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로 5회째를 맞는 청소년창의캠프 ‘C-큐브(Creative-cube)가 지난 7월 30일부터 8월 2일까지 160여명의 청소년들이 참여한 가운데 열렸습니다. 이들은 청년 자원활동가 ‘파니’, 각 현장 전문가들과 함께 노들텃밭을 비롯해 서울 곳곳을 다니며 ‘서로를 살리는 창의’를 고민하고 실천해 보았습니다. 필요 이상의 소유와 과다한 소비 때문에 버려지는 것들을 이용해 각 현장에서 새로운 쓸모와 이야기를 만드는 활동을 해보았죠. 그 결과 집안에서 애물단지로 전락했던 피아노는 멋지게 리디자인되어 사람들이 활기차게 오가는 곳에 자리잡았고, 빗물을 모아 재활용하는 빗물 저금통도 생겨났습니다.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보세요.
하나. Story - ‘서로를 살리는 창의성’
하자에서는 지난 수년 간 창의성에 대해 이야기해왔습니다. 개인의 반짝이는 아이디어를 가지고 경쟁의 우위를 점하는 도구로서의 창의성이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세상이 되도록, 협력하여 구체적이고 실제적인 변화를 만드는 공공의 창의성에 대해서 말이지요. 창의캠프도 그간 이러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청소년들이 일상 속에서 사소하지만 공공의 문제들을 찾고 질문을 통해 팀 별로 고민을 발전시켜 공동체의 문제를 해결하는 창의성을 발현해보는 작업들을 해보았습니다. 일본의 이토 다케시 같은 청년 사회적기업가들이 행동을 하게 된 계기들은 거창하고 멋지기만한 계획에서 출발한 것이 아니라, 사소하지만 구체적 문제를 일상에서 발견하고 이에 물음표를 붙이며 작은 행동부터 시작했다는 것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특히 올해는 이전 캠프를 돌아보며 참여하는 청소년들의 생활 반경이나 고민의 지점이 협소하기에 2~4일의 단발성 캠프에서는 머리를 써서 기존의 경험을 연결하는 것보다 현장 참여를 통해 새로운 경험을 해보는 것이 필요할 것이라는 판단을 했습니다. 따라서 기존 콘셉트를 유지하되 좀 더 각 현장과 밀착해 몸을 사용한 실행을 경험하는 것을 강화하기로 했습니다. 현실적인 ‘삶’의 기반을 인식하고 자기 삶의 태도를 돌아볼 수 있도록 말이죠. 주제어로 지속가능성, 생태, 함께 살기, 창의적 협력, 문제해결 등을 설정한 것도 이 때문입니다.
문제 설정의 배경은, 더욱 황폐해지고 있는 환경과 사람들의 마음입니다. 필요 이상의 소유와 과시적인 소비로 인해 생겨나는 엄청난 양의 쓰레기들, 쓸모를 다했거나 쓰임새를 몰라 활용하지 못하고 버려지는 것들이 지구에 넘쳐나고 그 변화는 우리의 삶에 직접적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사회와 자연을 죽이고 다시 이들이 사람을 죽여오고 있습니다. 사람•사회•자연이 서로를 살리는 것. “청소년인 우리 손으로 어떤 일을 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던져 보았습니다. 이것이 상관없는 남의 일이 아니라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의 진짜 모습이며 우리의 이야기라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었습니다.
이번 캠프에서는 하자작업장학교에서 이야기하는 벌새 크리킨디처럼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해보기로 했습니다. 4일 동안 ‘버려지는 것’ ‘쓰레기’라며 세상을 죽이는 것들을 소재삼아, 새로운 쓸모와 생명의 이야기를 만들어 보자, 우리가 살고 있는 서울 현장에서 직접 행동으로 옮겨보자고 제안했습니다.
물론, 우리나라도 197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제기되어온 생태와 공동체적 삶에 대한 운동들에서 제기되었다시피 급격한 도시화와 공업화, 또 이와 맞물려있는 자본주의 시스템 자체가 변화되지 않는 한 근본적인 변화는 어렵습니다. 하지만 변화를 위한 움직임과 함께 다른 존재들과 연계하며 행동하는 개인들이 늘어나야 한다는 건 분명할 것입니다.
4일 간의 창의캠프는 이런 기획 방향 속에 짧은 일정과 청소년들의 서툰 기술을 가지고도 할 수 있는 작고 소박한 행동을 시도해 보는 것으로 구성되었습니다. 그야말로 ‘짧고 굵은’ 맛보기이며 고민의 시작 정도일 겁니다. 뜻은 비장했으나 날씨는 무덥고, 노동은 힘들겠지만…! 실행은 신나고 재미있게!라고 외치며 캠프를 준비했습니다. 다른 사람과 사회, 자연이 도구가 아니라 ‘서로’를 위한 존재임을 알게 되면 얼마나 좋을까 하면서요.
둘. 함께한 사람들
올 해에도 특성화고 청소년 160여명(39개교)이 참여하여, 처음 만나는 친구들과 한 팀으로 4일을 보냈습니다. 대부분 입시 교육을 받아왔거나 취업 준비 중인 청소년들이기에, 4일이라는 기간 안에, 나와 사회의 문제가 연결되어 있음을 알고 창의적 활동까지 해보는 것은 쉽지 않았지만, 오히려 이런 난관을 직면하고 헤쳐나가는 과정에서 생겨나는 에너지도 있었답니다.
이 과정에 21명의 청년 자원활동가 ‘파니’는 큰 힘이 되었죠. 파니들 중 75%가 예년의 창의캠프 또는 교육기획팀의 청소년 프로젝트에 참여했던 청소년이었습니다. 올해로 5회를 맞은 창의캠프에 몇 년째 파니로 참여하는 친구들도 있고요. 참여자였던 특성화고 청소년들, 하자의 다른 프로젝트에 참여했던 10대 청소년들이 20대 청년이 되어 다시 캠프로 돌아왔습니다. ‘선생님’이 아닌, 나이 차이가 얼마 나지 않는 선배들과의 관계는 특별한 친밀감이 있습니다. 이들이 청소년들과 만드는 관계와 활동은 ‘공동의 창의’와 ‘협력’이라는 캠프의 특징을 함께 만들어주는 파트너로서의 역할이기도 합니다. 재참여율이 높은 이유에 대해 청년들은 ‘여기서는 소모되지 않고 함께 하자를 만나 성장할 수 있어서’ 또는 ‘캠프의 에너지가 너무 즐겁고 기뻐서’라고 말합니다.
새로운 성장의 판을 만들기 위해 18개의 워크숍 팀도 함께 해주었습니다. 8개의 발상워크숍, 10개의 액션워크숍이 진행되었는데요. 발상워크숍 분야에서는 오랜 파트너인 유유자적살롱, 이야기꾼의책공연, 기억발전소, 몬구, 네시이십분, 조슈아나무 등에서 일상의 소리, 시간, 공간을 새롭게 인식하는 팀 활동 워크숍을 진행해주었습니다.
올해 많은 변화를 시도했던 액션워크숍은 현장에서 버려지는 것에 대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이에 새로운 의미와 쓸모를 만드는 작업을 하는 전문가팀들이 결합하여 이틀 동안 청소년들과 함께했습니다. 이밖에도 10여 명의 하자센터 판돌들이 함께 했습니다. 캠프를 주관한 교육기획팀외에도 학교운영팀, 협력기획팀, 자공공허브팀, 운영지원부 등 각각 다른 팀에서 온 판돌들은 다양한 시각과 의견을 보태어 주었습니다. 일상 업무에서는 청소년을 만나기 어려웠던 판돌들이 본격적으로 그들과 만나는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예년과 달리 올해 캠프에서는 10개의 팀이 각자 주제를 가지고 이틀 간의 워크숍을 진행했습니다. 좋은 아이디어가 있어도, 생각만 하고 있으면 아무 변화도 일어나지 않지요. 세상의 변화를 만드는 사회적기업가, 커뮤니티 디자이너, 자연에너지 생태활동가 등의 현장전문가들과 함께 주제별 문제를 해결해보는 경험-일-을 현장에서 실행해보았습니다. 팀원들과 소통하고 협력하면서요. 그들이 새로운 쓸모를 만들고 장기적으로 다수의 사람들이 사용할 수 있는 용도로 탈바꿈시킨 ‘버려지는 것’은 다음과 같습니다. 폐목재 / 폐지 / 폐현수막 / 폐자전거 / 사용하지 않는 피아노 / 버려진 땅 / 한 번에 8리터씩 낭비되는 수세식 변기물/ 폐금속 또는 유리(고물) / 방치된 도시 생활공간 / 버려지는 빗물입니다.
‘하자 리사이클디자인공방’과는 한때 방치되었다가 시민들이 함께 가꿔가는 텃밭공원으로 운영되는 노들텃밭이라는 공공지대에 버려진 나무와 목공 기술, 바느질을 활용하여 쨍한 여름볕을 피해 쉴 수 있는 그물막과 휴게의자를 만들었습니다. 역시 노들텃밭이 현장이었던 ‘무한나눔사이클자전거공방’과는 폐자전거 부품을 활용해 사람의 힘으로 에너지를 만드는 자전거 발전기와 공동 테이블, 이동식 휴지통을 제작했죠. ‘달려라 피아노’팀과 만난 청소년들은 집 안에서 덩치큰 애물단지가 된 중고 피아노를 멋지게 리디자인해냈습니다. 이들이 새롭게 탄생시킨 두 대의 피아노는 하자센터 중정과 지역아동복지센터에 두고 마을 사람들이 마음껏 연주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도시의 자투리 땅이나 쓰레기가 쌓인 채 버려진 공간에 농작물을 가꿔 공동체 공간을 만드는 ‘게릴라농부들’과는 영등포역 옆 쪽방촌과 연계해 주민들 중 원하는 이들과 함께 버려진 재료들을 재활용해 화단을 만들었습니다. 화초를 비롯해 상추, 고추, 허브 등을 심고 벌여진 조촐한 마을잔치. 구멍가게 할머니께서 얼마나 기뻐하시는지 오히려 참여한 청소년들이 감동을 받고 말았답니다. 청년 교육기획자 그룹인 ‘나너울’팀과 만난 청소년들은 매일 수도 없이 내리는 수세식 변기가 1회 8~12리터의 물이 낭비된다는 사실에 주목했습니다. 이들은 페트병과 자갈, 모래 등의 간단한 재료로 변기 물을 아낄 수 있는 설치물을 만들고, 센터 인근의 구청과 경찰서, 대형건물 등을 찾아다니며 홍보 및 설치를 독려하는 캠페인을 벌였습니다. 공간디자인그룹 ‘씨디티앤토’와 매칭을 이룬 청소년들은 마포에 한창 건축 중인 쉐어하우스를 방문해 폐지를 활용해 이 곳에서 사용할 물건들을 만들어보았죠. 재활용 디자인 사회적기업인 ‘터치포굿’ 팀은 소각이나 매립 등 처리가 어려운 폐광고판과 현수막, 키보드 기판 등을 활용해 가방을 제작하고, 이를 받을 사람을 직접 선정, 영상 메시지를 제작해 전달했습니다.
‘여러가지연구소’와는 도시 안의 버려진 공간, 자원, 관계, 문화를 돌아보고 놀이 공간으로서는 의미를 잃어버린 ‘동네’에서 버려진 것들을 채집하여 놀이를 만들고 캠핑을 하면서 이를 영상으로 만들어 공유했습니다. 시들어지고 있는 동네 전통시장에서 먹거리를 사서 직접 요리를 해먹기도 하구요. ‘핸즈적정기술협동조합’과 ‘하자 전환에너지적정기술공방’과는 에너지와 적정기술에 대해 이야기해가며 직접 그림까지 그린 1톤짜리 빗물 저금통 두 개를 하자센터 옥상과 벽에 설치하고 안내판과 지붕을 만들었습니다. 이들이 만든 빗물 저금통은 비가 많이 왔던 올 여름 톡톡히 역할을 해냈죠. 덕분에 멋진 야외 게수대도 완성되었고요.
청소년 10팀이 전문가 10팀과 만나 다양한 활동을 해 보았던 과정은 전부 마지막 날 쇼하자에서 공연과 전시, 프리젠테이션, 심지어 퍼포먼스로 발표되었습니다. 마음껏 소리치고, 웃고, 간혹은 찡했던 축제의 시간이었습니다.
우리는 이번 여름 며칠 간, 모든 것이 외부에서 만들어져 돈으로 소비되는 도시 환경에서, 스스로 필요한 것을 만들고 수리해보며 자립의 힘과 자신감을 얻고 몸을 사용하는 생활에 대한 상상을 해봤습니다. 또 우리가 만든 것을 개인 소유물로 가져가지 않고 다른 이들이 공공으로 사용하도록 기획하고 만들어 보았습니다. 참여한 청소년들도 소소한 변화들을 들려 주었습니다. ‘터치포굿’과 만든 가방을 너무 갖고 싶었지만 다들 의미있는 곳에 주자고 해 억지로 찬성했다, 그런데 기증할 사람에게 줄 영상편지를 만들면서 이전에 느껴보지 못한 뿌듯함이 차올랐다고 해요. ‘게릴라농부들’과 함께한 청소년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지하철역에서 50m도 안 떨어진 곳에 쪽방촌 같은 곳이 존재하는 줄도 몰랐다, 이상한 곳으로만 알고 살았는데 좋은 분도 많더라, 앞으로 삶을 다시 생각해 봐야겠다고 합니다.
넷. 그 이후...
캠프는 끝났지만, 함께 등산을 간다거나 정기적으로 만나는 후속 모임들이 이미 생겨났습니다. 그리고 남겨진 과제들이 있지요. 일회성에 많은 수의 참여자들이 함께 해야한다는 한계 속에서도 방향성을 지켜가며 또 창의적으로 운영해야 한다는 고민들입니다. 내년에도 하자의 청소년 창의캠프는 계속될까요? 또 어떤 뜨거운 여름을 보내게 될까요? 어떻게 캠프 이후에도 다양한 청소년 및 전문가 파트너들과 액션이 연결되는 판을 만들 수 있을까요? 지금부터 기대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