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생일 파티를 하고 싶었던 어린이였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파티’라고 칭할 수 있는 행사의 주인공이 되어본 것은 아마 여덟 살 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일 것이다. 그쯤 나는 양말까지 규격으로 정해진 교복을 입어야 하는 낯선 지역의 초등학교에 갔고, 나도 나의 양육자도 그 학교의 문화에 발걸음을 맞추기 바빴다. 그 학교에서는 매 월초가 되면 생일을 맞은 아이들의 양육자들이 성대한 생일파티 계획을 경쟁하듯 공유하고는 했다. 물론 나의 양육자도 나에게 그런 종류의 생일 파티를 열어주었다. 아마 동네의 작은 강당 크기의 키즈 카페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공간의 가장자리에는 아이들이 탈 수 있는 작은 기차 놀이기구가 레일을 따라 계속하여 돌아가고 있었고, 가운데에 위치한 큰 테이블에는 아이들과 양육자들이 듬성듬성 앉아 있었다. 그리고 그 앞에는 각종 간식들과 거대한 케이크가. 그리고 그것들보다 더 가운데에는 고깔모자를 쓴 내가 앉아있었다. 그리고 그 밖의 것들은 잘 기억나지 않는다. 아이들은 양육자의 눈치를 보며 기차 놀이기구에만 관심을 주었다. 나는 혼자 테이블 앞에 앉아 아무도 손을 대지 않은 케이크를 바라만 봤다. 기차가 돌아가는 레일 소리가 계속하여 울렸고 알 수 없는 초조한 마음이 들었다. 남아있는 케이크가 너무도 컸다. 나는 혼자서 그 커다란 케이크를 퍼 먹기 시작했다. 작은 어린이용 포크로 케이크를 계속, 계속 퍼내어 입에 넣었다. 당연하게도 케이크는 크게 줄지 않았다. 그리고 그 밖의 것들 역시 잘 기억나지 않는다. 그 후에도 두어 번 그런 생일파티에 초대받았던 것 같은데 파티에서의 나는 여전히 초조한 마음이었다. 어떤 파티에서든 늘 케이크는 남는 존재였으니. 나는 케이크를 열심히 퍼 먹었고, 이상하리만큼 파티 이후에 늘 배탈이 나는 아이가 되었다. 파티에 더 이상 초대 받지도, 케이크를 먹지 않아도 됐다. 자연스럽게 어떤 것을 기념하는 일이 낯선 감각이 되어갔다. 그 무감각 속에서 나의 어떤 이탈의 원인을 찾자면 그곳에는 분명 그 기차 레일 소리와 커다란 케이크가 차지하는 부분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자’에 처음 오게 된 열여덟 살 때는 어떤 이탈이 완전히 진행된 직후였다. 나는 하자에서 책을 읽고 저자와의 만남을 기획하는 작은 프로그램에 참여했는데, 소속도 갈 곳도 마땅히 없었지만 어딘가 늘 나가고 싶었기에 모임이 있는 날에는 아침부터 사람이 잘 지나다니지 않는 센터의 구석에 앉아 도시락을 먹고 한참을 시간을 보내다가 저녁이면 모임에 갔다. ‘성년식’의 존재를 처음 알았던 것도 그렇게 도시락을 먹으면서였다. 기간이 지난 홍보물에서 하자의 성년식에 대한 사진과 설명이 적혀있는 것을 봤다. 화관을 쓰고 웃는 얼굴들, 박수를 치는 얼굴들, 무언가 서로 주고받는 얼굴들. 생일을 축하하는 것도 케이크가 남을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는 사람들이나 할 수 있는 낯설고 부차적인 일이라고 생각한 지 오래였기에 성년을 기념한다는 것 자체가 낯설게 느껴졌다. 애초에 성년이 기념할 만한 일인지 잘 모르겠었다. 성년이 된다는 것도 무언가를 축하하는 것도 내게는 다 너무 먼 감각이었다.
하자의 성년식에서는 성년자들이 각자의 성년 된 다짐을 적고 낭독하는 시간을 가진다. 이번에 나도 성년의 다짐을 적으면서 도시락을 먹던 열여덟 살의 내가 느꼈던 그 낯선 감각을 꽤 최근까지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내가 계속 ‘미’성년 그러니까 청소년일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어떤 우울하고 암울한 이야기가 아니라 그냥 청소년 이후의 내가 존재하지 않을 것이라고, 그러니 성년은 내게도 너무도 먼 일이라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청소년기의 나는 어떤 문제에 대해 무언가 적극적으로 앞 설 수 있는 사람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쉽게, 또 서툴게 분노하고 조금 빨리 식어버리는 미적지근한 온도 정도는 가진 사람이었다. 누군가 나를 ‘미성년자’라고 지칭하면 나는 ‘미성년’이 아니라 청소년이라고, 그렇게 정의해달라고 정정하는 그런 사람. 내가 미달되고 예비된 상태가 아니라 현재 자체로 온전하다고 정의하는 것은 정말로 중요한 일이지만 미적지근한 나는 청소년이라는 어떤 정체성에게 나의 전체성 전부의 너무 큰 부분을 내어주어 버린 탓에 혼란스러웠다. 나의 행위나 성장을 기반으로 이 정체성의 변화가 귀결되는 것이 아니라 그저 시간이 지났고 내가 그 지난 시간들 속에 있었기에 이 변화를 수용해야만 한다는 것이 너무도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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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성년’의 다짐보다는 ‘비 청소년’의 다짐에 가까운 마음을 어색하게 포장하여 다짐문에 적었기에 나는 무엇보다도 다른 성년자들의 다짐이 궁금했다. 성숙하고 단단한 다짐을 기대하기도 했다가도 모두가 나처럼 혼란스럽기를 바라고, 이리저리로 마음을 반복하며 나도 내가 어떤 다짐들이 나오기를 바라는 것인지 모르겠는 상태로 다짐들 앞에 섰다. 다짐 속에서 누군가는 지난 시간들을 돌아보았고, 누군가는 지금의 상태에 대해 고백했다. 또 누군가는 더 먼 미래가 있게 해달라고 함께 투쟁을 외쳤다. 감정을 언어로 잘 전달할 수 있는 사람도 있었고, 좋아하는 노래의 가사나 책의 구절을 빌려와서 대신 고백하는 사람도 있었다. 성숙과 혼란이 아주 다른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운이 좋게도 ‘ㅍ’으로 시작하는 이름을 가져 마지막으로 다짐문을 낭독하게 되었는데 다짐문을 적었을 때보다 더 부끄러움 없는 마음으로 문장들을 읽어냈다. 어쩌면 이건 나의 진심일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견고하게 완결된 마음을 가지지 못하더라도 그것에 대한 다짐을 하고 기념하며 끝맺음의 계기를 계속 만들어 주는 것의 필요성을 조금은 알 것 같았다.
살면서 이렇게 많은 축하를 받은 날은 아마 처음이었던 것 같다. 아주 많은 박수를 받았고, 아주 많은 선물을 받았다. 눈을 마주치는 어른들마다 축하해요, 라는 말을 건네며 사진 찍어 줄까요? 라고 다정하게 물어왔다. 나의 생일도 자주 잊고 있다가 누군가 축하의 말을 전하기라도 하면 당황해서 어쩔 줄 몰라 하며 주머니에 넣어둔 사탕이라도 쥐여주던 나는, 보답하기도 벅차게 많은 축하에 의도치 않게 조금씩 축하를 수용하는 법을 배웠다. 이 모든 축하가 내가 어떤 형태로든 무사히 살아온 것, 그리고 성년은 아니더라도 성년의 나이에 도달해서 존재한다는 것 자체에 향해있다는 사실이 기뻤다. 내 의지와 무관하게 성년이 되어버렸지만 그 시간들을 버텨낸 것은 나의 노력이었다고. 무언가 이루거나, 되거나, 마무리하거나 하지 않더라도 살아있음 자체로 서로를 기쁘게 할 수 있다는 것은 생각보다 큰 용기를 주었다. 무언가를 축하하는 것이 더 이상 낯선 감각이 아닌 것 같았다. 다 먹지 못하고 남겨진 케이크가 생각났다. 또다시 여덟 살의 생일 파티에 갈 수 있다면 그때는 케이크를 먹지 않아도 괜찮을 것 같았다. 물론 케이크가 남겨질 정도의 마음을 모두 덜어내고 오로지 축하의 마음만 담아낼 수 있다면 더욱 좋겠지만. 그렇지 않아도 괜찮을 것 같았다. 아주 사소한 것들이라도, 어쩌면 그것들조차 이루지 못했을 때라도, 무엇이라도 찾아내어 더 많이 축하하고 기념하며 살고 싶어졌다. 내가 건네는 축하가 아주 작은 축하일지라도, 혹은 남겨진 케이크처럼 형식적인 것일지라도 축하는 그 마음 자체로 의미가 있는 것이니까. 어쩌면 조금은 성년에 가까워진 것만 같은 기분이다. 그런 마음을 담아 모두의 성년됨을 그리고 또 모두 무사히 살아왔음을 진심으로 축하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