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고 싶은 일-기>는 하자 청소년들의 일상과 진로를 주제로 대화한 인터뷰 시리즈입니다. 청소년들이 하고 싶은 일을 위해 무엇을 하거나 하지 않으며(또는 하려고 하며) 일상을 지키고 있는지, 인터뷰이의 To do list를 함께 보며 이야기 나누었습니다.
2025년 여섯 번째 하고 싶은 일-기는 '체리'의 이야기입니다. 오디세이학교 하자 8기 수료생인 체리는 고등학교를 자퇴하고 현재 독립출판사 '앵두책방'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10대 때 겪었던 어려움을 기억하며 청소년에게 관심을 갖고 '청소년 친화적 출판사'를 비전 삼아 출판사를 꾸리고 있다고 해요. 청소년 시인선, 자서전 프로젝트 등 청소년 작가를 위한 다양한 프로젝트를 만들어 가고 있는 체리의 기록을 남깁니다.
안녕하세요. 체리입니다. 만 19세고요. 요즘 고민하거나 관심 있는 건 독립출판사 운영이에요.
체리의 To do list
□ 청소년 작가님 책을 베스트셀러로 만들어서 작가님께 큰 기쁨을 안겨드리기
□ 청소년의 풋풋한 이야기를 세상에 알리기
□ '책'과 연극, 밴드 음악 같은 다른 예술 매체를 잇기
□ 청소년 작가 기획전 열기
□ 어떤 원고이든 가능성을 보며 섣불리 반려시키지 않고 좋은 책으로 향하는 방향을 잡아주는 독립출판사 되기
□ 인내심을 가지고 퀄리티 높은 책 만들기
□ 내 책이나 콘텐츠가 세상을 변화시키기
□ 세상의 편견, 정치질에 휘둘리지 않고 나만의 소신을 지키기
□ 사회적 약자에 관심갖기
□ '혐오' 보다는 '이해'하기
□ 세상의 따뜻한 면과 사람들의 인류애를 간직하기
□ 성숙한 사람이 되어 힘든 일이 닥쳐도 잘 대처하기
□ 이 모든 걸 이루지 못한다 해도 나를 사랑하기
- 요즘 하루 일과가 어떻게 되나요?
매일 다르지만 몇 가지 할 일을 정해놓고 계속 하는 것 같아요. 주로 출판사 운영과 관련된 일이 많아요. 책을 디자인하거나, 원고를 교정/교열*하고, 행정적으로는 ISBN(국제 표준 도서 번호) 발급, 인세(작가에게 지급하는 저작권료) 지급 등 자잘한 일도 있고요.
최근에는 청소년에 관한 공부도 하고 있어요. ‘길위의청년학교’라는 곳에서 스터디를 하게 되어서요. 공부하면서 회의할 때도 있고 발표가 있을 때는 발표 준비도 해요.
*교정/교열: 원고나 문서의 맞춤법, 띄어쓰기, 문장 부호 등 어문 규범에 어긋나는 오류를 바로잡고, 문법적으로 어색하거나 사실에 맞지 않는 부분을 고치는 작업
- 출판사 운영 일을 이야기해 주셨는데요. 독립출판사 '앵두책방'을 운영하고 계시잖아요. 출판을 시작하게 된 계기가 있을까요?
하자에서 오디세이학교*를 수료하고 열여덟 살 때 고등학교를 자퇴했거든요. 고민도 많고 방황하던 시기였어요. 그런데 문득 그 이야기를 책으로 만들어보고 싶은 거예요. 오디세이에서 수료집을 만들어본 경험이 있고, 다가치학교(서울시교육청 주관 청소년자치배움터)의 출판 프로젝트에 참여한 적도 있어서 책을 만든다는 게 비교적 쉽게 느껴진 것 같아요.
그때 <10대의 끝자락, 체리의 열여덟>이라는 책을 자가출판(POD)* 플랫폼을 통해 출간했어요. 만들어진 책을 보는데 '플랫폼 상호 대신 내 이름으로 된 로고가 들어가면 좋겠다, 그럼 진짜 멋있지 않을까'라고 생각한 거죠. 시작은 단순했어요. *오디세이학교: 서울시 고등학교 1학년 대상의 1년의 전환학년(Transition Year) 과정 운영 학교
*POD: Print On Demand, 맞춤형 소량 출판
- 말씀해주신 <십 대의 끝자락, 체리의 열여덟>은 어떤 내용의 책이에요?
사랑, 우정, 자신을 키워드로 해서 열여덟살 때의 고민을 정리했어요. 그때 첫 연애도 했고, 친한 친구랑 절교도 해봤고,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 시작했거든요. 자아 형성 시기의 방황을 솔직하게 담은 책이에요.
체리의 저서
- 청소년에 대한 공부도 하고 있다고 하셨는데, 또래 중에 비슷한 관심사를 가진 사람이 많지는 않을 것 같아요. 체리는 어떻게 관심을 갖게 되셨어요?
제 청소년기는 사소한 일로도 힘들어하고 친구 관계도 진로도 어려운 시기였어요. ‘내가 든든한 어른이 된다면 청소년들이 안온한 청소년기를 보낼 수 있도록 조언도 하고 돕고 싶다’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또 그동안 청소년센터에 많이 다녀봐서 청소년 활동에 관심이 많기도 해요.
✔️ To do list : 성숙한 사람이 되어 힘든 일이 닥쳐도 잘 대처하기
저는 제가 청소년기 때 힘들었던 게 큰 시련이 있어서가 아니라 미성숙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미성숙하다는 건 힘든 일에 잘 대처하는 내공이 없다는 거니까요. 그래서 어떤 일이 있을 때 성숙하게 대처하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 앵두책방 소개를 보면 ‘청소년 친화 출판사로 만들어 가고 있다’라고 소개되어 있더라고요. 출판사가 청소년 친화적이라는 것은 무엇이고, 그런 지향을 갖게 된 이유가 있을까요?
청소년 소설을 보통 어른들이 쓰잖아요. 저희는 청소년만 쓸 수 있는 솔직한 이야기를 많이 담으려고 하고 있어요. 또래 독자들에게 이렇게 사는 청소년도 있다는 걸 알리고 싶고, 작가님들에게도 ‘내 이야기가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라는 효능감을 주고 싶은 것 같아요.
- 아직 자본이나 네트워크가 부족한 상황에서 어떻게 정보를 모으고 시작할 수 있었나요?
사실 제가 꼼꼼한 성격이 아니라서요. 정보가 없어도 하고 싶으면 그냥 시작해 버려요. 그러다 ‘이거 어떻게 하지?’ 싶으면 카페 등 커뮤니티를 찾아봐요. 청소년 친화적인 비전에 대해서는 주변 청소년 지도자 분들의 조언을 구하면서 계속 하고 있고요. ‘이렇게 시행착오를 다 겪다가 진짜 큰 벽을 만나면 어떡하지?’ 고민하지만 아직은 바로 부딪치는 게 편한 것 같아요.
- 현재 체리의 활동에 오디세이학교 경험이 영향이 있을까요?
그럼요. 재은(오디세이 길잡이 교사)이 진행하셨던 ‘사려 깊은 글쓰기’ 수업을 되게 재밌게 들었고, 그때 ‘나 에세이 쓰는 걸 좋아하는구나’라고 깨달았어요. 수료집을 만든 것도 누가 해준 게 아니라 제가 만든 거잖아요. 그 경험도 엄청 재밌었어요. 미대 입시를 했었는데 제가 미술 말고도 좋아하는 게 많고, 특히 글쓰기를 좋아한다는 걸 깨달은 게 가장 큰 것 같아요.
글쓰기 외에도 관심을 갖게 된 건, 책과 다른 예술매체를 이어보고 싶어요. 글로 연극을 만든다든지 시집을 재구성해서 작곡하고 버스킹하거나 그런 것에 관심이 있어요.
오디세이 재학 시절 체리
- 다음 질문이 ‘출판과 관련되지 않더라도 해보고 싶은 것’이었어요.
사실 책을 연극으로 만드는 건 이미 진행되고 있어요. 올해 진행한 ‘꿈꾸는 청소년 자서전 프로젝트’에 참여한 작가님 네 명의 책을 하나의 공연으로 만들려고 하거든요. 네 명의 주인공이 15년 후 우연히 마주쳐서 그동안 어떻게 꿈을 이뤘는지 이야기 나누는 내용의 낭독극이에요. 아직 대본이 나오진 않았지만 구상 중에 있어요. 밴드는 내년이나 내후년에 할 것 같고요.
✔️ To do list : '책'과 연극, 밴드 음악 같은 다른 예술 매체를 잇기
책을 책으로만 두지 않고 2차 저작물로 이어서 다양하게 즐길 수 있는 창작을 하고 싶어요.
- 혼자 많은 일을 하다 보니 고민도 많으실 것 같아요.
요즘 출판사가 잘되느냐 망하느냐의 갈림길에 서 있는 느낌이에요. 점점 일의 규모가 커지거든요. 제가 쓴 책을 혼자 출판하다가 다른 분들과 프로젝트를 해보고, 실제로 계약까지 하게 되면서 선인세(출간 전 작가에게 지급하는 계약금)나 인쇄 비용 같은 게 많이 나가요. ‘나간 만큼 벌 수 있을까?’ 하는 게 고민이에요. 사회적이거나 좋은 의도로 무언가를 만들어도 사람들은 꼭 필요한 제품이 아니면 사지 않는다는 걸 느껴서요. 어떻게 출판사의 비전을 살리면서 누군가에게 필요한 좋은 책을 만들까, 그런 생각을 하고 있어요.
- 지금의 고민과 10대 때의 고민을 비교해 보면 어때요?
심리 상담 때 자주 나오는 이야기인데, 상담 선생님이 제가 10대 때 했던 이야기와 지금의 다른 점을 자주 이야기해 주세요. 10대 때는 막연하게 “나는 돈도 못 벌 것 같아”라는 생각을 했거든요. 지금은 “어떻게 하면 더 잘할 수 있을까?” 이렇게 미래를 더 구체적으로 그리기 시작했다는 점이 달라요.
✔️ To do list : 세상의 편견, 정치질에 휘둘리지 않고 나만의 소신을 지키기 / 사회적 약자에 관심갖기 / '혐오' 보다는 '이해'하기
오디세이학교에서의 배움은 나에서 너로, 너에서 우리로, 우리에서 세상으로 나아가거든요. 오디세이에 다닐 때 저는 ‘나’에 머물러 있었는데 지금은 ‘우리에서 세상으로’ 넘어가는 단계인 것 같아요. 아직 잘 모르지만 앞으로 사회문제에 더 관심을 갖고 싶어요.
또 요즘은 인터넷에서 극우 성향인 사람들을 보면 화가 날 때가 있거든요. 그렇지만 혐오하지 않고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그리고 가짜뉴스에 휘둘리지 않는 것에 대한 생각도 해요.
- 올해 계획이나 하고 싶은 있다면 무엇인가요?
남은 한 해 안에 여섯 권을 더 출판해야 해요. (웃음) 그래도 세 권은 교정교열을 다 끝냈고 한 권은 디자인도 다 해서 인쇄만 맡기면 돼요. 사실 정신이 없어요. 그리고 올해 한 달에 한 번은 강연이 있는 것 같아요. 그동안 네트워크를 쌓은 곳에서 많이 요청해 주셔서요. 청소년에 대해 공부하다가 친해진 한 협동조합 대표님이 계시거든요. 서산에 있는 협동조합에서 강연을 해줬으면 좋겠다고 하셔서 가기로 했고, 11월에는 아마 다가치학교 출판 프로젝트에서 출판 팁 같은 것들을 공유하게 될 것 같아요.
북토크 현장에서의 체리
✔️ To do list : 이 모든 걸 이루지 못한다 해도 나를 사랑하기
상담 선생님과 한 말이 있어요. 상담 초기의 저는 예쁘고 착하고 능력 있어야 한다는 압박이 있었던 것 같아요. 근데 지금은 ‘될 대로 돼라. 나는 어차피 나니까’ 이런 식이거든요. 그래서 내가 나를 많이 사랑하게 됐구나 싶었고 앞으로도 모든 걸 이루지 못한다고 해도 스스로를 자책하지 않고 더 사랑하고 싶어요.
- 진로나 미래와 관련해서 또래들과 나누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진로에 있어서는 나답게 사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진로가 계속 바뀌어도 이상한 게 아니니까 그냥 어떤 게 나다운 건지, 무엇을 할 때 가장 행복한지 찾았으면 좋겠어요. 평생 찾는 게 진로라고 생각하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