뚝뚝 흐르고 있다. 아니 그건 그냥 가벼운 짐이다. 잠이 쏟아지면 눈을 감듯 내 힘으로는 어쩔 수 없는 그런 것이다. 둥글리며 몰아치는 잉크들 사이로 폭신한 생각들이 질척거리기 시작해 종이에 하나씩 - 둘씩 - 쌓인다. 끈적거리는 세 사람의 얼굴이 떼어졌다가 붙었다 하는 상상을 한다. 새벽에 야윈 몸으로 거실에 앉아 있던 할아버지의 굽은 등이 떠올랐다. 계속 사람을 생각했다. 웃으면 커다란 주름을 가진 얼굴을 보며 내 안에 있던 결핍 따위를 챙긴다. 무심코 던진 질문에도 대답하기 위해 생각하는 입을 떠올린다. 이불 안에서 말과 말 사이의 정적을 느낀다. 참 맛있는 빵이었지 생각하며 그가 싱크대에 올려뒀던 여러 종류의 잼을 혀에 굴린다. 웽웽- 쿵쿵- 퍽퍽- 야! 형태를 알 수 없는 소리들이 창밖을 맴돌 때 너는 왜 배에 힘을 주지 않는 거야?
다시 뚝뚝 흘러간다. 아주 말끔한 정적들이 발끝에서 머리카락까지 알몸을 부드럽게 훑으며 다시 자글자글한 소리를 만들고는 눈을 감는다.
어진 (25.05.14)
글 · 사진_ 어진(하자글방 죽돌)
2023년 봄학기 하자글방 후속모임 〈파프리카〉는 앞으로의 지속가능성을 실험하기 위해 한 달간 글쓰기를 진행하였고, 그 여정을 마무리하며 모임에서 나온 글을 ‘From. 하자글방’에 기고합니다.
From. 하자글방
하자글방은 함께 읽고 쓰고 합평하며 자신만의 이야기를 발견해가는 청소년 글쓰기 커뮤니티입니다. 정규 과정 이후 3개의 후속모임이 진행 중이며 후속모임에서 나온 글 가운데 일부를 나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