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겨울은 참 길었다. 누군가에겐 올겨울이 유독 빨리 지나가는 그 무엇이었다던데, 그 사람의 겨울을 내가 가져다 살았나보다. 1월 한 달 동안 나는 내 안에 똬리를 틀고 살았다. 수행자의 자세로, 그러나 태도는 수행자답지 못하게. 몸 안에 사리가 생긴다면 그건 응고된 혈액이었을 거다. 통 순환되지 않았던 몸과 마음이 만드는 결정. 현존 명상에서는 그 이름대로 현재를 살라고 가르친다. 쉽지 않은 일이다. 어쩔 수 없이 현재에 놓인 몸에 비해 마음은 쉽게 과거나 미래로 가기 때문이다. 현재에 머무르기 위해서는 몸과 마음이 연결되어 있어야 한다. 다시 말해 현재에 놓인 몸뚱아리를 마음이 잘 붙잡고 있어야 한다. 혹은 몸이 마음을 잘 붙들고 있어야만 한다. 그럴 때 가장 중요하게 떠오르는 건, 몸과 마음을 연결해주는 도구로써의 숨이다. 내 호흡이 어디로 들어오고 나가는지를 잘 살펴보다 보면 몸과 마음이 자연스레 한곳에 모여 서로를 탐색하기 시작한다.
그동안 내 숨은 어디로 가 있었을까. 숨의 흔적이 드나든 자국을 따라 올라갈 수 있으면 좋으련만. 사방을 둘러보았을 때 찾은 자국은, 한 자리에 오래 머무르느라 깊게 파인 홈이다. 너무 작지도 크지도 않은 돌이 자신의 의지와는 다소 무관하게 앉은 자리를 지켰을 때 생기는, 돌의 모양만큼의 표시. 그 돌은 자신의 발밑 풍경이 어느샌가 익숙해져서 아무 생각 없는 날들을 보내다가도 이따금씩 밀려오는 강한 권태로움에 몸을 이리저리 굴려보고 싶었을 것이라고, 움직이고 싶다고 속으로 소리를 질렀을 거라고 감히 짐작해 본다. 그럼에도 멀리서 보이는 건 메마른 모래가 얇게 깔린 땅 위에 가만히 놓인 돌 하나였을 것이다. 메마른 땅 위에서 나는 것들은 늘 그렇게 조용한 겉모습을 하고 있는 걸까? 어떤 속엣말을 품었더라도.
그래도 겨울나무는 참 예뻤다. 저 위까지 뻗은 얇은 손가락들을 보다 보면 어떤 노래가 들리는 듯했다. 옅은 회색의 시린 하늘을 건반 삼고 바람 리듬에 맞추어 연주하는 기분은 어떻냐고 묻고 싶었다. 연주회에서 중요한 건 드레스가 아니라는 듯 몸에는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모습이 고왔다. 그렇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나무의 겉모습만을 볼 수 있는 나의 입장이었을 테다. 사실 나무의 입장에서는 그냥 생존하고 있는 건데. 고운 태를 만들어 내려는 목적 없이, 그냥 자신에게 온 겨울에 맞는 모습을 취하면서 살아가고 있는 거다.
사실 우리 안에도 생존법은 다 있다. 우리의 조상이 여러 격변기나 새로이 만난 환경에서 생존해내며 그 방법을 유전자에 각인시켜 놓았다. 다만 지금은 ‘살아간다’는 것의 초점이 많이 바뀌어 그렇다. 먹고 자는 것 말고도, 다른 많은 것들이 우리에겐 문제가 되어버렸고 그 문제를 해결하려다 도리어 잘 먹고 잘 자는 법을 잊어버려 그렇다. 그러면 다시 원점부터 시작하게 된다. 어떻게 해야 잠에 들 수 있지, 어떻게 해야 숨을 쉴 수 있지 하고.
실은 그때 그 돌 안에도 숨이 있었다. 안에 있는 숨을 어디로 보낼지 골몰하느라, 그 밖의 것에 대해서는 잠시 단단한 껍질을 만들자고 했던 속엣말이 있었다. 더 안으로 들어가 볼걸. 뭉친 돌이라고 오래도록 혼자 두지 말고 말랑한 속도 좀 들여다볼걸. 겨우내 혼자 있던 속엣말과 이제야 숨을 나누게 된 내가 겨울의 끝에 서 있다.
내가 이별한 건 겨울이 아니라 겨울의 나였다. 이건 잘된 것도, 잘 안된 것도 아니다. 그냥 나무가 제 껍질을 벗기듯 나도 어떤 시간을 거쳐 그때의 겹을 벗고 서 있는 거다. 그 길목 끝에는 돌멩이를 쥐고 있는 내가 있다. 이젠 속엣말이 빠져나와 껍질만 남아 작아진 돌멩이가. 사실 이런 돌멩이들을 손에 쥔 건 처음이 아니다. 나의 옛 주머니에 이미 여러 개가 모여 잘그락 소리를 내고 있다. 이별 끝에 서서 돌멩이를 쥘 때마다 알았다. 이런 돌멩이를 언젠가 또 쥐게 될 거란 것을. 그리고 또 알았다. 절대 움직일 것 같지 않은 돌들도 나중에는 가벼운 돌멩이가 돼서 굴러갈 거라는 것을. 가끔은 잊어버리기도 하지만 돌멩이가 쌓일 때마다 다시금 되새길 수 있을 것이다. 내가 그때의 나와 이별하며 얻은 제일 소중한 돌멩이들은 반드시 또 돌의 모습으로 나에게 올 것이고, 각기 다른 속엣말을 나에게 속삭여줄 거라고.
글 · 사진_ 나스히(하자글방 후속모임, 둥글레차)
하고 싶은 일 하며 산다.
또는 그러려고 노력한다.
요즘 가장 마음 쏟는 것 중 하나는 쓰는 일.
쓰면서 자유로워 지는 일.
쓰는 사람들이랑 마음 나누며 살고 싶다.
그러려고 노력한다.
글감: 이별 후에 얻은 것들
매년 제게 불쑥 찾아온 2월을 어리둥절 맞이하다 보면 확실히 1월보다는 여러모로 더 마음에 드는 시기로 접어든다는 생각이 들어요. 못 견딜 것 같던 매서운 추위도 이제 서서히 풀리겠지 하는 기대도 해보고, 또 봄과 함께 찾아올 여러 새로운 시작을 떠올리게 되지요. 지나온 수십 번의 2월을 돌아보니 씩씩하게 떠나는 졸업도 생각하게 되고, 발렌타인데이에 오가는 풋풋한 사랑이나, 한편으로는 서글프게 이별하는 관계들도 떠올라요.
저는 최근 몸담고 있던 환경과 이별을 했는데요. 이별이라는 것이 결코 슬픈 것만이 아니라는 것을 몸소 경험했답니다. 그런 경험이 처음이라 이에 대해 매일매일 생각하고 비워내며 마음을 가뿐히 하며 지내고 있어요.
여러분은 아름다운 이별을 해보신 적이 있나요? 그 대상은 어떤 것이었나요? 혹은 시간이 지나도 아름답다고 퉁칠 수 없을 만큼 저리고 아픈 이별의 경험도 있었나요? 반대로 깜찍하고 사랑스럽고 귀여운 이별도 여럿 떠오르네요. 여러분이 살아가며 마주한 이별과 그 후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이별 끝에 서서 꼭 쥐고 있던 손을 펼쳤을 때 얻은 것이 무엇인지 궁금해집니다. _유영
후속모임 〈둥글레차〉
하자글방 후속모임은 정규 과정 이후에도 스스로 글감과 마감을 굴려가며 글쓰기 공동체를 꾸려가고 있습니다. 2024년 가을학기 하자글방 후속모임 〈둥글레차〉는 어느덧 세 번째 해를 맞이했습니다. 매달 모임을 통해 서로의 글을 합평하고, 한 권의 진(Zine)으로 엮어내며 이야기를 더해가고 있습니다.
From. 하자글방
하자글방은 함께 읽고 쓰고 합평하며 자신만의 이야기를 발견해가는 청소년 글쓰기 커뮤니티입니다. 정규 과정 이후 3개의 후속모임이 진행 중이며 후속모임에서 나온 글 가운데 일부를 나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