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편집자. 사실 무턱대고 결정한 꿈이었다. 6년 동안 키워왔던 꿈을 포기하고, 재빨리 다른 길을 찾아가야 했기 때문이다. 나는 글을 좋아했고 글을 다루는 교정·교열의 일에 조금 자신이 있었다. 그렇게 관련 일을 할 수 있는 직업을 찾아보던 중, 출판편집자가 교정·교열 일도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때부터 출판편집자라는 꿈을 가졌던 것 같다.
그러나 무턱대고 결정한 꿈이라 그런지 걱정이 꼬리를 물기 시작했다. 나는 원래 책을 잘 읽지 않았고, 책 편집엔 관심이 전혀 없었다. 그래도 뭐가 됐든 지금부터 준비하면 될 일이었다. 하지만 이것저것 찾아보고, 관련 자격증을 취득해도 꿈에 대한 확신이 서질 않았다. 오래 키워왔던 꿈을 한 번 포기했던 전적이 있기에, 더욱 의심이 들었던 것 같다.
나에게 확신을 줄 멘토는 누가 있을까. 자신만의 길을 꿋꿋이 나아가는 멘토가 필요했다. 출판사 고유의 색깔이 짙은 작은 출판사를 찾아봤다. 그러던 중, 이전에 인상 깊게 읽었던 책 『지성이 금지된 곳에서 깨어날 때』가 떠올랐다. 해당 책을 발간한 출판사 ‘나무연필’에 대해 조사해 봤고, 출판사가 지향하는 바가 어떤지 알 수 있었다. ‘나무연필’의 임윤희 대표님은 내가 동경하는 단단하고 굳건하신 분 같았다. 나는 바로 대표님께 인터뷰 요청 연락을 드렸고, 대표님께선 흔쾌히 수락하셨다.
그렇게 성사된 만남. 세 파트로 나눠, 출판편집자가 되기까지의 과정에 대해 여쭤봤다.
Q. 안녕하세요. 간단한 자기소개와 출판사 소개 부탁드립니다.
A. 사실 이젠 책 만든 게 몇 년인지 세기 힘들어요. (웃음) 출판 일을 한 지는 20년이 넘었고, 이전에 근무하던 출판사에서 독립해 회사를 운영하고 있고요. ‘나무연필’은 인문·사회과학 논픽션(Non-Fiction) 책을 만드는 회사예요. 많은 책을 만들진 못하지만, 8년째 운영해 오고 있어요.
Part. 1 출판편집자가 되기까지
Q. ‘나무연필’을 차리시기 전, 타 출판사에서 약 20년간 편집자로 일하셨던 걸로 알고 있어요. 출판편집자로 일하게 된 계기가 있나요?
A. 처음에 친구가 자기네 회사에서 일할 생각 없냐고 했어요. 그래서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취업했어요. (웃음) 일하는 것도 처음엔 되게 재밌었고요. 그런데 그 일을 평생 하겠다는 생각은 아니었어요. 그냥 책을 만들다 보니까 만들게 되고. 이 일을 하지 말아야 할까 고민하던 시기도 당연히 있었어요. 중간에 한 1년씩 놀다가, 다시 돌아오기도 하고요. 그래서 뚜렷한 목표 의식을 가지고 ‘나는 좋은 편집자가 돼야 해!’, 이렇게 일을 시작하진 않았어요. 하지만 하는 일엔 충실해지고 싶었어요. 그래서 계속 이렇게 책을 만들다 보니까 여기까지 왔네요.
Q. 출판편집자가 되기 위해 어떤 역량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시나요?
A. 많은 역량이 필요해요. (웃음) 좋은 편집자가 되려면 그렇지만, 기본적으로 필요한 건 계속해서 공부하는 일인 것 같아요, 이 일이. 새로운 사람을 찾아다니면서 새로운 공부를 계속하는 일이에요.
보통 출판편집자들이 1년에 5권 내외의 책을 내요. 그러면 5개의 화두를 1년 동안 고민했다고 생각하시면 되죠. 다르게 말씀 드리면, 5개의 이야기를 세상에 이야기하는 거예요. 이걸 함께 할 수 있는 필자가 있을지에 대해 고민하는 거죠. 그래서 계속해서 새로운 것들을 찾아다니고, 공부하고. 이런 것들을 계속해야 하는 일인 거예요. 그리고 어떤 주제는 올해에 던지면 매력적인데, 내년에 던지면 하나도 안 매력적인 것들이 있을 수 있어요. 그래서 요즘 시대와의 호흡에 대해서도 예민하게 반응해야 해요.
또, ISBN1)을 받은 모든 책은 납본돼서 국립중앙도서관의 지하에 보관돼요. 즉, 책은 오래된 보존성을 가진 매체예요. 그렇게 보존되는 매체가 생각보다 많지 않아요. 그런 면에서 출판은 오래 갈 수 있는 콘텐츠를 만드는 일이기도 한 거죠.
1) ISBN(International Standard Book Number): 국제표준도서번호
Q. 공부하는 일이라면 출판 편집이라는 일 자체에서 공부하고 배워가는 것을 말씀하신 걸까요?
A. 네, 사실 출판사에서 자격증으로 그 사람이 교정·교열을 잘 본다고 판단하지 않아요. 실제 문장을 보고 그것을 고쳐나가고, 맥락을 확인하고 이런 것과는 다른 문제죠. 좋은 콘텐츠를 많이 보는 건 도움이 되죠 분명히. 어떤 콘텐츠가 좋은 콘텐츠인지에 대한 안목은 필요해요. 그래서 좋은 것을 많이 보고, 듣고, 경험하는 것은 되게 많이 도움이 되죠.
Q. 출판 꿈나무로서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사실 전 그동안 책을 거의 읽지 못했습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출판편집자가 꿈이라면 책을 많이 읽어보는 것이 도움이 되겠죠?
A. 도움이 되죠. 일하게 되면 책을 많이 안 볼 수가 없는 직업이에요. 그런데 스스로 타진해 볼 때, 이 일을 내가 재미있게 할 수 있을지 고민해 봐야 해요. 그리고 다양한 경험이 있는 것도 도움이 많이 된다고 생각해요. 출판 일이 생각보다 다양한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소통해서 더 좋은 원고를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일이에요. 출판을 잘 모르는 사람들이 저에게 그런 질문도 하더라고요. 필자가 어떤 부분에 있어서 저보다 훨씬 더 잘 알 거 아니에요? 그런 사람과 계속 대화하면 부담스럽지 않냐고 묻더라고요. 그런데 그게 저희의 일이에요. 저는 그때 그렇게 답변했어요, 제가 알고 있는 수준과 똑같은 수준의 사람의 책을 내고 싶진 않다고. 나보다 더 많이 아는 전문가의 이야기를 책으로 낼 때 의미가 있는 건데. 그래서 그런 부분에 있어서 별로 두려워하지 않는 게 필요한 일이에요. 제가 필자보다 정보가 부족할 수는 있지만, 책은 필자보다 더 많이 만들어봤으니까. 그 전문성으로 소통하는 거죠.
열등감이 없어야겠네요.
마음에 상처가 잘 나는 사람은 사실 버티기 힘들어요. 그러니까 저희 일이 거절당할 때도 있는 일이에요. 그걸로 인연을 만드는 거죠. 이번 일로 성사되지 않았더라도, 좀 길게 봐서 나중에 같이 다른 책을 만들게 될 수도 있고요. 그렇게 관계를 만들어가고, 서로 안부도 묻고. 그러니까 거절당하는 것에 익숙해져야 하는 일이에요.
Q. 책을 출판하는 과정 중 가장 어려운 과정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A. 다 어려워요, 만만한 게 없어요. (웃음) 최근엔 판매 문제에 대해 고민하고 있어요. 좋은 이야기가 많이 팔리느냐 하면, 꼭 그렇진 않잖아요. 출판사를 운영한다는 건 편집만 하는 게 아니라 판매도 해야 하니까. 그 부분에 대한 고민이 더 늘어난 상황이에요.
또 다른 건 좋은 책을 만들기 위해서 노력해요. 내가 만든 책을 더 많은 사람이 읽을 수 있도록 방법을 찾는 건 즐거운 일이에요. 그런 종류의 것들을 지금 계속 고민하고 있다고 보시면 될 것 같아요.
Part. 2 어려움을 극복하기까지
Q. 출판사에서 독립하신 후, ‘나무연필’을 시작할 때 어려운 점은 없으셨나요?
A. 아뇨, 재밌었어요. (웃음) 저는 별로 어려운 적은 없었어요. 사실 제가 조금 운이 좋았던 경우예요. 초반에 냈던 책들이 비교적 반응이 좋아서 경제적으로도 어렵지 않게 회사를 운영할 수 있는 상황이었거든요. 그런데 이제 혼자 하니까 체력이 달렸어요. 예를 들면 젊었을 때는 밤을 새워도 다음 날 많이 자고 그러면 힘들진 않았는데, 이젠 밤을 새우면 죽을 것 같은 일이 많으니까, 체력적으로 힘든 게 조금 있었죠.
Q. 그럼 체력적으로 힘든 점을 극복하는 방법이 있었나요?
A. 쉬었어요. (웃음) 일을 어떻게 나눌 수 있을까 고민하죠. 처음엔 이 일들을 어떻게 하는 건지 파악해야 했기 때문에, 제 몸으로 직접 겪은 거죠. 이제 직접 다 해보고 나니까, 이걸 다 완벽하게 하려면 내가 죽어난다는 걸 깨달았어요. 그렇게 직원을 들이기도 하고, 다른 일들은 외주로 맡기기도 하고. 그렇게 일을 분리하는 거죠. 제가 감당할 수 있는 걸 조금 줄여야 장기적으로 계속 일을 할 수 있으니까요.
Q. 20년 넘게 일한 출판사에서 독립하셨을 때, 큰 용기가 필요하셨을 것 같아요. 당시 독립할 용기를 낼 수 있었던 근원은 무엇이었나요?
A. 이전에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1년 쉬었어요. 그랬더니 에너지가 많이 생겨서, 용기가 생기더라고요. (웃음) 회사 다닐 땐 되게 힘들었어요. 그런데 한 1년 정도 쉬면서 조금 이런저런 생각을 했죠. 어찌 보면 잘 쉬면서 직장 생활을 정리한 거죠. ‘내가 뭘 하고 싶은지 생각하는 시간을 편안하게 주자.’라고 생각하면서 1년의 시간을 준 거예요. 그렇게 나는 책을 만들어서 세상에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는 사람이란 걸 깨달은 거죠. 제 마음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봤어요. 그런데 중요한 건, 지금 내가 정말 원하고, 하고 싶은 게 뭔지 아는 거예요. 이렇게 내 마음이 어떤지 들여다보는 시간을 조금 여유 있게 줬어요.
새로고침 하신 거네요.
제가 인생 절반 정도를 비교적 열심히 살았다고 생각했는데, 그다음 20년은 뭘 하고 살지 고민하는 문제였거든요. 그러니까 방향 전환을 할 때, 나에게 쉬는 타이밍이 필요하단 걸 판단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오히려 용기의 근원은 1년 노는 거였어요. 그냥 나한테 그 시간을 여유 있게 주고, 그 시간을 잘 보내는 게 나한테 도움이 되겠다고 생각했어요. 물론 이제 중요한 것은 1년 놀려면 돈이 필요하잖아요. 그런 종류의 계획들을 천천히 세웠어요. 기본적으로 생활하는 데 드는 돈을 얼마 정도 절약해야 내가 1년을 살 수 있는지. 그런 계획을 세워서 재미있게 지낸 거죠.
Q. 저는 이 길이 나한테 맞는 길인지, 종종 회의감이 들기도 하는데요. 이럴 때, 확신을 얻는 방법이 있을까요?
A. 확신이 있어야 일을 하나요? (웃음) 저는 확신이 어떤 판타지일 수 있다고 생각해요. 확신이 나한테 동력이 되고 이렇지는 않더라고요. 좋은 책을 만들었을 때의 기쁨은 있죠. 내가 세상에 조금 더 도움이 되는 책을 냈구나, 이런 기쁨. 그게 조금 싫은 일들을 버틸 힘이 되기도 하죠. 항상 좋은 일만 있는 게 아니라, 안 좋은 일들도 같이해야 하니까.
오히려 저는 확신을 계속해서 의심해요. 의미 있는 책을 낼 수 없다면, 확신이 있더라도 일하면 안 되지 않을까요? 나는 확신이 있는데, 좋은 걸 못 만들면 안 되니까. 그러니까 저한테 확신이 아주 결정적인 문제는 아닌 거예요. 그 일을 하는 게 즐겁거나, 보람 있거나, 이런 것들이 조금 더 해볼 수 있는 동력이 되는 거죠. 그리고 내가 조금 더 잘할 수 있는 사람이 되도록 만들죠.
Q. 확신에 너무 기대면 안 된다는 말씀이신 거죠?
A. 확신에 꼭 기댈 필요는 없단 이야기예요. 그러니까 다음 파트 질문이 꿈에 대한 것이잖아요? 저는 국문학을 전공했거든요. 그런데 사람들이 가끔 물어봐요. ‘왜 국문학 전공했는데 문학책은 안 만들고 인문·사회책을 만들어?’ 이런 이야기를 해요. 문학은 되게 좋아해요. 그런데 일로 들이고 싶지 않은 부분이 있었어요. 그건 그냥 내가 편하게, 마음대로 즐겨도 되는 영역에 둔 거죠.
그래서 이 길이 나에게 맞는 길인지 회의감이 드냐하면, 저는 지금도 그래요. (웃음) 그런 문제라. 그래서 확신을 얻지 않아요. 확신에 대해 깊게 고민해보진 않았던 것 같아요.
Part. 3 꿈을 이루기까지
Q. 대표님의 어렸을 적 꿈은 무엇이었나요?
A. 저는 좋은 작품을 보거나, 좋은 풍경을 보면, 이게 왜 좋은지 해명하고 싶었어요. 미학이나 평론의 영역인 것 같아요. 그런데 우연히 책을 만드는 세계와 만난 거죠, 친구가 오라고 해서. 그렇다고 지금 이 일을 선택한 게 후회되진 않아요.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해명하기 위해 열심히 책을 읽었죠. 아까 제가 이전에 해놨던 것들이 조금씩 결이 돼서 미래의 자산이 된다고 말씀드렸잖아요? 저도 조금 그런 편이에요.
‘저거 너무 재미있었는데, 저걸 어떻게 책으로 만들 수 있을까?’ 이런 고민을 해요. 저한테 책이라는 건 커다란 도화지인 거죠. 도화지의 색칠은 필자가 하세요. (웃음) 제가 그 도화지를 액자에 넣고, 설명도 달고 하는 거죠. 그리고 팔기도 하고. 전 책이라는 도화지가 열려 있고 넓어서 좋았어요.
Q. 현재 대표님의 꿈은 무엇인가요?
A. 1번, 몸도 마음도 건강하자. (웃음) 나이가 들어간다. 그다음에, 저한테 그런 두려움이 있어요. 저와 같이 일하는 후배들이 계속 잘 성장할 수 있게 제가 도움 주기도 하고, 도움이 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줘야 해요. 그런데 내가 후배들한테 배울 게 없는 사람이 되면 어떡할까하는 두려움이 있어요. 그래서 같이 일하는 동료들에게 내가 도움이 되는 사람이었으면하는 마음이 있어요. 저랑 제일 많은 시간을 보내고 일에 관한 이야기를 제일 많이 하는 사람들이니까요.
Q. 마지막으로, 대표님과 같은 길을 꿈꾸는 꿈나무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A. 한계 짓지 말고, 사람들 많이 만나보시고, 많이 접해 보시고, 이런 것들을 여러 방면으로 시도해 봤으면 좋겠어요. 내가 어떤 사람인지 경험할 수 있는 건 다양한 사람을 만나보고, 다양한 상황을 접해 보며 간접 경험을 하는 거예요.
그리고 저도 여행을 정말 많이 다녀봤고 낯선 사람을 많이 만나봤지만 무의식적으로 여성이기 때문에 안전한 방향만을 선택하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런데 이렇게 계속 안전한 범주에만 머무르는 게, 스스로 한계를 만들게 될 수 있거든요. 위험한 일을 하라는 게 아니에요. 안전하게 시도해 볼 수 있는 것들을 더 많이 시도해 봐야 자기 영역이 넓어져요. 그 부분에 있어서 여성들이 움츠러들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제가 30대까진 새로운 곳에 여행을 많이 다녔어요. 그런데 40대가 돼선 요양을 다녀요. (웃음) 새로운 걸 보면 받아들이는 데 시간이 되게 오래 걸려요. 능동적이었던 전에 비해 지금은 수동적으로 바뀐 거죠. 그래서 젊었을 때, 특히 20대 여성들이 이것저것 많이 시도해 봤으면 좋겠어요.
내용에 다 담진 못했지만, 좋은 말씀을 많이 들을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책을 선물 받고 의미 깊은 말씀을 들으며, 얻어가는 게 많았다. 내가 스스로 채찍질하며 잘못하고 있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사실은 잘못된 것이 아니었음을 알았다. 조금 연습이 필요했을 뿐.
후에 출판편집자가 되지 못해도 불안하지 않을 것 같다. 먼 길을 돌아가더라도 언젠가는 이 꿈을 이루게 되지 않을까? 다만 책은 많이 읽어야겠다. 꿈 때문이 아니더라도, 많이 도움이 될 테니까. 그리고 많이 시도해 봐야겠다. 이것저것 모두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