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청소년 시절에 행복하셨나요?’라고 물어온다면 ‘당연하죠!’라고 답할 자신은 없다. 청소년 시기의 나는 지금보다 불안정했고 사회성도 떨어졌다. 그게 잘못되었다는 건 아니지만… 어쨌든. 그때의 내가 원했던 건 어른들의 따뜻한 관심과 사랑이었지만 나에게 사랑을 준 어른은 (조금 슬프지만) 부모님 말고 없었던 것 같다. 그래서 나는 누군가에게 믿음과 사랑을 줄 수 있는 어른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했고 청소년 지도사라는 직업을 꿈꾸기 시작했다.
환경을 주제로 한 청소년 프로그램이 ‘트렌드’라는 건 알고 있었다. 내가 본 환경 프로그램들은 대체로 비슷한 것 같았다. 이런 활동들만으로 청소년들에게 무엇을 줄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관심을 가진 후, 생각보다 기후위기가 심각함을 알게 되었다. 청소년을 사랑한다고 말하는 사람이 청소년에게 이런 지구를 남겨줘도 괜찮은 건가? 미래에 만나게 될 청소년들이 ‘선생님. 어른들은 왜 지구를 이렇게 만든 거죠?’ 라고 물으면 ‘미안, 선생님도 이렇게 될 줄 몰랐어...’라고 답해야 하는 건가. 이대로는 안되겠다. 청소년들을 위해 영혼이 있는 청소년 환경 프로그램을 기획&운영하고 더 나아가 나의 삶의 태도도 바꿔야겠다는 결심을 했다.
이번 인터뷰는 내가 인터뷰하고 싶은 멘토를 찾아가 직접 이야기를 들어볼 수 있었다. 다양한 청소년 환경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는 청소년 기관 시립문래청소년센터에서 청소년 환경 프로그램을 담당해 운영하고 계신 ‘김유진’ 청소년 지도사님을 만나 인터뷰를 진행했다.
시립문래청소년센터 입구
개인적으로 ‘청소년 지도사’라는 직업이 엄청 대중화된 직업은 아니라고 생각하거든요. 어떻게 알고 이 직업을 선택하시게 된 건가요?
학교 다닐 때 반장 부반장을 했었어요. 그러다 청소년 수련원으로 2박 3일 리더쉽 캠프를 갔는데 거기에 계셨던 선생님께서 너 혹시 청소년운영위원회 해볼 생각이 없느냐라고 물어보셨어요. ‘그게 뭔데요?’라고 물어봤는데 여기서 일하는 선생님들처럼 너도 여기에 의견을 낼 수 있는 거다라고 말씀하셨어요. 그래서 신청을 했죠. 그때 당시에 부천에 살았는데 강화도까지 가서 활동을 했어요.
부천에서 강화도까지요?
네. 청소년수련관은 모르고 수련원만 알았던 거죠. (웃음) 그래서 한 달에 한 번씩 그 수련원에 갔어요. 그때는 기관에 계신 청소년 지도사분들이 교관 선생님인줄 알았어요. 놀면서 일하고 싶은 마음에 ‘선생님 저도 교관(?)을 하고 싶은데 어떻게 하면 되나요?’라고 여쭤봤는데 청소년지도과를 가서 청소년 지도사를 하면 된다고 말씀하셨어요. 그때 청소년 지도사라는 직업을 처음 알게 되었죠.
먼 거리를 이동할만큼 청운위 활동에 흥미를 가진 이유가 있으셨던 걸까요?
사람들끼리 모여서 무언가 한다는 게 재밌었어요. 그런 사람들(청운위)를 만나는 게 쉬운 일은 아니잖아요. 새로운 사람을 만나서 재밌는 일을 한다는 것, 학교에서 할 수 없는 경험을 한다는 것, 그리고 놀면서 하니까 (그때는 서류 같은 게 안 보였으니까요…) 이 직업을 가지면 재밌겠다, 행복하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청소년 지도사라는 직업을 잘 모르는 사람은 그때의 저처럼 참 즐거운 직업이네~라고 생각하지 않을까요?
그때의 기억이 선생님께 의미 깊게 남았던 것 같아요. 선생님께서 일하고 계신 시립문래청소년센터는 다양한 청소년 환경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걸로 알고 있어요. 몇 가지 소개해주실 수 있나요?
제가 있는 팀은 환경생태특성화 프로그램을 주로 다루지만 청소년사업팀이나 다름 없어요. 옥상의 텃밭도 가꾸는 생태 프로그램도 하고 ‘농촌에서 만난 사이’라는 환경 캠프 프로그램도 진행해요. 농촌봉사 활동을 환경과 함께 엮어서 쓰레기 없이 진행하는 프로그램이에요. 1년에 3번 환경축제도 진행해요. 아, 3번 다 제가 담당자입니다.(웃음) 그린나래라는 청소년 환경 서포터즈(기획단)와 함께 구상해서 진행하고 있어요. 그린나래 말고도 에코디자이너라는 기획단도 있어요. 지역의 환경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활동들을 해요. 최근에는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병뚜껑을 업사이클링해 작품을 만들고 전시하는 활동을 준비하고 있어요. 지역과 연계해서 영등포 쪽방촌 어르신들께 친환경농산물들로 요리를 해서 배달하는 프로그램도 있어요. 환경적인 것과 봉사활동을 접목한 프로그램이죠.
센터 곳곳에 청소년들이 그린 환경과 관련된 그림이 전시되어 있었다.
환경 프로그램’하면 자칫 간단하고 단순한 체험 활동만 생각하기 쉬운데 지역사회나 봉사활동과 연계해서 진행된다는 게 너무 좋은 것 같아요. 저도 대학생이라 그런지 대학생 기획단 활동에 더 흥미가 가는 것 같아요. 환경축제는 대학생 기획단인 그린나래와 함께 진행한다고 하셨는데 기획부터 운영까지 모두 포함한 걸까요? 어떤 활동들을 하나요?
네. 같이 만들어요, 그린나래는 센터에 거의 산다고 볼 수 있죠. (웃음) 제 입장에서는 아무리 즐거워도 일인데 청소년은 다르죠. 아이디어 같은 경우에도 청소년이 더 많이 내는 것 같아요. 그렇게 만든 축제니까 자부심도 갖고요. 4월에 했던 축제는 지역 주민들 대상으로 물품을 모아 저렴한 가격에 판매하는 플리마켓을 운영했어요. 부스는 대여를 하고 사용했던 현수막은 폐현수막으로 가방을 만드는 기업에 배송했어요. 판매 금액의 10%는 환경단체에 기부했고요. 모두 청소년들이 찾아보고 진행한 것들이에요. 사실 저 혼자 하는 게 빠르죠. 그럼에도 함께 하는 이유는 청소년들의 ‘성장’ 때문이에요. 활동을 끝내고 나면 눈에 띄게 성장하는 모습이 보이거든요.
어떤 성장이 있었는지 간단하게 소개해주실 수 있나요?
그린나래는 활동이 끝나면 매일매일 ‘자기성장일지’를 작성한 뒤 일지를 읽고 피드백 하는 시간을 가져요. 그렇다 보니 변하는 모습이 더 잘 보여요. 처음에는 자기 의견 말하는 것도 힘들어하던 친구가 있었어요. 지금은 3년 차인데 자기 이야기도 많이 하고 본인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면 확실하게 말도 하더라고요. 그런 상황들을 마주했을 때 ‘이런 활동들이 청소년들을 성장하게 하는구나.’ 느껴요. 처음에는 소극적이던 청소년이 직접 무언가를 만들어가는 활동을 하면서 적극적으로 변하는 순간 같은 거요.
기후위기의 심각성을 알게 된 이후로 청소년 지도사로서 어떤 것들을 할 수 있을까? 같은 고민을 하고 있어요. 정말 도움이 되는 청소년 환경 프로그램은 무엇인지, 어떻게 기획하고 운영해야 할지 같은 생각도 하고요. 아직 취업은 안 했지만요. (웃음) 청소년 환경 프로그램을 담당하는 청소년 지도사에게 필요한 역량은 뭐라고 생각하시나요?
우선 환경에 대한 정확한 지식이 중요하죠. 지식적인 것을 잘못 알려준다면 청소년들에게 독이 될 수 있거든요. 환경을 위한 노력이라고 하면 큰일이라고 생각하는데 사소한 거거든요. 왜 우리가 이렇게 해야 하는지 알려주고 실천할 수 있는 것들을 주면 실천해요. 환경조성도 중요하죠. 함께하는 사람들이 6명인데 그중 한 명만 텀블러를 안 가져오면 다음에는 텀블러를 가져올 수 있겠죠. 그런 선한 영향력을 넓혀가는 환경을 조성하는 게 청소년 지도사로서 가장 필요한 역량이 아닐까 싶어요.
맞아요. 그런 자연스러운 분위기가 중요한 것 같아요. 사실 청소년 환경 프로그램이 진행되는 순간에 청소년들이 무언가를 얻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공간을 벗어난 일상생활에서도 이를 실천할 수 있게 돕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어렵겠지만요. (웃음)
맞아요. 정말 어려워요. 쉽지 않아요.
그래도 조금이라도 청소년의 변화를 만나기 위해서, 청소년 환경 프로그램이 실효성을 얻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지 궁금해요. 또 그걸 얻기 위해 우리(청소년 지도사)들은 무엇을 해야 할까요?
그런 변화를 단회기 프로그램에서 얻기는 힘들다고 생각해요. 다회기 프로그램이 많은 것도 청소년들 마음속에 생태 가치관이 녹아들게 하기 위해서죠. 프로그램이 실효성을 얻으려면 청소년들이 직접 참여하는 게 중요해요. 발로 뛰어다니면서 환경 보호의 중요성을 자연스럽게 체득하는 거 같아요. 청소년 지도사로서는 앞에서 말한 활동들을 어떤 방법으로 청소년들과 오랫동안 함께할 수 있는지를 고민해야 할 것 같아요. 오래 흥미를 느낄 수 있도록, 그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사실 사람이 변한다는 게 참 어려운 거 같아요. 누군가에게는 들고 다니는 연필 하나 바꾸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닐 수 있으니까요. 그렇게 활동을 진행하며 선생님이 느끼셨던 청소년들의 변화의 순간도 있었나요?
그린나래놈(?)들이 처음에는 텀블러를 참 안 들고 다녔어요. 지금은 하도 많이 들고 다니니까 서로의 텀블러를 다 알고 있어요. 어떻게 보면 사소하지만 그런 순간들이 가장 와 닿죠. 작은 변화일지는 몰라도 이걸 위해 우리들만의 약속, 노력이 많이 필요했어요.
저는 청소년 지도사라는 직업을 준비하며 최대한 다양한 것들을 하려고 했었거든요. 청소년들에게 ‘이런 어른이라면 괜찮겠다.’라고 인정 받을 수 있는 청소년 지도사가 되려면 넓게 볼줄 아는 사람이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대학생 기획단에 학과동아리 회장도 했었고 공모전도 나갔었고… 그런 활동만 하는 게 아니라 학업도 하고 아르바이트도 매주 했어요. 그냥 뭔가를 하느라 언제나 바빴죠. 그렇게 하다 보니 어느 순간 무기력한 감정들이 밀려오더라고요. 선생님은 ‘청소년 지도사’라는 직업을 준비하며/청소년 지도사를 하면서 무기력함, 혹은 번아웃을 겪으신 적이 있으신지, 있으시다면 어떻게 극복(혹은 어떤 노력을 하고 계신지) 궁금해요.
사실 6월에 있었던 환경 축제를 준비하며 한 번 울었었어요. 이제 4~5년 차가 되는데 저도 모르게 편한 일을 찾고 있다는 게 느껴지더라고요. 축제내용중 변경해야 할 게 있어서 고민하는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드는 거예요. ‘내가 편하려고 하는 일인가?’하고요. 청소년들에게 더 좋은 방향이 있으면 당연히 그렇게 해야 하는데. 울컥 눈물이 났어요. 그렇게 울고 나서 청소년들과 함께 의논해서 바꿨죠.(웃음) 그리고 평가 회의 때 이번 축제를 준비하며 스스로 초심을 찾게 된 것 같다고 이야기 했어요. 제 말을 듣고 청소년들이 울면서 고맙다고 이야기를 하더라고요. 청소년 지도사는 행정 일이 많아서 나도 모르게 편한 것들을 지향하게 되는 거 같아요. 그러다 보면 청소년들이 멀어지게 되는데 그걸 깨닫고 ‘다시 청소년과 함께 해야지.’ 이런 생각이 들 때가 번아웃에서 벗어났던 순간이었어요.
청소년 지도사’를 꿈꾸는 청소년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려요.
준비하면서도 번아웃이 올 수 있죠. 저는 취업 전에는 ‘뒤처진다.’라는 생각에 힘들었어요. 저는 대학원에 진학해 청소년학을 공부하느라 취직을 늦게 했어요. 그때는 조바심 냈는데 오히려 그 시간들이 제 무기가 되었어요. 프로그램을 기획할 때도 조금 더 체계적으로 할 수 있게 되었고 대학원에서 공부하다 보니 관련된 직종에서 종사하는 사람들도 많이 알게 되었고요. 네트위킹이 된 거죠. 청소년들에게 해줄 수 있는 말도 많아졌어요. 난 늘 불안했고 그런 불안함은 결국 나에게 빛이 되었다. 너희가 지금 하는 것들이 온전히 다 빛이 될 거다.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요. 본인이 하고 싶은 걸 하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일에서 행복감을 느끼고 그 행복을 청소년과 함께 느끼면 되는 거예요. 너무 당연할지 몰라도 이게 제일 중요한 것 같아요. 프로그램은 담당자가 즐거워야 청소년들도 즐거운 법이거든요. 여러분을 언제나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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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이 보여주신 청소년들의 작품과 옥상 텃밭.
청소년 지도사, 특히 청소년 환경 프로그램에 관심이 많은 나에게 유익한 시간이었다. 번아웃, 환경, 진로 등 고민이 많았는데 내가 꿈꾸고 있는 길과 비슷한 길을 먼저 걷고 있는 사람을 만나니 조금은 후련해졌다. 인터뷰가 끝나고 선생님은 문래청소년센터의 텃밭도 보여주시고 대학생 기획단이 운영한 프로그램의 결과물들도 보여주셨다. 최근 그린나래 워크샵을 다녀왔다며 사진을 보여주시는 선생님의 모습에서 청소년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마음이 느껴졌다. 앞으로 내가 얼마나 더 흔들릴지, 어떻게 단단해질지, 어쩌면 다른 길을 걸을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사랑하는 일을 해야 한다.’는 이 생각은 변하지 않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