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고 싶은 일-기>는 하자 청소년들의 일상과 진로를 주제로 대화한 인터뷰 시리즈입니다. 청소년들이 하고 싶은 일을 위해 무엇을 하거나 하지 않으며(또는 하려고 하며) 일상을 지키고 있는지, 인터뷰이의 To do list를 함께 보며 이야기 나누었습니다.
2025년 네 번째 하고 싶은 일-기는 하자 청소년운영위원회 시유공에서 여러 행사를 기획하고 꾸리고 있는 '퍼핀'의 이야기입니다. 퍼핀은 10대 시절 학교 밖에서 다양한 활동을 하던 중 하자를 알게 되었다고 해요. 대학에서 다큐멘터리를 공부하며 여러 사회이슈에 목소리를 내고 있는 퍼핀은 결국 '사람을 모으는 일'을 하고 싶다고 하는데요. #다큐, #노동, #일벌이기 를 키워드로 한 퍼핀의 기록은 그가 직접 작성한 이야기로 시작합니다.
“자퇴 2회차, 하자마을 6년 차,
그리고 돌고 돌아 최근 입학한 제도권 대학 1학년 첫 학기를 무사히 마치고 오랜만의 여름방학 만끽 중.
학생 정체성보다는 학생운동에 더 많은 정체성을 쏟으면서도
(과거)탈학교 청소년’ 자아와 ‘학생’ 자아에서 해소되지 못하는 찝찝함을 경험 중…
예술을 전공하지만 예술가가 되고 싶은 마음은 (아직) 전혀 없고 그저 예술 공부가 즐겁다.
(대)학교를 문화센터 다니는 마음 정도로 다니면 안 되는 것인가요…!?
작년 일본 워홀을 다녀온 후 어떤 형식의 취업을 할 생각이 전혀 없어졌으며, 몸으로 노동하고 활동하고 좀좀따리 예술하고 그러면서 일상의 균형이 잡히지 않는 것에 늘 괴로워하면서도 그것의 필요성을 느끼는 삶 정도가 지금 그리는 미래같다,,,”
- 퍼핀. <하고 싶은 일-기> 인터뷰 신청서 중
- 안녕하세요. 소개 부탁드려요.
안녕하세요. 저는 퍼핀입니다. 요즘은 다큐멘터리 공부를 하고 있어요.
퍼핀의 To do list
어린이 학생과의 대화를 멋대로 그의 양육자와 공유하지 않는 글쓰기 선생님이 되자
동네 어린이들과 사소한 비밀을 공유하는, 신뢰 관계 어른이 되자 (아이들이 자주 오는 가겟방의 점원 정도 거리)
빠르고 오래 뛸 수 있는, 탄탄한 신체를 만들자 (아이스하키 !)
음식과 음료, 술과 예술 그리고 춤과 파티가 모두 있는 공간을 운영하자
엉성하고 시끄러운 합주 밴드를 하자
모르는 언어의 나라에서 노동하며 살아보자
발화점 낮은 분노를 가지자
쉽게 말을 걸어볼 수 있는 사람이 되자
끊임없이 찍고, 읽고, 듣고, 쓰고, 만들고, 보고, 만나고, 뛰자
내가 먹을 빵은 내가 만들자
새로운 가족 공동체 형성하자 (양육!)
- 하자에서 활동한 지 벌써 6년이 되셨나 봐요. 처음 하자를 어떻게 알게 되었어요?
처음에는, 10대 때 서울여성영화제에서 청소년 심사단 활동을 한 적이 있어요. 그때 교육의 일환으로 다큐멘터리 <구르는 돌처럼>* 감독님과 워크숍을 했거든요. 다큐에 하자센터 이야기가 나왔는데 나도 저기서 춤 추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바로 다음 날 찾아가서 다짜고짜 “영화 보고 왔는데, 여기 있고 싶다”라고 말했던 기억이 나요. 당시 하자작업장학교 교장이셨던 히옥스가 주스 한 잔 주시면서 같이 이야기 나눴고, 그때 이후로 하자를 기웃거리게 되었어요.
*<구르는 돌처럼(2018, 박소현 감독)>: 2017년 하자센터에서 진행된 무용가 남정호의 즉흥춤 마스터 클래스 ‘구르는 돌처럼’ 워크숍을 기록한 다큐멘터리.
- 퍼핀은 ‘자퇴 2회차’인 데다가 ‘돌고 돌아’ 제도권 대학에 입학했다고 하셨어요. 어떤 과정이었나요?
음. 고등학생 때 부모님과 대학은 가겠다는 조건으로 합의해서 탈학교할 수 있었어요. 처음엔 영화과에 진학했는데 잘 안 맞는 거예요. 학교 분위기도 그렇고, 제가 기대했던 공론장도 없었어요. 그래서 휴학을 오래 하고 워홀(워킹 홀리데이)도 다녀오면서 ‘더 구체적인 걸 하고 싶다’라는 생각을 하게 된 것 같아요. 전공했던 극영화보다 조금 더 실천적이고 재밌는 걸 하고 싶어서 다큐멘터리를 할 수 있는 학교에 가겠다고 마음먹었죠. 실은 (학교에 가지 않고) 그냥 해도 되는데. 게으른 선택을 한 것이죠.
- 워킹 홀리데이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 일본으로 다녀오셨더라고요. 보통은 영어권에 많이 가잖아요. 흔하지 않은 경험이었을 것 같아요.
맞아요. 일본으로 가게 된 이유는 그냥 돈이 적게 들고 언어를 모르는 나라를 선택한 건데요. 당시에는 그동안 사회적인 의제에 대해 목소리를 내고 이야기하면서 ‘내가 정말 충분히 알고 있는가?’, ‘깊이 공감하고 있는가?’라는 생각과 함께 마음이 여러모로 복잡했어요. 그러면서 제가 이방인으로 있을 수 있는 곳에 도망가고 싶은 마음도 있었고, 정기적인 일을 해본 적이 없어서 ‘노동’을 해보고 싶기도 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인사말도 모르는 상태로 일본에 가게 되었는데, 믿을 구석은 있어야 하니까 파견 회사(일본에서 일용직, 계약직 노동자들을 파견 시키는 용역 회사)에 이력서를 내고 일이 확정된 후에 갔죠. 호텔 식당에서 일하기도 하고, 청소 일도 했어요. 그게 저한테는 되게 큰 경험이었던 것 같아요. 일 자체는 한국에서도 할 수 있는 일이지만 저는 언어라는 게 크다고 생각하거든요. 제가 일본어를 못하니까 못 알아들을 거라 생각하고 성희롱을 한다든지, 다양한 폭력에 더 쉽게 노출됐어요. 그리고 선명하게 남은 그 감각들이 지금의 제 기반이 된 것 같아요.
워킹 홀리데이 시절
✔️ To do list : 모르는 언어의 나라에서 노동하며 살아보자
지금 투두리스트에 워킹 홀리데이를 다시 적게 된 것은, 일본에서는 입을 다물고 있으면 외국인이라는 걸 모르잖아요. 생김새부터 다른 사람들이 있는 나라에서 살아보면 다르지 않을까, 조금 더 이방인으로서 살아보는 경험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일본에 있을 때 태국이나 네팔 등 다양한 국적의 동료들과 일했는데, 똑같이 일어를 못해도 기본적 대우가 다른 것을 보았어요. 낯선 정도에 따라 이방인 사이에서도 사회적 위계의 차이가 있구나를 체감한 것이죠. 워킹 홀리데이를 추천하고 싶나요? 완전 추천! 20대에 갈 수 있는 거니까 무조건 다들 갔으면 좋겠어요. 제 또래는 다들 내가 밥 벌어먹고 살 수 있을까 고민하잖아요. 저는 (워홀을 다녀와서) 내 밥벌이를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어요.
- 학생운동도 하고 계시다고 해서 어떤 이슈에 관심이 있는 지 궁금했는데요. 이야기 나누다보니 ‘노동’에 관심이 많은 것 같아요.
맞아요. 학교 동아리에서 노학연대를 만들면서 활동하고 있어요. 동료마다 다르지만 저는 노동에 가장 집중하고 있고요. 최근에는 교내 경비 노동자분이 부당한 대우에 대한 글을 올리신 적이 있어요. 그분을 찾아가 다큐를 찍으면서 다가가고 있었는데, 교내 문제라고만 생각했던 게 따라가다 보니 법과 제도의 문제인 거예요. 법적으로 ‘감단직 노동자’*라고 해서 별정직으로 처리되는 게 있어요. 그분들의 일이 ‘정신적, 육체적 피로가 적어서’ 근로기준법을 따로 적용한다는 거예요. 그렇게 점점 큰(구조적인) 문제로 다가가게 되더라고요. 대부분의 이슈가 다 그런 것 같아요. 처음부터 큰 문제를 다루는 게 아니라, 나의 문제에서 시작해서 가다 보면 확장되는. *감단직 근로자/노동자: 감시 또는 단속적으로 근로에 종사하는 사람으로서 사용자가 고용노동부장관의 승인을 받은 사람으로, 근로기준법상의 근로 시간, 휴게, 휴일에 관한 규정을 적용받지 않음.
- 그래서 노동환경에서 겪을 수 있는 다양한 경험에 의미를 둔 것이군요. 워킹 홀리데이 후 취업을 할 생각이 없어졌다고 한 이유는 뭐예요?
일본에서는 월세도 부담해야 하고, 건강보험료도 비싸서 4잡을 했어요. 그때 ‘노동하면 내가 살 수 있구나’를 깨달았어요. 당연한 것이지만 한국에서 어른들은 늘 아르바이트, 계약직 노동자로 사면 삶을 제대로 영위할 수 없는 것처럼 말하잖아요. 저는 요리를 좋아하니까 음식을 만들고 대접하는 일이 잘 맞다는 것도 알게 되었고요. 그때도 지금도 노동 이슈에 관심이 있는데, 직접 일을 해보니 노동권 관련 기사를 볼 때 다가오는 게 달랐던 것 같아요. 그래서 무뎌지지 않기 위해 (일반 사무직 보다) 현장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학생운동 현장에서
✔️ To do list : 쉽게 말을 걸어볼 수 있는 사람이 되자
현장에 있어야 한다는 것과 연결되는 이야기에요. 대화를 하지 않으면 아무 세계도 열리지 않는 것 같아서요. 사람들이 “나 이런 일 생겼는데 들어봐줘.”, “나 너한테 이래서 화났어.” 이렇게 쉽게 말을 걸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그런 사람 되기 어렵잖아요. 이 사람이 잘 들어줄 거라고 생각돼야 하니까요.
- 또래에 비해 많은 경험을 한 것 같아요. 해보고 싶은데 아직 못해본 것도 있어요?
엄청 많지만 저는 사람을 모으고 싶은 것 같아요. 지금 하고 있는 시유공(하자 청소년운영위원회) 활동도 그렇고, 사람이 모이고 공간이 있으면 뭐든 되는 것 같아서요. 이번에 시유공에서 열었던 영화제도, 저희가 만들고 싶어서 만든 거잖아요. 기존 영화제에 편입되기보다 우리가 만든 영화의 의미를 정확하게 전달할 수 있는 영화제를 만드는 것, 우리에게 맞게 잘 만드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한 마디로 일 벌이기?(웃음)
✔️ To do list : 음식과 음료, 술과 예술 그리고 춤과 파티가 모두 있는 공간을 운영하자
사람을 모으려면 공간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2년 전만 해도 어린이를 만나는 선생님, 글쓰기 선생님을 하고 싶다고 말해왔는데요. 제가 생각하는 글쓰기 교육은 진행하는 공간의 역할이 크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그래서 책방을 해볼까? 싶더라고요. 빵이나 술도 팔고, 영화도 보는 공간을 만들고 싶어요. 지금은 책방이나 카페 형식보다는 조금 더 가능성이 열린 공간을 갖고 싶고요.
시유공이 준비한 하자 멤버십 데이
✔️ To do list : 내가 먹을 빵은 내가 만들자
저는 먹고 마시는 걸 너무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이라 제가 먹고 싶은 빵이나 요리는 직접 해 먹는 편인데요. 여유가 없을 때는 빵을 굽고 싶어도 너무 피곤해서 못 할 때가 있어요. 그래서 조금의 여유가 있는 사람이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썼어요.
빵 만들 때 기다림의 시간이 길잖아요. 저는 할 일이 닥쳤을 때 빵 반죽을 먼저 해요. 발효를 기다리는 동안 할 일을 하는 거죠. 생각이 많을 때나 우울할 때도 빵을 굽고요. 농담으로 “난 우울할 때 빵을 만들어”라고 하기도 해요. (웃음) 자퇴하고 한동안 빵을 만들었던 것 같아요. 제가 충실하게 하면 결과물이 나오고, 그걸 나누면 사람들이 기뻐하니까요. 즉각적인 치료인 것 같아요.
후원금 마련을 위한 빵 판매
- 10대 때 진로와 관련해서 여러 고민을 했을 것 같아요. 그때와 지금의 고민을 비교하면 어때요?
완전 달라요. 전에는 직업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했고 제가 되게 성공할 줄 알았거든요. 지금은 굳이 직업을 갖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죠. 전에는 ‘직업적 성공에 대한 자신감’이 있었다면 지금은 ‘나는 어떻게든 살 수 있을 거야’라는 자신감이 있는 것 같아요.
저희 언니가 “너는 미래가 불안하지 않아? 돈을 못 벌거나 갑자기 아프면 어떻게 해?”라고 하면 저는 이렇게 살아도 굶어 죽지 않고 병원에 갈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야지, 내가 (소위 말하는) ‘성공’을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 진로나 미래와 관련해서 또래들과 나누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세상이 되게 불안하잖아요. 기후 위기도 심각하고 지구가 언제 망할지 모르는 상황에서 미래도 잘 보이지 않으니까요. 근데 그런 것을 너무 개인의 것으로 느끼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우리가 빈곤해질 것을 걱정할 게 아니라 빈곤하지 않은 사회를 같이 만들면 좋겠고, 내가 조금 못 살아도 괜찮은 사회를 같이 만들 수 있다면 좋을 것 같아요. 이렇게 살아도 괜찮은 사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