Z야 안녕, 요새 뭐하고 지내? 나는 어제 약속이 있어서 잠시 외출을 했는데, 날이 따뜻해서 그런지 산책을 나온 사람들이 많더라고. 너도 알다시피 사회적 거리두기의 중요성이 강조되면서, 공원을 찾는 사람들이 늘어났다고 하잖아. 나도 하루 한 번은 꼭 강아지랑 집 앞 산책을 해. 느릿하게 걷는 산책 시간은 내가 하루 중 가장 편안하고 나른한 기분을 느끼는 순간이야. 가만히 쭈그려 앉아서 피어난 생김새들을 눈으로 쓰다듬으면 새로운 것들이 보이기 시작해.
내가 이름을 아는 풀은 몇 없어서, 가장 눈에 먼저 띄는 건 역시 ‘쑥’이야. 곳곳에 자라난 작고 부드러운 녹색을 보면 내 머릿속은 벌써 쑥떡, 쑥국을 한 입 가득 먹기 시작해. 고소하다고 해야 할까, 쓰다고 해야 할까, 설명하기 어려운 쑥의 향이 향긋하게 퍼지지. 단군신화를 읽으면서 ‘100일 동안 마늘은 좀…’이라고 생각했지만 쑥이라면 가능할 것도 같아. 쑥은 정말 무궁무진해. 떡과 국뿐만 아니라 쑥 튀김, 쑥 머핀, 쑥버무리, 쑥으로 만든 죽도 있지. 산책길 주변에 떡집이 있는데, 봄이 되면 항상 따끈따끈한 쑥버무리가 나를 잡아끌지. 어떻게 그냥 지나치겠어. 쑥버무리를 먹는 순간에야 비로소 ‘아 봄이 왔구나’ 하게 되지. 봄이 더 그리워지는 이유야.
단군신화를 읽으면서 ‘100일 동안 마늘은 좀…’이라고 생각했지만 쑥이라면 가능할 것도 같아.
봄이 되면 이상하게 더 배가 고파져. 내 위도 이제 긴 겨울잠에서 깨어난 걸까? 봄에는 입맛 돋우는 봄나물이 가득해. 나는 그중에서도 돌나물 무침을 가장 좋아해. 사실 돌나물의 맛은 정확히 모르겠어. 항상 무침을 해 먹었거든. 이 아름다운 맛이 돌나물에서 나오는 건지, 양념에서 나오는 건지 알 수 없어. 새콤달콤한 초고추장과 돌나물, 너도 먹어봤을 거야! 그렇지만 양념 맛을 제외하더라도, 아삭 아삭한 식감과 시원한 느낌은 오로지 돌나물만 가지고 있을 게 분명해. 또 오밀조밀 뻗은 잎의 생김새는 얼마나 싱그러운지... 돌나물은 무침이 아니더라도 김치에 넣어 먹고, 전으로 만들어 먹기도 해. 나는 아직 안 먹어봤지만, 돌나물이 들어간 물김치가 그렇게 맛있대! Z 너 혹시 먹어봤니? 어제 동치미를 만들었는데 거기에 돌나물을 넣어볼까해. 먹어보고 꼭 맛 알려줄게!
그렇지만 양념 맛을 제외하더라도, 아삭 아삭한 식감과 시원한 느낌은 오로지 돌나물만 가지고 있을 게 분명해.
요즘 제일 많이 먹는 봄나물은 달래야. 달래장으로 만들어 먹고, 된장에 넣어 먹지. 사실 나는 이번 봄에 달래장을 처음 먹었어. 그리고 나는 깨달았지, ‘아 나는 영영 달래에게서 벗어날 수 없겠구나’. 센세이션하고 엘레강스, 퍼펙트, 브라보한 맛에 혀가 마비될 정도였어. 밥 도둑 수식어는 무조건 달래장에만 주어야 한다니까! 밥을 조그맣게 뜨고, 그 위에 달래장을 알맞게 올린 다음 김이나 데친 양배추를 작게 올리면 초밥 완성이야. 양념과 알맞게 어우러진 달래, 밥, 양배추와 김의 조합은 웃음을 불러일으키는 만병통치약이야. 뭐, Z 너 요새 웃음이 필요하다고? 그럼 오늘 달래장 먹어보는 건 어때?
어제 저녁에는 백김치, 열무김치와 명이나물의 조화로움을 맛봤어. 밀면 위에 각각을 올리고 면과 함께 감싸 먹으면, 단짠 단짠이 짝을 지어 혀 위에서 춤을 춰. 그중 최고의 조합은 명이나물이지. 원래 이름은 ‘산마늘’이야. 장아찌로 먹었는데 톡 쏘는 간장 맛과 부드럽게 씹히는 식감이 온 우주의 기운을 끌어다 주는 것 같아. 눈이 번쩍 뜨이지. 제3의 눈이라고나 할까… 아참 명이, 머위, 곰취 이 세 가지가 헷갈릴지도 몰라. 나는 셋 다 장아찌를 해 먹곤 해. 그렇지만 머위와 곰취는 끝에 쌉쌀한 맛이 나고, 명이는 마늘 향이 나. 각자의 맛을 가지고 있지.
아참 명이, 머위, 곰취 이 세 가지가 헷갈릴지도 몰라.
게다가 봄나물은 건강에도 좋아. 요즘 냉이 된장국도 자주 먹는데, 약재로도 쓰는 냉이에는 비타민과 단백질, 칼슘이 풍부해. 함께 먹은 두릅 튀김에서는 조금 쓴맛이 났지만 그만큼 단백질과 비타민 A,C, 칼슘과 섬유질이 풍부하지. 그 외에도 취나물, 톳나물, 고사리, 곤드레, 봄동… 이 아름다운 향연은 끝이 없어. 튀겨먹고, 국에 넣어 먹고, 밥에 넣어 먹고, 떡 만들고, 빵 만들고, 무쳐 먹고, 데쳐 먹고, 삶아 먹고, 구워 먹고. 그러고 보니 오늘 아침에는 두부 톳나물 무침과 곤드레 밥, 그리고 봄동전을 먹었네. 풀떼기라느니, 밑반찬에 불과하다느니, 맛이 없다는 경솔한 발언은 이 위대한 나물들과 어울리지 않는다고!
이만 줄여야겠다. 이대로 계속 쓰다간 Z 너에게 하루 종일 편지를 쓰게 될지도 몰라. 이번 봄에는 나물들과 거리를 좁혀보기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