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때부터 저는 종이와 실, 바늘만으로 혼자 노트를 만들어 왔습니다. 내가 원하는 디자인과 종이를 사용할 수 있다는 것에 자유를 느끼기도 하고, 손에 힘을 주어 바늘을 사용하는 손의 감각, 일상의 기술을 자연스럽게 익힐 수 있기도 하였지요. 그리고 성인이 된 이후, 사회에서 일하며 받는 부당한 강요들, 외출할 때면 1시간 이상 걸리던 외모 꾸미기 시간들에 회의감을 느끼고 내가 진짜로 원하는 것들, 나의 감정과 몸을 제대로 알아가고자 몸 노트를 적기 시작했습니다. 돌이켜보면 학교에 다닐 때 성교육 시간에 배운 것들, 책 속에서 본 몸에 대한 정보는 저의 몸과 많이 달랐습니다. 그 책에 의하면 저에게는 클리토리스가 없고, 저는 초등학생이어야 했으니까요. 저뿐만이 아니라 사람의 몸은 각각 다릅니다. 몸을 규정하고 여성성/남성성 이분법으로 가르고 또, 그에 맞는 괴상한 틀을 강요하고. 그런 몸만이 보이는 시대에서 저는 개개인이 가진 고유의 몸을 찾고 싶습니다. 그리고 몸과 관련된 수많은 이야기를 나누며 서로 공감하고 용기를 주는 시간을 가지고 싶은 마음으로 몸 노트 워크숍을 진행하였습니다.
몸 노트 질문지
열심히 노트를 만들고 있는 청소년들의 모습
다양한 청소년들을 몸 노트 워크숍을 통해 만날 수 있었습니다. 며칠 전에 군대에서 제대한 후기청소년 참가자, 해외에서 남성성을 강요받은 경험이 있는 참가자, 노동하는 자신의 몸을 잘 살펴주고 싶은 참가자, 탈 코르셋을 한 후 자유를 느끼는 참가자 등 모두 몸에 대한 질문과 호기심을 가지고 하자센터를 찾아주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다양한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그 중 참가자들이 각자의 노트에 적은 질문들을 몇 가지 공유합니다.
내가 깨고 싶은 몸에 대한 편견은?
타인에게 들었던 말 중에서 가장 진저리났던 것은?(외모에 관해서)
나의 몸이 원치 않는데 어쩔 수 없이 선택한 적이 있나요? 그 횟수를 줄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나는 누구와 함께, 어떤 환경에 있을 때 안락하고 편안하다고 느낄까?
오늘의 몸 상태는? 먹고 싶은 음식은?
나의 생리컵 도전기!
내가 입고 싶은 옷은? 나만의 옷장을 만들어보자!
무엇이 나를 여성/남성으로 만드는 걸까?
하루라는 시간은 노트를 만들고, 모든 이야기를 충분히 나누기에는 짧지요. 하지만 각자의 노트에다가 워크숍의 이야기와 질문들을 기억하고, 스스로 꾸준히 기록해보기로 약속하였습니다. 다이어트, 화장, 교복, 노동, 기존의 미/외모의 기준에 질문을 던지며 새로운 상상을 하는 청소년이 많음을 확인해 볼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스스로 몸에 자신감을 가지기를, 당당하게 몸에 대한 질문과 이야기들을 나눌 수 있기를 바래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