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자풀은 5월부터 10월까지 매달 2명씩, 하자와 인연을 맺어온 아티스트를 만나 질문 몇가지를 나눠봅니다.
풍덩
질문 1. 간단한 자기소개와 하고 있는 창작 활동에 대해 이야기해주세요.
안녕하세요. 저는 김서혜입니다. 글을 쓰고 있습니다. 주로 소설을 써오다 최근엔 시나 희곡도 쓰고 있습니다.
질문 2. 그 창작 활동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이야기를 만드는 자아는 어렸을 때부터 있었던 거 같아요. 저는 글을 비교적 늦게 뗐는데요. 초등학교 들어갈 때까지 한글을 읽을 줄 몰랐어요. 책을 봐도 읽을 수 있는 게 없으니까 삽화를 보고 제멋대로 이야기를 지어내서 읽었는데, 생각해보면 그게 제 작업의 기반이 됐던 거 같아요. 그때 제 세상은 이미지로만 이루어져 있었기 때문에, 이야기가 듣고 싶으면 제가 만들어낼 수 밖에 없었거든요. 실제로 유년의 큰 축을 이미지와 함께해서, 한동안은 제가 그림을 그리고 싶은 줄 알았어요. 근데 그림은 나와 이야기 사이의 매개체였고 결국 하고 싶은 건 텍스트 작업이라는 걸 깨달은 건 고등학교 때였던 거 같아요.
질문 3. 창작 생활을 계속 이어갈 수 있는 동력은 무엇인가요? 어디서 오는 걸까요?
해결되지 않았다는 감각이요. 그게 동력이 되는 것 같아요. 어렸을 때는 대부분 수치스러움이 해결되지 못했어요. 제가 느끼기에 저는 부끄러움이 많고 어리숙한 아이였거든요. 남들보다 늦는다는 건 어떤 부분에선 남들보다 취약해진다는 뜻인데, 저한테는 그게 글이었어요. 국어시간이 되면 담임선생님이 학생들을 지목해 일으켜 세운 다음 교과서 내용 중 한 대목을 읽게 했는데, 저는 매번 못 읽었거든요. 글을 모르니까 당연했죠. 그때 느낀 수치심이 한동안 제겐 해결되지 못한 감각으로 남았어요.
이런 감각들을 기록해 두었다가, 훗날 거기에 서사를 입히기 시작했어요. 그럼 이야기 속에서 그 아이는 일정 부분 저의 감각을 지녔지만 저와는 완전히 다른 자신만의 이야기를 만들게 돼요. 허구의 이야기지만 허구를 통해서만 통과되는 시절도 있다는 걸 믿게 됐어요.
시간이 지날수록 감각의 범위가 확장돼서 처음엔 저라는 아이 하나였다가 나중에는 옆자리 짝꿍이 되고, 다음엔 교실이 되고. 이제는 그런 감각들이 꼭 현재의 공간과 시간에 지배당하는 것만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여덟 살의 제가 있었듯이. 취약한 사람들의 이야기에 마음이 가요. 해결되지 않은 마음들이 남아있어서. 그래서 계속 쓸 수 있어지고, 써야 한다고 느끼는 거 같아요.
질문 4. 하자는 어떤 인연으로 만나게 되었나요?
제가 열일곱 살 때 <오디세이학교>를 다니면서 처음 하자와 인연을 맺게 되었어요. 학교를 다니는 동안 기록하고 써내야 할 일이 많았는데, 그 과정 속에서 제가 글쓰는 일을 하고 싶다는 걸 확인할 수 있었어요.
질문 5. 하자라는 공간이 공(김서혜)의 창작 활동과 연결된 순간이 있나요?
어떻게 보면 제가 소설을 쓰게 된 계기가 하자에 있기도 해요. <오디세이학교>를 다닐 당시에 글쓰기 시간이 있었는데, 그때 처음 소설을 쓰게 됐거든요. 그 전에는 늘 에세이 형식의 글만 써오다가 나름 도전을 해 본 거였는데, 재밌었어요.
제가 생각하기에 저는 어느 정도의 가식을 절대로 버릴 수 없는 사람이라, 에세이를 쓸 때 늘 조금씩 죄책감을 느꼈던 거 같아요. 제가 묘사하는 저는 실제의 저보다 항상 좀 더 멋있거나, 좀 더 구렸거든요. 거짓말을 하는 기분이었어요. 근데 소설을 쓰니까 그런 부채감이 없어져서 해방감이 들었던 거 같아요. 기본적으로 거짓에 기반을 둔 글이니까요. 수많은 거짓이 감싸고 있는 손톱만한 진실을 보여주는 작업이 소설 같았어요.
질문 6. 앞으로 하자가 창작자들에게 어떤 역할을 하면 좋을까요?
하자를 처음 만난 당시의 저는 뚜렷한 목적의식을 가지고 있진 않았던 것 같아요. 그냥 내가 나를 마음껏 풀어놓을 수 있는 공간이 필요했어요. 그러다 운 좋게 저의 매체를 찾은 케이스인데요. 모두에게 하자가 저와 같은 의미는 아닐 거라고 생각해요. 오히려 지금 하자를 찾는 창작자들은 저보다 뚜렷한 모양과 목적을 가지고 온 사람들도 있을 거라는 생각도 들고요.
중요한 건 하나의 지대가 되어주는 일 같아요. 매체를 가진 사람이든 아니든, 이곳에서 자기 작업도 하고 실험도 해볼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또 중요한 건 무료로 시설을 이용할 수 있게 하는 점 같아요. 하자에 있던 십 대 후반의 저를 생각하면 돈이 별로 없었거든요. 그래서 하자의 자원을 비싸지 않게 혹은 무료로 마음껏 이용할 수 있다는 점이 좋았어요. 그때는 성인이 되면 돈이 생길 줄 알았는데, 딱히 그렇지도 않았고요. 여전히 적은 비용으로 오래 있을 공간이 필요해요. 하자가 그런 공간이 되어준다면 좋을 거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