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외로울 수 있는 것인가? 이토록 심심할 수 있는 것인가? 밤 11시가 되면 나는 어김없이 틴더를 켰다. 투명한 화면 뒤로 넘어가는 얼굴들을 보며 외로움을 달랬다. 마음에 드는 사람이 있으면 하트를 눌렀다. 연락을 했다. 안녕하세요! 뭐 하고 계셨어요? 질문을 받을 때면, 너랑 연락을 하고 있잖니. 말하고 싶었지만, 조금 더 정중하게 그냥 쉬고 있었어요! 대답했다. 공허한 마음은 채워지지 않았다. 재밌지도 않았다. 눈을 못 감는 밤을 견딜 수 없었다.
부끄러운 일이어도 글로 쓸 수 있다면, 최대한 쪽팔려주겠다던 나는 더 이상 랜덤 채팅 경험조차 쓰고 싶지 않다. 고독을 견디지 못해 아무 곳에나 얼굴을 올리는 사람임을 유쾌한 척 밝히고 싶지 않다. 그동안 적을 수 있다면 만족스럽다고 한 것은 다 거짓말이었을까? 사실 정말 부끄러운 일은 꺼낸 적도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을까?
잠 못 이루는 밤마다 이불을 뒤집어쓰고 눈물을 훔쳤다. 찬 공기가 올라오는 바닥에 누워 이불을 발로 걷어찼다. 무릎이 아프면 잠시 멈췄다. 목이 마르면 침을 삼켰다. 윗집에서 변기 물 내리는 소리가 벽을 타고 들렸다. 이 건물에 못 자는 사람이 또 있구나. 동질감을 느꼈다. 새벽에 들리는 고양이 울음소리가 무서웠다. 방금 태어난 신생아가 우는소리 같았다. 목구멍을 찢고 나오는 음성에 귀가 아팠다. 오래된 샷시가 바람에 부닥쳤다. 깜깜한 창문 뒤로 그림자가 살랑였다. 그 움직임에 시선을 맞추고 기다리면 아침이 왔다. 잠을 자지 않아 몽롱한 것이, 깊이 자고 난 후 같았다.
아침이 되면 누워 있던 자리에 앉았다. 무릎을 폈다. 고정된 채 운동했던 밤에서 일어났다. 산책을 나갔고, 책을 읽었다. 공부할 것을 챙겼고, 작업할 공간을 찾아 나섰다. 스터디 카페, 동네 커피 가게, 실기실을 전전했다. 조금이라도 기운을 차릴 때면 안도했다. 영원히 잘 때를 기다리던 밤이 멀게 느껴졌다. 해가 만든 힘으로 걸을 수 있었다. 벤치에서 잠시 쉴 때면 걸어 다니는 사람들을 보며 마음을 비울 수 있었다. 노란 밤을 지나 펼쳐진 하얀 세상에선 모든 것이 익숙했다. 반가운 만큼 지루했다.
매일 쉽게 녹아 버리고, 빠르게 단단해졌다. 우습게 지치고, 반갑게 웃었다. 점점 나를 알 수 없었다. 하루를 보낼수록 내일을 잃어버렸다. 적당히 하나를 배우고 무심히 열을 익혔다고 넘겨 짚어서일까? 무기력한 몸이 돌아온 생각을 반기다가도, 역시 돈 되는 일을 하고 싶었다. 돈을 이길 만큼 중요한 목적이 무엇이었는지 기억나지 않았다. 배고픔을 잊고 아픈 가슴을 넉넉히 채웠던 것이 생각나지 않았다. 세상을 이긴 사람이 부러울 뿐이었다. 승리의 비법, 보상 모두 오로지 돈일 것이라고 착각했다. 본 적 없는 얼굴을 막연히 동경했다. 함께 질투할 뿐이었다.
뻣뻣한 손가락이 키보드 위 가지런히 놓여 있는 동안 머릿속에는 이음새가 너덜너덜해진 생각들이 엉켜 있었다. 나란히 두고 비볐다면 더러운 것도 아닌 것을 방치했다. 손을 씻고 매듭을 골랐다면 금방 풀릴 것을 시도조차 못했다. 더러울수록 바닥에 굴리고, 꼬일 수록 날카로운 가위만 찾았다. 손이 베일 듯 날카로운 가위는 어디서 사는지 검색하기 바빴다. 얽히고설켜 찢어진 상처를 보고 있을 때면 한없이 가여웠다. 이 가여움이 얼마나 징그러운지 눈물이 급정거를 했다. 가을바람에 다리를 휘청이는 허수아비가 된 듯했다. 허허벌판에 나뿐이 없는 듯 울면서도, 흐르는 눈물이 어디까지 가는지 거리를 쟀다. 목격자가 있는지 확인했다. 시간을 물었다. 5시간 정도 운 거 같은데, 진짜 불행한 거 맞아요? 얼마나 엉망인지 보고 싶은데 사진 좀 부탁드려도 되나요? 삭제는 안 하셔도 돼요. 말하고 싶었다.
바람이 코 끝을 차게 얼릴 때까지 가만 서 있었다. 추위가 지나가니 얼었던 다리가 녹았다. 오줌을 지린 아이처럼 젖은 바지를 입고 가만히 서 있었다. 굳은 다리를 움직이고 싶었다. 꾸겨진 뇌처럼 쪼그라든 몸을 풀고 싶었다. 젖은 땅을 발가락으로 조금씩 걷으며 무릎을 들어 올렸다. 이동을 위한 걷기가 아닌 걷기를 위한 걷기를 했다. 밥을 챙겨 먹었다. 처졌던 배가 탄력을 얻을 때면 다시 걸었다. 한강 옆에 가지런히 놓인 길이 있었다. 마라톤 유니폼을 입고 뛰어다니는 사람들이 보였다. 가방에 매달린 깃발의 움직임을 따라 눈을 굴렸다. 이미 멀어진 그들을 따라 천천히 걸었다.
언젠가 날이 풀리면 같이 걷자던 친구를 불렀다. 불쾌한 일화를 연료 삼아 걸었다. 달리는 사람을 따라 뛰어 보자는 친구의 제안을 거절했다. 먼저 가는 친구를 따라 빨리 걸었다. 미세먼지를 가득 들어 마셨다. 턱턱 막히는 숨을 견뎠다. 다음 날도 만나야 직성이 풀릴 거 같았다. 약속을 지킨 그녀의 뒤를 따라 뛰는 날이 생겼다. 무릎이 아플수록 생각이 나지 않았다. 가득 이고 있던 덩어리들이 떨어져 나갔다. 자석같이 엉겨 붙어 무게 없이 거대했던 것들이 끊겨 나갔다. 숨을 쉬느라 단어를 잡지 못했다. 문장이 떠오르지 않았다. 머릿속이 비워지니, 아무 것도 잡히지 않았다.
땀을 빼니 잠이 왔다. 유난스러웠던 밤은 그리 시끄러운 것도 아니었다. 땀만 빼도 제풀에 지쳐 입을 닫을 정도였다. 가벼운 밤을 넘기지 못했던 날을 돌아봤다. 눈을 돌리지 못해 뒤척였던 날을 세어봤다. 하나씩 세던 수가 많아질수록 눈이 감겼다. 뭉친 실덩이가 꿈에 나왔다. 달리는 발에 묶여 보풀을 내며 통통 튀기고 있었다. 두껍게 꼬인 매듭이 돌부리에 걸려 탁탁 소리를 냈다. 거친 숨소리에 맞춰 박자를 만들었다. 분주한 소리를 떨구고 싶어 더 빨리 뛰었다. 멈추면 정확히 들릴 거 같았다. 잡으면 감길 거 같았다. 아침이 오도록 영원히 달리던 실덩이는 눈을 뜨고 나서야 보이지 않았다.
뭉친 실덩이가 왜 엉엉 소리를 내며 쫓아온 것인지 고민하기 전에 옷을 챙겨 입었다. 자고 일어난 것이 맞는지 헷갈릴 정도로 몸이 무거웠다. 한강을 마주하고 발목을 돌렸다. 무릎을 접었다 폈다. 같이 뛰었던 몸을 떠올리며 혼자 뛰었다. 숨이 가빠올수록 이고 있던 짐을 버린다. 이유 없이 사라져도 문제없는 마음을 땀방울과 날린다. 달리고 돌아와 쓸 수 있다면 아침일 것이라고 짐작한다. 현관문을 열어본다. 먼지 쌓인 키보드를 털어본다. 기억에 없는 단어를 떠올린다. 부끄러웠던 것을 적어본다. 지난 일이 되었음에 인사한다. 앞뒤가 똑같은 단어로 끝도 없이 반복하던 끝말잇기에 모르는 숨을 불어 넣는다.
2026.03.13. 하루
글 · 사진_ 하루(하자글방 후속모임, 아나바다)
숨통 출판사 계정을 운영하며
미정의 하루를 쓰고 그리고 있다.
영원히 바라는 것이 있다면,
쌓인 글이 푹신한 침대가 될 만큼 넉넉히 쓰고 자는 것.
글감: 신비한 일
3월 글감은 〈신비한 일〉입니다.
여러분은 신비한 일을 겪어본 적이 있으신가요? 저는 사람들과 모여 야심한 밤이 되면 각자에게 하나쯤 있는 무서운 이야기를 듣는 것을 좋아하는데요, “내가 어디서 들었는데...” “나는 가위에 눌린 적이 없었는데...”로 시작해서 방과 거실이 붙은 구조나 할머니 댁 신발장의 위치 같은 것들을 손짓 발짓을 해가며 열심히 이야기하는 사람들을 보면 손에 땀을 쥐면서도 애정이 가게 되더라고요. “머리카락인 줄 알았던 게 사실 빗자루였다”는 김새는 결말이든, “할아버지가 정말 잠시 다녀가신 걸까?”라는 따듯함이든, 우리가 완벽히 이해하지 못하는 사건은 미완인 면을 가진 채로 우선 매듭지어진 이야기라는 점에서 매력적이라고 생각합니다.
또는 아주 당연한 일인데도 내게 다가온 타이밍이 적절하면 신비한 일처럼 느껴질 때가 있지요. 저의 경우에는 어제 올리브영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친구와 ‘올리브영은 매장에서 트는 노래를 고를 수 없어 듣다가 질린다’는 이야기를 한 직후에 휴대폰을 켰다가, SNS에 완전히 같은 이야기가 올라온 것을 목격했답니다.
이성적으로 설명이 안 되는 일, 안 될 것을 알면서도 일어나길 바라는 일, 어렴풋이 진상을 알 듯하지만 신비한 일로 묻어두고 싶은 일... 아나바다가 들려줄 이야기가 궁금해요. _온리
후속모임 〈아나바다〉
하자글방 후속모임은 정규 과정 이후에도 스스로 글감과 마감을 굴려가며 글쓰기 공동체를 꾸려가고 있습니다. 2025년 후속모임 〈아나바다〉는 아껴 ‘쓰고’, 나눠 ‘쓰고’, 바꿔 ‘쓰고’, 다시 ‘쓰는’ 마음을 담아 올해 모임을 열었습니다. 글방지기인 죽돌(청소년)이 제안한 글감으로, 함께 쓰고 읽는 합평의 시간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From. 하자글방
하자글방은 함께 읽고 쓰고 합평하며 자신만의 이야기를 발견해가는 청소년 글쓰기 커뮤니티입니다. 정규 과정 이후 3개의 후속모임이 진행 중이며 후속모임에서 나온 글 가운데 일부를 나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