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생도 코딩을 배우는 시대, 세대를 거듭할수록 스크린에 삶을 깊숙하게 들여놓는 때입니다. 스마트폰, 랩탑, 데스크탑- 스크린 없는 삶을 상상하기 힘들기도 하지요. 클릭 몇 번이면 원하는 메시지를 누구와도 공유할 수도 있고, 심지어 내가 보낸 메시지를 읽었는지 아닌지도 단숨에 확인이 가능합니다. 이런 마당에 왠 손편지? 요즘 누가 손편지를 쓰긴 하는 걸까요? 가물가물 기억 저편에 있는 손편지, 추수작업실이 손편지를 소환한 이야기, 들어보실래요?
시간을 거슬러 올해 초, 추수작업실은 몇 차례의 말없는 글짓기를 열었습니다. 고르는 종이도 펜도 각양각색인 만큼 적어내는 글도 다양했지요. 그런데 사람들이 가장 많이 쓰는 글이 있었으니- 그건 바로 편지였습니다.
'글쓰러 오긴 왔는데 뭘 써야 할 지 몰라 편지를 적었다'
그랬습니다. 여기서 상추와 장수는 가장 쉽고 부담 없는 글이 편지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요.
차후에 편지를 키워드로 뭔가 해보자- 라는 막연한 마음이 있었던 한편, 단순히 글짓기 테마를 편지로 정한다 한들 청소년들이 찾아오지 않을 것 같았어요. 무엇보다도 편지란, 굳이 시간 내서 어디 가야만 쓸 수 있는 것이 아니기도 했구요. 추수작업실에게는 열린 공간이 필요했습니다. 누구나 드나들 수 있고 며칠이고 테마를 잡아 편지 테이블을 펼쳐 놓을 수 있는 장이 필요했던 거지요. 그러던 차에 청소년 카페 그냥을 새로이 발견하게 됩니다.
<한여름 낮에 편지 한 장 어때요?>
그래서 준비했습니다. 카페 그냥 편지쓰는 날, '한여름 낮에 편지 한 장' 시원한 음료 한 잔 테이블에 놓고 홀짝 홀짝 마시며, 마음껏 편지를 써볼 수 있는 장을 마련해 보았지요. 한쪽 벽면에는 상추와 장수가 그동안 받았던 편지를 전시해서 남의 편지를 대놓고 읽을 기회를 열기도 했어요. 10여 년 전 유행했던 봉투까지 오려 만드는 편선지와 해외에서 날아온 카드 엽서 또 그림 편지까지 벽에 걸어두었어요. 오다가다 슬쩍 보며 피식 웃게 되기도 했구요, '나도 한 번 써볼까?'의 마음을 불러 모으기도 했답니다.
편지쓰기에서 가장 중요한 건 뭐다? 바로 펜과 편지지겠지요. 그날 그날 기분에 따라 또 받을 사람에 따라 어떤 색깔의 펜을 쓸지 고려하고, 모눈종이부터 원고지 그리고 엽서까지- 편지지까지 정성스럽게 고르고 또 골라볼 수 있었답니다. 어느 누구는 기간이 끝나면 읽지 말고 폐기해 달라는 당부를 남기고 편지를 썼어요. 아마 누구 몰래 진심 가득 털어놓는 '임금님 당나귀 귀!'가 필요했었나봐요. 나에게 보내겠다며 작은 글씨를 빼곡히 적어내던 청소년도 있었답니다. 손편지의 진화는 어디까지 일까요?
<우리 서로의 삶에서 또 만나요>
사실 추수작업실이 이번 편지쓰기를 통해 겨냥하고 싶었던 것은 글쓰기 문화가 조금이나마 익숙한 형태로 확산되는 것이었어요. 우리가 편지 안에서도 다양한 글쓰기 변주를 스스로 발견하듯이 그것이 자연스럽게 다른 형태의 쓰기의 시간으로 연결되길 바랐지요. 모든 것이 빠른 시대에, 오직 나만의 속도로 한 글자 한 글자 적어 내려가며 숙고하는 시간을 경험하기도 바랐고요. 편지 봉투를 봉했을 때에 찾아오는 알 수 없는 뿌듯함이 일상에서 더 자주 찾아오기도 바랐답니다. 시간이 지나고 편지를 열어봤을 때의 쑥스러움과 반가움도 덤이지요.
어떤 편지를 쓰고 싶나요?
어떤 편지를 쓰셨나요?
우리 언젠가 문득 떠오르는 그날, 망설임 없이 편지쓰며 그렇게 또 만나요-
ps.
카페그냥에 버팀목처럼 우뚝 앉아있는 들레도 손 편지 한 장 적어보았다고 하지요? 드나드는 청소년들에게 목청껏 편지쓰기를 소개해 주시며 추수작업실을 도와주시기도 했고요. 특별히 감사 인사를 전해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