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자센터 제로웨이스트랩은 현재와 미래의 지구환경에 주목하는 어린이·청소년들의 공공실험실입니다. 교육현장으로 찾아가 진행되는 제로웨이스트랩 워크숍은 마트에서 먹거리를 구하며 생기는 쓰레기를 중심으로 환경문제를 발견하고 해결해나가는 보드게임으로, 놀이하는 시간을 가진 뒤 그 결과로 획득한 다양한 재료들로 미래의 지구를 상상하며 만들기 작업을 진행합니다. 참여 청소년들은 한판 잘 놀고 난 후에는 놀이와 작업의 과정을 나누며 건강한 지구를 응원하는 짧은 캠페인에 동참합니다.
보니와 해나는 후기청소년으로, 지난 9월부터 판돌 메이와 함께 제로웨이스트랩 워크숍 교육현장을 지원하였습니다.
보니의 이야기
9월 12일 하자센터로 첫 출근을 한 후, 11월 중순까지 교육현장으로 찾아가 진행되는 <제로웨이스트랩 워크숍>을 위한 여러 가지 업무를 담당하게 되었다.
청소년들이 참여하는 활동은 쓰레기없이 장을 보는 <장보장 게임>을 한 후, 이 결과로 획득한 쓰레기와 같은 소재의 재료들로 미래 지구를 상상하며 신생명체인 '플라스티쿠스'를 만들어 본다. 이 후 작업에 사용된 소재를 분리배출하여 보는 과정까지 이어가게 되는데, 온라인 유통사의 큰 종이봉투에 청소년들이 직접 플라스틱, 비닐, 종이, 잇기 재료 등 품목별로 분리를 하고 전체 활동의 주제와 청소년으로서 할 수 있는 것들에 대해서 나누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학교별로 수거해온 소재들을 센터에 가지고 돌아와 다시 품목별 수량에 맞게 담아 모둠별 활동 박스를 세팅하게 되는데, 이 때 종이봉투 깊게 손을 넣어 쓰레기를 휘휘 뒤적거리게 된다. 입고 있던 새로 산 패딩을 걱정하는 한편, 다음 수업에서 다시 ‘쓸만한’ 쓰레기를 하나라도 찾아내고야 만다. 다시 ‘쓸만한’ 쓰레기를 찾을 때는 거의 새것과 같은 찢기거나 하자가 없는 것을 찾는다. 중간중간 사용감이 있는 애매한 쓰레기가 손에 딸려 나왔을 때는 누군가 “사용감이 있는 소재를 주어도 어린이들은 어떻게 잘 사용하기도 해요”라고 한 말이 떠올라 다시 한번 살펴보게 된다. 물론 사용을 하지 않거나 새것을 원할 때도 있었지만, 흔히 흔적이 많이 묻은 쓰레기라도 내 기준과 생각과는 달리 또 새로운 작품이 탄생할 수 있었다. 더 좋고 온전한 쓰레기를 줄 때 꽤 보기 좋은 작품이 나올 수 있으나 이 또한 모르는 일이다. 오히려 흔적이 많이 묻은 쓰레기가 아이들의 창의력과 적극성을 끌어내 역동적인 작품으로 표현되는 것을 보기도 하였다.
쓰레기가 이렇게 귀하다니 개인 사비를 들여 준비한 프로그램이 아닌데도 쓰레기로 인한 심각한 지구환경을 느끼고 프로그램의 목적을 이해하면서부터 하나라도 아껴 또다시 사용할 수 있도록 찾아 나섰다. 마치 숨어있는 보석을 찾는 것 마냥 큰 봉투 아래 쪽에 묻혀있는 새로운 기준의 ‘쓸만한’ 쓰레기들을 찾아낸다.
프로그램을 통해 쓰레기가 더욱 발생되지 않길 바라는 마음으로 2개월간 업무지원자로 활동을 마무리하였다. 지금의 나는 프로그램을 벗어나 쓰레기 사용을 줄이는 방법과 일상생활 속 쓰레기가 발생에 대한 재활용과 재사용에 대한 고민이 늘어났다. 앞으로도 공존하며 살아가야 할 지구가 망가져 가는 것에 대하여 이익과 편리라는 그림자가 존재하긴 하나 환경에 관심을 가질 수 있는 지속적인 노출과 교육이 꾸준하게 동행되어야 한다고 느낀다.
내가 맡은 마지막 업무는 제로웨이스트랩 워크숍에 참여한 청소년들의 설문지와 워크시트를 정리하는 것이었다. 우리가 미래에 직접 겪게 될 수도 있는 심각한 환경 문제에 대해 상상해보기도 했고, 청소년들에게 가장 인기가 많았던 장보장 보드게임에 대한 꿀팁도 있는데, 그들의 생생한 활동기록을 엿보며 이야기를 마무리하고자 한다.
앞으로 10년 후, 20대의 자신의 삶에 영향을 미칠 심각한 환경문제는 무엇일까요?
20대의 나는 음식부족과 기후변화 때문에 항상 집에 있을 것 같다.(영동초 5)
(플라스틱) 쓰레기 때문에 여러 생물들이 죽고 환경이 보기 좋지 않게 변한다.(영동초 5)
점점 더 심하게 바다가 쓰레기로 뒤덮힐 것 같다.(영동초 6)
미세먼지가 너무 많아서 방독면을 쓰고 다닐 것 같다(신대림 4)
환경오염으로 인한 동물 여러 종의 멸종(신대림 4)
넘쳐나는 쓰레기 때문에 피해를 입는 생물들이 늘어난다.(정발중 1)
심각한 폭염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일사병으로 고생할 것이다.(정발중 1)
장보장 게임에서 승자가 되기 위한 팁을 살짝 알려주세요.
순서가 첫 번째가 되야 승자가 될 확률이 높다(영동초 5)
다른 친구들의 차례에는 상황을 잘 살피고 다음에 할 활동을 생각하기(+약간의 눈속임)친구들이 내가 사고 싶어하는 카드를 가져가려고 하면 다른 걸 사게 유도하기(영동초 5)
처음에 토큰을 많이 담아두기(영동초 6)
화폐를 많이 얻어서 쓰레기를 최대한 얻지 않도록 합니다.(신대림 4)
돈은 적당히 모으고 쓰레기가 없고 점수가 높은 친환경 상품을 먼저 구입하자!(정발중 1)
얘들 말 믿지 않기(정발중 1)
내 플라스티쿠스 소개하기
엘리자베스 3세: 주로 딱딱한 플라스틱과 밑반찬으로 비닐을 먹는다.(영동초 6)
(꼬기꼬기)호록이: 먹이는 플라스틱이고 서식지는 바다동굴, 천적은 인간이다.(영동초 6)
씨클리너: 크기는 10~20cm, 수명은 120~250년, 바위 사이에 서식하고 먹이는 플라스틱, 천적은 물고기(신정초 3)
원 아이스 플라 반짝쿠스: 먹이는 플라스틱으로 평소에는 얕은 물에 살다가 심해로 들어갈 때면 머리의 빛을 반짝이고 양 옆의 귀는 사실 입이며 외눈박이가 특징이다.(정발중 1)
플라셸: 크기는 손바닥 정도, 플랑크톤과 미역을 먹고 천적은 거북이, 주로 큰 바위 밑에 서식하며 고무줄을 미역으로 착각하여 몸에 감겨져 있는 경우가 잦다.(월촌중 1)
OhMyGod: 먹이를 먹지 않고 배쪽에 알루미늄 판을 이용해 햇빛 흡수와 양분 섭취를 하며 천적은 햇빛이 없는 장마철이다.(월촌중 1)
미래의 환경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오늘의 슬로건(짧은 어구, 표현을 만들어보세요
10초의 노력으로 10년의 미래를 지킬 수 있다(영동초 5)
나 혼자 지켜봤자 뭐하냐고 생각하지 마세요! 혼자 먼저 시작하는 거예요!(영동초 5)
일줄환생-> (일)반 쓰레기를 (줄)이고 (환)경을 (생)각하자(영동초 5)
지리기 지: 지구의 리: 이렇게 위험한 기: 기후위기는 하자센터가 막는다!(영동초 6)
당신이 버린 플라스틱이 쌓이고 쌓여 당신의 생명에 위협을 끼칠 수도 있습니다.(정발중 1)
기후위기, 미래가 아닌 현재입니다.(정발중 1)
쓰레기 없는 혹은 쓰레기를 줄여나가는 세상(제로웨이스트 사회)을 위해 청소년이 할 수 있는 실천에는 무엇이 있을까요?
가까운 거리는 걸어서! 카페나 음료수를 받을 때 텀블러 가지고 가기(영동초 5)
분리배출을 똑바로 하고, 길가에 쓰레기를 버리지 말자!(영동초 6)
캠페인 참여하기, 분리수거 잘 하기(신대림 4)
소비자로서 반항한다.(정발중 1)
장바구니나 용기를 들고 다니고 쓰레기를 줄이기 위해 노력하자!(언북초 3)
::글_ 보니(김예본, 2023년 하자센터 제로웨이스트랩 업무지원)
해나의 이야기
어린이 작업장에서 진행하는 ‘0웨이스트랩 보조강사’ 지원의 실패를 뒤로하고 제주도 여행을 하던 중이었다. 작년 탱탱랩의 보조강사였던 친구로부터 업무지원팀을 모집한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는 숙소에서, 그리고 도심에 있는 pc방에서 지원서를 부랴부랴 적어 보냈다. 시간 관계 상 간단명료하게 쓰여진 지원서가 영 못내켜 약간은 긴장된 마음으로, 허나 내가 도움이 될 수 있는 일이 있기를 바라며 답신을 기다렸다. 결과는 무사히 합격이었다. 죽돌로만 드나들던 하자에서 이젠 일을 다 하게 된다니. 새롭고 설레는 기분이었다.
업무지원은 프로그램의 전반을 뒷받침하는 역할이었다. 교구 준비나 재료 세팅부터 수업 자료 준비까지. 보드게임 매니아인 형제를 둔 사람으로서 0웨이스트랩의 핵심이라고도 볼 수 있는 <장보장 게임>을 처음 해본 뒤 피드백을 나눴던 첫 업무는 나에게 상당히 즐거운 시간이었다. 플레이어, 특히 어린 연령대의 입장을 고려하며 나름의 기준을 가지고 게임을 바라보니 유난히 룰북에 손댈 구석이 많다고 느껴졌다. 구두의 설명으로만 게임을 이해하기엔 장보장 게임의 시스템 요소는 다양한 편이었고 출강을 나가서도 아이들에게 길고 긴 규칙 설명을 몇 번이고 덧붙이는 일이 말하는 사람에게도, 심지어 게임을 즐기려는 사람에게도 수고스러운 과정이었다. 두어 번의 수업을 통해 이미 만들어진 게임이라도 조금 더 보기 편하고 이해하기 쉽게 수정해야 함을 절실히 느끼며 그렇게 나는 겁도 없이 룰 영상을 만들어보겠다며 호기롭게 작업을 시작했다.
내가 영상을 제작해본 경험은 두 번 정도라고 말할 수 있는데 그 두 번이 모두 하자센터 활동으로부터 이뤄질지는 꿈에도 몰랐다. 그나마 예전엔 핸드폰의 편집 어플을 이용하여 간단하게 제작한 영상이었다면 이번 게임 메뉴얼 영상은 보드게임 카페에서나 볼 법한 고퀄리티 영상이어야만 했다. 아무도 그렇게 시키지 않았으며 단지 스스로에게 세운 기준일 뿐이지만 말이다. 그럴싸한 영상을 만들기 위해선 촬영도 촬영이지만 편집에 힘을 많이 써야 했다. 난생 처음 다뤄보는 프리미어 프로와 친해지는 시간을 갖고, 자막을 삽입하고, 수제로 녹음한 내래이션을 또 다시 자막과 타이밍을 맞추는 지난한 과정을 거치다보니 예상보다 긴 시간이 흘러있었다. 당장 내일 영상을 사용해야 하는데 이 턱없이 부족한 영상을 매만질 시간이 없다는 것과 작업 시간을 충분히 계산하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쉽고 죄송스러웠다.
“영상 반응이 되게 좋던데요?”
내가 출강하지 않은 날 처음으로 영상이 사용됐고 추후 강사들로부터 긍정적인 피드백을 듣고 나서야 한숨을 돌릴 수 있었다. 부족한 게 많은 영상임에도 수업에 도움이 됐다는 사실이 그간의 시간을 보람되게 만들었다. 이럴 때가 아니면 내가 또 언제 영상을 제작해볼까. 업무지원을 하는 동시에 평소 도전해보지 못했던 작업을 시도해볼 수 있었던 기회는 모두의 너그러운 마음 덕이었다고 생각한다.
한편 학교를 출강하면서 초중등생의 어린이들을 만나는 일은 늘 새로운 도전이었다. 다른 대안학교에서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수업을 진행하고 있음에도 학교마다, 학년마다, 반마다 달라지는 수업의 분위기를 기민하게 파악하고 적절하게 대응하는 것이 쉽지만은 않았다. 무엇보다 프로그램의 바깥과 안쪽, 그 사이 어딘가에 자리한 나의 위치 때문에 혼자서 수업을 복기하는 과정에서 종종 혼선이 발생했다. 프로그램 기획자의 시선에서 수업이 기획한 의도대로 흘러가지 않으면 괜히 불안해지거나 불만족스러웠다. 하지만 수업에 참여하는 보조강사의 시선에선 학생들이 즐거우면 그것으로 충분히 만족할 수 있었다. 이 간극의 균형을 찾는 것이 나에겐 중요했지만 여전히 명료한 답을 내리진 못했다. 다만 언젠가 이런 순간을 또다시 마주하고 부딪혀보면서 그 숙제를 풀어낼 수 있으리라 믿는다.
이번 0웨이스트랩 프로그램의 업무지원을 맡으며 확실하게 얻어가는 것이 있다면 ‘적극적으로 소통하는 자세를 취하는 것‘이다. 하나의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사이 발생하는 크고 작은 일들을 겪으며 팀으로서 우리가 이것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지 이곳에서 몸소 경험하고 배울 수 있었다. 영상 작업을 할 때 이것은 내가 시작한 일이므로 내가 도맡아야 한다는 생각이 강하게 있었다. 실제로도 내가 맡은 일은 혼자 하는 게 더 편하기도 했다. 그로 인해 조금은 독단적인 태도로 작업을 진행하게 됐는데 함께 일하는 보니가 이것은 우리가 같이 해야 하는 일이니 자신에게도 역할을 달라고 말하는 것이다. 그 순간 아차! 싶었던 기억이 아직도 남아있다. 또한 업무지원과 보조강사의 업무적 역할이 명확히 구분되지 않음에서 발생한 갈등을 담당 판돌인 메이에게 전달했을 때, 우리가 충분히 이야기할 수 있도록 기다려주시고 적극적으로 경청해주시는 성숙한 대처를 보며 팀원으로서의 존중과 화합의 에너지를 느낄 수 있었다. 타인과 부딪혀가며 무언가를 다같이 이끌어간다는 게 결코 쉽지 않은 일이었지만 그런 경험이 특히나 부족했던 나에겐 이 업무 보조라는 경험이 어려운 만큼 귀중한 경험이었음을 되새기며 이를 새로운 성장의 발판으로 여기고 싶다. 하자에서 오며 가며 마주친 판돌들과 특히 함께 고생해준 메이, 보니에게 감사하다는 말을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