 허리를 다치셨다. 늙고 아픈 개를 살피던 몸이 멈췄고, 토리는 자신과 함께할 다른 몸이 필요했다. 이나는 작은 목소리로 머뭇거리며 토리를 우리 집에 데려와도 괜찮겠냐고 물었다. ‘너의 가족은 나의 가족이니, 당연하지.’… 라고 답하고 싶었으나. 나에게도 넘기 힘든 현실의 벽이 있었다. 나는 편의점 풀타임 근무자로 토리를 이나와 함께 돌볼 수 있는 여건이 아니었다. 최저시급에 이동 거리도 멀었고, 일인 근무에 연속 근무시간도 길었다. 무엇보다 개는 처음이었다. 동거 생활도 이제 막 안정되려 하는데 토리의 등장은 곤란했다. 그렇다고 네 사정을 모른 채 할 수는 없었다. 이나에게 일주일만 더 시간을 달라고 했다. 고개를 주억거리던 너는 당연하다며 기다리겠다고 했다.
다만 토리의 시간은 다르게 흘렀다. 기다림을 몰랐다. 오히려 우리의 결정을 재촉하는 쪽에 가까웠다. 눈살을 찌푸리며 그의 거처를 고민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토리가 살아있을 때의 과제였다. 늦은 시간 어머니의 전화를 받은 이나는 곧장 본가로 향했다. 토리의 배에 자신의 오른 귀를 대고 두 눈을 감았다. 헐떡이는 가쁜 숨소리는 작은 풍선이 순식간에 쪼그라드는 소리에 가까웠다. 이나는 토리를 안고 집 근처 24시 동물 병원으로 달렸다. 돌볼 수 있는 여건과 몸은 준비되지 않았는데,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한다는 말이 건너왔다. 이나는 흰 개와 약 봉투를 가까스로 끌어안았다. 집에 돌아와서도 한참을 주저앉아 있었다. 굳게 닫힌 입술을 깨물고 뜯기를 반복하다 마침내 말을 이었다. “내일이라도 토리를 데려와야 해.” 이나의 어쩔 수 없음이 나의 어쩔 수 없음을 크게 포개어 덮쳤다. ‘그래, 그러자.’ 며칠 내내 골치 아팠던 문제가 단순해졌다. 복잡한 일들을 제쳐두고 네 말이 다 맞다 싶었다. 이나를 향해 두 팔을 벌렸다.
*
사탕 하나를 채 쥐기도 벅찬 손이 계산대 위로 올라온다. 감사합니다- 하고 꾸벅이는 어린이를 보면 뭐라도 하나 얹어 주고 싶은 산타의 마음이 된다. 이름표가 대롱대롱 달린 노란 가방을 멘 아이는 할아버지 손을 꼬옥 잡은 채 장난감을 사 달라 졸랐다. 곤란한 나와 더 곤란해진 아이의 할아버지는 서로 눈이 마주쳐 허허 너털웃음을 지었다. 딱 하나만 살 수 있다는 말에 양쪽을 번갈아 보던 아이는 못 고르겠다는 듯 울먹이며 할아버지를 빤히 쳐다봤다. ‘울어도 안 돼, 딱 하나만 사기로 약속했지.’ 단호하게 끝맺음에 아이는 한참을 더 고민하더니 분홍 캐릭터가 그려진 장난감을 골랐다. 울어도 장난감은 작은 손에 쥐어졌겠지만, 결국 하나를 골랐다는 만족감이 아이의 얼굴에 미소로 당당히 드러났다.
다 큰 어른들은 반짝하고 사라지는 신제품 과자를 찾기 위해 서성였고, 이른 오후가 지나 삼삼오오 몰려온 직장인 무리는 저당 커피나 아이스크림을 몇 봉지씩 사 갔다. 비싸다는 말만 반복하며 집고 내려놓기를 반복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늘 같은 동선으로 들어와 계산대로 직행하는 이도 있었다. 셀 수 없이 많은 이들이 오고 갔다. 또 온 건지 처음 온 건지 늘 헷갈렸다. 잔상만 남긴 채 잽싸게 사라지는 뒤통수에 닿지 못할 인사를 건넸다.
오후 두 시가 되면 편의점 앞에 커다란 트럭이 섰다. 암행어사가 마패를 들고 등장하듯 물류 기사는 두터운 전표를 들고 나타났다. 그와 나누는 적당한 대화가 좋았다. ‘점장님이 많이도 시켰다, 그쵸.’ 한 명이 농담을 던지면, ‘그렇죠. 좀 적당히 시키면 얼마나 좋게요.’하고 나머지 한 명이 받아쳤다. 그는 말하는 동시에 박스를 쌓았다. 그럼 나는 가지런히 쌓인 테트리스를 뿅 하고 없애기 바빴다. 내 키보다 두 뼘은 더 큰 상자 더미를 들고 냉동창고 안팎을 오갔다. 무더운 바깥과 달리 매장 안 냉동창고는 매섭도록 추웠다. 언제 봤다고 반말에 버럭 화를 내던 이가 떠올라 악을 지르고, 고생한다며 하나 사면 하나 덤으로 주는 음료를 넘겨준 이도 떠올라 콧노래를 흥얼거린다. 침묵 속에 윙윙거리는 환풍구 소리가 들려온다. 푸른빛이 맴도는 얼음 동굴 안에서 분주히 물건을 옮긴다. 멀리서 본다면 산타의 선물 배송을 돕는 엘프 한 명 정도겠지. 높게 쳐줘도 이름 없고 명함도 없는 일일 산타 대역쯤 되려나. 얼핏 저기요- 소리가 들렸다. 문밖으로 머리를 빼꼼 내밀어 두리번거렸지만 착각이었을까, 부르는 이는 보이지 않았다.
하루 스물네 시간보다 한 시간 더 넘치는 이십오시 편의점. 푸른 불빛 아래서 막연한 시간을 보낸다. 우는 아이, 가끔 웃는 아이, 다 큰 아이, 며칠 새 다르게 크는 이를 지켜본다. 나와 같은 하루를 이어갈 외국인 유학생의 인사를 받는다. 입었던 조끼를 벗고 넘기면 고생했다는 말과 함께 시작되는 일상이 있다. 길가에 즐비한 부동산과 술집을 지나쳐 익숙한 내리막길을 걷는다. 인파를 거슬러 전철에 오르면 밀려오는 피로에 눈이 저절로 감긴다. 공이 여러 개 붙은 집값과 그에 비해 명료할 오늘치 나의 쓸모를 매긴다. 창문을 넘어 밝은 달빛이 스민다. 작고 선명한 달을 향해 손을 모으고 눈을 감는다. 평생 가닿지 못할 것 같아 더 자주 빌게 되는 소원을 중얼거렸다.
다른 이의 소소한 행복을 확실히 전하는 제 소원을 들어주세요.
로또 3등 당첨, 주택 청약 대기 번호 같은 소식은 바라지도 않아요.
우는 아이는 선물 안 주신다더니 저는 아이도 아니고 울기도 많이 울어서 안 되려나요.
그래도 들어주세요. 당신이 산타라면 제 진짜 소원은 말하지 않으셔도 아시겠죠.
저는 믿고 있어요. 빌고도 있고요.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잘 보낼 수 있는 기회를 주세요.
정말 간절히 빌게요.
산타 같은 누구 씨 듣고 있나요.
*
어깨너머로 돕던 일을 더듬거리며 잇는다. 핸드폰으로 ‘피하수액 맞추는 법’을 검색하고 낑낑 소리도 내지 않는 토리의 등가죽에 바늘구멍을 냈다. 입으로는 미안하다고 하면서 알코올 솜으로 주삿바늘을 닦았다. 얼린 참치 죽과 사료 몇 알을 섞은 다음 전자레인지를 돌려 토리의 코앞에 밥그릇을 두었다. 야무지게 맞물린 토리의 입을 벌렸다. 혀로 입천장을 막으려는 토리와 먹이려는 내가 맞서 버둥거렸다. 거진 누운 채로 바닥을 뒹굴었다. 목구멍으로 약이 넘어가고 토리의 잇몸 사이로 숨겨진 약이 없는지 재차 확인했다. 두 쪽 다 지칠 대로 지쳐 바닥에 몸을 뉘었다.
묵묵히 다정할걸. 토리는 벤치에 앉아 볕을 쬐면 혓바닥을 내밀었는데, 더워서 그런지 목이 마른 것이었는지 알 수 없었다. 나는 그가 볕을 좋아해서 웃는다고 멋대로 착각했다. 흩날리는 그의 털에 그가 나와 다른 곳을 보고 같은 바람 쐬는 것을 즐긴다고 제멋대로 해석했다. 자주 걷지 않으면 토리의 다리가 점점 굳어간다고 하길래, 토리를 나무 데크길로 자주 끌고 나왔다. 토리는 이끈다고 따라오지 않았다. 그가 멈추면 나도 멈춰야 했고, 털썩 앉으면 유아차에 태웠다.
길가의 개들이 부러웠다. 너무 쉽게 걷고, 뛰고 먹는 걸 보면 나도 모르게 시선이 갔다. 그게 얼마나 큰 복인지 감탄하느라 걷고 멈추기를 반복했다. 나는 토리의 보호자도, 엄마도, 이모도 아닌데. 토리와 나는 곁을 잘 내주지 않았다. 등을 기댄 채 누구 하나 먼저 무너지면 같이 무너지지만 각자 다른 곳을 바라보는 사이에 가까웠다. 이나의 말처럼 조심성도 많고 침묵도 긴 게 닮아서 아무래도 싫은 존재에 가까웠다. 그러다 가끔 고와서, 그 가끔이 너무 예쁘고 귀해서. 나는 토리의 곁을 떠날 수 없었다.
토리를 사랑했냐고 묻는다면 사랑만 하지 못해서 부끄럽다고 답하고 싶다. 매일 새롭게 후회하며 깊은숨을 마셔야지만 할 수 있는 고백이 있다. 예컨대 나는… 토리에게 밥을 주는 동시에 입가 묻은 사료 가루를 보고 한숨을 쉬었으며, 긴장한 토리를 꽉 붙잡아 수액을 맞추며 미안하다고 말끝이 자꾸 부서져 내렸다. 내내 담요 위에만 있던 토리가 온 힘을 다해 기어서 똥스키를 타고, 배변 패드가 아닌 그 근처 러그에다가 오줌을 뉘면 분을 못 이겨 성을 냈다. 서로 모날 때 만나 융통성 없게 굴지 않았나 자꾸 뒤를 돌아본다.
*
경사진 길을 오른다. 주머니에 배변 봉투와 물티슈를 쑤셔 넣고, 일회용 배변 패드를 깐다. 울퉁불퉁한 아스팔트가 조금이라도 덜 어지럽길 바라며 낡은 바퀴를 조심스레 밀었다. 편의점에서 마주친 얼굴들이 눈앞을 스친다. 탐나는 것을 쥐었다 놓지 못하는 어린이의 변덕, 깜빡했다며 다음에는 민증을 가져오겠다는 학생의 텅 빈 지갑 그리고 웃는 게 참하니 이쁘다고 말하던 할머니의 주름진 입가까지. 떠나는 이의 뒤를 보고 씁쓸하다 생각했는데, 실실 웃게 만드는 그들의 앞모습이 자꾸 떠올랐다.
이웃 주민 중년 산타는 토리를 보며 재작년 떠나보낸 토토가 보인다고 했다. 신장이 좋지 못한 토토도 잘 먹었던 연어 죽 레시피가 있다며 재료부터 조리법까지 일러주었다. 뒷다리를 고정하고 나아가는 토리를 보고 휠체어를 탄 산타에게 ‘너도 나이 먹고 바퀴 타는 거냐’고 호탕한 웃음을 받았다. 산 중턱에 있는 황톳길에서 성악가 산타는 수액 안 아프게 놓는 법과 적당히 싸고 좋은 약을 처방받을 수 있는 병원을 알려 주었으며, 같은 빌라에 사는 아래층 산타는 토리만 보면 주머니에서 고양이용 츄르를 꺼냈다. 토리가 사랑받으면 내가 받은 것 마냥 기뻤다. 누룽지 맛 사탕 같은 말이 자꾸 입안을 맴돌았다. (참 예쁘지요. 사랑스럽지요. 저는 알고 있지만 토리는 알까요. 잘 들리지도 보이지 않는 토리에게도 전해졌으면 해요. 더 말해주세요. 더 자주 인사해 주세요.)
늦은 저녁 개와 사람 모두 지친 몸을 이끌고 산에 오른다. 등산객들은 다 빠지고 동네 사람만 오가는 산 중턱에서 소프라노 독창이 울려 퍼진다. 어둠이 내린 산책길 주변으로 드문드문 가로등이 연달아 켜진다. 밝은 불빛 아래 휠체어와 유아차. 퐁실퐁실 걷는 개, 늙은 개를 품에 넣은 사람들이 지나간다. 서로를 보고 꾸벅이거나 같이 걷는 개의 나이를 묻는 목소리가 작게 들린다. 밤공기 속으로 흩어진다. 내려가는 길이 평탄하고 기다랗기를. 서두르면 다칠 수 있으니까 천천히 조심히 살피며 내려가기를. 뒷산은 산타와 산타를 이끄는 개 여럿으로 반짝였다. 덥고 축축한 여름밤은 겨울날 차가운 크리스마스트리보다 밝은 빛으로 아른거렸다.
글 · 사진_ 사밀(아나바다)
前 도망자
섬에서 태어나 육지에서 자랐다.
적당한 사실보다 서투른 거짓말을 편애한다.
레몬보다 레몬 껍질에 마음이 간다.
삶이 레몬을 준다면 그러려니 하고 레몬 씨까지 삼키는 지독한 버릇이 있다.
사로 시작하는 필명을 짓고 글을 쓴다.
사로 끝나는 직업을 가지면 인생이 평탄하다는 말에 장애인 활동지원사가 되었다.
글감: 최초의 ○○
첫 글방지기가 되어 기뻐요. 우히히! 무덥고 축축한 여름에 만난 우리가 이제는 옷을 잔뜩 껴입고 만나게 되겠네요. 저에게 여러분과 함께한 하자글방은 처음으로 온전한 지지, 응원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알려준 공간이었어요. 저 또한 온전한 마음으로 여러분을, 하자를 응원하게 되기도 했고요.
그런 의미에서 이번 달의 글감은 ‘최초의 ○○’입니다. 우리는 매번 서로 최초의 독자로서 함께 했지요. 어느 날 누워서 가만 생각해 보니 ‘나는 살면서 몇 번의 최초를 겪었을까? 그때마다 어땠지?’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여러 번의 최초를 떠올리는 건 나름대로 즐거운 일이었어요. 첫사랑, 첫눈, 첫 이별… 수많은 긍정적인 혹은 부정적인 최초의 경험과 감정을 통해 우리는 이만치 성장했겠죠.
여러분의 최초의 어떤 것이 궁금해요! 혹은 늘 그랬듯이 글감에서 멀리멀리 벗어난 이야기 또한 궁금해요. 무엇이 되었든 최초에서 출발해 빙글빙글 도는 생각들을 가만히 글로 적는 시간은 매우 즐거울 것이라고 감히 장담합니다. _여울
후속모임 〈아나바다〉
하자글방 후속모임은 정규 과정 이후에도 동료들과의 유대를 바탕으로, 스스로 글감과 마감을 굴려가며 꾸준히 글쓰기 공동체를 꾸려가는 모임입니다. 2025년 후속모임 〈아나바다〉는 아껴 ‘쓰고’, 나눠 ‘쓰고’, 바꿔 ‘쓰고’, 다시 ‘쓰는’ 마음을 담아 올해 모임을 열었습니다. 글방지기인 죽돌(청소년)이 제안한 글감으로, 함께 쓰고 읽는 합평의 시간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From. 하자글방
하자글방은 함께 읽고 쓰고 합평하며 자신만의 이야기를 발견해가는 청소년 글쓰기 커뮤니티입니다. 정규 과정 이후 3개의 후속모임이 진행 중이며 후속모임에서 나온 글 가운데 일부를 나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