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24일부터 7월 2일까지 하자작업장학교 청년과정 쥬디와 자베는 고등과정의 이상, 해나, 품과 함께 도쿄 세타가야구에 있는 노게센터(공식명칭 세타가야구립 노게청소년교류센터)에 다녀왔습니다. 전체 일정은 교장인 히옥스와 이틀은 하자마을 촌장님인 조한도 함께 했습니다.
노게센터의 가꾸보로들
작년 서울청소년창의서밋의 사전 워크숍(흙건축: 토벽土壁, 흙으로 아름답다)에 초대하여 함께 한국과 일본 미장에 대한 수업을 같이 하였던 노게센터의 청년들이 이번엔 하자의 청년들을 초대해준 것입니다. 노게센터는 30년 가까이 부등교청소년, 히키코모리 등 학교밖 청소년들과 활동해온 NPO법인 문화학습협동네트워크(이하 협동네트)가 처음으로 청소년 시설을 위탁받아 관민협력의 모델을 만들어보는 일, 제도권 안팎의 청소년들과 함께 학습과 성장, 놀이와 일의 공간을 만들어 내는 일을 해보려는 실험공간이었습니다. 이 공간을 기획하는 동안 협동네트는 하자센터와 하자작업장학교를 벤치마킹했었고, 세타가야구 공무원들과 동행한 하자방문도 한 적이 있습니다. 세타가야구의 공무원들도 청년활동의 지원을 ‘하자처럼’ 한다는 것은 좀 생소하기도 했지만, 하자센터를 방문하고 난 뒤 새로운 실험을 하는 데 의기투합을 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노게센터는 직원들만큼이나 중요한 대학생활동가들이 있습니다. 청소년들과의 대부분의 활동 - 방과후 학습지원, 구마모토 지진 후 재난워크숍, 태양광에너지연구팀과 같은 시민(연구)활동, 18세 선거권을 계기로 한 정치워크숍과 같은 사회참여활동, 연극놀이활동 등 -에 있어서 대학생활동가들은 함께 기획하고 운영하는, 하자식으로 말하면 판돌이들입니다. 노게센터에서는 ‘가꾸보로’(학생볼런티어의 일어발음)라 불립니다. 가꾸보로들이 청소년들을 만나지만, 노게센터를 만드는 과정에서 이 가꾸보로들 또한 협동네트로부터 받은 문화충격이 좀 있었다고 합니다. 협동네트에서 청소년들은 누구든 ‘내가 나 자신 그대로 있어도 좋은 곳’(이바쇼居場所)을 추구하는 것에 대한 지지를 받고 있습니다. 변하지 않아도 괜찮아, 지금 그대로의 너여도 좋아.라는 것이 협동네트에서 매우 중요합니다. 가꾸보로들은 협동네트를 만나고 나서야 비로소 자신들이, 자기계발, 자기혁신, 자기변화에 힘써야 해!라는 유무형의 압박에 시달렸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대학생, 동네청소년, 동네어린이, 히키코모리 출신 청년, 부등교(탈학교)청소년들 모두에게 이바쇼가 되는 그런 공간을 만들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을 하는 것만으로도 기쁘고 행복했다는 가꾸보로들은 알바와 취업활동에 바쁜 와중에도 노게센터의 판돌이들로서 헌신적인 활동을 해오고 있었습니다.
히키코모리들의 이바쇼가 되고 싶은 코코이루(Cocoil) 까페
그리고 이 가꾸보로들이 작년 하자서밋에 참가한 뒤, 노게센터에서 준비하고 있는 자립까페준비팀에게 흙건축워크숍의 제안을 하게 된 것입니다. 자립까페는 히키코모리 청년들이 지역사회속에서 함께 살아가는 자립모델을 만들고자 준비하고 있었는데, 이미 히키코모리 출신의 지원자 중 선발된 청년들이 까페 기획, 실무 훈련, 바리스타 실습 등을 진행 중이었습니다. 자립까페는 히키코모리들이 편안하게 모여 있을 수 있고, 상담과 조언이 가능한 쉼터이자 플랫폼이 될 작정으로 ‘코코이루’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코코이루는 ‘여기에 있다’는 뜻의 일본어에서 따왔습니다. 가꾸보로들은 코코이루가 흙건축방법을 적용한 까페가 되면 좋겠다는 제안을 했고, 하자서밋에서 일본미장을 지도했던 일본거주 건축가인 카일 홀쯔회터를 초대하여 흙미장, 스트로베일 흙소파, 흙오븐을 만들기로 정하고 우리를 초대하여 공동작업을 할 수 있게 한 것입니다.
도쿄 체류기간은 열흘이나 되었지만 사실 흙건축워크숍은 이론과 준비과정까지 합쳐서 사흘 안에 1차 워크숍이 끝났습니다. 2차 워크숍은 한 두 달 후 다시 진행될 예정이어서 우리가 시작한 작업의 완성은 나중에 전해들을 수밖에 없어 아쉬웠지만, 한 번 워크숍으로 후다닥 해치우듯 작업을 하는 것이 아니라 충분히 말리고 굳히고 하는 여유를 잘 배우고 싶기도 했습니다. 카일은 가나가와현에 살면서 전환마을을 함께 준비하고 있는 동료들을 함께 데리고 와서 지도를 했는데, 이참에 가꾸보로들이나 코코이루의 스태프들은 카일의 마을사람들과도 본격적인 교류를 시작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특히 흙오븐 만들기를 지도했던 필 캐시먼은 미일혼혈의 빵 굽는 자급자족농부로 ‘흙오븐은 마을공동체의 심장’이라는 말로 참가자들을 설레게 만들기도 했습니다. 노게센터와 카일마을이 지속적인 교류를 하면서 ‘전환’에 대한 구체적인 고민과 활동을 이어나가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생각해보니 노게센터를 다른 곳과 연결해주는 일은 미리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몇 군데가 더 생각납니다. 우리는 성미산마을처럼 도쿄안에서 마을만들기를 활발하게 진행중인 야나센 마을의 청년기업과 청년작업자 스튜디오를 방문하기도 하고, 세타가야 구에만 4개가 있는 모험놀이터를 방문하고, 생활기술작업자들이 함께 모여 다품종 소량생산의 공장이자 갤러리이자 교실이고 상점이 되는 모노가츠리(물건만들기)학교도 방문했는데, 그때마다 가꾸보로들과 동행하면서, 처음 알게 된 곳이든 이미 알고 있던 곳이든 하자마을의 관심과 질문을 공유하고 나누는 일을 함께 할 수 있었습니다. 코코이루에게도 영감을 많이 주었고, 하자센터와 오랜 교류를 하고 있는 까페 슬로는 이미 카일이 만든 커다란 스트로베일 흙소파와 흙담이 있는 곳입니다.
그런 연결과 공유에 있어 그 어느 곳보다 비전화공방을 빼놓을 수는 없겠지요. 후지무라 야스유키 선생님을 만나러 후쿠시마에서 100km 가까이에 있는 나스 지역엘 간 것입니다. 가꾸보로들도 함께 갔습니다. 사실 나스 지역을 포함해서 도쿄에 간다는 것만으로도 탈핵공부를 열심히 했던 작업장학교 학생과 학부모들 사이에 진동이 컸습니다. 여전히 방사능이 집중되는 핫스팟이 새로 발견되는 일본, 구마모토 지진의 여진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보도 등 일본은 안전한가 하는 질문은 매우 중요한 질문이었습니다. 도쿄와 후쿠시마에 많은 친구, 동료들을 가진 ‘하자작업장학교’로서도 마음의 진동이 컸습니다. 일본에서 하자로 많이 오지만 하자에서 후쿠시마는 가지 않는다는 상호합의된 원칙이 있었습니다. 물론 예외적으로 교장인 히옥스가 그런 협의를 위해 후쿠시마에 가기도 했었지요.
후지무라선생님은 후쿠시마 사고 이후 자녀들의 먹거리를 염려하는 부모들을 위해서 방사능측정기를 발명하셨는데 식재료의 방사능은 생산지역만을 따져서는 알 수 없다는 말씀으로 비전화공방에 다녀가라는 초대를 하셨었지요. 후지무라선생님의 방사능측정기는 정부에서 사용하는 비싼 제품과 달리 천만 원 이내로 구입이 가능하지만 성능에서는 별다른 차이가 없어, 이미 일본 전역에 지역의 시민 방사능측정실들에 60여대 넘게 보급이 되었다는 것이었습니다. 방사능은 너무나 무섭고 접근불가능한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일본의 시민과학자들과 발명가들은 방사능피해 속에서도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까를 진지하게 고민하고 실천하는 것 같아서 깊이 응원하는 마음을 갖게 했습니다.
비전화공방 청년들의 갭이어 - 전환을 준비하는 시간
비전화공방은 도쿄의 약간 북쪽, 나스라는 고원지역에 있었습니다. 고원우유와 치즈가 매우 유명한 지역입니다. 고원의 목장이라는 이미지답게 보기에는 아름답고 평화로운 곳이었지만 지역을 둘러싼 산을 넘어서면 바로 후쿠시마현이 있습니다. 집의 뒤편 숲에서 어릴 때부터 항상 캐먹었던 죽순을 다시 먹으려면 계산해보니 300년 후나 되어야 반감기가 끝나 안심할 수 있겠더라는 쓸쓸한 말씀을 해주셨던 후지무라 선생님이 계신 곳입니다. 비전화(전기와 화학약품 없는 생활기술)공방은 작은 호숫가에 비전화까페, 여러 채의 게스트하우스, 제자들이 사는 기숙시설, 유기농텃밭과 온실, 공방과 사택 등이 마을처럼 옹기종기 모여 있었습니다. 가꾸보로들은 이곳에서 후지무라선생님의 제자들 - 자신들보다는 약간 인생선배 - 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 분들도 가꾸보로들처럼 입시교육을 받고 대학엘 가고 취업을 하였지만 삼십대가 되면서 뭔가 잘못된 것 같은 기분 속에 샐러리맨을 포기하면서 스스로 ‘갭이어’를 선언하고 삶의 전환을 생각하고 준비하는 시간을 비전화공방에서 보내고 있었습니다. 비전화공방에서 지내보면서 - 특히 도시에서 나고 자란 청년들은 - ‘사는 것 같다, 행복하다’는 말을 하고 있었습니다. ‘행복’이란 단어만 들어도 움찔하게 되는 대학생 가꾸보로들은 비전화공방의 모든 것이 신기하기도 하고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만든다고 했습니다.
<3만엔비즈니스: 적게 일하고 더 행복하기>의 저자로서 청년들의 마음을 흔들어놓은 후지무라 선생님. 삶(의 형식)을 바꿀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는 젊은이들과 그 젊은이들이 생각하고 살아가는 법을 스스로 훈련할 수 있도록 제자를 받기 시작한 후지무라선생님은 그러나 그 젊은이들 개인들을 직접 조직하고 연결하는 일에는 크게 관심을 두지 않은 채, 당신은 계속해서, 생각하는 방법을 발명하고, 살아가는 형식을 발명하고, 대안문명을 위한 기계적 발명품들을 실험하고 생산하는 일에 주력하는 공방을 운영하면 되고, 청년들의 삶이란 그 공방에서 영감을 얻어 청년들 스스로 해내면 되는 일이라고 생각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마을만들기의 기획자나 마을의 촌장이 되기보다는 여전히 더 오랫동안 공방장인의 역할을 더 수행하셔야 되는 기술철학자 같다는 생각을 잠시 했습니다. 그런 후지무라선생님에게도 청년들에게 영감을 주는 공방을 몇 군데 더 만드는 일은 해볼 만한 일로, 어쩌면 내년에 서울에도 후지무라선생님의 서울 비전화공방이 만들어질지 모르겠습니다.
운명 앞에서 - 앞으로 누구와 함께 살아갈까?
방사능과 지진, 그리고 드디어 평화헌법을 폐지하고 군대와 무기를 가지려는 정부. 이제 막 일본인 친구, 동료를 만난 우리들로서는, 한국보다 먼저 ‘헬재팬’을 선언한 일본 땅에서 청년들은, 어린이들은 어떻게 살아갈 수 있지? 하는 염려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돌아오면서 우리는 다시 산과 밭과 숲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마사키 선생님을 떠올렸습니다. <나비문명>의 저자인 마사키 선생님이 가장 최근에 하자를 방문하셨던 것은 우리 밭의 ‘시농(始農)제’ 때였습니다. 그리고 그날 구마모토 지진이 시작되었지요. 시농날이고 지진이 났기 때문에 더더욱, 재난사회에서 살아가기 위해서 농부가 된 것은 필연적이고도 운명적이었다는 이야기에 하자죽돌들이 깊은 감명을 받기도 했습니다. 이후 들려온 소식 중에는 매우 가슴 설레는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마사키 선생님과 함께 있는 청년들은 지진이 나고 대피명령이 나오자마자 대피소가 있는 초등학교 체육관에 가봤습니다. 이미 현장을 지원하기 위한 많은 물품들이 속속 도착하고 있었는데, 자세히 보니 컵라면 같은 인스턴트 음식들과 플라스틱병의 담긴 물이 잔뜩 쌓여 있었다는 것입니다. 마사키선생님께 삶의 전환과 유기농업을 배우고 있었던 청년들은 컵라면을 거절하고, 다시 집으로 돌아가, 텃밭을 확인하고 식재료들을 챙겨 피난민들을 위한 음식을 직접 조리해서 제공했다는 얘기였습니다. 운명론자라는 일본인들이 그 운명을 어떻게 대하는지 이 청년들 사이에서 뭔가 변화가 시작된 것이 아닐까 마음이 두근거렸습니다. 그러면서 농성장 등 현장에 갔을 때 한쪽에 쌓여있던 컵라면들, 믹스커피, 플라스틱물병들이 새삼스럽게 기억났습니다. 밥차를 운영하는 분들이 정말 대단한 분들이시구나 하는 생각과 함께. 우리도 곧 그 인스턴트 음식을 거절할 힘이 생기겠지요?
가을의 하자서밋에는 노게센터의 가꾸보로들이 다시 참여할 것 같습니다. 하자방문을 위해서 알바를 더 열심히 해야 할지도 모르지만, 가꾸보로들은 하자의 청년들, 죽돌들을 만나는 동안 함께 꿈을 꾸고, 함께 일을 할 수 있어 기쁘다고 했습니다. 우리들 또한 그런 친구들을 계속해서 만나면서 우리의 꿈도 키우고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을 조금이라도 낫게 만들어갈 수 있을지 모른다는 기대도 해봅니다. 또 협동네트가 운영하는 대안학교의 어린이들은 가을에 우리 학교가 운영하고 있는 전환기학교인 목화학교에 일주일간 ‘특례입학’을 할 예정입니다. 그렇게 우리의 만남은 이어지고, 그렇게 해서 우리의 친구들이 운명적으로 마주하고 있는 그 사회, 세상은 우리의 세상이기도 하게 되었습니다. 우리의 애정과 염려와 행복한 삶에 대한 기원은 우리의 친구들을 위한 것이기도 합니다. 그렇게 우리는 조금 용기를 내어 선택했던 일본 여행의 일단락을 지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