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음악작업장은 지난 5년 동안 음악작업장을 수료했던 청(소)년들과 다시 만나는 작업을 해왔습니다. 이들 중 몇몇은 자신의 음악 세계를 구축하고자 계속해서 고군분투하며 노래를 만들고, 현장을 찾고, 각자의 자리에서 공연 활동을 이어오고 있었습니다. 이 젊은 창작자들의 현재를 다시 조명하고 더 널리 알리고자 장이들과 다시 만나 올해의 프로젝트를 시작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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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우리에겐 음악이 있다‘라는 모토로 음악작업장 뉴트랙이 시작되었을 때부터 지금까지 많은 청소년이 이곳을 거쳐 갔습니다. 혼자라도 누구나 음악을 만들어 알릴 수 있는 시대에 굳이 모여서 부대끼며 음악을 해온 우리의 음악과 이야기를 알리고자 <301 Session> 이라는 이름으로 라이브 영상 시리즈를 제작하였고, 3기 ‘나비’와 4기 ‘평평’의 인터뷰를 엮은 ‘미니 다큐 영상’도 공개하였습니다. 음악작업장을 경험했던 청소년들의 목소리를 통해 우리가 여기 모여서 해왔던 활동의 가치가 무엇이었는지, 우리가 추구하고 만들려고 했던 음악은 어떤 노래들이었는지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이들의 노래 여덟 곡을 한데 모아 뉴트랙의 첫 정규 앨범을 발매합니다. 우리가 함께한 시간과 서로의 이야기와 노래가 이 앨범에 농축되어 인터넷 세계의 한 페이지에 저장됩니다. 누구나 언제라도 찾아 들을 수 있게 모든 온라인 음악 플랫폼에 음원을 등록하였고 ‘공개 발표된 예술 활동’으로 인정받을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하자의 오랜 친구이자 음악작업장의 멘토가 되어 주었던 띠용(신승은)이 앨범 발매를 축하하며 소개의 글을 써주었습니다.
시간은 흐른다. 기억은 한계가 있다. 그래서 어른들은 종종 잊는다. 자신이 어린이였음을, 청소년이었음을. 그때의 치열했던 고민은 이제 와 돌아보면 별일 아닌 것 같고, 그때 흘렸던 눈물은 애진작에 증발되었다. 즐거웠던 순간은 왠지 철이 없었던 것 같고 열렬히 마음을 주고받았던 친구의 이름이 가물가물하다. 독한 감기를 앓고도 며칠이 지나면 그 아픔이 실감 안 나듯 기억은 게으르고 나태하다.
음악은 단단한 서랍이 되어준다. 어떤 순간, 시절, 감정을 잘 보관해 주는 매체다. 하자 음악작업장 뉴트랙 컴필레이션은 8팀의 음악가가 ‘하자센터’라는 청소년 공간에서 같이 만나 배우고 나누고 부르고 연주한 그 시간이 담겨있다. 개개인의 기억이지만 사회와 타인과 지구와 분리되어 있지 않다. 각자의 순간과 고민을 따라가다 보면 나의 서랍이 열리기도 한다.
이들은 함께 모여 음악을 했다. 그렇다고 해서 한 팀도 아닌데, 개별의 청소년이 모여 굳이 함께 음악을 했다. 나도 종종 참여했었다. 수업을 진행하는 역할이지만 하자에서는 ‘선생님’, ‘강사님’ 따위의 호칭을 쓰지 않는다. 심지어 ‘신승은’이라는 내 이름도 부르지 않는다. 하자에서는 별칭을 짓고 ‘님’을 빼고 서로를 부른다. 나는 그들을 태우고 내가 아는 길대로 달리는 운전수가 아니라 지나가다가 우연히 만나 길을 묻고 알려주는 사이로 남는다. 왼쪽으로 쭉 돌아가면 더 가까워요. 왼쪽으로 갈지, 뒤로 돌아갈지, 그냥 서 있을지 정하는 것은 그들 본인이다.
질문을 던진 자는 전동 킥보드를 타고 가기도 하고, ‘개미의 혼과 우주 밖으로 날아가’기도 한다. 좋아하는 사람을 발견해 그 사람을 향해 가기도 하고, 아주 느리게 사랑을 꾹꾹 담아 걷기도 한다. 여름에는 ‘사랑처럼 웃고 있’느라 한 걸음을 못 떼고, 잔인한 상처를 받은 때에는 괴로움의 질주를 하기도 한다. 맺힌 시간에서 꺼내줄 사람을 찾느라 사방을 헤매다가 나른한 열병에 걸리기도 한다.
함께 모여 음악을 했으나 모두 달랐다. 당연한 일이지만 세상은 때로는 그 당연함을 짓밟는다. 한 가지 색으로 칠해버리기 일쑤고 페인트를 든 사람들끼리 자기 색으로 칠하겠다고 싸우기도 한다. 그런 세상에서 이 앨범은 우당탕탕 미술 시간 뒤의 색연필 케이스 같다. 순서만 뒤섞여 있으면 다행이게? 싸인펜도 있고, 연필도 있고, 볼펜도 있고, 도대체 붓은 여기 왜 있는지, 물감은 왜 능청맞게 자리 잡고 있는지, 크레용과 매직까지 들어차 있다. 청자의 순간과 닮은 도구가 하나쯤은 있을 거다. 이런 다정한 엉망진창을 누군가는 무지개라고 부를 것이다.
‘우리에겐 음악이 있다’라는 모토로 뉴트랙은 이어져 왔다. 그들에게는 음악이라는 멋진 서랍이 있었고 그 이전에 각자 서랍을 만드는 뚝딱 소리를 들어주는 서로의 마음이 있었다. ‘각자의 시간’이 ‘함께한 시간’을 구름판 삼아 팍 차고 오르는 순간, 서랍은 우직한 금고가 되었다.
이 금고의 비밀번호는 플레이 버튼이다.
:: 글_ 신승은
<하자 음악작업장 뉴트랙 컴필레이션> 2023.12.21. 발매
01 결 - 전동킥보드 탈출
02 이지구 - 지금 나는 지구 (feat. 신승은)
03 어슬렁 - Everything in my world is pointing to you
04 미루 - 사랑을 했네
05 은혜씨 - 여름이었다
06 SeoYoon - 잔인(殘)
07 신 - 꺼내줘
08 평평 - fever
:: 레코딩_ 천학주 @머쉬룸레코딩스튜디오 (트랙 2, 3, 4, 5, 6, 8)
:: 믹싱 및 마스터링_ 천학주 @머쉬룸레코딩스튜디오
:: 공동 프로듀서_ 모호(트랙 3, 트랙 5), 눙눙(트랙 6)
:: 아트워크 및 디자인_ 김헵시바, 민동인
:: 영상제작_ 아호필름
:: 기획 및 운영_ 후멍 @하자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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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대단한 사연은 아닐지 몰라도, 이 앨범에는 우리가 같이 살아내던 한 시절이 오롯이 담겨 있습니다. 2019년 처음 만났던 장이들부터 최근까지 하자를 오가며 작업하고 있는 장이들과 또 이제는 소식이 닿지 않는 장이들까지.
때로는 어설프더라도 마음을 다해 연주하고, 나만의 이야기로 지은 노래를 나누며 서로의 음악 동료가 되어 주었습니다. 함께 합주를 하고 무대에 올라 음악을 통해 세상에 처음으로 말을 건네며 사람들이랑, 또 음악이랑 잘 지내는 법을 배워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