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은결이고, 하자에서는 센이라고 불리고 있습니다. 음악으로 먹고 살 길을 찾고 있는 20대예요.”
인터뷰를 읽게 될 독자들에게 인사 부탁드려요.
안녕하세요. 저는 유은결이고, 하자에서는 센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고 있습니다. 10대 때 유자살롱*이라는 학교 밖 청소년 음악 프로젝트에서 활동하다가 음악을 계속하게 됐어요. 지금은 음악적으로 먹고 살 길을 찾고 있는 20대 후반입니다. 음악으로 먹고 사는 사람을 음악인이라고 한다면 저도 음악인일 수 있지만, 저는 그냥 노동자라고 하고 싶어요. 음악업계 노동자.
*유자살롱(유유자적 살롱): 학교 밖 무중력 청소년에게 음악으로 힘을 주는 사회적기업. 하자센터에서 2015년까지 활동.
하자와는 어떤 인연이 있으신가요? 처음에 어떻게 오게 되셨어요?
18살 때 학교를 그만두고 부모님 추천으로 ‘지구별 여행자’라는 여행학교 프로그램에 참가했거든요. 근데 거기서 약간 겉돌았던 기억이 있어요. 지구별 여행자에서 음악 강사를 하고 있던 분들이 ‘센은 유자살롱이 더 맞을 것 같다’고 추천해 주셔서 유자살롱에 가게 되었습니다. 학교 밖 청소년들은 제도 밖에 있으면서 관계라든가 여러 면에서 붙잡아주는 것이 없는 ‘무중력’ 상태로 집에만 있는 경우가 많아요. 유자살롱은 그런 청소년들이 음악을 통해서 중력을 얻고 사회적 관계를 연습하도록 만들어주는 곳이었어요. 저는 3년 정도 활동했고 유자살롱이 문을 닫은 후에는 하자에서 ‘소행단’이라는 음악 동아리를 하기도 했어요. 그리고 하자 행사에서 음향 오퍼*를 보거나 음악작업장* 보조 강사같은 이런저런 일도 했지요.
*음향 오퍼레이터(Operator): 각종 공연을 할 때, 음향 장비를 조작하는 사람.(네이버 국어사전)
*하자 음악작업장: 음악창작에 관심과 열의가 있는 청소년들이 모여 놀면서 배우고 함께 작업하는 청소년 음악창작 커뮤니티.
센은 10대 때 어떤 청소년이었어요? 지금과 비슷한가요?
저는 소위 ‘개망나니’였어요. 청소년기에 너무 많은 일들이 있었죠. 그때의 일들이 마치 다른 사람의 일처럼 느껴질 정도로요. 저는 다른 사람에게 용인받고 싶어 하는 욕구가 컸던 것 같아요. 인정받고 싶고 관심받고 싶은 마음이 컸는데, 어떤 사람들은 쉽게 인정받을 수 있는데 어떤 사람들은 그렇지 못하잖아요. 그런 걸 보면서 열등감이나 박탈감을 느끼기도 했어요. 그리고 항상 ‘나는 무엇을 하는 사람일까’ 고민했어요. 그때 저는 미성년자면서 학생도 아니었고, 집에만 계속 있는 상황에서 그런 생각을 많이 했죠. 지금도 근본적인 건 많이 바뀌지 않았는데요. 살아오면서 많이 깨진 것 같아요. 인간관계에서 깨지고, 혹은 일하면서 깨지고, 이렇게 저렇게 깨지면서 어떤 부분에서 내가 안 되는 게 있는지 좀 더 명확히 파악하게 됐어요. 무엇에 욕심을 내고 무엇에 욕심을 버려야 되는지. 지금은 그런 것들을 알게 된 것 같아요.
유자살롱 시절 센
학교를 자퇴하게 된 계기나 이유는 어떤 것이었어요?
저는 중학교 1학년 때 학교폭력을 당했어요. 그 후로 관계에서 위축되더라고요. 뭔가 하나 삐뚤어진 사람처럼 계속 적응을 못 했어요. 사람들이 학교를 나온 청소년에게 “너는 꿈을 찾기 위해서 밖으로 나왔으니까” 이런 말을 많이 하잖아요. 저는 전혀 그렇지 않았고 그냥 도망쳐 나왔어요. 어떻게 보면 튕겨 나온 거라고 생각하고요. 근데 학교가 힘든 건 당연하거든요. 요즘은 다르지만 제가 학교에 다닐 때는 한 반에 40명이 있었어요. 교실 한 칸에 청소년 40명을 밀어 넣고 선생님은 한 명뿐이라는 게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해요. 공교육 현장에서도 많이 노력하고 계시고 어쩔 수 없는 부분이 있다는 건 알지만 아쉽죠. 학교를 자퇴해서 마법처럼 뭔가 이루어지는 건 없어요. 그냥 시스템에서 나와서 허허벌판에 떨어지는 것뿐이고, 이후부터는 시스템이 어느 정도 알아서 해줬던 것을 자기가 알아서 해야 하니까 더 힘들어질 수도 있거든요.
요즘은 어떻게 지내고 계신가요?
홍대에 있는 클럽 ‘빵’이라는 곳에서 프리랜서 사운드 엔지니어로 일하고 있습니다. 클럽 빵은 94년도에 시작한 1세대 인디 클럽인데요. 한 10년 전만 해도 비슷한 클럽이 많았지만 지금은 다 사라지고 빵만 남았어요. ‘모던 록 클럽’을 표방하지만 다양한 장르의 공연을 해요. 목, 금, 토요일에는 주로 밴드 공연을 하고 수, 일요일에는 포크 공연을 많이 합니다. 라이브 클럽이라는 특성상 관객들이 딱 앉아서 공연만 보는 분위기는 아니고 왁자지껄하게 공연을 즐기면서 노는 곳이에요. 많은 인디 뮤지션분들이 클럽 빵에서 처음 공연을 시작했고, 음악을 시작할 때 적어도 한 번은 다 거쳐 갈 정도로 시작하는 아티스트들이 많이 오는 장소예요. 인디계의 태초마을이라고 할 수 있죠.
엔지니어 일 외에는 제가 밴드로서 공연할 때도 있고, 다른 뮤지션들의 음원을 녹음, 믹싱*, 마스터링* 해서 만들어 주는 일도 해요. 청소년문화센터에서 음악 프로그램을 진행하기도 했어요.
*믹싱(Audio mixing): 별도로 녹음된 여러 개의 개별 음원을 하나 또는 다수의 채널로 합성하여 스테레오 음향으로 변환하는 과정.(위키백과)
*마스터링(Mastering): 녹음, 믹스를 거친 다음 상용화 직전에 마지막 손질을 하는 일.(네이버 지식백과)
클럽 빵에서는 어떻게 일하게 되셨어요?
제 친구들이 다 빵에서 공연을 했어요. 그전에도 관객으로 많이 갔고요. 친구가 사장님에게 저를 ‘엔지니어 하고 싶어 하는 친구’라고 소개해줘서 면접을 보고 바로 일하게 됐습니다.
클럽 빵
“유자살롱에서 인턴을 하면서 어깨 너머로 음향 일 하는 걸 봤어요.”
나의 커리어, 내 작업의 일대기를 그려본다면 전환점이 되는 것들이 있잖아요. 뭐가 있을까요?
음악의 시작은 유자살롱이죠. 유자에서 잠깐 인턴을 했어요. 사실 인턴이라기보다는 다른 강사분들이 저를 돌봐주시는 게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데요. (웃음) 거기에서 어깨 너머로 음향 일을 하는 걸 봤어요. 전조(당시 유자살롱 공동대표)가 음향 일을 좀 가르쳐 주시기도 했고요. 이게 믹서구나, 이걸 올리면 소리가 올라가는구나, 이건 이렇게 작동하는 거구나, 인턴을 하면서 그렇게 익혔던 것 같아요. 음향에 대해 조금씩 알아가면서 그때부터 DAW*라는 음악 만드는 프로그램을 설치해서 녹음도 받아보게 됐고요. 음향 작업을 그때부터 하기 시작했어요. 전조가 몇 가지 일거리를 주시기도 했죠. 달시장*에서 오퍼 보거나, 소개받아서 공연장 무대 스태프 같은 일도 했거든요.
또 어린이·청소년에게 우쿨렐레나 기타를 가르치는 일도 했어요. 처음 시작은 하자센터 생각하는 청개구리(어린이 프로그램)에서 음악 강사를 하시던 몬구가 저를 보조강사로 불러주신 거였어요. 감사하게도 계속 불러주셔서 그 뒤로도 강사 일을 하게 됐어요.
그리고 2021년에 ‘순이우주로’라는 밴드 활동을 하면서 7월에 <푸른불나방>이라는 싱글을 냈어요. 2021년 후반기부터 2022년 전반기 사이에 좋은 일들이 많았던 것 같아요. 처음으로 어떤 작업물을 완성해서 유통 시켜봤죠. 살면서 뭔가를 성취해 본 경험이 많지 않았기 때문에 어떤 것을 완성해서 결실을 맺었다는 게 저한테는 특별한 일이에요. 그때 클럽 빵 일도 시작했고요. 그동안 혼자 작업하면서 방구석에서 뚝딱거려 왔는데 일을 시작하고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면서 많이 배웠어요.
*DAW(Digital audio workstation): 디지털 오디오의 재생, 녹음 및 편집 등의 작업을 위한 소프트웨어.(위키백과)
*달시장(영등포 달시장): 2011년부터 2017년까지 하자센터 앞마당에서 열린 마을장터.
<C열 08번> 앨범 커버. ⓒ유은결
“AI도 사람도 콘텐츠를 만드는데, 그 재료를 자기 색에 맞춰서 큐레이팅 할 수 있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음향 업계가 가까운 미래에 겪게 될 변화가 있을까요?
음향은 이미 AI가 도입된 지 꽤 됐어요. 이미 AI로 믹싱하고 마스터링 하는 프로그램을 많이 사용하고 있죠. 엔지니어들 하나씩은 다 가지고 있을걸요? 저도 샀어요. 그래도 아직은 검수만 하거나 보기용으로 참고하는 정도인데, 저는 오히려 음악을 만드는 쪽에서 AI를 활용하는 방식이 더 놀라워요. 죽은 가수가 자주 썼던 코드 진행 같은 것을 학습시켜서 곡을 만드는데, ‘이제는 가수가 죽어도 앨범이 계속 나올 수도 있겠구나’ 그런 생각을 했어요. 재밌는 것 같아요. 인공지능이 이렇게 갑자기 발전할 거라고 예상 못 했을 때는 당장 대체될 직업에 꼽히는 게 육체노동과 관련된 것들이었고, 가장 대체되지 않을 직업 1위로 예술가가 뽑혔었거든요. 근데 지금은 AI가 그림을 그리고 오히려 목수라든지 육체노동을 하는 일은 여전히 굳건해요. 우리 집이 제일 안전하고 튼튼하다고 생각했는데 제일 먼저 무너진 것 같은 느낌이죠. (웃음)
그런 변화 속에서 센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게 있다면 무엇일까요?
한창 코딩이 유망할 때는 사람들이 코딩에 몰려갔지만 이제는 AI가 코딩을 짜주기 때문에 AI 코딩을 검수하는 상급 기술자들만 남을 거라는 이야기를 본 적이 있어요. 결국 전체적인 시야를 가지고 검수할 수 있는 능력이 중요할 것 같아요. 음악계도 케이팝 같은 경우에는 되게 분업 되어서 이루어지잖아요. 예전에는 스타 작곡가가 중요했다면 요즘은 A&R* 파트가 굉장히 중요하다고 들었어요. A&R은 뮤지션의 앨범 콘셉트를 정하고 작곡가를 컨택해서 이 작곡가에게는 이 파트를, 다른 작곡가에게는 이 파트를 맡기고, 또 안무가를 컨택해서 이 파트 안무를 해달라고 하는 등의 일을 하는 사람이에요. 큐레이팅*을 한다고 보면 되는 거죠. 요즘은 콘텐츠가 너무 많잖아요. AI도 사람도 콘텐츠를 만드는데, 그 재료를 자기 색에 맞춰서 큐레이팅할 수 있는 게 중요한 능력이라고 생각해요.
*A&R(Artist&Repertoire): 음반 제작에 있어 음악적 방향성을 확정하고 콘셉트에 맞는 곡을 찾고, 곡이 나오기까지 음반 및 아티스트 기획을 담당하는 기획자.(네이버 지식백과)
*큐레이팅(Curation): 여러 분야에서 ‘양질의 콘텐츠만을 취합·선별·조합·분류해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고 가치를 재창출하는 행위.(위키백과)
“저는 그게 좋은 것 같아요. 정말 좋아한다는 마음으로 계속되는 공간이라는 게.”
센은 지금 하고 싶은 일을 하고 계신가요?
사실 제가 하고 싶은 건 그냥 누워 있는 거예요. 자다가 배고프면 밥 먹고, 그러다 질리면 음악을 하고 싶은 건데요. 현실적으로 그럴 수 없으니까 무언가 일을 해야한다면 이 일인 것 같아요.
일상에는 얼마나 만족하세요?
삶이라는 게 만족할 수 있을까요? 참 쉽지 않은 것 같아요. 제가 약간 비관적인 사람이라서 그런지. 좋은 삶이란 과연 뭘까 계속 생각하고 있어요.
일하면서 어렵거나 좌절감을 느낄 때도 있을까요?
일단 사람을 너무 많이 만나요. 하루에 뮤지션 네 팀이면 한 주에 70~80명 정도를 만나는데요. 좋은 분들도 많지만 감정적으로 힘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어요. 음향 엔지니어가 그냥 음향만 딱 틀어준다고 되는 게 아니잖아요. 불편한 건 없는지 계속 물으면서 해야 하고 음향적으로 안 되는 게 있으면 설명도 해야 하니까요. 또 일만 하고 헤어질 수 없으니까 “잘 지내셨냐” 이런 대화도 하고 가끔 같이 술도 마셔요. 그러다 보면 정말 다양한 인간 군상을 보게 될 때도 있죠. 그리고 좌절감이라기보다는 제가 지금 사는 방식이 앞으로도 지속 가능한 형태는 아닐 거라는 생각을 해요. 그래서 고민될 때가 많아요. 지금은 부모님과 같이 살고 있기 때문에 괜찮지만 만약 제가 (부모님 집을) 나가서 혼자서 살아야 한다면 어떻게 할지, 또 점점 나이 들수록 몸이 아플 수도 있고 지출도 늘어날 텐데 어떻게 살 수 있을 것인가, 이런 고민을 항상 안고 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일을 계속하는 이유는 뭘까요?
음악이 즐거워서 그렇죠. 음악이 좋으니까요. 저는 라이브 클럽의 분위기 자체가 너무 좋아요. 라이브 클럽이라는 게 사실 계산기 두드려 보면 쉽지 않거든요. 다른 곳도 사정이 크게 다르지 않을 거예요. 그래도 아직 남아 있다는 건 그곳이 계산기를 두드리지 않는 공간이라는 합의가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고요. 거기서 공연하는 뮤지션도 사장님도 손해를 보면 봤지 (금전적인) 이득은 없거든요. 하여튼 라이브 클럽은 음악을 좋아한다는 이유만으로 성립하는 공간이란 말이에요. 저는 그게 좋은 것 같아요. 정말 좋아한다는 마음으로 계속되는 공간이라는 게. 그래서 저는 제 직장에 애정이 있고, 좌충우돌 사고도 있고 사람이 힘들 때도 있지만 음악을 좋아한다는 이유만으로 굴러가는 게 참 좋아요. 물론 돈도 벌면 좋겠지만요.
작업중인 센
괜찮을까요? 하고 싶은 일 계속해도.
아무것도 안 하는 것보다 하는 게 나아요. 안 하는 게 최악이에요! 근데 잘 안될 수도 있는 건 감안하고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하고 싶은 게 잘 안되더라도 삶은 이어지거든요. 하고 싶은 일 하다가 그게 잘 안되면 그때 다른 일을 시작할 수도 있어요. 그래도 괜찮으면 해도 되죠.
할지 말지 고민하는 사람이라면 하는 게 좋다는 이야기인가요?
그렇죠. 어떤 길을 가기 전에 정확히 파악할 필요는 있어요. 결국 선택은 본인이 해야 하니까요. 사실 이런 건 누구한테 물어봐도 정답은 없어요. 우물쭈물하다가 아무것도 안 하는 게 최악인 것 같아요. 근데 분산 투자라는 게 있잖아요. 잘 안됐을 경우를 대비해서 다른 길도 열어놓고 생각해 보는 게 좋아요. 저는 그런 사람을 많이 봤어요. 자기 음악의 성패가 마치 인생의 성패가 되는 것처럼 생각하는 사람들. ‘하고 싶은 일을 하는 나’만 진짜고 ‘다른 일을 하는 나’는 가짜라고 생각하면, 하고 싶은 일을 하다 꺾였을 때 사람이 무너져요. “세상이 나를 몰라준다” 그러면서 음악 장비 다 팔고, “이제 음악 안 합니다”라고 해요. 그러면 제가 눈물 흘리면서 (장비를) 주워 담긴 하지만. 음악이 아닌 세상도 많거든요. 음악 좀 못해도 잘 살 수 있어요. 사람이 하나의 자아에 ‘올인’하면 그게 잘 안됐을 때 못 버틸 수 있다는 거예요. 그래서 저는 음악 하는 사람들이 다른 직업을 갖는 것도 좋다고 생각해요. 물론 자기가 하는 예술과 사람들이 원하는 게 일치해서 음악만 하면서 먹고 사는 사람도 있어요. 그런 사람은 정말 운이 좋은 사람이죠. 하지만 그런 걸 기대하는 건 너무 요행을 바라는 거라고 생각해요. 많은 인디 음악가가 회사에 다니거나 대학원생이면서 음악도 훌륭하게 해나가고 있거든요. 저는 그런 사람이 오히려 음악을 더 꾸준히 잘해 나가는 걸 많이 봤어요. 그래서 하나의 카테고리에 자기 자신을 집어넣으려고 하지 말았으면 해요.
사실 저도 고민의 터널 안에 있어요. 아직도 어떻게 살면 좋을지 모르겠고요. 하고 싶은 것을 하고 있지만 현실적인 것도 생각하죠. 한 70대 될 때까지 평생 고민하지 않을까요? 다들 그럴 거예요.
“일단 길이 있다는 걸 알아야 하는데, 없는 길인 줄 알고 다른 길로 가버리면 그건 억울하잖아요.”
그렇다면 하고 싶은 일이 없는 사람도 있잖아요. 하고 싶은 일을 찾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저는 청소년기에 삶의 가짓수라는 게 그렇게 많다는 걸 몰랐거든요. 하자센터에 와서 많은 사람들을 만나면서 ‘이렇게 사는 사람도 있네, 저렇게 사는 사람도 있네’, ‘이게 되네’ 생각하게 됐어요. 그래서 (다양한 삶을) 많이 접하고 봐야 하는 것 같아요. 근데 그렇게 해도 하고 싶은 게 없을 수 있어요. 그래도 괜찮아요. 그런 사람도 있을 수 있고요, 아니 그런 사람이 더 많을 거예요. 하지만 이왕이면 좁은 곳에 있기보다는 많이 보면서 ‘저런 사람도 있구나’, ‘이걸 저렇게 해보면 어떨까’ 다양하게 생각해 보는 게 좋죠. 일단 길이 있다는 걸 알아야 하는데. 몰라서, 없는 길인 줄 알고 다른 길로 가버리면 그건 억울하잖아요.
마지막으로 이 글을 읽는 청소년들과 나누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예전에 유자살롱에서 어떤 분이 “어떻게 살아도 삶은 계속된다”고 했던 게 기억나요. 삶은 끝내주는 희극이나 비극처럼 팍 끝나는 게 아니라, 생각보다 되게 구질구질하게 계속되니까요. 그러니까 너무 많은 생각을 하지 마세요. 그냥 해야 돼요. 돈을 벌든 하고 싶은 걸 하든 뭘 하든 좋아요. 근데 적어도 거기에 대해 정확히 알아야 하고, 하기로 했으면 고민하지 말고 그냥 해야죠. 한 번 방향을 결정했다면 확실하게 하고, 또 이게 아닌가 싶을 때는 확실하게 빼고요. 뭐든 잘 안될 수 있는데, 적어도 최선을 다했으면 ‘열심히 했는데 안 되네’ 하면서 한 번 투덜거리고 털고 일어나면 되는 것 같아요. 어떤 길이든 다 맞거든요. 하고 싶은 일은 아니지만 적당한 부를 갖는 게 누군가에게는 평안일 수 있고, 하고 싶은 일 하면서 가난하게 산다고 다 멋지기만 한 것도 아니고요. 뭐든 하는 건 괜찮은데 후회할 일이 없는 게 좋다고 생각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