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과 공간을 엮어 기억을 간직하는 방법 하자센터 25주년 기획 <From 하자> 작업노트
하자는 스물다섯 번의 사계절을 지나 스물여섯 번째 봄을 향한 발걸음을 옮기고 있습니다. 지난해 하자는 25주년을 맞이하여, 하자에서 움튼 네트워크 학교 6곳과 연계 사회적기업 9곳의 발자취를 책의 몸을 빌려 본관 333마루에 새겨 놓았습니다. 이는 1999년 하자센터가 문을 연 이래로 하자라는 연결망 안에서 생동했던 돌봄과 배움, 사회적 창의로 이어진 기록을 하자 공간 속에 간직하기 위한 일이었습니다. 하자로부터 뻗어 나간 흔적을 더듬어, 어떻게 새로운 모습으로 담아냈는지 그 과정을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디자인 기획 과정
✔ 하자 네트워크 학교
‘학교이기도, 학교가 아니기도 한’ 학교들이 하자센터라는 ‘일시적 자율공간’에서 기존 제도 안에서는 허락되지 않는 다양하고 독창적인 공동체를 만들어갔습니다.
유유자적살롱 Yoojasalon | 2009~2015 | 무중력의 심연으로부터 내 삶의 템포에 맞는 유유자적한 삶으로
이야기꾼의 책공연 Bookteller's Quilt | 2009~ | 한 개의 이야기를 백가지의 감동으로
트래블러스맵 Travelers' MAP | 2009~ | 여행자에게는 최고의 여행을, 여행지에는 최선의 기여를, 자연에는 최소의 영향을
시간과 공간을 엮으며
이번 작업의 핵심은 시간의 흐름을 물리적 공간에 담아내는 일이었습니다. 단순히 과거의 기록을 전시하는 것이 아니라, 시간과 공간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는 데 초점을 맞추었습니다.
333마루는 그동안 공간의 쓰임을 달리하며 다양한 모습으로 하자의 역사와 함께해 온 공간입니다. 한때는 하자작업장학교와 오디세이학교의 교실이었고, 원탁에 둘러앉아 토론을 펼치던 무대였으며, 전면 거울이 설치된 무용실이기도 했습니다. 지금은 하자마을 책방의 책들과 책장을 옮겨와 라운지 성격의 열린 서재가 되었습니다. 전과 달리 사람들의 드나듦은 잦아들었지만, 또 그것이 이유가 되어 죽돌들이 책을 들춰보며 고요한 시간을 보내는 곳입니다.
시간과 공간을 엮어가는 중심에는 ‘서재’와 ‘책’이라는 메타포가 자리합니다. 하자 네트워크 학교와 연계 사회적기업의 역사라는 시간과 333마루라는 공간이 맞닿은 지점에서, ‘서재’는 시간을 품은 공간을, ‘책’은 그 시간이 깃든 오브제를 의미합니다. 이 두 개념을 연결하기 위해, 마루의 소재인 나무로 오브제를 제작하여 시간의 결을 물성으로 담아내고자 했습니다. 책장 뒤에 숨겨져 있던 전면 거울은 서재의 디자인 요소로 활용하고, 책장 외관은 철재로 마감하여 노후한 공간에 현대적인 감각을 더했습니다.
이러한 기획을 구체화하기 위해, 하자 네트워크 학교와 연계 사회적기업 총 15곳의 오브제를 제작했습니다. 각 오브제는 책의 외피를 닮은 하나의 덩어리로, 기억을 새긴다는 의미를 암시하고자 텍스트와 그래픽은 각인을 통해 표현했습니다. 특히 앞면은 관련 브랜드 요소에서 추출한 시각적 상징을 담아냈고, 뒷면은 투명 아크릴에 소개 글을 인쇄하여 이미지와 겹겹이 배치하였습니다. 누구나 오브제를 꺼내어 살펴보며 그 시간을 입체적으로 경험할 수 있습니다.
기억을 간직하기 위해
333마루는 단순히 전시된 기억의 장소가 아니라, 하자의 일상 속에 자연스럽게 스며든 공간으로 자리하길 희망합니다. 청소년들은 책을 펼쳐 보며, 또 뒹굴뒹굴거리며 종종 하자의 25년을 함께했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열어볼 것입니다. 하자의 시간을 손끝으로 느끼고, 하자가 지나온 이야기를 발견하게 되겠지요. 그렇게 시간은 멈추지 않고 공간에 담겨 계속 흘러갈 것입니다.
이번 작업은 작은 아이디어에서 출발했지만, 그것이 실제로 모습을 갖추기까지는 여러 사람들의 마음과 손길이 필요했습니다. 오랜 시간이 흘렀음에도 꼼꼼하게 내용을 검토해 주신 (전)판돌분들, 함께 디자인과 제작 과정 전반을 도맡아 준 소목장세미, 그리고 책 정리에 기꺼이 손을 보태준 오디세이학교(10기) 죽돌 등 많은 이들의 정성스러운 수고로 완성되었습니다.
하자의 시간과 이야기가 궁금하다면, 본관 3층 333마루를 찾아주세요. 예전처럼 복작복작함은 옅어졌지만, 이곳은 여전히 기억을 품고 반짝이던 순간들을 간직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