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30일 06시 21분에 ‘팅’하고 카톡음이 울렸다. ‘응? 이 새벽에 누구지?’ 하자허브텃밭단 단톡방에서 거인의 톡이었다 (아. 이분도 새벽잠이 없으시구나) 농사일지를 쓰고 있는지에 대한 물음과, 6월 하자 뉴스레터에 올릴 글을 에세이로 써보자는 의견이었다.
기억하지 않고 기록하지 않으며 마냥 흘려보내고 있는 일상이었다. 동시에 얼마 전에 읽은 격월간지 ‘민들레’에서 개인 일상의 기억과 기록의 필요성에 대해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하고 있을 때였다. 잘 되었다. 여기서부터 시작해보자. 3월부터 시작한 허브텃밭단의 과정을 기억하고 기록해보자. 텃밭농사보다는 사람만나 노는 일에 더 신난 나에게는 ‘농사일지’가 아닌 ‘놀자일지’가 될 듯싶다.
그동안의 텃밭생활을 기억해보니 옥상텃밭에 머물며 흙을 다듬고 농작물을 가꾼 시간보다, 공유카페에서 텃밭단원들과 함께 밥 먹고 이야기 나누고, 바느질한 시간이 더 길었다. 초반에는 우리 모임의 정체성을 스스로 의심하며 이렇게 묻기도 하였다. “우리 텃밭단 맞죠? 바느질 모임 아니죠?” 시작은 이러하였다. 우리만의 <허브텃밭단>이라고 패치워크 형식의 현수막을 만들자는 의견에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모두’와 ‘소파라’는 글자 디자인과 다양한 천으로 세팅을 하고, 몇 일간 삼삼오오 단원들이 공유카페에 모여 바느질을 하였다. 덕분에 모든 텃밭단원들 손길이 닿은 멋진 현수막이 4층 옥상텃밭 벽면에 자리 잡게 되었다.
허브텃밭단에는 재주꾼들이 많다.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서 자기만의 색을 내뿜는데 시끌시끌함 속에서 정겨움이 가득하다. 자꾸 그 사람들 얘기가 하고 싶어진다. 하자센터 마을의례 중의 하나인 시농제 때 만든 걸개 ‘농사는 자연이 짓고, 우리는 거들뿐’ 이라는 글자는 캘리그래피 동아리를 하는 ‘둥둥’이 묵직한 느낌으로 정직하게 써 주었다. 가드닝을 공부한 ‘모두’는 허브텃밭단의 허브를 식물 허브로 이해하고 왔다고 해서 박장대소하게 만들지만, 우리에게 초록색 싱그러움 가득한 허브 원형정원을 선물했다. 그 허브 정원을 텃밭단에서는 이렇게 부른다. ‘모두(별칭)가 만든 모두의 허브텃밭’이라고. 소를 팔아 대학에 갔다고 해서 지은 별칭 ‘소파라’는 에너지가 넘쳐 늘 작당을 모의하는데 ‘허브텃밭단’ 현수막도 그녀의 아이디어다. 농사를 지어본 경험이 있어서 나에게는 농사 선생님이다. 웃음소리가 워낙 커 존재감을 확실히 드러내는 낙천주의자 ‘경나’, 나이는 어르신이지만 얘기를 나누면 친구 같은 허당기 폴폴 풍기는 ‘재미’, 봄과 여름, 가을(쌍둥이 아기)의 엄마인 외유내강이 느껴지는 ‘다솜’, 여리 여리한 목소리로 “저는 할 줄 아는 게 없어요.” 이러면서 웬만한 건 다 할 줄 아는 ‘풀꽃’, 아이들과 잘 놀아주며 느릿한 말투 속에 단단함이 느껴지는 ‘정온’, 단톡방의 글을 보면 따스함이 그득 묻어나는 ‘봄’, 프랑스 자수 장인의 피가 흐르는 손끝 야무진 ‘파도’, 웃을 때 눈이 초승달이 되는 미소가 예쁜 ‘레아’, 허브텃밭단에 무슨 일이 생기면 어디서든지 짠하고 나타나 해결해 주는 우리들의 홍반장 ‘피오나’, 그리고 잘 웃지는 않지만 웃을 때 온 얼굴로 환하게 웃는 작지만 큰 ‘거인’.
몇 자 적다보니 농사이야기보다 사람이야기가 더 기억에 남는다. 농사보다는 사람에게 마음을 쏟은 탓일 것이다. 왠지 텃밭에 미안한 마음이 들어 옥상텃밭에 올라와 본다. 6월 7일까지 원고를 보내달라고 했는데 오늘은 8일이다. 조급한 마음으로 오전 내내 텃밭 야외테이블에 앉아 이 글을 쓰고 있는데 눈앞의 초록색 풍경 덕에 마음은 편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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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파 꽃이 피었습니다. 꼿꼿하고 가느다란 대파 꼭대기 위에 작은 꽃들이 동글고 크게 뭉쳐있다. 게으름뱅이 밭주인이다. 허브원형텃밭은 크고 작은 허브와 나무들의 초록색 생기로 가득하다. 그 뜨겁던 태양도 오늘은 구름 속에 가려져 있다. 텃밭을 눈으로 살피고 하늘을 쳐다보고 주위를 둘러본다. 오랜만이다. 이렇게 찬찬히 무언가를 오래 바라본 것이. 그러다 반가운 소리가 들린다. 차 경적 사이로 들리는 새소리다. 참새 한 마리. 직박구리 두 마리, 산비둘기 한 마리, 벌 한 마리, 하얀 나비 한 마리가 텃밭의 친구가 되어주었다. 중간 중간 시원한 바람이 불어준다. 다행이다. 텃밭에 마음을 못준 미안함을 조금 거두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