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자는 유난히 춥습니다. 콘크리트로 만들어진 벽과 바닥에서 냉기를 뿜어내는 것 같습니다. 작년 가을과 겨울, 하자에서 새로운 학기를 보내며 생긴 습관은 양말 두 개를 겹쳐 신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인지 뜨문뜨문 옆 학교 죽돌들이나 판돌들을 만나는 건 훨씬 상대적인 온기로 다가왔습니다. 욕심이 생겼습니다. 더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싶다. 더 많은 사람들이 하자에 왔으면 좋겠다. 더 많은 사람들과 더 많은 작업을 하고 싶다. 하자가 더 따듯해지면 좋겠다. 하자는 차가운 공간이 아니라고, 믿으며, 봄을 기다렸습니다.
마침내 봄이 왔습니다. 등굣길에 보이는 연두색 새순이나 만개할 준비를 하는 꽃봉오리가 눈에 띕니다. 새 생명들이 깨어나 새로운 일 년을 시작합니다. 점점 가벼워지는 옷이나 따듯해지는 날씨가 콧노래를 부르게 하고 곧 가득차게 피어날 봄꽃을 상상하면 절로 사랑을 하고 싶어지는 계절입니다. 봄은 정말 아름답고 설레고 간지러운 계절인데, 올해 봄은 무언가 씁쓸합니다. 하자센터로 오기 위해 2호선을 타면, 합정역에서 당산역으로 넘어갈 때 찬란한 햇살이 비추는 한강물의 반짝임이 눈이 부실 정도로 아름답습니다. 난 그 풍경을 정말 좋아해서 항상 들여다보는데, 어느 날은 깜짝 놀랄 정도로 뿌옜습니다. 일부러 모자이크 처리라도 한 것처럼, 뿌옇게 텁텁했습니다. 이 모습이 며칠 동안 지속되었습니다.
그리고 인터넷 기사를 읽습니다. 여전히 끝나지 않는 코로나 바이러스의 현황이나 우리가 주목해야 할 버마의 상황에 관련된 글을 읽습니다. 범죄와 차별, 혐오, 폭력, 그리고 잊지 말아야 할 것들에 대해 읽고 또 읽습니다. 잔뜩 무거워진 마음을 안고 학교에 도착합니다. 올해 하자의 봄은 어떤 모양일까. 궁금증을 가집니다.
새 학기, 새 시작.
첫 만남, 첫 인사.
'새'와 '첫'으로 시작하는 말들이 넘칩니다. 넘치고 넘쳐서 파도가 되어 우리를 휩쓸어 갑니다.
봄은 그런 계절인 것 같습니다. 설렘과 기대 그리고 혼란과 낯섦이 공존합니다. 그러니 우리는 최선을 다해 서로를 반겨주고 환영해주어야 합니다.
작업장학교가 입촌식 축하 공연으로 부른 노래는 '우리의 하루'입니다. 작업장학교의 졸업생들이 굉장히 자주 부른 노래이며 원곡은 버마의 민중 가요입니다.
"이 세상이 어둡고 너무나 아프고 답답해도
나는 눈을 감지 않고 마주할 거야.
이 세상에 나 하나가 눈부신 해가 되진 못해도
우리가 모두 모이면 밝힐 수 있어.
영웅이 되지 않아도 내 이름 아는 사람 없어도
내 평범한 하루로 세상을 바꾸네.
우리가 살고 싶은 하루, 만들 수 있는 하루, 웃으며 꿈꾸는 하루.
그렇게 살아가는 거야."
2021 하자마을 입촌식 중, 작업장학교 죽돌들의 축하공연
씁쓸한 봄의 입촌식을 위해 이 노래를 연습하며 다짐했습니다. 내가 서 있는 자리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실천하겠다고, 나 혼자서 할 수 없는 일은 하자의 많은 사람들과 함께 만들어가겠다고. 가림막 너머로 서로를 바라보고, 마스크 위로 눈웃음 짓고, 세 걸음 떨어진 거리에 서서 작년보다는 조금 더 큰 목소리로 말해보겠습니다. 반갑습니다. 환영합니다. 우리 잘 지내봅시다. 조금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봅시다.
너무 거창하다고 느껴진다면, 우리 그냥 같이 재잘재잘 이야기를 나눕시다.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단 한 번뿐인 소중한 2021년의 봄을 함께 열어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