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안녕하세요! 물 위를 걸어본 사람이라고 들었어요. 간단하게 본인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A. 네, 안녕하세요. 저는 물 위를 걸어본 적이 있어요. 제 이름은 수연이에요. 이름 한자와 사주에도 물(水)이 들어가서 그럴 운명이었는지도 모르겠네요.
Q. 그날의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어요. 어떻게 물 위를 걷게 되셨나요?
A. 그날 밤에 뜬 달이 둥글고 컸어요. 모든 게 고요한데 저 혼자서만 마음이 출렁이던 날이었죠. 그냥 이대로는 안 될 것 같아서 저벅저벅 한강으로 향했어요. 그리고… 유난히 빛이 투명하게 비치는 곳 앞에 멈춰 섰어요. 그걸 보니 다음이 차분해지는 거예요. 그곳에 발을 살짝 얹었더니 물이 저를 받아주더라고요. 지금 생각하면 무언가에 홀린 것처럼 움직였던 것 같아요. 이상하게 그 순간엔 정말 물 위를 걸을 수 있을 거라는 생각밖에 없었거든요.
Q. 정말로… 물 위를 걸어보셨다고요?
A. 네, 진짜로 걸었어요. 그날은 특히 한강에 사람도 없고 조용했어요. 바람도 물결도 제 생각까지도요. 발끝을 들고 수면에 올렸는데, 마치 얇은 유리 같았어요. 깨질 듯 투명하면서도 딱 제 무게만큼은 받아주는 탄력이 있었어요. 신기하게요. 그 위에 한 발을 디디고 나니, 두 번째 발도 자연스럽게 따라갔고요. 물이 살짝 움찔거려 뒤뚱거리기도 했지만 마치 그 물비늘이 제 발을 잡아주는 것 같았어요. 그렇게 생각하니까 어느새 균형이 잡히더라고요.
Q. 놀라운 이야기네요. 걸을 수 있었던 비결이 있다면요? 더 상세한 설명을 듣고 싶은데요.
A. 처음엔 중심 잡으려다가 오히려 더 비틀거렸어요. 넘어질 것 같다는 생각들이 몸을 기우뚱대게 만들더라고요. 그래서 중심을 잡는 게 아니라 중심이 흔들릴 수 있도록 두는 쪽으로 마음을 돌렸어요. 그러니까 이상하게 덜 무서워지더라고요. 서서히 몸도 가벼워지고요.
Q. 그게 가능했던 이유가 뭐였다고 생각하세요?
A. 아마… 아무것도 가지려 하지 않아서요. 그날 저는 모든 걸 놓았거든요. 이겨야 할 것이나 보여줄 것도 없이요. 잘 살아야 할 이유가 없었어요. 그런 상태가 되면 이상하게 몸의 무게도 사라지는 것 같아요. 물은 늘 그 자리에 있었고 저는 겨우 그것을 믿게 되었을 뿐이에요.
Q. 그 순간을 균형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요?
A. 균형이요? 사람들은 균형이란 게 중심을 딱 세우는 것으로 생각하잖아요. 근데 제가 걸어본 물 위의 균형은… 그런 게 아니었어요. 그건 그냥 흔들리는 모든 것을 받아들이는 상태였어요.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마음. 그게 저를 떠오르게 했던 것 같아요.
Q. 지금도 물 위를 걸을 수 있나요?
A. 아니요. 지금은 못 걸어요. 그날 이후로 여러 번 시도해 보았는데, 다시는 그런 감각을 못 찾았어요. 그래서 종종 한강에 나가서 물가를 걷기도 했었죠. 혹시 또 그날 같은 순간이 올까 봐. 그런 걸 바라는 마음도… 결국 균형을 무너뜨리는 건지도요.
Q. 마지막으로, 물 위를 걸어보고 싶은 분들에게 한마디 해주신다면요.
A. 한마디라…. 사실은 처음 이 이야기를 했을 때 방송 출연 요청이 쇄도했어요. 강의를 열어달라는 사람도 있었고, 어떤 분은 집 주소를 어떻게 알아내서는 조롱 섞인 편지를 보내기도 했죠. 그러니까…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꼭 물 위를 걸어야 할 필요는 없어요. 중요한 건 자기만의 방식으로 중심을 잡는 것, 아니, 어쩌면 중심 없이도 존재하는 법을 아는 거죠. 그게 진짜 균형일지도 몰라요. 사실 기자님이 마지막 질문 주셔서 조심스럽게 덧붙이자면… 요즘도 그날의 신묘한 감각이 살아있는 것 같아요. 딱히 착지한 느낌이 없다고 해야 할까요. 단단한 바닥 없이도 움직일 수 있다는 것, 어쩌면 그게 저의 걷기 방식일지도 모르겠어요. 물 위든, 물 아래에서든요.
글 · 사진_ 유영(하자글방 죽돌)
2024년 가을학기 하자글방 후속모임〈둥글레차〉는 글방지기 죽돌(청소년)이 제안한 글감을 단서로 글쓰기와 합평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글감 소개 : 균형잡기
둥글레차 여러분. 이번 달에는 여러분께서 ‘균형잡기’라는 글감으로 다양한 글을 써보시면 좋겠습니다. 이걸 선택해야 하나, 저걸 선택해야 하나 하는 고민의 경험을 쓸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점심 메뉴로 뭘 먹을지 마음을 정하기 어려울 때가 있고, OTT 플랫폼에 들어가 뭘 고를지 한참 고민만 하게 될 때가 있고, 죽고 싶은데 살고 싶고, 재미있는데 다시는 안 하고 싶고, 등등. 갈지(之)자로 걸으며 휘청거리는 걸음, 왔다 갔다 모순되는 마음을 써봐도 좋겠습니다. 잘 갈라지지 않는 마음이 문제가 아니라 가르지 않고도 택할 수 없는 세계의 형식이 협소한 걸지도 몰라요. 균형은 꼭 잡아야 하는 걸까요? 그런 게 어떨 때 필요했었죠? 한편으로는 넘어지지 않으려면 균형을 잡아야 하긴 해도 어떤 때에는 균형을 버리고 어딘가로 치우쳐 쏟아졌을 수도 있겠지요. 헷갈리지 않고 분명히 고르는 일에도 균형의 능숙함을 발견할 수 있을 것 같아요.
_운(하자글방 죽돌)
From. 하자글방
하자글방은 함께 읽고 쓰고 합평하며 자신만의 이야기를 발견해가는 청소년 글쓰기 커뮤니티입니다. 정규 과정 이후 3개의 후속모임이 진행 중이며 후속모임에서 나온 글 가운데 일부를 나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