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자에는 스페이스 그냥이라는 공간이 있습니다. 부지런한 판돌들 덕분에 제가 불을 켤 일이 많지 않지만, 암막을 쳐 두어 더 어둑하게 느껴지는 '그냥'의 불을 켜고 나면 노란 벽이 더 따뜻하게 느껴집니다. 커튼까지 열면 통창으로 햇빛이 화안-. 이제 본격 시작입니다.
화요일부터 금요일까지(가끔은 토요일도) 매일, 스페이스 그냥에서는 온-오프의 시간이 열렸습니다. 화요일에는 나에게 맞는 움직임과 자기방어, 식습관과 건강한 대화까지. 몸과 마음을 써서 ‘나를 알아가는 움직임’을 통해 내가 몸과 마음을 어떻게 쓰고 있는지를 살펴보았습니다. <모두를 위한 딜라이트>에서는 모두가 같이 먹을 수 있는 재료로 당충전을 할 수 있는 간식을 만들어 다른 요일 참가자들과 나누었습니다. 금요일까지 모두가 먹을 수 있을 만큼을 기꺼이 시간과 에너지를 들여 굽고 나눌 줄 아는 큰 손들. <온-오프 워크숍>에서는 손인형, 치앙마이 바느질, 브라질 타악기로 바투카다 연주를 하며 손의 용도를 넓혀보았습니다. 떠오르는 것들을 한 장 한 장 그리다 <'나’는 그림책>을 만들기도 했고, 같이 초고를 쓰고나서 모여앉아 서로의 글을 듣다 보니 더 쓰고 싶어져서 <모색하는 글쓰기>에서는 문집을 펴냈습니다. 각자가 하고 싶은 프로젝트를 해 보는 <스위치 프로젝트>도 깨알같이 있었습니다.
온-오프를 소개하려고 하면 앞에 붙는 수식어가 있습니다. ‘학교 밖 청소년 멤버십 시즌2’ (잠시 호흡) “온-오프”. 이 긴 수식어는 이 프로그램의 대상, 운영방식, 키워드를 담고 있는데, 기획할 때 정해진 순서이기도 합니다. 제일 처음 정해졌지만 바꾸고 싶었던 말이 있습니다. ‘학교 밖 청소년’. 자퇴라는 말 대신 행정 공식 명칭으로 사용되고 있지만, 안과 밖을 나누고, 그 기준을 학교에 두고, 상태를 고정하고 있다는 점에서 다를 바가 없게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배움을 떠난 게 아니고, 배움을 찾아가고 있는 사람들인데 말이지요. 혹은 학교를 진학하지 않고, 휴학을 하고, 혹은 졸업을 하고 여전히 배움의 시간을 모색하는 사람들은 또 뭐라고 부를까 싶기도 했습니다. 밖이라고 고정된 상태를 지칭하는 말 대신, 그 안에 있는 역동성을 아우를 적당한 말을 고민하다 찾지 못하고 그대로 남겨두었습니다. 그리고 프로그램 방향들을 정하면서 찾아낸 것이 프로그램 이름인 온-오프였습니다. 스스로 모드를 정하고, 스위치를 끄고, 켜며 무엇인가 모색할 때 둘러보고 싶은 판이 되기를 바라며.
4월에서 7월까지, 숨고르기를 하고 8월에서 빼곡했던 11월까지. 스페이스 그냥에 오갔던 청소년들에게 누군가 요즘 뭐하니? 하고 물으면 아마 온-오프라는 이름 대신 개별 프로그램을 먼저 떠올릴 것 같습니다. 그 희미한 중력이 좋습니다. 각자의 끄고 켜는 순간들은 제 나름이었을 것이고, 제 각각, 다른 방식으로 반짝이는 순간들이 온-오프였다는 생각이 듭니다.
난 자퇴생이다. 3월 초에 자퇴했으니 7달 차 자퇴인이다. 나의 건강 상태에 화를 일으키는 것들을 학창 시절 몇 년 동안 같이 지낼 자신이 없어서 자퇴했다. 도망이라고도 할 수 있다. 자신을 위험한 상황 속에서 보호할 수 있는 방법 중에 제일 먼저 언급되고 강조되는 방법은 도망치기이다. 모두가 아는 사실인데 왜 심적으로 그런 상황에 몰린 땐 이런 방법이 안 통한다고 보는 건가. 나는 이런 생각을 가지고 학교를 떠났다.
오로지 나를 위해서 말이다.
지나가는 사람이 봐도 위험한 상황일 때 도망치는 건 사람들이 잘했다고 위로도 해주고 칭찬해 준다. 하지만 내 상황은 모두가 받아들이려고도 하지 않았고 프레임만 한겹 더 쌓였다. 이걸 생각하지 않는 것도 아니니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내 갈 길 가는 나를 감히 상상해 봤다. 자퇴한지 1달째, 오로지 머릿속으로만 그런 나를 생각한다. 내 주변에는 과거에 의무감이라고 착각한 감정 때문에 구매한 반은 무슨 반의반도 안 푼 문제집들, 수행평가 때 사용했던 종이 쪼가리들, 쪼가리라고도 말하는 게 과소평가인 하루하루를 그저 빨리 소화하기 위해 묻혀있었던 가방 속 쓰레기들. 마치 과거를 청산하기 위해 남은 잔여물들이 나 같기도 해서 익숙하다.
대화가 필요 없는 하루들을 보낸다. 친구와의 관계 지속은 채팅으로, 가족에겐 내 상태를 통보하는 식에 말들. 사는 데에 어렵지 않은 침묵 속에서 살아갔다. 엄마한텐 그런 내 모습이 익숙하지 않았던 건지 말이나 실컷 하고 오라고 파주시에서 지원해 주는 상담을 보냈다. 10회의 상담 속에서 지금까지 기억하는 건 몇 달째 숨만 붙어있는 상태조차도 좋게 봐줬다는 것이다. 상담사분은 이 점을 남을 꺼내려 나를 추켜세워주는 방식으로 표현하지 않고 내 일상들에 자각하지 않았지만 가치있는 행동을 내가 납득할 수 있는 이유를 붙여 설명해 주셨다. 내가 기억하는 제일 어린 시절부터 들어온 너가 결국 해오는 일들에 특징은 다 너만을 중심으로 해온다는 점도 좋게 봐주셨다. 이것 또한 검사를 통해 나오는 눈에 보이는 자료들을 바탕으로 말이다. 10회 동안 이런 비슷한 내용들을 거의 주입식으로 들었다. 그때 내가 특별히 시작한 일도 없었는데 지금도 내가 나를 그렇게 생각하는 걸 보니 주입식이 아니라고는 확실하게 말할 수 없다. 하지만 그 시간은 내 뇌주름들한테 너도 긍정적인 생각을 할 수 있다고 알린 시간들이었다. 좋게 작용한 것이다.
현재는 하자센터의 멤버를 나라고 생각한다. 나를 정의하는 키워드가 2개인 이유는 지금은 자퇴생보다 하자센터의 내가 더 나를 차지하고 있다. 처음에는 인터넷 서핑을 노련히 타고 있던 중 내가 제일 싫어하는 현실의 나를 자각하는 현자 타임을 갖게 되었다. 난 지금 누가 봐도 아무런 노력 없이 하루하루가 멈춰있는 일상을 사는 자퇴인이라는 걸 다시금 마음에 새겨졌다. 하지만 상담 시간 동안 생각보다 이런 경우가 일상적이고 자주 온다는 걸 떠올린 나는 인스타 속에서 나랑 다 비슷하다는 연대감이 필요해 다른 자퇴생들을 구경했다. 근데 다른 게시물들과는 다르게 시간을 흘리고 있는 게 아니라 사용하고 있다고 느껴지는 게시물을 발견한다. 그게 시작이다. 어렵지 않게 하자센터에 도착했다. 탐방 시간이었는데 나랑 다 비슷한 경로로 알게 돼 이 자리에 앉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으니 하자센터가 추구하는 약간의 연대감이 들었다. 즉각 이런 생각이 들게 하다니 신기한 공간이라는 첫인상을 받고 집에서 하자센터를 더 알아보기 시작했다. 광역버스를 이용하는 사람의 본전 뽑기 목적이었다. 그때도 그렇고 지금도 그러지만 개별적으로 경험을 안겨 준다기보다 팀으로 하는 워크숍이 많았다.
<모색하는 글쓰기> 수업 풍경
그때의 난 커뮤니티라는 존재에 진절머리가 나서 혼자 집중이 필요한 작업을 하는 하자 공방(생활기술 작업장)을 신청한다. 막상 멤버들을 만난다 하니 친목에 더 신경이 기울어졌다. 어쩔 수 없다. 10년 넘게 시작은 이런 생각으로 하는 게 당연했다. 오히려 신경을 안 쓰면 쿨병이라고 이미지가 박히는 분위기였다. 그래서 처음에 멤버들을 봤을 때 다들 너무 개인플레이이시고 관계에 그렇게 상관을 안 쓰시나라는 이미지를 받았다. 두 번째 시간 때는 두 분이 친해진 모습을 보였다. 근데 수업 동안 같이 붙어 더 대화를 할줄 알았는데 근황만 나누고 자기 할 일을 하는 모습을 보고 너무너무 어색했다. 닉네임으로 부르고 불리는 것보다 말이다. 쉽지 않은 시간들을 보내겠다고 생각하며 두 번째 시간이 지나갔다. 하지만 수업을 들을 때마다 물음표는 느낌표로 바뀌었고 관계에 무게감이 거북하지 않게 받아들일 수 있음을 느끼기 시작했다. 처음엔 한 우물만 파는 관계가 당연하다는 생각을 하며 내가 호감인 사람들 위주로만 관계를 맺게 되었는데 하자센터에서 이루어지는 관계들은 모두 한 명 한 명 평등하게 대하게 되고 모두가 그 사실을 알고 있는 분들이니 대화할 때 무엇을 말할까 머리를 굴리는 것보다 상대방의 마음에 집중하게 되었다.
지금은 흘러가는 시간들을 붙잡아 하나하나 꼼꼼히 살펴보고 내 시간으로 흡수하는 법을 가르쳐주지 않는데도 몸에 배어 들었고 존중하며 서로의 공간을 지켜주는 법, 규율에 갇혀 펼쳐보지 못했던 생각들도 스스럼없이 하게 되는 내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