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키/ 하자가 좀 이상하잖아요. 좋은 쪽으로요. 그건 기존에 있는 말로 이 공간을 설명하기 어렵다는 뜻이거든요. 시립 기관으로서 더 다양한 사람들에게 우리의 강점을 전달해야 하는 입장으로서는 참 쉽지 않죠. 죽돌에게도 “하자는 이런 방향성을 가지고 있으니까, 여러분이 이런 것들을 좋다고 생각했으면 좋겠어요”라고 말하지 않아요. “여기 와서 이거 같이 하자!”고 할 뿐이죠. 그런데 가끔 청소년의 입에서 우리가 기대했던 바와 부합하는 단어들이 나올 때가 있어요. 그럴 때 가장 즐거워요.
겨자/ 이 인터뷰 시리즈 기획도 그 지점에서 출발했어요. 우리가 공유하고 있는 가치가 있지만, 그게 뭔지는 말로 설명하기 힘들잖아요. 그런데 저는 그것 자체도 참 멋지다고 생각했어요. 설명하기 어려울 만큼 살아 움직이고, 틀에 가두기 힘든 공간이라는 뜻이니까요. 그래서 아직 하자를 모르는 사람들에게 하자다움을 정의해서 들려주기보다는 인터뷰이들을 통해 직접 보여주고 싶었어요.
아키/ 맞아요. 겨자가 인터뷰하신 조각 조각들을 합치면 하자가 되는 것 같아요.
겨자/ 그런 의미에서 <판을 만드는 사람들> 어떠셨나요~? >< 마지막 인터뷰이께 여쭤보려고 벼르고 있었어요.
아키/ 적합한 사람을 찾아서 적합한 질문을 던지는 것이 되게 반갑더라고요. 하자를 몇 년 다닌 것도 아닌데 하자를 잘 이해하고 있는 걸 보니까, 한편으로는 인턴들이 참 센스가 좋고 하자를 좋아하는 것 같다고 느꼈고요. 다른 하나는 ‘이제 하자를 이해하기 위해서 몇 년까지 걸리지 않는구나, 몇 개월 안에도 이렇게 깊이 있게 해석할 수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어서 좋았어요.
겨자/ 감사합니다. 이 부분은 인터뷰에 꼭 싣겠습니다. 사실 저는 제 인터뷰 게시물에 누가 ’좋아요’를 눌렀는지 가끔 보거든요. 그런데 아키도 ’좋아요’를 누르셨길래 한번 여쭤봤어요. ㅎㅎ 그 김에 아키 인스타도 염탐하고 왔는데요. 아키가 저한테는 특별하게 다가온 지점이, 요즘 보기 드문 남성이신 것 같아요. 특히 아키의 나이대에서는요. 아키는 어떻게 이런 권리 문제에 대한 감수성이 생기게 되셨는지 궁금해요.
그 시절 아키
아키/ 하자에는 분명 여성주의적 전통이 있죠. 설립자 조한께서도 여성주의자셨고요. 그런데 저는 여성주의적인 지식에서 출발했다기보다는, 저 자체가 사회에서 동떨어져 있는 사람 같다는 생각을 청소년기에 많이 했어요. 친구가 없었다는 얘기죠. 그 이유가 저의 기질이나 상황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제가 한국 사회에서 ‘나는 저 남자 좋아’라고 할 만한 사람을 별로 못 만난 거예요. 사회학 용어로는 남성으로서의 준거집단이 없었던 거죠. 롤모델로 삼을 남자 어른이 없는 상태에서 ‘나는 어떻게 살아야 되지’ 하는 고민이 많았어요. 사실 저를 소수자라고 말할 수는 없잖아요. 헤테로(이성애자) 남성에, 학교도 다녔고, 집안이 특별히 가난했던 것도 아니었으니까요. 다만, 저의 경우엔 ’나의 어려움을 표현할 수 있는 언어가 없다’는 어려움이 있었던 것 같아요.그 중 가장 큰 것이 ’외로움’이었던 거죠.
제가 한국 군대에 가면 정말 못 견딜 것 같아서, 삼수 끝에 카투사를 갔는데요. 거기 있는 미국 남성들이 그래도 한국 남성들보다는 저와 문화적으로 더 가깝다고 느꼈어요. 그때 나의 어려움이 내가 진짜 이상한 사람이어서가 아니라 문화적인 혹은 가치적인 문제였음을 많이 깨달았던 것 같아요. 그런데 당연히 저는 영어를 잘하지 못하는 한국군이니까 그 안에서 노골적이지는 않아도 어떤 종류의 어려움들을 또 겪었죠. 제가 만약에 어떤 소수자 감수성이 있다고 한다면, 그런 경험들에서 배웠던 게 아닐까 싶어요.
이건 굉장히 조심스러운 얘기예요. 50대 남성이 본인이 소수자 감수성을 안다고 하면 믿으면 안 돼요. (웃음) 제가 그런 감수성이 뛰어나다는 게 아니라, 비슷한 감정들을 조금이라도 느껴봤던 것이 아마 또래 남성들하고는 다른 점인 것 같아요.
겨자/ 그때의 감정을 외로움으로 인식하신 게 정말 대단하신 것 같아요. 누군가는 그 감정을 다르게 인식하고 왜곡해서 표출하기도 하니까요.
아키/ 외로움보다는 고립감이라고 다시 표현하고 싶네요. 외로움은 인류 전체가 느끼는 보편적인 감정인 반면, 고립감이라는 건 상황이 만들어낸 사회적인 개념이니까요.
그 시절 아키
겨자/ 돌아보면 저도 그 고립감에 청소년기가 힘들었던 것 같아요. 저는 학구열이 높은 지역에서 나고 자라 떠밀리듯 경쟁하며 살았어요. 그러다 고등학교 때 우연히 사회학 책을 읽고, 제 삶이 뭔가 잘못됐다는 걸 깨달았어요. 그때부터 무섭고 힘들었어요. 주변이 다 똑같이 살아왔으니까, 다른 삶이 있다는 생각을 그때는 할 수가 없었거든요. 그 감정이 외로움이고 고립감이었던 것 같아요.
아키/ 그럼 그 차이는 뭐라고 표현할 수 있어요? 겨자가 살던 동네와 하자와의 차이요.
겨자/ 엌…… 흠……. 하자는 사랑이 있는 곳이죠.
아키/ 사-랑. 이 얘기는 처음 듣는데요?
겨자/ 사랑은 능동적인 행위잖아요. 아무것도 사랑하지 않고 살 수도 있는데, 굳이 공들여서 대상을 다르게 봐주고 이해해 보려는 마음이니까요. 하자 사람들은 그게 가치든 사람이든 무엇이든 간에, 뭔가를 사랑하면서부터 이곳에 모여들었다고 저는 생각해요. 정작 본인들은 모를 수도 있는데, 다들 수동적으로 살지 않고 주체적으로 관계 맺으며 살아가겠다고 다짐한 순간들이 있을 거예요. 제가 인터뷰에서 사실 그런 걸 물어보고 다녔던 거죠. 제가 살던 동네는, 또 그 속의 저는 죽어있다고 느꼈던 적이 많아요. 그런데 하자는 사랑이 득실거리는, 살아있는 공간 같아요.
아키/ 사랑을 그렇게 표현하시니까 맞는 것 같아요. 하자 사람들이 좀 시크해서, 보통 오래 지내봐야 ‘아 이 사람들이 정이 많았네’ 하거든요? (웃음) 그 각도가 아니라 사랑을 능동적으로 타자나 사물과 상호작용하는 것으로 보신 거잖아요. 저는 나 이외의 것에 능동적으로 ‘개입’한다고 표현하고 싶은데, 그런 측면이라면 하자 사람들은 판돌이든 죽돌이든 사랑이 넘치는 사람들이네요.
겨자/ 그래서 아키에게도 묻고 싶은데요. 유자살롱(유유자적 살롱) 대표를 하셨을 당시의 인터뷰를 봤어요. 고립된 청소년들이 자유롭게 음악을 즐기면서 다시 사회로 한 발 내딛을 수 있는 힘을 만들어주고 있다고 말씀하셨더라고요. 아키의 이야기 속에서 “고립”은 반복되는 키워드 같아요. 그런데 사실 고립되어 있는 존재를 그냥 지나치는 사람이 더 많잖아요. 아키 스스로 답변하기 어려울 수 있는데, 그렇게 먼저 손을 내미는 힘은 어디서 나오신 것 같나요?
아키/ 그건 제가 비슷한 감정을 느껴 봤기 때문이죠. 저는 흔히 말하는 히키코모리처럼 살아본 적은 없어요. 그럼에도 고립감은 다른 사람들보다 더 많이 느끼고 살았던 것 같아요. 아까 말씀드린 대로 중고등학교 때도 그랬고요. 첫 직장이 대기업 카드 회사 브랜드 팀이었어요. 광고 찍고, 팬시하고, 재밌었는데, 그 안에서 너무 큰 고립감을 느꼈어요. ‘수천 명 직원들 중에 나 같은 사람은 나 하나겠지’ 하면서요. 이런 상황이면 일을 잘하건 못하건 간에, 행복하기 어렵죠.
유자살롱이 고립 상태의 청소년들을 만났을 때 ’아 이건 내가 도와야겠구나’라고 생각이 들어서, 하자센터를 잠시 그만두고 유자살롱에서 공동 대표로 5년을 지냈어요. 저는 ”고립 상태의 사람이 너무 불쌍하니까 꺼내줘야지”라고 생각했던 적은 없어요. 대신 “나는 지금 옆에 사람들이 있잖아. 이 친구들에게 약속은 못 하겠지만, 어쩌면 그렇게 고립감을 느끼지 않으면서 살 수 있을지 모른다고 말해주고 싶어” 라는 마음이었던 같아요. 같은 존재로서.
대기업 다니던 시절, 아키
묘하게 더 행복해 보이는, 유자살롱 아키
겨자/ (இдஇ; ) … 감동이에요. 말씀 들으면서 생각이 드는 게, 저도 뭐랄까… 주류의 사회에 편입하게 되면, 평생 고립감을 느끼면서 살겠구나 싶어요. 그 고립감이 평생 나를 괴롭히겠구나.
아키/근데 비주류로 가는 것도 다른 종류의 고립감을 감수해야 하는 거예요. 예를 들면 상대적으로 수입이 줄어들면 거기에 따른 고립감이 있을 수 있고요. 때로는 내가 들여다보고 있는 사회 문제가 아직 대중화되지 않은 영역이어서, 물어볼 선배가 없을 수도 있어요. 유자살롱도 주변에 좋은 어른들이 많았지만, 이 분야에 대해서는 잘 모르시니까 거기서도 고립감을 느꼈죠. 그래서 고립감을 피하려고 어딘가를 가기보단 내가 어디에 연결되고 싶은지를 생각해 보는 건 어때요?
유자살롱
유자살롱을 했을 때 여러 가지 어려움이 있었지만, 저에게는 너무 행복한 시간이었어요. 청소년들과 부대끼면서 음악 만들고 합주하고 공연하는 시간이 너무 좋았거든요. 그 과정에서 저를 돌아보고 직면할 수 있었고, ’그래도 이 친구들한테 제가 좀 도움이 되는 것 같아’하는 생각이 저의 궁극적인 자존감이 되어 주었죠. ‘내가 음악을 만든 뮤지컬의 관객이 10만 명이 되었을 때보다, 이게 더 좋은데? 그런 느낌까지 드는 거죠.
어떤 선택을 할 때 마이너스로부터 도망치는 것도 중요해요. 내가 망가지면 안 되기 때문에 나를 보호하고 지키는 건 중요하죠. 그런데 그것만을 동기로 삼기보다는 “내가 이걸 하면 너무 행복해. 그걸 쫓아가고 싶어” 하는 플러스 요인도 잘 봐야 해요. 저는 그걸 중력이라고 불렀어요. 삶에는 여러 가지 힘이 있는데, 미는 힘이 있고 당기는 힘이 있잖아요. 우리 사회에는 미는 힘이 너무 많아요. 당기는 힘에도 집중할 필요가 있어요.
겨자/ 어떻게 보면 하자는 청소년들에게 당기는 힘을 제공하는 거네요.
아키/ 중력이 많은 공간인 거죠.
겨자/ 저도 하자 덕에 그런 무중력 상태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제 안에서 하자가 엄청난 역할을 하고 있어요.
아키/ 그런데 아시죠? 중요하다는 건, 그걸 중요하게 느끼는 사람이 있어야 중요해지는 거예요. 의미는 상호적으로 만들어 가는 거니까요. 물론 겨자가 판돌이 대단하다고 얘기해 주는 건 고맙지만, 힘은 상대적인 거예요. 판돌이 그렇게 대단해 보인다면, 그 판에 있는 죽돌도 대단한 거예요.
겨자/ 자연스럽게 마지막 질문과 연결되네요. 아키는, 또 하자는 어떤 판을 만들고 있나요?
하자에서 판을 만드는 아키
아키/ 어떤 판을 만드는지는 정말 중요하죠. 그런데 그것보다 어떻게 판을 만드는지에 대해 여전히 고민하고 노력하고 있어요. 저도 올해 창업 창직 작업장이라는 프로그램을 같이 만들어서 운영해 봤는데, 해보니까 모자란 점이 많았어요. 그러면 마음은 힘들지만 ’만들어둔 걸 바꿔야 더 좋은 프로그램이 되는구나’라고 생각하죠. 물론 저희가 문화 기획자라는 정체성도 있지만, 딴딴딴! 만들어놓고 짠! 하는 게 아니라, ’죽돌들과 함께 판을 만들어간다는 것’이 저희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방식이에요. 그런 의미에서 여러 힘이 교차하며 새로운 에너지를 만들어내는, 살아있는 판을 만들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