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언하건대 삶은 불확실함으로 가득 차 있다. 늦잠을 잔다거나 가고 싶은 식당이 문을 닫았다거나 오늘 가는 그 길이 공사 중일지도 모르며, 부디 그러지 않기를 희망하지만 지갑을 잃어버려서 카드 회사에 전화를 걸어야 할지도 모른다. 우연히 보고 싶은 사람을 반갑게 마주칠 수도 있겠지만, 내가 말하는 불확실함은 대체로 유쾌하지 않은 순간들이다. 그렇다고 그 불확실함을 완벽하게 예측해서 30분 전쯤에 예고해 주는 기술이 먼 미래에 개발된다고 해도, 음, 그걸 원하지는 않는다. 그저 일기예보에 맞추어 우산을 챙기듯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준비하고 싶을 뿐이다.
“그때 상황 봐서.” 생각해 보면 나는 대화 가운데 자주 이 말을 덧붙이곤 했다. 당장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기에는 그리 급하지 않고 솔직히 피곤할 때는 ‘그때’에 놓인 내게로 사뿐히 책임을 넘기곤 했다. 동시에 ‘상황’이 복잡하고 혼란스러울 수 있음을 미리 스스로 인지하는 과정이기도 했다. 하지만 내가 아닌 상대가 그 말을 내뱉는 건 또 다른 감각이라, 정해지지 않았다는 불확실성이 내게 작은 불안을 주기도 했다. 그럴 때면 나는 어떻게든 플랜들을 만들어야만 했다. 이게 아니라면 다른 거, 그게 실패한다면 이런 거. 그러면 괜찮을 거야. 괜찮다는 그 말을 사실은 더 하고 싶었을까?
살면서 확신 있고 분명한 말을 한 적이 얼마나 있을까. 그러니까 흘러나오지 않도록 뚜껑을 꽉 잠근 적이 얼마나 있을까. 나는 자주 두리번거리고 뚜껑을 열어두는 사람이다. 누군가 앞으로 무엇을 할 것이냐고 물어온다면, ‘해 볼 것이다’와 ‘할 것이다’ 사이에는 미세한 간극이 있다. 해보겠다는 말은 한다는 말보다는 한 발짝 주춤해 있는 누군가를 떠오르게 한다. 살짝 떨리면서 작아지는 목소리, 주변의 눈치를 흘끗 보는 눈동자. 그래요, 이건 다 겁이 많아서 그런 거예요. 어떤 날엔 쿨한 것처럼 이렇게 속내를 까놓기도 한다. 솔직하게 말할까요? 나는 언제든 도망칠 준비를 하고 있어요.
친구 y는 가야 할 길이 하나로 정해질 때 열심히 하게 된다고 그럴 마음을 먹게 된다고 했다. 그 마음이 정말 귀하고 반짝인다고 생각했다. 반면 나는 ‘그게 아니어도 된다’는 생각일 때 편안하게 그것을 사랑하게 된다. 그제서야 떠나지 않게 된다고 말했다. 누구에겐 비겁하게 들릴까? 그러니까 그걸 영화라고 치면, 나에겐 영화만 있는 것이 아니야, 생각할 때 아낌없이 사랑할 수 있는 것이다. 너무 아끼는 것이어서 두려워하는지도 모르겠다. 잘하고 싶은데, 잘할 수 있을지 아직은 모르겠어서. 아니면 내가 영영 떠나버릴까 봐 안전망을 만드는 걸까? 왜냐하면 사실은 떠나고 싶지 않으니까. 사랑하고 싶으니까. 사랑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에 역설적으로 사랑할 힘을 얻는 것일지도 모른다.
사랑의 반대항이 반드시 두려움일 이유도 없다. 영화가 시작하기 전에 뜨는 비상 대피도 화면에 눈을 크게 뜨는 한 사람은, 위기의 순간 다른 한 사람의 손을 꼭 잡고 출구를 향해 뛰어갈 것이다. 어떤 상실과 실패를 섣부르게 상상해 온 만큼, 그 시간이 그를 부디 헤매지 않게 하기를. 서로를 구하고, 사랑을 하고, 그렇게 살아남기를.
그래도 더 용감해졌으면 좋겠네.
글 · 사진_ 홍시(하자글방 죽돌)
2024 가을학기 하자글방 후속모임 〈둥글레차〉는 매달 돌아가며 글방지기가 제안한 글감을 단서로 글쓰기와 합평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글감 소개 : 고작 내가 이런 사람이라
안녕, 유자에요. 둥글레차의 첫 글감을 소개하게 되어 기뻐요. 잠들기 전 부쩍 자주 듣게 되는 노래 가사에서 글감을 정해보았어요. ‘고작 내가 이런 사람이라’ 좋을 때도, 싫을 때도, 소름 끼치도록 이상할 때도 있나요. 아무한테도 터놓지 못하고, 얘기를 하면은 더 이상 그 얘길 안 꺼내게 되는 그런 이야기가 있나요.
_유자(하자글방 죽돌)
From. 하자글방
하자글방은 함께 읽고 쓰고 합평하며 자신의 이야기를 발견해가는 청소년 글쓰기 커뮤니티입니다. 정규 과정 이후 3개의 후속모임이 진행 중이며 후속모임에서 나온 글 가운데 일부를 구독자분들과 나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