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감은 섞일수록 검어지는데, 빛은 섞일수록 하얘진대요. 색은 섞일수록 짙어질 수도, 옅어질 수도 있는 거죠. 신기하지 않나요? 하하.
하자 뉴미디어 인턴 2기 스토리 팀으로 모인 네 사람은 상호 인터뷰를 통해 서로에게 놀라운 공통점을 발견했어요. 우리 모두 여러 가지 색이 부단히 섞이는 한 시절을 지나고 있다는 것! 동시에 우리는 그 안에서 서로 다른 색으로 빛나고 있었어요.
겨자, 단어, 딱새우, 이산은 어떻게 짙어지고 옅어졌을까요?
단어
흠… 과거의 저를 생각해 봤을 때 지금 많이 옅어진 건 불안과 두려움이에요. 원래 저는 미래나 관계에 대한 불안이 큰 사람이었거든요. 혼자 있는 걸 두려워해서 내 옆에 있는 사람이 나를 떠나면 어떡하나, 그래서 세상에 혼자가 되면 어떡하나 라는 걱정을 항상 안고 살았던 것 같아요. 그런데 글을 쓰기 시작하고, 방탈출이라는 아주 흥미로운 취미를 갖게 되면서 혼자서도 시간을 잘 보낼 수 있게 되더라고요. 혼자서 몰두할 수 있는 게 생기고 나서부터 불안이 사라지기 시작했어요.
저는 세상 모든 ‘이야기’를 좋아해요. 이야기 속에 담겨있는 희로애락을 보고 삶을 살아갈 힘을 얻어요. 제가 그 이야기를 쓰는 사람이기도 하고요. 사실 방탈출도 하나의 ‘이야기’예요. 그런데 일상에서는 절대 경험해 보지 못할 이야기인 거죠. 탐정이 되어서 사건을 해결하기도 하고, 인류의 멸망을 막는 히어로가 되기도 하고…. 방탈출 하는 시간만큼은 완전히 다른 인물이 되어 일상과는 동떨어진 삶을 살아 보면서 해방감을 느껴요.
그러니까 취미가 짙어지면서 불안이 자연스레 옅어진 거죠. 초등학생 시절부터 취미를 쓰는 칸이 나오면 항상 독서, 음악감상…. 이런 것들을 썼거든요. 물론 너무너무 좋은 취미지만 저는 조금 더 특별하고 톡톡 튀는? (딱새우의 의미심장한 웃음) 그런 취미를 갖고 싶었어요. 지금은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어떤 것에 흥미를 느끼는지 더 잘 알아요. 취미가 분명해진다는 건 내가 나를 더 잘 알게 되었다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지금까지는 나의 이야기만 써왔는데 이제는 타인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싶어요. 듣는 일을 통해 앞으로 무엇이 옅어지고 짙어질지 궁금하거든요. 하자에서 많이 듣고 많이 나누면서 더 넓어지는 우리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딱새우
영국에 교환학생을 갔을 때 먹은 MELONA
단어가 방탈출에 몰입하며 현실에서 잠시 벗어났다면, 저는 오히려 현실과 낭만의 경계가 옅어졌어요. 저는 항상 행복을 유예하는 편이었어요. 그리고 대학생이 되면 모든 걸 할 수 있게 될 것이라는 믿음 때문에 행복은 낭만으로만 생각해 왔어요. 근데 스무 살이 되고, 대학생이 되어도 내 현실이 낭만으로 바뀌지는 않더라고요. 그럼 난 언제 행복해지지?
답은 월드콘에 있었어요. 현실에 지친 제게, 친구가 월드콘을 먹으면서 산책하자고 불러낸 적이 있어요. 행복해지고 싶을 때 월드콘을 먹는다던, 그걸 위해 평소에 먹을 월드콘을 아껴둔다던 친구. 그날 함께 월드콘을 먹으며 한 30여 분 정도의 산책 덕에, 현실의 사소한 순간에 의미를 부여하며, ‘소확행(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을 즐길 줄 아는 사람이 된 것 같아요. 생각보다 낭만은 멀리에 있는 것이 아니었더라구요.
직업과 취미의 경계는 짙어졌어요. 원래는 좋아하는 것을 직업으로 삼고 싶었어요. 근데 그게 진로가 되고 직업이 되니 좋아하는 것들을 모두 잃게 됐어요. 좋아하니까, 그래서 더 알고 싶으니까 선택했던 것들이, 더 많이 알게 되니까 싫어지는 순간이 오더라고요.
범죄 사건을 다룬 뉴스조차 보기 싫을 때, 감상보다 분석을 먼저 하게 될 때, 내용보다 스펙이나 기술이 먼저 눈에 띌 때. 더는 온전히 좋아할 수 있는 것들을 놓치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어요. 지금 제게는 음악과 독서가 남아있는 존재인데, (단어의 머쓱한 웃음) 그 분야에서만큼은 온전한 청자와 독자로 남고 싶어요.
비 오는 제주도에서 1+1 폴라포
앞으론 너와 나의 경계를 옅게 만들고, 우리를 짙게 만들어 나가고 싶어요. 어느 순간 나와 의견이 다른 사람과 대화하며 서로를 이해하려는 과정을 피해 왔던 것 같아요. 그건 보이지는 않지만, 많은 에너지와 갈등을 담보하니까요. 그럼에도 여전히 내가 속해있지 않은 어떤 집단을 이해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 사람을 옆에 두는 것, 함께 대화하는 것으로 생각해요. 하자에서 긍정적인 방식으로 나와 너를 넓혀 우리가 되게끔 하고 싶어요.
이산
저도 딱새우처럼 나와 너의 경계가 옅어지고 있음을 느껴요. 그런데 그건 역설적으로 ‘나’가 짙어진 결과예요.
과거에는 스스로에게 너~무 관심이 없었거든요. 취향이나 취미 같은 건 확고했지만 그건 관찰자로서 수집한 결과이지, 스스로의 정신과 신체를 인식하고 있던 건 아니었어요. 약간 불교에서의 무아(無我) 상태라고 할까요. 전 제가 어떻게 생겼는지 몰랐을 정도니까요. 중학교 3학년 때 친구가 제 옆모습을 마음대로 찍어서 준 적이 있는데, 그게 옆모습에 대한 최초의 기억일만큼? (웃음)
그러다 대학교에 올라왔는데요. 애들이 옷을 너무 잘 입는 거예요. 솔직히 부러웠어요.
처음으로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하게 됐고, 보이는 모습을 가꿔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물론 자의식이란 건 너무 강하면 안 되지만요. 전 너무 없었다 보니까 오히려 타인의 시선에서 ‘타인과 다른 나’라는 존재가 정리되는 신선한 경험을 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나’가 짙어지면서 세상에 발붙이고 사는 법을 알게 되었다. 더 삶이 풍부해졌다. 이렇게 말씀드릴 수 있겠네요.
그렇게 ‘나’라는 걸 가진 채로 타인과 교류하다 보니, 신기하게 다른 사람을 더 동등하게 느낄 수 있게 됐어요. 어떤 인격의 존재감에 대한 인식의 확장…이라고 할까요? (웃음)
광활한 자연을 보면 자연스레 느껴지기도 하는
단순하게 말하면 ‘저 사람들은 나의 수많은 가능성 중에 하나구나’, ‘수많은 나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난 그냥 어쩌다 이런 모습으로 태어난 거지 다양한 환경과 사연 속에서 만들어진 타인의 ‘나’ 들과 크게 다르지 않구나, 이런 거요.
전에는 (저를 포함한) 모든 사람이 NPC라고 생각했었는데요. 이제는 나와 너를 동등한 플레이어로 볼 수 있게 된 거죠. 그렇게 나와 타인의 경계가 옅어졌네요.
겨자
헉. 저는 오히려 그 무아(無我) 상태가 요즘 제 추구미예요.
예전엔 노래를 들을 때 가사부터 찾았어요. 사운드를 잘 몰랐으니까, 노랫말이 와 닿아야 애착이 생겼거든요. 그런데 베이스를 배우고 나서부터 모든 노래가 처음 듣는 것 같아졌어요. 시끄럽다고만 생각했던 노래도 “아, 여기선 세션들이 무아지경으로 연주하고 있구나” 싶고. 조용해서 감흥 없던 노래도 “잘 들리지는 않지만, 묵묵히 이런 그루브를 타고 있구나” 하면서요.
뭐든 의미가 있어야만 좋다고 생각하고, 의미를 찾기 위해서만 부단히 노력했던 것 같아요. 심지어 저는 정치외교학과잖아요. (웃음) 항상 답안지에 타협하지 않는 정답만 써야 했어요. 짙은 색을 찾아다녔죠. 그런데 전 짙어질 줄만 알지, 옅어지는 건 해본 적도 없고 할 줄도 모르는 사람이었더라구요.
이제는 베이스 덕에,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는 오아시스의 “Champagne Supernova”도 그 자체로 무의미함을 즐기게 됐어요. 무슨 뜻인지는 아직도 모르겠어요. (웃음) 또 옅은 베이스 소리가 노래 전체를 더 짙게 하듯이, 옅은 무언가가 내 삶을 짙게 해준다고 느껴요. 그래서 예전에는 무조건 선명해지고 진해지고만 싶었는데, 요즘에는 흐려지고 옅어지고 싶어요.
하자는 그 모든 옅어짐을 온전히 응원해 주는 공간이라고 생각해요. 여기 있는 동안 동료들과 함께 마음껏 옅어지고, 또 마음껏 짙어지고 싶어요.
하자 뉴미디어 인턴 2기 스토리팀
앞으로 저희는 스토리팀 인턴으로서 변화의 중심에 있는 청소년들이 어떻게 옅어지고 진해지는지, 그 과정에서 어떤 고민을 하고 어떤 답을 내렸는지 열심히 듣고 여러분들과 나누려고 해요. 하자센터의 따끈따끈한 소식들도 잔뜩 들고 올 예정이랍니다 :)
하고 싶은 걸 몰라서 방황하는 당신도, 하고 싶은 게 있는데 용기가 부족한 당신도 하자센터와 함께라면 시작할 수 있어요. 언젠가 여러분의 공간이 될지도 모를 하자센터가 궁금하다면 스토리팀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