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자풀은 5월부터 10월까지 매달 2명씩, 하자와 인연을 맺어온 아티스트를 만나 질문 몇가지를 나눠봅니다.
풍덩
질문 1. '복태와 한군' 자기소개와 요즘 하고 있는 창작 활동에 관해 이야기 해주세요.
안녕하세요. 소리와 말을 엮는 작업으로는 ‘선과영’이라는 팀으로 음악 활동을 하고 있고요.
실과 천을 엮는 작업으로는 ‘죽음의 바느질클럽'을 운영하고 있는 복태와 한군입니다.
‘선과영’으로는 포크음악을 기반으로 노래를 짓고 부릅니다. 작년 9월 정규앨범 ‘밤과낮'을 발매했고요. 올해 2월 제20회 한국대중음악상에서 ‘최우수 포크 음반’, ‘최우수 포크 노래’ 를 수상했습니다. 5월부터는 전국 순회공연을 다니고 있습니다. 제주, 대구를 다녀왔고 6월에는 속초, 전주를 다녀왔습니다.
‘죽음의 바느질클럽’으로는 활발히 바느질워크숍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치앙마이식 바느질기법, 치앙마이 고산, 소수민족분들의 옷 짓기 기법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올해 7월에는 치앙마이 바느질 스승님을 모셔와 치앙마이 바느질 페스티벌을 기획 중에 있습니다. 아, 5월부터 10월까지 ‘대구섬유박물관’에서 <최소한의 옷장>이라는 지속가능한 패션을 키워드로 하는 기획전에도 참여하고 있습니다.
질문 2. 창작활동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복태 : 예술학교를 다니던 시절 여러 장르의 예술을 경험했지만 ‘내 이야기' ‘내가 전하고픈 메시지' 를 담을 최적의 예술 형태를 찾아 헤매었습니다. 그러다가 우연히 아마츄어증폭기(한받)의 공연을 보고 ‘아, 나도 노래를 만들 수 있을 것 같아!’ 라는 마음으로 노래를 짓고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마음으로 스며드는 멜로디를 통해 전하고 싶은 마음들을 이야기로 들려주고 싶었습니다.
한군 : 어려서 부터 ‘소리'에 관심이 많아 노래, 연주를 즐겼습니다. 학창시절 Punk Rock을 연주하며 발산의 도구로서 음악을 향유했습니다. 성인이 되어 하자센터를 만나 치유로서 음악의 가능성을 느꼈고 복태를 만나 위로의 도구로서 창작을 하고 있습니다.
2016년도 우연히 떠난 태국 치앙마이에서 현지 바느질 스승님 EAK을 만났습니다. 모든 것이 운명처럼 우연히 연결되어 바느질을 배우게 되었습니다. 바느질을 하며 현재에 머물며 집중하는 법, 꼼꼼하지 않아도 나만의 호흡으로 바느질하는 법을 배웠고. 바느질을 통해 느슨하고 유연한 삶의 자세와 태도를 배웠습니다. 이를 공유하기 위해 워크숍을 시작했고 2018년부터 지금까지 꾸준히 치앙마이식 옷 만들기, 수선과 자수 워크숍 등의 작업들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질문 3. 창작 활동을 계속 이어갈 수 있는 동력은 무엇인가요?
복태 : 끊임없이 할 ‘거리'들이 만들어져요. 내가 들은 다양한 이야기들과 내가 보아온 많은 것들이 켜켜이 쌓이고 쌓여 단어와 문장이 되어 적혀져 나가고, 멜로디를 만들고 싶어져요. 그렇게 동력은 자연스럽게 나와요. 안 하고는 못 배기는 거죠. 더불어 바느질 작업 역시 전하고 싶은 삶의 자세와 태도가 있어요. 그것들이 꾸준한 창작 생활의 동력이 되어줍니다.
한군 : 음악과 바느질, 모두 재미가 있습니다. 견딜 수 없이 재미가 있어요. 물론 동시에 견딜 수 없이 어렵고요.
질문 4. 하자센터는 어떤 인연으로 만나게 되었나요?
복태 : 2009년, 친구로부터 전해 받은 메일 한 통으로 당시 예비 사회적 기업이었던 ‘트래블러스맵'에 입사하게 돼요. 여행을 하는 일이라는 게, 그것도 공정한 여행이라는 형식에 이끌렸어요. 그렇게 저는 맵에서 만든 여행학교 ‘로드스꼴라'의 교사가 되었고, 하자센터와의 인연이 시작되었죠.
한군 : 2010년 학교를 졸업 하자마자 지인의 도움으로 하자센터를 소개받아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 당시 하자에서 인큐베이팅 중이던 ‘뮤시스’라는 사회적기업이 있었는데요. 그 곳의 ‘307뮤직클럽’ 이라는 음악 모임활동에 참여하다가 마침내 취직까지 하게 되었습니다. 그 당시 어떻게 음악을 하며 살아 갈 것인가에 대한 고민으로 방황하고 있던 저에게 좋은 질문과 답을 주는 시간이었죠.
질문 5. 하자센터라는 공간이 복태와 한군의 창작 활동과 연결된 순간이 있나요?
복태 : 시작은 사회적기업의 일원이었지만, 동시에 제가 음악가로 살아가는 삶의 방식이 존중되었어요. 그래서 꾸준히 일을 하면서도 음악을 할 수 있었죠. 그리고 더 나아가 음악으로 아이들을 만나고, 하자센터에서 다양한 활동들의 공연들을 소화해 나가면서 영역을 확장 시켰죠. 하자센터는 제 음악생활의 네트워크 장이었고, 허브였죠. 덕분에 이어진 인연이 아직까지 이어지고 있으니 현재까지도 연결되고 있네요.
한군 : 하자센터는 제가 건강하게 관계 맺고 더불어 살아가는 법을 배울 수 있는 공간이었습니다. 좋은 사람들 좋은 공간들이 있었기에 지금의 창작이 가능했다고 봅니다. 매 순간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질문 6. 앞으로 하자센터가 창작자들에게 어떤 역할을 하면 좋을까요?
복태 : 건강하고 안전한 네트워크 장, 젊은 작업자들의 좋은 허브 역할을 해주는 곳이었으면 합니다. 결국 창작도 혼자보다는 ‘곁'이 있을 때 더욱 시너지를 얻거든요.
한군 : 지금 생각하면 하자센터는 저의 20대 초반 가장 안전하고 든든한 집이었습니다. 동시에 즐거운 일터 였고요. 한마디로 몸과 마음의 비빌언덕이었죠. (실제로 그 당시 하자 세탁기로 빨래 돌리고, 하자 옥상에 널어 두고 낮잠도 자고 했습니다. 또 복태와 점심 도시락을 나누어 먹으며 사랑과 우정을 나누기도 했고요) 시간이 많이 지난 지금은 하자센터가 어떤 분위기인지 궁금합니다. 하지만 여전히 같이 즐거울 수 있는 유쾌한 일을 도모하는 공간이 되길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