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자 글방의 물고기와 하자 뉴미디어 인턴 단어가 만났다. 다름 아닌 편지로. 어쩌면 이들의 유일한 공통점일 수도 있는 글로. 딱 한 번, 스치듯이 만난 둘은 어떤 이야기를 주고받게 될까? 우리는 왜 글을 쓰게 되었고 어쩌다가 지금까지 쓰고 있을까?
편지를 통해 느리게 연결되는 단어와 물고기의 서간문 프로젝트.
‘우리는 쓰고 나서야 알게 된다’
이상하고 아름다운 물고기에게.
물고기, 지금은 비가 부슬부슬 내리고 있어. 편지쓰기 딱 좋은 날씨라고 생각해. 우리는 딱 한 번 만났지. 물고기는 바쁘게 인쇄 작업 중이었고 나는 *은는이가에게 나를 열심히 어필하기 위해 엄청나게 긴장한 상태였어. 그때 스치듯이 본 물고기는…. 신비롭고 묘한 인상이었어. 그래서 가까워지기 힘들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런 물고기와 편지를 주고받게 될 줄이야. 너무나도 기쁘고 설레. 아마 우리 사이에 글이라는 매개체가 없었더라면 이런 일은 절대 일어나지 않았겠지. 스치듯이 만난 인연과 편지를 주고받는 일. 대화도 아니고 전화도 아닌 편지로 서로를 알아가는 일. 어쩌면 얼굴을 보고서는 나누기 힘든 이야기를 털어놓는 일.
*은는이가는 2023년 진행된 하자 글방 가을학기의 후속 모임 이름입니다.
사실 나는 너를 글을 통해 먼저 만났어. 네가 하자글방에서 쓴 글을 살짝 엿보았거든. 거기서 네가 편지에 대해 적은 부분이 기억에 남아. 편지는 항상 곁에 있는 사람을 떠올리고, 고마움을 세어보고, 마음을 전할 수 있어서 좋다고. 그러고 보면 나도 누군가에게 진심 어린 편지를 써본 게 언제인지 까마득해. 요즘은 너무나도 빠르게 모든 것이 연결되잖아. 굳이 편지라는 매개체를 쓰지 않아도 문자 한번, 전화 한 통이면 안부를 물을 수 있잖아. 빠르게 연결된다는 건 편리하지만 한편으로는 많은 것을 놓치게 한다는 생각이 들어. 오래 생각하고 망설이는 시간에만 발견할 수 있는 마음이 있으니까.
물고기, 너는 어쩌다가 글을 쓰기 시작했어? 네가 처음으로 글을 써야겠다고 마음먹은 순간이 궁금해. 너에게 편지를 쓰기 전에 아주 오랜 시간을 들여서 너의 글을 읽었어. 나는 너를 너무 모르니까. 내가 알 수 있는 건 너는 물고기이고, 투명한 눈빛을 갖고 있고, 시와 편지와 연필과 노트를 좋아한다는 사실 뿐이야. 너의 글은 꼭 시 같아. 추상적이고 분명하지 않지만 아름답지. 그래서 더 궁금해졌어. 시를 쓰는 사람의 마음은 어떤 마음일까. 어떤 마음이 시를 쓰도록 이끌었을까. 나는 시인을 이상하고 아름다운 사람이라고 생각하거든.
내가 처음 글을 쓰게 된 순간을 떠올리면…. 난 사무치게 외로워서 글을 쓰기 시작했어. 무언가 다른 거창한 이유가 있으면 좋았겠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외로움이 나를 글을 쓰도록 이끈 것 같아.
하고 싶은 말들은 너무 많은데 그 말들이 머릿속을 윙윙 맴돌기만 하고 입 밖으로 절대 나오지 않는 기분.
노트북을 켰다가 아무것도 쓰지 못하고 닫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에요.
그래서 저는 앞으로 하루에 한편씩 편지를 쓸 거예요.
'글을 쓴다'라고만 생각하면 너무 막연한데 누군가에게 편지를 쓴다고 생각하면 마음이 좀 가벼워지더라고요.
생각해 보면 저에게 있어 편지를 쓰는 일은 사랑하는 일과도 같아요.
저는 누군가를 사랑하게 되면 자꾸만 편지가 쓰고 싶어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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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를 쓰다 보면 내가 편지를 쓰는 상대를 더더욱 사랑하게 돼요.
편지를 쓰는 동안 내 편지를 받을 사람을 오래 생각하다 보면 나도 몰랐던 그 사람의 사랑스러움을 발견하게 되고,
또 그 상대를 사랑하는 내 모습이 더 예쁘게 느껴져요.
그러니까 편지를 쓴다는 건 쓰는 사람도, 받는 사람도 더 사랑스러워지는 일인 거예요.
3년 전에 처음으로 글을 써야겠다고 마음먹고 쓴 글이야. 나는 글을 쓰면서 누군가를 사랑하는 나를 더 사랑하고 싶었나 봐.
물고기가 그랬지, 글을 쓰다 보면 먼지처럼 부유하던 생각들이 하나로 단단히 모이는 게 느껴진다고. 그 먼지들이 어떤 게 될지 쓰지 않으면 알 수 없다고. 정말로 그래. 난 글을 쓰기 직전까지도 내가 어떤 글이 쓰고 싶은지 몰라. 어떤 마음을 담아내고 싶은지도. 그냥 쓰고 싶은 순간이 있을 뿐이지. 하지만 쓰면서 알게 돼. 내가 어떤 말이 하고 싶었는지,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어떻게 살고 싶은지, 무엇이 밉고 무엇을 사랑하는지. 물고기는 글을 쓰면서 무엇을 더 알게 되었어? 혹은 아무리 써도 어렵게만 느껴지는 일이 있어?
이상하고 아름다운 물고기야, 너를 이렇게 부를 수 있어서 참 기뻐. 또 네가 나를 부르는 장면을 상상해. 네가 나를 '단어'라고 부르는 모습을 상상하면 너와 조금 더 가까워진 기분이 들어. 우리 쓰면서 서로를 더 알아가 보자.
오래 생각하며 답장 기다릴게.
아름답지는 못해도 이상한 사람이고 싶은 단어가. 사랑과 용기를 담아.
p.s 비 오는 날 찍은 집 근처 골목이야.
나는 비 오고 난 후의 풍경을 좋아해. 무언가 깨끗하고 선명한 느낌이거든.
하자 뉴미디어 인턴 | 단어
다음 편은 물고기의 답장으로 이어집니다.
단어의 물음에 물고기가 어떻게 답했는지 궁금하다면 다음 편을 기다려주세요!
*하자글방은 함께 읽고 쓰고 합평하며 자신만의 이야기를 발견해 가는 청소년 글쓰기 커뮤니티입니다. 2025년 6월 새로운 멤버를 모집할 예정이라고 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