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작업실 OOEO’ 이름으로 하자의 본관 3층 공간을 사용한 지도 어느덧 5년째. 3층 306, 307, 308호에 들어서면 제일 먼저 나오는 말이 ‘어? 작업실 냄새 난다’인데요. 켜켜이 쌓인 작업의 기억을 품고 있는 이 공간들에서 묘한 향(?)이 납니다.
공유작업실은 이름 그대로 함께 쓰는 작업실이자 다양한 형태의 넘나듦이 이루어지는 곳입니다. 단순히 공간만 함께 쓰는 것은 아니고요. 장르의 경계를 넘나들고 서로의 작업을 나누며 머리를 맞대고 새로운 궁리를 해보기도 합니다. 올해 4월부터 창작자 13명의 입주와 함께 5기 활동을 시작하게 되었지요.
1/1
Loading images...
작업실을 둘러 보고 개인 자리를 찜하던 오티 날
작업실 신청과 상호 인터뷰 과정에서 서로가 가장 중요하게 확인하는 것은 ‘공유작업실이 본인에게 어떤 계기가 될지’입니다. 이 시간들이 어떤 경험으로 남을지 다시 한번 생각을 가다듬고 스스로의 목표를 정리해 보는 시간을 가지고요. 이야기 나누는 과정에서 새로운 기대가 생겨나기도 합니다. 서로의 작업과 생각을 구경하고 또 나의 관심과 연결 지어보는 대화 자리가 무척 즐거웠던 기억이 있네요.
공유작업실은 주 2회 이상 공간 이용이라는 최소한의 의무를 제외하고는 정기적인 일정이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무엇보다 작업을 할 때의 자기 동력이 중요한 곳입니다. 학교나 회사처럼 반드시 해야만 하거나 지켜야만 하는 일정이 없고 누군가 무언가를 대신해 줄 수 있는 곳이 아니기 때문에 자기 관심사에서 출발하는 자율성과 즐거움이 있으면서도 자기 자신과의 약속이라는 쉽지 않은 책임이 따르는 곳이지요. 사실 집을 나서서 작업실에 가는 것부터가 쉽지 않은 일이니까요!
또 공간을 사용하는 만큼 창작 과정에서 창작자로서 본인에게 물리적 심리적 공간이 왜 중요하고 왜 필요한가를 주요하게 질문했습니다. ‘큰 규모의 작업을 하고 있고 집이 아닌 물리적인 작업 공간이 필요해서’, ‘패브릭과 같이 특정 재료를 중심으로 하자의 장비와 도구를 활용해 작업 방식을 탐구해 보고 싶어서’일 수도 있고요. ‘소속이 없는 상태가 낯설고 심지어 무력함을 줄 때가 있어서’, ‘혼자 작업하는 것이 외롭고 불안해서’ 등의 이유로 심적으로 안주할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할 수도 있고요. 상호 인터뷰에서 들려주었던 '작업 공간이 좁아지니 생각도 그만큼 좁아지는 것 같았다'는 이야기에는 뼈아프게 공감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함께 쓰는 공간이니만큼 무엇보다 ‘서로의 작업 결과뿐만 아니라 과정을 들여다보고 싶어서’, ‘작업에 대한 반응을 주고받는 동료가 있었으면 해서’, ‘작업을 매개로 교류하고 싶어서’ 등의 교류 욕구가 가장 컸지요.
1/1
Loading images...
공유작업실 공간으로 쓰고 있는 본관 3층 306, 307, 308호
1년이 채 안 되는 시간이라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올해 공유작업실은 아주 밀도 높은 몇 개월을 보냈습니다. 작업실에서는 굉~장히 다양한 이벤트와 작당들이 벌어지는데요. 개인 자리에서 작업을 할 수도 있고, 인쇄 장비나 실크스크린 같은 창작 도구를 이용할 수도 있습니다. 종종 필요나 요청에 따라 외부 강사를 섭외해 특강이나 워크숍을 열기도 해요. 아 참, 가만히 앉아 있기 아까운 날씨에는 가고 싶었던 스튜디오나 전시 공간을 방문하며 환기를 하기도 하고요!
1/1
Loading images...
2025년의 나날들. 날씨 좋은 날엔 땡땡이!
인쇄 마스터를 향해
하자의 퓨처랩 공간에는 정말 다양한 인쇄장비들이 있는데요. 장비 사용 경험이 쌓여야 퓨처랩 공간 활용도 커질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활동 초반부에는 장비 교육과 더불어 장비 이용법을 익히는 시간을 많이 가졌습니다.
그중에서도 특히 이용 문의와 요청이 많은 장비가 바로 리소 프린터인데요. 리소의 아날로그(?)한 작동 방식 때문에 예상치 못한 오류의 순간도 굉장히 많지만 그만큼 빈티지한 색감은 대체불가인 매력적인 인쇄장비입니다. 판화 기법과 유사한 작동 방식으로 이미지를 찍으면 찍을수록 능숙도가 쌓이고, 때로 계획하지 못한 우연의 색감을 얻을 수도 있지요.
물성이 있는 작업물을 만들어 낼 때, 비용이나 접근성의 문제로 장비나 재료를 마음껏 다루기 부담스러운 상황이 생길 때가 있지요. 작업실을 쓰는 동안은 멤버들이 장비를 직접 다루며 양껏 실험을 해보는 과정을 가지기를 바라는 마음이었네요. 창작 작업의 지속성이나 퀄리티에 대한 갈증이 어느 정도 해소될 수 있기를 바라면서요.
1/1
Loading images...
하자의 각종 장비들을 다뤄보며 모르는 건 서로서로 알려줍니다.
1/1
Loading images...
작업실 곳곳에서 찾을 수 있는 시트 커팅을 활용한 작꾸(작업실 꾸미기)의 흔적들
1/1
Loading images...
수차례의 작업를 거치며 리소 4도 양면 인쇄 마스터로 거듭난 이들
서로에게 배우는 법
공유작업실에는 직접 듣고 싶은 워크숍을 제안할 수 있도록 ‘참여자 제안 워크숍’을 지원하고 있는데요. 올해는 본인이 진행자로 직접 진행해 보고 싶은 워크숍을 제안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습니다. 우선 멤버들이 서로의 작업을 들여다보고자 하는 욕구가 컸고, 작업실을 함께 쓰는 동료에게 배운 매체 활용법이 본인의 창작 작업의 가능성을 확장하는데 다른 어떤 워크숍이나 수업보다도 많은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했어요. 게다가 멤버들이 관심을 가지는 창작 매체나 주제가 거의 대부분 서로에게 알려줄 수 있는 내용들이었기 때문에 ‘어! 그거 ○○이 알 텐데!’가 절로 나왔거든요.
능숙하지 않더라도요, ‘시도해 보기 망설여졌던 창작 기법을 이번 기회에 다루어 보고 싶은 사람’, ‘알고 싶은 주제 또는 창작 재료, 툴, 도구를 함께 탐구해 보고 싶은 사람’이 모여 〈홍지의 진 만들기〉, 〈엉킨의 지판화〉, 〈예라이의 우레탄 캐스팅〉, 〈연우의 웹 코드 읽기〉, 〈우주의 레진〉을 주제로 총 5개의 워크숍을 함께 했습니다. 서로의 작업 방식과 스타일을 엿볼 수 있는 즐거운 시간들이었지요.
1/1
Loading images...
몇몇은 계속해서 작업 시간이 늘어나 영원히 끝나지 않는 워크숍이었다는 소문이…
느슨함이 만드는 끈끈함
올해로 2회를 맞이하는 아트마켓은 작년보다 조금 더 큰 규모로 진행되었습니다. 아트마켓에는 공유작업실 멤버 전원이 참여했는데요. (사실은 제가 그러자고 부추겼어요. 하하) 우선 이렇게 어마어마한 창작자들이 있다는 사실을 널리 널리 알리고 싶었고요. 그 어마어마한 서로를 동료로 확인하는 시간이었으면 했습니다. 창작자가 자신의 창작과 작업을 보여줄 수 있는 무대이자 세상에 나오지 않았던 B안, 습작, 이번에 처음으로 만드는 모든 작업을 창작 활동으로 소개하는 자리이기를 바랐고요. 소비의 방식으로 이루어지는 행사가 아니라, 유무형의 무언가를 주고받으며 새로운 재미와 관계가 생겨나는 공유의 장이기를 기대하면서요.
아트마켓 며칠 전부터는 야간작업으로 다들 바쁜 마감 주간을 보냈어요. ‘해볼까?’로 출발한 작업들이 ‘해냈다!’하는 감탄사로 바뀌기까지 창작의 고통도 힘껏 느끼면서요. 그렇게 ‘해볼까?’에서 출발한 느슨한 마음들이 끈끈함을 만들어내 9월에는 오픈 스튜디오와 예라이의 사운드 설치 전시, 11월에는 언리미티드 에디션 서울아트북페어 참여와 갤러리105에서 석의 개인전도 있었네요. 모두의 추진력과 마감력에 감탄했지요.
1/1
Loading images...
아트마켓, 오픈 스튜디오, 아트북페어까지!
1/1
Loading images...
갤러리105에서 진행한 석의 개인전
완성된 결과물을 증빙으로 요구하거나 완성에 대한 부담을 갖기보다는, 과정에서의 답답함이나 궁금증에 대한 돌파 방법을 함께 찾아가는 시간이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공유작업실 판의 한 축을 열심히 돌려보았지요. 예상치 못한 곳으로 판이 커지고 굴러가는 것을 지켜보며 그 과정에 참여하는 것이 여러모로 즐거운 일이었어요. 멤버들은 어땠을까요? ‘공유작업실을 통해 변화 혹은 성장했다고 느끼는 부분이 있나요?’ 질문에 대해 멤버들 스스로가 붙인 이유와 의미들을 끝으로 저도 조금씩 공유작업실의 한 해를 마무리해 보렵니다.
졸업전시를 하고 작업과 나를 머물게 할 공간이 필요했어요. 공유작업실에서 공간을 떠돌지 않아도 된다는 안정감이 들었고 동료들과 기쁨과 힘듦을 나눌 수 있어서 좋았어요.
작업을 지속할 수 있는 조건들에 대해 가늠해 본 것. 어떤 외부적 동기들이 계속 나를 움직여줬던 경험을 한 것 같다.
혼자 디지털 작업을 하다 보니 실물로 보여지는 것에는 크게 신경 쓰지 않는 습관이 있었는데, 작업실에서 서로 작품을 보여주고 아트마켓에도 참여하면서 다양한 물질로 작품을 재현할 수 있다는 것을 배웠어요.
시야가 많이 넓어질 수 있었고, 혼자 있었다면 도전하거나 생각하지 않았을 재료, 방법들을 시도해 볼 수 있어서 좋았어요.
폭을 넓히게 된 것 가장 중요한 것 같아요. 저는 계속 회화 작업 위주의 소규모 작업을 해왔는데 여러 가지 워크숍과 장비를 다루면서 작업의 규모도 커진 것 같아요. 방향성도 세분화되거나 확장됐어요. 그게 변화 혹은 성장을 만든 것 같아요.
하고 싶은 건 그냥 하자! 라고 많이 생각했고, 다양한 작업들을 하는 친구들을 만나서 많이 힘이 되었어요.
손으로 만져지는 작업에 대한 애정이 더욱 커졌고, 덕분에 새로운 매체를 배워봤습니다. 서로 협업을 제안하거나, 자신의 작업을 세상에 내놓는 동료들을 보면서 저도 주체적으로 기회를 만들어가는 태도를 배울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서로 워크숍을 열면서 습득할 수 있는 것들도 있었고 동료들과도 더 돈독해졌습니다. 그게 작업을 하면서 힘이 되었고 그러면서 자신감도 생긴 것 같아요.
리소 인쇄기와 친해진 것. 그리고 하고 싶은 일들을 마구 벌리는 능력을 기르는 것.
일단 공유작업실 멤버들이 여러 가지 매체를 다루기 때문에 얘기하는 것만으로도 다른 분야를 엿보고 경험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그렇게 일상적으로 얘기를 나누면서 아이디어가 나오고 또 그게 협업으로 이어졌던 것 같아요.
작업을 아주 가까이에서 볼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무척 재미있는 일이었어요. 각자의 관심과 잘하는 분야가 다 다르기 때문에 13가지의 어려움에 각기 다른 13가지의 돌파구를 찾아볼 수 있는 동료가 생겼다는 게 가장 든든한 일이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