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자 뉴미디어 인턴 산다화입니다. <기후위기 시대를 살아간다는 것> 인터뷰 시리즈에서는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에게 기후위기가 어떤 감정과 감각을 주는지, 어떻게 기후우울에 빠지지 않고 부정적 감정을 해소하며 살아내고 있는지 각자의 이야기를 모아 전하고자 합니다. 기후위기 관련 작업을 해온 하자 출신의 예술가, 혹은 관련 활동을 하거나 이야기를 하고 싶은 청소년 당사자들의 인터뷰를 연재합니다.
두 번째 인터뷰이는 배낭입니다. 배낭은 제주 동백작은학교* 학생으로, "이매진피스"에서 진행한 태국 평화여행에 산다화와 함께 했습니다. 여행할 수 없는 이들을 향한 여행길에서 저희는 태국을 뒤덮은 폭우와 대홍수로 인한 재난들을 고스란히 관통하며 기후위기의 장면들을 마주했습니다. 청소년 당사자로서 이번 난민캠프에서 또래인 여성학교 친구들을 만나 교류하며 겪은 고민과, 배낭이 경험한 기후재난 이야기를 담고 싶어 인터뷰이로 청했습니다.
*동백작은학교: 제주에 위치한 생태, 인권, 평화의 가치를 삶을 통해 배워가는 청소년 공동체
이매진피스는 문화, 예술, 교육, 시민운동, 출판 등 다양한 분야에서 평화를 위해 일하는 사람들의 네트워크로, 공정여행, 평화교육, 평화행동을 중심으로 활동해왔습니다. 이매진피스의 평화여행 프로젝트는 여행할 수 없는 사람이 여행이 되는 여정입니다. 여행을 통해 평화의 길을 내는 태국 공정무역 단체 "위브WEAVE"와 함께 2021년부터 난민여성학교 학생들과 한국의 여성, 청소년들을 연결하는 평화의 걸음을 놓아가고 있습니다. WEAVE는 1990년대 초 미얀마의 내전으로 인해 터전을 잃고 태국 국경지대로 쏟아져 들어오는 난민들을 지원하기 위해 시작된 NGO이며 난민여성학교(Women's Study Program)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산다화와 배낭이 참여한 2024년 평화여행은 제주동백작은학교와 이매진피스, WEAVE와 난민여성학교가 함께하는 여행을 통한 평화교육 프로젝트로, 2024년 9월 30일부터 10월4일까지 일주일간 진행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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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민캠프가 있는 매홍손은 태국 북서쪽 산악지대로 미얀마 경계에 있는 지역입니다. 치앙마이에서 매홍손으로 가려면 여행자들에게 유명한 빠이라는 지역을 지나 끝없이 펼쳐지는 1,864개의 커브길을 거쳐야 합니다. 안그래도 쉽지 않은 여정에 기후위기로 인한 폭우와 홍수가 겹치며 평화캠프 여정은 재난 여행이 되었습니다.
태국에서는 기후변화로 인해 우기 강수량이 증가하며 폭우가 잦아졌고 24년 9월 말, 치앙마이를 포함한 북부 지역 폭우로 강의 수위가 급격히 상승하며 대홍수가 일어났습니다. 치앙마이 시내 중심가를 제외한 대부분의 지역이 침수되며 동백작은학교 친구들도 머물고 있던 숙소가 잠겨 대피해야 했고, 매홍손 캠프에서도 강이 불어 고립되는 일부터, 도시 전체 정전과 단수가 일어나고, 산사태로 치앙마이로 내려오는 길이 막히는 일까지 일어났습니다. 계획한 대로 이루어지는 일 없이, 예약해놨던 식당이 단전으로 영업하지 않고, 숙소에 물이 끊긴다는 경고문이 붙고, 강이 잠겨 숙소로 돌아오지 못하는 상황들이 벌어졌죠.
여행자들은 숙소를 옮기고, 다시 집으로 돌아가면 끝이지만 로컬 사람들은 도로가 잠겨 고립되고 살고 있는 집이 침수된 상황이었습니다. 우리는 잠시의 더위에 땀이 나고, 하루 샤워를 하지 못해 찝찝해 힘들다고 했지만 난민캠프의 사람들은 전기도 수도도 없는 열악한 상황 속에서 일상을 살고 있었고 이젠 기후재난까지 닥쳐오고 있는 것이죠. 선진국에서 배출한 탄소 때문에 더 극심해지고 있는 기후재난을 다른 나라의 가난하고 취약한 환경에 있는 이들이 더 극심하게 겪어야 하는 상황들을 바라보며, 기후정의의 필요성을 더 절실히 실감하게 되었습니다. 인생에서 처음 겪어보는 재난들 속에서 동백작은학교 친구들은 열악한 환경 속에서 이 재난들을 고스란히 감당해야 하는 난민 친구들의 삶을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하자에서 청소년 관련 콘텐츠를 만들고 있는 저로서는, 한국의 청소년들과 난민캠프의 청소년들이 가진 고민과 환경의 차이를 바라보며 고민이 많았어요. 그런데 밖엔 폭우가 쏟아지고, 강이 불어 길이 잠겨도, 각자 처한 삶의 환경은 모두 달라도 함께하는 시간 동안 청소년들은 함께 춤추고 웃으며 행복한 시간을 보내며 친구가 되더군요.
짧지만 깊었던 이 여행 속에서, 배낭이 했던 경험과 생각들을 나누어보고자 합니다.
1. 자기소개 부탁해요!
안녕하세요. 저는 19살 배낭입니다. 여행하는 걸 너무 좋아해서 이 닉네임을 쓰고 있어요. 어릴 때부터 항상 제가 알지 못하는 세상을 선망하고 세상 밖을 집처럼 여행 다니는 이들을 동경해 왔어요. 최종 목표는 지구 밖으로 나가는 것입니다. 여행을 너무 사랑해서 여행학교를 찾아보다가 로드스꼴라라는 여행대안학교를 알게 됐어요. 직접 여행을 떠나 놀고 연대하며 철학과 역사, 인문학을 배우는 학교라는 게 매력적으로 느껴져 입학했는데 코로나 시기라 여행을 다니지 못해 1년 반 정도 다니다가 그만뒀어요. 고등학교 1학년 때 제주도의 동백작은학교라는 대안학교에 입학해 지금까지 다니고 있어요.
2. 한국에서 기후위기를 실감한 적이 있으셨나요?
로드스꼴라와 동백작은학교에서도 기후위기에 대한 수업이 있고 채식 급식도 했어서 조금씩 인식은 했어요. 공장식축산의 윤리적인 문제나 환경 문제에 대해 배웠고요. 그런데 한국이라는 나라가 굉장히 도시적이고 시스템이 잘 되어있어서 기후위기를 직접 실감하기는 쉽지 않았어요. 저는 수도권 중심으로 살아와서 머리로는 알지만 실제로 와닿지는 않았어요. 한국에선 폭염 정도로만 느꼈는데 이번 여행에서 정말 실감했어요.
3. 이번 치앙마이 여행에서 동백 친구들이 정말 기후위기로 인한 재난을 관통했죠. 그 경험에 대한 이야기를 조금 자세히 들어보고 싶어요.
치앙마이에 우기에도 이렇게 물이 넘치는 경우가 거의 없다고 했는데 도착했을 때부터 비가 오기 시작하더니 주변 일대가 다 잠겼어요. 저희도 숙소 일대가 침수돼서 공용 짐은 숙소에 두고 가방만 머리 위로 들고 걸어서 탈출했어요. 매홍손에 올라갔을 때도 강물이 불어 길이 잠겨 고립되기도 했고, 폭우로 단전과 단수, 산사태를 경험했죠. 영화 <기생충>을 보면 주인공 가족이 상류층에서 하류층으로 내려갔을 때 비가 쏟아지고, 잠기는 장면이 나오잖아요. 저한테는 이번 경험이 그 장면같이 느껴졌어요. 한국이란 좋은 시스템을 갖춘 나라에서 살고 있다가, 그렇지 않은 태국이란 나라에 왔을 때 정말 크게 실감했어요. <기생충>의 갭처럼, 기후위기의 여파를 느끼지 않는 사람들과 여기 현지 사람들처럼 굉장히 고통스럽고 아픈 사람들이 있단 걸 실감하게 됐어요.
4. 난민 친구들과 만나고 교류한 경험은 어떠셨나요?
머리론 알고 있지만 마음으로 느끼려면 직접적인 연결이 있어야 하는데, 말이 안 통해도 순수하게 서로의 마음이 연결됨을 느꼈어요. 한 친구의 이야기가 잊혀지지 않아요. 살던 집에서 떠나 군인들을 피해 도망치다가 운 좋게 자유 군인을 만나 겨우 구출돼서 캠프로 이동할 수 있었대요. 그런데 같이 탈출한 아버지와 삼촌이 집에 물건을 찾으러 돌아가던 중 눈앞에서 폭탄에 맞아 돌아가셨다는 거예요. 그런 이야기들을 듣는데, “절망적인 삶 속에서도 희망이 피어날 수 있는가?”하는 생각을 정말 많이 하게 됐어요. 같은 시간을 살아온 우리 중 누구는 온전함을 누리고 있는데 왜 그 친구들은 그런 삶을 살아야 할까… 그들의 삶을 이해하고 눈물 흘리며 포옹하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하고 최대한 행복하길 바라는 마음을 전해주는 것밖에 할 수 없었어요.
5. 한국 청소년들의 삶과 난민 친구들의 삶이 가장 대비되는 점은 무엇이라고 느꼈어요?
한국 청소년들은 안정된 환경과 안정된 길이 놓인 상태로 살아가지만, 난민 친구들은 살아온 환경 자체가 너무 일그러져 있는 힘든 환경이었고, 그런 삶을 이루고 있는 환경과 구조도 너무 달랐어요. 난민 친구들과 함께 “행복했던 순간, 괴로웠던 순간, 미래에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에 대해 나눴는데 기본값이 너무 다르더라고요. 우리에게 행복이라 하면 굉장히 추상적이고 거대한 것이고, 나쁜 건 기본값에서 조금 내려간 정도였는데 그 친구들에겐 반대였어요. 굉장히 사소한 행복을 원하는데 경험한 괴로움은 깊고 거대한 거예요. 친구들이 우리와 함께 놀던 그 순간이 살면서 제일 행복했다고 말해줬어요. 우린 그저 조금의 시간을 보냈을 뿐인데, 그 친구들은 살아온 삶 전체에서 가장 큰 행복을 느꼈다는 사실이 크게 다가왔어요.
6. 한국에서 살아온 청소년으로서, 배낭의 고민은 어떤 것인가요?
제 고민은 되게 개인주의적이었던 것 같아요. ‘내 꿈은 무엇이고, 어느 길로 갈 것인가? 어떻게 살 것인가?’ 등 나에게만 국한된 수많은 질문을 품고 있었는데 이번 여행을 통해 나에서 좀 더 넓어져 ‘우리’란 단어를 가지게 됐어요. 그게 가장 크게 변화된 지점 같아요. 동백 아이들도 우리가 행복해지는 게 미안하단 이야기를 했어요. 이매진피스 임영신 선생님이 우리가 행복하지 말아야 할 이유는 없고, 함께 행복해질 방법을 찾는 게 중요하다는 이야기를 해주셨는데 깊이 공감했어요. 살아오면서 이렇게 누군가의 행복을 바라게 된 적이 처음인 것 같아요. 수많은 이야기와 질문들을 경유해 스스로에게 닿았을 때,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함께 행복하고 함께 즐겁게 존재할 수 있을까?”하는 질문을 품게 되었어요.
7. 이번 여행에서 가장 인상적으로 남은 것은 무엇인가요?
여행을 오기 전에 난민에 대한 강연을 들었는데 지식은 늘었지만 제 마음은 변하지 않았던 것 같아요. 그런데 이번에 난민은 제가 만난 친구들이라는 생각이 마음에 정착이 된 게 느껴져요. 또 기후위기와 그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한 생각들이 교차했어요. 수많은 난민이 생기는 지금의 상황이 너무나 안타까워요. 가장 가슴이 아팠던 건 수많은 재난 상황이 진행형인데, 그 중심에 서 있는 아이들이 고스란히 그 상황을 버티고 있단 것이었어요. 난민캠프 안엔 전기가 없으니, 대나무집에서 에어컨은 커녕 선풍기도 없이 열악한 환경에서 살고 있으니까요. 이번 여행에 많은 키워드가 있었지만 제겐 ’이해‘란 키워드가 가장 크게 다가왔어요. “수많은 사람들이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을 완전히 이해할 수 있다면 세상은 어떻게 바뀌었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결국 다른 사람들의 삶을 완전히 이해할 수 없었으니, 탄소도 마구 배출하고 경각심 없이 살다가 이렇게 최악의 상황을 마주하게 된 것 같아요.
8. 앞으로 여행한다면 무엇이 달라질 것 같아요?
전에는 여행이란 경험을 ‘내가 사는 세계를 나가서 아름답게 즐기는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지금 여행이 뭐냐고 묻는다면 ‘나를 벗어난 세계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이라고 얘기하고 싶어요. 이전 여행들에 비하면 훨씬 불안전하고 사고도 많았지만 이런 여행을 훨씬 더 원해왔던 것 같아요. 지금까지 해온 여행보다 지금, 이 순간이 더 값지다는 생각했어요. 저는 개인적으로 결핍이 꽤 많은 사람인데 지금 이 순간 내가 존재하고, 실재하고, 이렇게 살아가고 있다는 게 느껴졌어요. 앞으로 그전의 여행으로 다시 돌아갈 순 없을 것 같아요.
9. 마지막으로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나요?
소소하지만, 세상 모두가 아름다워질 수 있는 순간을 위해서 모두가 조금씩이라도 노력을 기울였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