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고 싶은 일-기>는 하자 청소년들의 일상과 진로를 주제로 대화한 인터뷰 시리즈입니다. 청소년들이 하고 싶은 일을 위해 무엇을 하거나 하지 않으며(또는 하려고 하며) 일상을 지키고 있는지, 그들의 To do list 를 함께 보며 이야기 나누었습니다.
2023년 두 번째 일-기는 오디세이학교(민들레 캠퍼스) 6기를 수료하고 올해는 하자에서 시유공(하자 청소년운영위원회) 9기로 활동중인 도란의 기록입니다.
- 자기소개 부탁드려요. 요즘 관심사는 무엇인가요?
안녕하세요. 저는 도란이라고 하고요. 올해 스무 살이 되었습니다. 요즘 관심사는 교육에 대해서 생각하게 된 것 같아요. 그동안 정신없이 살면서 깊이 고민을 못하다가 올해 하자에 오게 되기도 했고 또 대안학교 출신 사람들을 많이 만나게 돼서 제도권 밖의 교육은 어떤지, 그런 것에 관심이 있어요.
도란의 To do list
이루고 싶은 것
집에서 독립하기
너그럽고 쿨한 사람? 감정에 솔직한 사람? 어떤 사람이 될지 고민하기
일상을 기록하고 정리하기
통학 길이나 여유시간에 할 수 있는 루틴 만들기
혼자 훌쩍 여행 떠나보기
오디세이 사람들 모임 만들기
멋진 어른이 되기
이룬 것, 이루고 있는 것
새로운 공간에 나를 내던지기
용기 내어 사람들에게 다가가기
흙 만지면서 텃밭 가꾸기
공적인 발화를 할 수 있는 곳 찾기
학교 밖으로 한 발자국 나가기
나 자신에게 여유로운 사람이 되기
- 도란은 원래 교육에 관심이 많았나요?
제가 오디세이학교*를 나왔거든요. 그때 배움의 영향도 있는 것 같아요. 그리고 일상을 살면서 미성숙하다고 느껴지는 사람들을 만났을 때 그 사람들의 어렸을 때를 고민해 보게 되는데요. 그런 사람들이 어릴 때 좋은 어른을 만났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돼서, 교육의 중요성을 생각하게 되었어요. *오디세이학교: 서울시 고등학교 1학년 대상의 1년의 전환학년(Transition Year) 과정 운영 학교
- 지금 대학에 다니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어요. 전공이 무엇인가요?
2학년 때 전공을 선택하는데 저는 사회학을 공부하고 싶어요. 원래는 대학에 가지 않으려고 했었어요. 오디세이를 다닐 때 길잡이들과 친구들 앞에서 ‘비진학 청소년’(대학에 진학하지 않는 청소년)이 되겠다는 포부를 이야기하기도 했었고요. (웃음)
처음에는 고등학교에서 배우는 윤리 과목을 좋아해서 철학과에 가려고 했어요. 그러다 혼자 공부를 해봤더니 저는 사상가들의 말이나 그 역사를 좋아하는 거지 철학이라는 학문에는 관심이 없구나. 라는 걸 깨닫게 된 거예요. 그럼 무엇을 공부할까 하다가, 제가 어릴 때부터 사람들의 문화나 ‘사람들은 왜 이렇게 살까?’ 라던지 또 사회문제, 교육에도 관심이 있었거든요. 그래서 그런 걸 공부하고 싶어서 사회학과를 생각하게 됐어요.
- 좋아하는 일이나 취미가 있나요?
하고 싶어서 하는 일이라기보다는 반강제적으로 책을 읽고 있어요. 원래 독서에 조예가 깊지는 않았는데 민들레(오디세이학교 민들레 캠퍼스)에는 책을 읽는 사람이 많아서요. 원래 저는 최신 소설을 많이 읽고 고전은 싫어했어요. ‘젊은 작가상’ 이런 분야로만 편식하다가 오디세이에 와서 고전을 읽었는데 놀라운 작품이 많더라고요. ‘몇백 년 전에 쓴 책인데 지금이랑 별로 다르지 않구나.’ 싶었고 책을 읽다가 눈이 뜨이기도 하고. 제 생각이나 기존에 갖고 있던 지식에 반대되는 내용이 나오면 머리를 한 대 맞은 것 같은 느낌도 있고요. 역시 사람이 똑똑해지고 품위 있게 살려면 책을 가까이해야 하는 것 같다. 라는 생각을 해요.
도란이 읽는 책
✔️ To do: 일상을 기록하고 정리하기
제가 예전에 썼던 글을 보면 ‘나는 무슨 생각을 갖고 이렇게 글을 썼지?’ 싶을 때가 많아요. 저는 빠른 시간 내에 변화를 겪었거든요. 터닝포인트(오디세이학교)를 겪으면서. 그런데 왜 그렇게 됐는지 흐름이 없는 것 같은 거예요. 그래서 메모나 일기 같은 기록의 중요성을 느끼게 된 것 같아요. 밀리지 않고 꾸준히 기록하면 미래의 저에게 밑거름이 될 것 같아서 꾸준히 기록을 하고 싶어요.
✔️ To do: 혼자 훌쩍 여행 떠나보기
항상 한 해의 목표나 버킷리스트를 세울 때 ‘여행하기’를 꼭 쓰는데 이룬 적이 없어요. 제가 실행력이 부족하거든요. 그래서 계획을 세우다가도 미루는 경우가 많았고 혼자 여행을 가는 게 무섭기도 해서 친구랑 일정을 맞추다가 취소된 적도 있어요. 올해는 꼭 혼자 바다가 있는 곳에 가서 바다를 보고 오고 싶어요.
- 주변 친구들은 혼자 여행을 많이 다니나요?
꽤 있어요. 주말이나 방학 때 표 하나만 끊어서 당일치기로 다녀오는 친구도 있고. 아니면 지방에 있는 마을공동체의 초대로 다녀오는 친구도 있고. 친구들에게 왜 나는 안 데려갔냐고 물어보기도 하는데요 (웃음) 친구들 말을 들어보면 혼자 가는 여행의 의미가 크더라구요. 혼자 모든 걸 하고, 생각하고, 고민하는 것. 저도 경험해 보고 싶은 것 같아요.
- 요즘 하는 고민 있을까요?
요즘은 너그럽고 쿨한 사람이 될지, 아니면 내 감정에 솔직한 사람이 되는 게 좋을지 그런 고민이 있어요. 결국 인간관계와 관련된 고민인 건데요. 전에 나에게 상처 준 사람을 어떻게 (마음속에서) 보내줘야 할지? 되게 예전에 있던 일인데도 벗어나지 못하는 일이 있는 것 같아서요. 그리고 나에게 잘못을 한 사람이 사과할 때 받아줘야 하는지도 고민인 것 같아요. 사회 생활적인 면에 있어서는 누가 사과를 하면 당연히 받아줘야 하는 분위기가 있잖아요. 안 받아주면 저만 나쁜 사람이 되는 것 같고. 그래서 말로는 “알았어. 연락해 줘서 고마워.”라고 말해도 내가 진짜 저 친구를 용서한 게 맞을까? 사실 저도 제 마음을 잘 모르겠어요. 그래서 상처 준 사람과의 끝맺음에 대한 고민이 있어요.
- 도란의 삶에 중요한 것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저는 사람이 태어날 때 아무런 이유가 없다고 생각하는데요. 모두가 자기 의지에 상관없이 세상에 내던져진 거니까요. 딱히 무엇을 해야한다는 (누군가로부터 주어지는) 목적이나 살아갈 이유는 없는 것 같아요. 그런데 살아가면서 이루고 싶은 것이나 목표, 자신의 가치관을 만들어 가면서 스스로 삶의 이유를 찾는 거죠. 삶의 이유를 나 자신이 만들어 가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 To do: 오디세이 사람들 모임 만들기
오디세이를 다닐 때 겉으로는 공교육에 대한 비판을 하면서 속으로는 무서웠어요. 남들과 다른 길을 걷는 내가 지금 뒤쳐지고 있을까봐. 결국엔 낙오될까봐, 수료 후에는 어떻게 해야할지 너무 너무 무서웠고 혼란스러웠어요. 수료하고 나서도 일반 학교를 다니면서 문제의식만 가진채 결국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스스로가 너무 무력하다고 느껴져서 많이 힘들었어요.
이런 문제에 대해 같이 이야기할 사람이 없어서 외롭기도 했고요. 보통 대안교육을 받는 사람들은 저처럼 짧게 다니는게 아니라 어렸을 때부터 쭉 대안교육을 받는 경우가 많은데 저는 어느 쪽에도 속하지 못하는 거예요. 어느 곳에도 소속된다는 느낌을 받지 못해서 힘들었던 것 같아요.
근데 저만 이런 생각을 가진 게 아니었을 거라고 생각해요. 예전에 수료한 선배들이나 지금 다니고 있는 사람들도 비슷할 텐데 이런 감정을 나눌 공간이 없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여유가 되면 오디세이 사람들을 모아서 이런 이야기를 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거창한 꿈이 있어요. 저도 그런 과정을 통해서 위로받을 수 있을 것 같아요.
- 진로와 관련된 고민도 있나요?
어른들이 어릴 때부터 꿈이 뭐냐, 나중에 무슨 직업을 가질 거냐고 많이 물어보잖아요. 제가 고3 때 원서를 다 인문사회 쪽으로 썼더니 너 문과 가면 뭐 먹고 살 거야? 그래서 취업은 어떻게 할 거야? 그렇게 물어보는 사람도 있었고, 그냥 취업을 해야하니까 교차지원해서 자연대나 공대에 갔으면 좋겠다는 사람도 있었어요. 그래도 꿋꿋하게 사회대를 지원했는데요. 그렇다고 꿈이 확실한 건 아니에요. 직업에 대한 고민은 이차적이라고 생각해서요. 옛날처럼 하나의 직업으로 평생 먹고사는 시대도 아니고요. ‘뭐라도 해보다가 아니면 다른 거 하면 되지’ 하는 낙관적인 시선을 갖고 있는데 어른들이 봤을 때는 생각 없어 보이는, 그런 것에 대한 고민이 있어요.
오디세이를 다닐 때 길잡이들이나 그때 만난 어른들은 다 행복해 보였어요. 저도 그렇게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고 싶다고 생각하는데 과연 그렇게 살 수 있을까? 싶기도 하고. 지금까지는 제 가치를 더 우선하면서 살고 있는데 언제까지 계속할 수 있을까? 어떻게 먹고 살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이 가장 큰 것 같아요. 결국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먹고 살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인 것 같아요.
- 10대 때와 현재의 진로 고민이 비슷한가요, 다른가요?
저는 중학생 때까지는 공무원이 되고 싶었어요. 지금이랑은 정반대죠. 그때는 안정적인 생활을 하고 싶었고 (오디세이 수료 후에) 지금은 조금 덜 안정적이더라도 가치관에 대한 고민을 더 하고 있는 것 같아요.
✔️ To do: 멋진 어른이 되기
저는 중학생 때까지 어른들을 미워했던 것 같아요. ‘내가 힘든 걸 알면서 왜 방관했을까?’ (생각해왔고) 10대 때는 주변 어른이 부모와 교사 밖에 없잖아요. ‘왜 선생님들은 나에게 좋은 어른이 되지 못했을까?’ 그런 생각을 하면서 간 게 오디세이학교였어요. 그런데 오디세이에서 만난 길잡이들은 너무 좋았거든요. 제가 일반학교에서 만난 선생님들이 특별히 나쁜 사람인 건 아닌데. 뭐가 다른 걸까? 생각하게 되었어요.
학교 안에 있는 청소년들은 교사들에게 사랑받은 기억보다 상처받은 기억이 더 많은 사람이 더 많을 거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저랑 같은 기억을 갖고 있는 사람들에게 힘을 주고 싶다고 생각하게 됐어요. 그렇게 교육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요. 저도 오디세이를 안 갔다면 몰랐겠죠. 좋은 어른의 존재가 청소년에게 얼마나 큰지 지금은 알게 됐으니까. 누군가를 위로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평생을 살면서 이뤄야 할 최종적인 저의 꿈입니다.
✔️ (완료/진행 중) To do : 공적인 발화를 할 수 있는 곳 찾기
대학에 와서 환경 소모임에 들어가게 됐는데 처음에 너무 무서웠어요. 선배들이 너무 어려운거예요. 그래도 저는 말하는 걸 좋아하거든요. 특히 사적인 대화는 어디서든 할 수 있지만 공적인 대화는 아니니까요. 그래서 모임에서 어떤 발언들을 하는 게 쉽지 않아도 일을 끝내면 집에 가는 발걸음이 가벼워요.
예를 들면 소모임에서 책을 읽고 같이 공부하는데 지난주에는 제가 발제를 했어요. 급하게 준비하면서 벅차기도 했고 이론적으로 틀릴까 봐 무서웠는데 그래도 막상 하니까 반응이 좋기도 했고 제가 가져온 주제로 토론을 했는데 깊이 있는 말을 많이 들었어요. 하고 나니까 뿌듯하더라고요.
- 진로나 미래와 관련해서 또래들과 나누고 싶은 이야기가 있을까요?
현재를 즐기면서 살았으면 좋겠어요. 또래들을 보면 미래에 대해 생각하며 사느라 현재를 즐기지 못하는 것 같아요. 늘 내일을 위해 사는 것 같아서요. 저는 오디세이에 가기로 했을 때 남들과 다른 길을 가는 게 무서웠거든요. 그래도 용기를 냈더니 정말 좋은 시간을 보냈고, 덕분에 삶에 대해 성찰할 수 있었어요. 그래서 다른 사람들도 지금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았으면 좋겠어요.
어른들은 필요 이상으로 겁을 주는 것 같아요. 제가 오디세이에 간다고 했을 때나 자퇴하고 싶다고 했을 때, 또 사회대에 가고 싶다고 했을 때 다들 나서서 제 인생을 걱정한다면서 말렸거든요. (그런 것 신경 쓰지 말고) 다들 지금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았으면 좋겠다! 라고 말 하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