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하자야. 생일 축하해. 난 너랑 같은 해에 태어났는데 내가 본 동갑내기들 중 네가 가장 큰 생일파티를 여는 거 같아. 넌 참 복도 많다. 그래도 네가 걸어온 길이 그만큼 많은 사람에게 복을 나눠줬던 거겠지?
하자에서 드나들기 시작했던 2017년 여름부터 이곳에서 했던 것들을 쭉 적어보았어. 스물이 되기 전 마음자리를 만드는 스프링캠프, 스프링 캠프에서 만난 인연으로 2년째 매주 목요일 책모임 조용한 혁명에 왔고 그곳에서 내 의문을 함께 나누고 공감하는 시간을 가졌어. 10대의 불안과 질문을 연구하는 10대연구소에선 때론 열띤 토론을, 때론 눈물 젖은 고백을 해보기도 했지. 청소년이 직접 만들어갔던 제10회 서울청소년창의서밋 기획단에선 대학에 가지 않는 삶에 대해 질문을 던지고, 하자 유튜브에 ‘진전은 없지만 진정은 된다’며 비대학으로 스물을 보낸 이들이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하는 콘텐츠를 만들었지. 끼적인 일기들을 노래로 만들었던 ‘부르는 일기’ 워크숍과 오직 사진을 찍기 위해 모인 사진동아리 한패, 내 이야기들을 컨텐츠화 해보았던 하자 디지털 에디터즈까지. 그간 해본 적 없지만 해보고 싶었던 활동들을 마구 해보기도 했어. 오늘은 한 권의 책을 읽고 한 편의 글 쓰고 한 번의 여행을 하는 주말로드스꼴라를 수료했어. 네 안에서 얼마나 돌아다녔던지, 이거 말고도 더 있다? 즐거웠어, 정말.
하자야, 내 이름이 왜 나무인지 알아? 내가 ‘나무’라는 이름을 지었던 건 2017년 여름이야. 지금은 어엿하게 자리 잡아 청소년들을 만나고 있는 비커밍프로젝트의 모니터링을 했었는데, 그때 지었어. 하자 안에서는 모두 하자이름을 쓰니까 내 이름을 새로 지어야 한다는 거야. 난 어렸을 때부터 불리었던 애칭도 없고, 친구들끼리 장난스레 부르던 별명도 없고, 심지어는 자주 쓰는 게임 닉네임도 없는데 어떻게 할까. 초록색 펜 하나를 들고 고민하다 그냥 불쑥 튀어나온 나무라는 단어가 좋아서 나무라고 했어. 만약 내가 파란색펜을 들었다면 바다가 되었을까?
참 신기하지. 나는 의미 붙이기를 즐기고, 굳이 숨겨진 이야기 같은 걸 만들어 내길 좋아하는 사람인데 이름은 쉽게도 지었어. 더 신기한 건, 단숨에 지어낸 나무라는 이름이 적당히 몸에 맞는 옷처럼 편하게 느껴졌다는 거야. 나도 몰랐는데 내가 나무를 좋아했나? 산이나 바다, 별이나 하늘보다 나무를 더 좋아했었나? 그럴지도. 그렇지만 내 이름이 편해졌던 건 나를 부르는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 일거야. 그 왜, 잘 알려진 시가 있잖아.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이 두 문단이 너무 유명해서 이게 끝인 줄 알았는데 말이야. 그 뒤는 이렇더라.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는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 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나는 너에게 너는 나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의미가 되고 싶다.
작년에 어떤 분이 내 이름을 물으시기에, 나무라고 말했어. 그랬더니 이러시는 거야. 또 다른 나무가 들어왔다고. 하자에 제일 많은 이름이 ‘하루’랑 ‘나무’라나. 좀 더 개성 있는 이름으로 지을 걸 후회하지 않았냐고? 아니, 그런 생각이 들 법도 했는데 되레 궁금해지더라. 이곳을 거쳐 간 각기 다른 나무들은 어떤 사람들일까? 사람들은 그 사람을 어떤 나무로 생각했을까? 하자에게 그 나무는 어떤 의미일까? 하자의 나무들 중 한 그루 나무가 된 다는 건, 하자의 하루들 중 하루가 되는 것만큼이나 근사했어.
우리는 늘 남들보다 더 특별한 사람이 되어야한다고 배우잖아. 남들과는 다른 것, 더 많은 것, 더 대단한 것을 해야만 비로소 나로 인정받아왔잖아. 성적을 잘 받아서, 좋은 대학에 진학하는 것도 모자라 이제는 내 꿈과 이야기마저 한 톨의 진심을 보태서 자소설을 써야하는 세상이야. 살면서 어느 정도의 영혼을 팔아야한다고는 하지만 이건 너무 심하지 않나 싶을 때가 있어. 매일매일 부모에게서, 학교에게서, 사회에게서 내동댕이쳐지면서 영혼을 너무 많이 소모해버린 청소년들은 더 우울해지고, 불안해져가. 스스로 물을 주기는커녕 물 한 모금 마시지 못해 메말라가고, 꽃이 필 새도 없이 꺾어서 비닐로 포장한 꽃다발을 만들어버리니. 마음에 어디 꽃 한 송이가 제대로 피어있겠어? 황폐해진 풍경을 품고 사는 청소년들에겐, 특별함보다 자기 자신을 그릴 수 있는 이름과 그걸 불러 줄 사람들이 필요한 게 아닐까?
하자에서는 더 특별해야할 거 같은 강박을 조금 던져버렸던 거 같아. 하자에선 나로 있되, 우리도 있었어. 서로의 안위를 물어봤어. 네가 남들보다 잘나고 특별해서가 아니라, 너도 나도 우리도 각자의 생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에. 내게 하자는, 스스로의 생에 물을 주고 싶어서 서로의 생에 물을 주고 있는 나무들이 있는 곳이야. 네게 주는 물이 다시 내게로 오는 곳이야. 앞으로도 그랬으면 좋겠어.
고마워 하자야. 내년도 잘 부탁해.
:: 글_ 나무(하자 청소년)
하자 스무 살에 함께 해주신 분들께
모처럼 집안의 큰 잔치를 치르듯 아침부터 늦은 저녁까지 분주한 하루를 보냈습니다. 누군가는 벽보를 붙이고 현수막을 걸었고, 누군가는 정성껏 음식을 준비했고, 누군가는 오는 이를 반길 입구를 챙겼으며 누군가는 무대를 꾸미고 공연을 준비했습니다. 저마다 맡은 일을 하면서도 사이사이 도착하는 옛 동료들과 격한 인사 나누기를 늦추지 않으며 다시 그 옛날의 하자 죽돌, 판돌이 되어 마을행사를 준비했습니다.
반가운 얼굴들, 그립던 모습들이 속속 등장했고, 묻혀 있던 이름들을 더듬더듬 기억해내며 포옹과 코끝 찡한 인사로 안부를 물었습니다. 대단위의 재회가 벌어지는 전에 없던 장면들이 곳곳에서 연출되었습니다. 알고 보면 20년 만에 보는 것도 아닌데 마치 그 이상의 시간을 보낸 후의 만남인 것만 같았던 까닭은 하자에서의 시간이 그만큼 뜨거웠던 이유이겠고, 하자 밖의 세상이 생각만큼 춥다는 것을 저마다 경험한 이유일 것입니다.
모두가 같은 옷을 입은 것도 하자 오픈 이례 처음 있는 일이었습니다. 고래이야기를 새겨 넣은 티셔츠를 입고 하자 스무 살을 축하하는 의례는 낯선 경험이었지만, 명절날 부모님 집 옷장에서 손에 잡히는 편한 옷으로 갈아입고 식구들과 둘러앉을 준비를 하는 것 같은 익숙함이었습니다.
강렬한 비트로 시작을 열어준 펑키짱은 이제는 왼쪽 무릎이 시린 나이가 되었다 했지만 1999년 그때나 지금이나 가장 젊은 음악인이었습니다.
하자의 첫 모습을 기억하는 천정현은 Once upon a time in haja를 보여주었고,
객석에서 튀어나온 노리단의 등장은 돌아온 히어로의 모습과도 같이 순식간에 모두를 그 옛날의 열광으로 초대했습니다.
싱어송라이터 솔가는 역시나 노래로 평화를 선물해 주었고,
하자에 왔던 그 모든 날들이 집에 가기 싫은 날들이었다는 혹이심의 허심탄회 이야기,
나무, 푸른, 강구야의 ‘하자야 고마워’는 한 땀 한 땀 정성으로 꾹꾹 눌러쓴 손편지 같이 뭉클했습니다.
4년만에 잠시 재결성한 유자사운드는 조한의 신청곡 'In My Life'를 부르며 10년마다 부활을 예고했고,
현역 죽돌 밴드 지삼선의 무대는 유자만큼 유유자적하고 의젓했습니다.
페스테자는 두말할 것 없이 완벽한 리듬과 노래로 브라질리안 흥세포를 다시 깨워주었습니다.
더 이상 할 것이 없으면 하자는 문을 닫아도 되는 동네라는 조한의 일침을 ‘하자다움’에 대한 주문으로 받으며 우리 모두 스무 살 생일 하루 동안 지난 20년을 소환하며 모두가 하자가 되었습니다.
현재의 하자의 죽돌, 판돌들과 앞으로 하자에 올 그들에게 하자의 등대가 되어 향후 20년을 밝혀 주겠다는 약속은 하지 못합니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은 지금 서 있는 곳에서 또 하나의 하자를 하는 것이라 소회를 밝혔던 강구야의 이야기처럼 지금 우리는 하자에서의 경험으로 각기 다른 곳에서 또 하나의 하자를 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어디선가 곳곳에서 작은 빛을 내는 하자로 다시 만나겠습니다. 'haja 20' 등번호를 달고 말입니다.
늘 하자의 뒷배가 됨을 서슴지 않으시는 큰산 박홍이 선생님, 새로이 청문원장을 맡아 주신 연세대학교 문화인류학과 이상국 교수님 축복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한달음에 달려와 준 모든 분들 반가웠고 고마웠습니다. 함께하지 못했지만 잊지 않고 메시지로, 선물로, 음식으로 마음 전해주신 모든 분들 감사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우리 평생의 인연을 만들어 준 하자야 고마워!
하자스무살생일파티 추진단
하자야 고마워에서 하자가 고마운 사연들을 읽어보실 수 있습니다. 앞으로도 하자야 고마워는 계속 열려있을 예정이오니, 미처 보내지 못한 사연들 계속 이어가 주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