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5일 토요일 오후, 하자작업장학교 ‘쇼하자’가 진행되었다. 이번 발표회는 한마디로 ‘작심’한 듯했다. 한여름 쪽방촌 온도재기, 농촌활동, 중증장애인 극단과의 협업작업, 그리고 버마 난민촌 활동에 이르는 활동들은 하자작업장학교의 지향점을 선명하게 전달하였다. 특히 버마 난민촌 활동의 일환으로 이루어진 아웅산 수치 여사와의 인터뷰는 “청소년들이 노벨평화상 수상자를 인터뷰했다”는 언론의 기사 이상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사실 학교가 무엇인지는 논란이 많은 주제 중의 하나일 것이다. 모든 개인들이 서바이벌 문제에 집중하게 하는 시대, 전 사회구성원이 불안감에 휩싸여 있고, 사회에 대한 상상력은 생존에 적합한 수준 정도로 조율되어 있는 상황에서 학교가 무엇이어야 하는가는 곤혹스러운 질문일 것이다. 아무도 사회를 돌보지 않는 시대에서 학생들이 사회와 관계 맺어야 하고 삶의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과 함께 해야 한다는 작업장학교의 메시지는 분명 강한 도전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우리가 익숙한 학교는 너무 간단한 전제를 가지고 있다. 대학은 엘리트를 양성하는 기관이고, 학생은 공부를 통해 진학을 하고, 그 과정을 잘해내면 잘 살 수 있다. 이것으로 끝이다. 작업장학교 십대들은 이 간단한 전제에 대해 질문한다. 한여름 쪽방촌 노인들의 삶과 공감하는지, 장애인 예술극단 타이헨의 몸짓에서, 이천 율면의 농촌활동을 통해 다른 삶을 느낄 수 있는지. 국경의 메솟 난민촌 청소년의 희망과 우리는 관계하고 있는지 묻는다.
작업장학교는 더 나은, 좀더 인간적인 삶에 대해 상상하라고 질문한다. 그리고 교육은 무엇인지 답하라고 강하게 묻는다. 이 강한 질문 때문에 작업장학교의 발표회는 좀 불편할 수 있다. 하지만 그 질문을 벗어나기는 쉽지 않다. 나는 작업장학교의 발표회에서 좋은 삶, 좋은 사회, 그리고 마음의 지표가 될 만한 것을 찾아 노력했던 사람이라면 자신의 과거가 통째로 끄집어내지는 경험을 했을 것이라고 믿는다. 또 치열했던 경험을 했던 사람들조차도 젊은 세대와 할 이야기가 없고 매력적인 ‘유혹’을 할 수 없는 시대에 작업장학교의 십대들은 말을 걸고 있다고 생각한다.
아마도 인간 사회의 꿈은 단순히 살아남기가 아닐 것이다. 또 ‘굶주리지 않기’가 삶의 목적일 수도 없을 것이다. 물론 사회구성원들이 겪는 생존에 대한 불안감을 줄이는 것은 중요할 것이다. 하지만 좀더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는 것을 작업장학교의 십대들은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승자독식 시대는 점점 사회를 나쁜 방향으로 몰고 갈 것이다. 그래서 작업장학교는 함께 공감하는 삶을 꿈꾸고, 내가 존재하는 사회를 사랑하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는 메시지를 우리에게 던진다.
아웅산 수치 여사는 버마 난민촌의 한 학생에게 ‘아름다움’의 가치를 잊지 말라고 말한다. 사회가 좀더 아름다워질 수 있는 꿈을 같이 만들어가는 일은 ‘사회를 사랑하는 방법’을 배우지 않고서는 아마도 불가능할 것이다. 서로 공감할 수 있는 마음의 지표들을 찾는 일은 아마도 가장 중요한 배움의 덕목일 것이다.
이 발표회를 통해 우리는 뭔가 호응하거나 답해야 할 짊을 안게 된다. 많은 분들이 작업장학교 쇼하자 ‘동영상’을 보면 좋겠다. 그러면 좋은 삶과 좀더 나은 사회에 대한 공동의 노력이 가능해질 것이고, 우리 개개인의 몫에 대한 생각도 해 볼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