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2월 15일 오후 2시. 180여 명의 교사들이 하하허허홀을 꽉 채웠습니다. 무대엔 보라색 소파 다섯 개와 PPT가 준비되어 있고, 무대 왼 쪽으로는 교사들이 포럼이 진행되는 동안 보내는 문자들이 실시간으로 업로드될 작은 스크린이 세워져 있습니다.
세 가지 주제인 <소규모 테마 수학여행>, <의례_졸업, 입학식>, <공간_삶의 이야기>와 관련하여 초-중-고등학교 안에서 변화를 만드는 실천을 해온 사례 발표를 해줄 교사들과 정책 현실 및 본질적인 의미를 논해볼 교육청 관계자 및 연구자들이 자리했습니다.
참여신청서를 보면 교사들은
‘우리 아이들이 많이 아픕니다.’ 로 시작되는 본 포럼의 웹 포스터 안내 문구를 보고,
또는 ‘바꿔보고는 싶은데 막막하다’ 는 마음을 안고,
‘이렇게 해보려는데 실제 진행하신 분들은 어땠나 궁금’ 해 하면서,
‘입시 과열과 경쟁 체제를 그냥 두고 과연 어떤 변화가 가능할까…. 답답하다’는 고민을 하면서 이 자리에 참석했습니다.
그리고..
“의미부터 학생들과 함께 고민했다는 것이 인상적. 보통 프로그램의 선택권만 넘기는데, 의미부 여부터 함께 고민하려는 흔적들이 인상적이었어요!”
“평소 혼자 고민하던 부분이 나 혼자만의 것이 아니었다는 것, 전문가나 기 경험자와 공유할 수 있었다는 점이 좋았고, 감동적이었습니다!”
“공간을 통해 우리 아이들에게 상상과 치유가 생깁니다. 공간에 대한 철학이 중요함을 절감합니다. 교장샘들에게 이런 철학 강의가 필요합니다."
“학교를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공동의 액션이 필요하다는 것을 절실히 느꼈습니다.”
위 이야기가 무엇이냐구요? 바로 포럼이 진행되는 동안 교사들이 문자로 온라인에 올린 글과 후기입니다.
함께 험한 산 넘기를 시작해볼 용기가 생겼다는 이야기나 그냥 ‘잘난 척 하는 자랑 발표’가 아니라 고민의 시작부터 시행착오와 과정까지 보여주어 도움이 되었다는 말씀부터- 오히려 실제적인 실행 제안까지.. 참여하신 교사들이 포럼을 더욱 풍성하게 채워주었습니다.
▮ 포럼 들여다보기
하자센터는 2011년 혁신학교인 부인중학교, 충현초등학교와 MOU를 맺고 함께 고민을 해결해보려는 시도를 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유의미한 과정을 다른 학교 교사들과도 나누고자하는 의도로 본 포럼 기획을 시작했습니다. 학교 안에서 우리 아이들을 위해 무언가 새로운 고민과 시도를 하려는 과정에는 업무 구조, 행정, 정책, 예산, 학부모 인식 등 많은 장애물이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행사나 프로그램의 내용을 채우려는 접근과 일정은 다각적 고민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축소시킨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따라서, 본 포럼에서는 학교의 사례발표에서 <1. 문제의식: 문제 발견과 고민>, <2. 해결에 대한 방향>, <3. 교육의 목적과 콘셉트>, <4. 실제 진행 프로세스와 내용>, <5. 가능했던 요인과 요소>,<6. 실행을 위한 제언>이라는 단계를 설정하였습니다. 그리고 토론의 경우 사례발표에 대한 비평이 아닌, 정책과 본질적인 내용을 중심으로 한 첨언의 성격을 띠도록 기획하였습니다.
-수학여행의 경우, 이미 97년부터 소규모 테마 수학여행을 진행해 오신 성심여고의 이창호 선생님이 오프닝을 맡아 주셨습니다. 특히, 역사 수업과 연계한 반별 여행 진행에 대한 오랜 노하우와 학생들이 직접 장소를 선정하고 스토리를 꾸려가는 과정에서의 배움과 만족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 주셨습니다. 충현초등학교 양경자 선생님은 사회적기업 트래블러스맵과 공동기획 및 진행하는 과정에서 초등학생이지만 주도적인 장소 선정, 부산 현지 청년 멘토와의 연결 등 실무적인 변화가 실제 배움이 일어나는 수학여행 진행에 큰 영향을 미쳤음을 나누었습니다. 트래블러스맵 변형석대표는 소규모 수학여행 정착을 위한 제언으로 여행과 교육의 본질적인 의미를 짚으면서 교사의 교육적 맥락과 여행 전문가의 실무 진행, 원스톱 행정 시스템 등을 제안하였고, 19개 국립공원과 여행사가 프로그램을 공동 개발하고 교육청과 MOU를 통하여 안정적으로 진행하는 과정을 공유했습니다. 서울시교육청에서 수학여행을 담당하는 김승겸 장학사는 학교로 찾아가는 수학여행 컨설팅, 지자체나 대학 관광학부와의 MOU 체결, 대학생 서포터즈 운영, 현장 의견 수렴 등 다양한 정책적 고민을 이야기했습니다.
-졸업 ․ 입학식 등 의례 파트에서는, 입학에 대해 ‘첫 만남과 관계의 변화’를 키워드로 잡고, 학생/교사/학교/학부모들과의 모든 만남에 설레임과 즐거움, 배움에 대한 긍정적 인상이 생길 수 있도록 이젤에 가족들이 축복하는 글을 붙여주거나 교장선생님은 훈화 대신에 그림동화를 읽어주고 퀴즈를 내는 등 기획을 연결시킨 충현초등학교의 사례를 공유했습니다. 외부 파트너십을 통해, 교사들이 공동의 기획을 해보았던 과정의 중요성에 대해서도 강조되었습니다. 한창 알몸 폭력 졸업식이 이슈이자 고민인 가운데 덕소중학교는 일탈의 가능성이 보이는 청소년들을 ‘U턴 팀’이라는 이름으로 오히려 위촉하여 적극적인 졸업식의 주체가 되도록 하고, 교사와 재학생들의 점심식사 배식, 반별 졸업식을 통해 모두가 주체가 되었던 과정을 나누어 주셨습니다. 특히 연간 교육과정 전체와 연결시킨 진행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이에 토론으로 성공회대 김찬호 교수는 삶에서 의례 자체가 가지는 상징성과 중요한 배움의 과정을, 인디언들의 성장 의례와 국내 대안학교의 졸업식 사례 등을 구체적인 예시로 들어 설명하셨습니다. 특히 배움에 대한 엄숙함과 자신들의 에너지가 연결되는 즐거움이 공존하는 의례는 없을까 라는 근본적 질문을 던지셨지요. 서울시교육청의 김영삼 장학사는 사실 학교 의례가 ‘행사’가 되어, 교사들이 만든 틀에 아이들을 밀어넣는 방식 자체에 문제를 제기하고 이에 대한 공동의 고민의 필요성을 제안하셨습니다.
-공간 파트에서는 봉원중학교의 백화현 선생님이 학교 도서관을 바꾼 사례를 생생하게 나눴는데, 특히 접근성을 우선순위로 두어 배치하고, 옹기종기 모일 수 있는 온돌방과 숨어들어 조용히 책을 볼 수 있는 작은 공간 등, 학생들의 일상과 특성을 기반으로 한 콘셉트 설정이 결과적으로 수십 개의 독서 동아리를 만들어낸 동인이 되었음을 볼 수 있었습니다. 부인중학교에서는 학교 현관을 나무 향기 그윽한 카페로 꾸민 사례를 소개했습니다. 자연스럽게 열린 공간이 된 카페에 학생들이 모여들고, 수업에서도 이 공간을 활용하는 등 학생들의 생활에 활력을 가져온 변화를 볼 수 있었습니다. NonArt ButArt의 박찬국 디렉터는, 남양주에서 벌어지고 있는 기발한 프로젝트들을 통해 커뮤니티 내에서 벌어지는 관계의 변화 사례를 보여주었습니다. 단순 학교 틀 등 공간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고 도시, 교육, 사회, 예술의 경계 넘기와 연계 등을 포함하여, 전체론적 시각을 가지고 상상력을 발휘할 가능성을 보게 되었습니다. 산돌학교의 안성균선생님은 교육 공간에 대한 본질적인 관점을 다시 제기하며, ‘공간은 삶을 담는 곳’이며 ‘학교는 건축으로 구현된 교과서’로서 숨겨진 교육과정이라는 발제를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배움과 관계에 대한 다양한 관점들이 실제 건축이나 인테리어로 구현된 많은 학교 사례들을 보여주셨습니다. 사실, 건축 자체를 바꾸기는 힘들지만 ‘공간’이 그저 꾸밀 곳이 아니라 삶과 교육과정이 발현될 수 있도록 고민해야 할 주제임을 다시 논해보는 자리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4시간이라는 긴 시간 동안 한결같은 열정과 눈빛으로 포럼을 함께 만들어주신 교사들이 포럼의 중요한 주체가 되어 주셨습니다.
▮ 포럼 그려 보기
포럼이 끝난 후 받은 피드백 중 많은 부분은 한 번에 하나씩의 주제로 깊이 논할 수 있는 포럼을 지속적으로 만들어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학교를 바꾸는 작은 행동>에 대한 공동의 고민과 변화를 위한 시도에 대한 에너지라고 여겨집니다. 어떤 선생님의 글대로 혼자만의 고민과 애씀이 아니라, 학생을 중심으로 학교 내외의 주체들이 함께 만들고 함께 변화해가는 그림이겠지요.
시멘트 둑으로 막아 외견 곧고 깔끔해 보이는 강보다, 오히려 굽이굽이 돌아 흐르는 강물들이 더 많은 생명들을 키우는 것을 봅니다. 쉬워 보이지 않지만, 선생님들이 그 생명들을 함께 키워내고 계심을, 그리고 교육 현장에서 변화를 만드는 ‘작은 행동들’이 많음을 계속 공유하기를 기원합니다. 포럼을 통해 종종 만나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