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봄, 공유카페 마담 거인이 ‘비닐 없이 일주일 살아보기’를 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 주에 거인과 함께 엄마밥상 준비를 위해 길 건너 장터에 갔는데, 거의 대부분의 채소들이 비닐에 싸여 있었다. 우리는 아직 포장되지 않은 종이상자에 있던 채소만을 구입했고, 판두부는 준비해간 통에 담아왔다. 나름 뿌듯했던 장보기를 마치면서 이런 일은 동네 7일장에서만 가능하지 대형마트에서는 불가능할 것 같았다.
그 즈음 폐비닐 대란이 있었고 많은 사람들이 불편함과 문제의 심각성을 몸으로 느꼈을 것이다. 그러나 환경문제에는 1도 관심 없는 나에게 비닐 없이 산다는 것은 많이 귀찮고, 어렵고, 불필요한 일로만 느껴졌다. 그렇기에 비닐 없이 살아보기는 내겐 일회성 체험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굳게 믿었던 일이 의도치 않게 다른 방향으로 선회하게 되었다.
마트는 비닐천지
그 며칠 후, 거인이 또 “피오나~ 이게 헝겊봉투라는 건데요, 만들손(공유카페 작당모임)에서 한번 만들어 보세요”라며 하늘거리는 천주머니를 보여 주셨다. 헝겊봉투요? 먹는 건가요? 저한테 왜 이러시나요? 그 즈음 나는 만들손을 잠정 휴업하기로 했다. 이어지는 변칙공격. 자꾸 환경에 관련된 동영상을 하나씩 하나씩 보낸다. 같은 톡방에 있는 환경운동가 담엇지도 자꾸자꾸 링크를 걸어 보도 자료를 올린다. 이게 아닌데. 난 안 볼란다. 관심 없다. 반응하지 말자. 지치시겠지. 곧 끝날 거야.
급기야, 헝겊봉투를 제작할 팀이 꾸려졌다.
모두, 바람, 파도, 둥둥, 소파라, 그리고 나?
그 속에 내가 있었다.
우리는 헝겊봉투 사용이 가지는 의미와 이유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리고 일주일에 한 번씩 모여 헝겊봉투를 만들고 있다. 원단시장에 가서 비닐을 대체할 가볍고 저렴한 소재의 천을 고르고 부자재도 샀다. 용도에 따른 크기도 고려하여 10가지의 패턴을 제작하였고, 샘플을 만들어 직접 사용해보았다. 각자의 모임에 나가서 헝겊봉투를 소개하고 사람들의 의견을 묻고, 보완해야 하는 부분들을 반영하며 헝겊봉투를 제작하고 있다. 9월에 있을 ‘제10회 서울청소년창의서밋’에서 우리가 제작한 헝겊봉투를 선보이고 홍보할 계획이다.
헝겊봉투 패턴
실험 제작중인 비닐 말고 헝겊봉투
“카톡!”
또 링크가 걸린 톡이 올라왔다.
해변으로 떠밀려온 죽은 고래의 뱃속에 비닐이 한 가득이다.
마트에 들러 무 하나를 샀다. 이런, 가방에 헝겊봉투가 없다. 비치되어 있는 비닐에 담지 않고 그냥 손으로 들고 왔다. 차갑다. 냉장고에 있다가 꺼내어진 듯하다. 길을 걷는데 무가 땀을 흘린다. 불안하다. 더운 날씨 탓에 무 표면에 빠르게 물방울이 맺힌 것이다. 집에 와서 싱크대 위에 올려놓고 손을 보았다. 흙물이 잔뜩 묻어 있었다. 내 손은 물로 씻으면 그만이다. 비닐을 너무나 사랑하는 19년차 주부인 내가, 오늘은 고래에게 미안하다.
:: 글_화요밥상의 어처구니 피오나 (화요밥상에서 맷돌의 손잡이 역할도 하고 싶고, 어처구니 없는 실수를 종종 저지르는 피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