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17살에 처음 하자센터에 와서 청소년기에는 참가자로, 20대 초반에는 강사로서 활동하면서 하자를 오갔던 장수라고 합니다. 지금은 네이버웹툰 자회사인 스튜디오 리코(STUDIO LICO)에서 인사* 쪽 업무를 하고 있고, 해양환경단체에서도 활동하고 있어요.
*인사(Human resource, HR): 인적자원(직원)의 채용, 교육, 평가, 보상, 입·퇴사 등 인사관리를 하는 직무.(워크넷 한국직업사전)
하자와는 어떤 인연이 있으신가요?
고등학생 때 학교 게시판에서 ‘창의캠프’* 공고를 우연히 보게 된 게 시작이었어요. 특성화고 청소년 대상으로 열린 통학형 캠프였죠. 창의캠프 후에는 ‘스프링 캠프’라고, 수능을 마친 열아홉 살을 위한 캠프에 참여했어요. 스무 살이 넘어서는 커리어위크(특성화고 청소년 대상 진로캠프)에 ‘파니’로서 참여했고요. 파니는 청소년과 판돌* 사이의 징검다리가 되어주는 사람을 말해요. 사실 너무 많은 걸 했는데요. 창의서밋(청소년 축제)에서 강연도 하고, ‘손편지 쓰기 워크숍’이라는 캠페인 보조강사로도 활동했어요. 하자에서 만난 친구와 함께 동아리 활동도 했습니다. 저는 고등학생 때 학교 밖에서 하는 활동에 관심이 많았어요. 하자센터 활동 말고도 신문사에서 운영하는 학생기자단 활동을 하기도 했거든요.
*청소년창의캠프 C-cube: 서울 시내 특성화고 청소년들과 함께한 캠프. ‘불만을 해결하는 창의성’, ‘질문으로 시작하는 창의성’ 등 ‘창의’를 주제로 열림.
*판돌: 하자센터 직원을 부르는 말. ‘판을 만들고 돌리는 사람’이라는 뜻.
하자센터 프로그램에 연사로 참여한 장수
진짜 많은 활동을 하셨네요. 그중에 지금의 장수에게 영향을 준 활동이 있을까요?
창의캠프요. 그게 시초이기도 하고, 열일곱 살이 느낄 수 있는 신선한 것이 다 모여 있었던 것 같아요. 내 이름을 직접 지어서 쓰는 경험이 처음이었고* 학교나 학원이 아닌데 고정적으로 어딘가를 다닌 것도 처음이었거든요. 같이 참가했던 친구들과도 친해져서 캠프 후에도 꽤 오래 만났어요. 후기청소년(만19~24세)이 되어서는 커리어위크가 기억에 남아요. 그때 제가 파니로 ‘릴리쿰’이라는 팀에 조인돼서 20명 정도 되는 청소년을 만났는데요. 커리어위크에 파트너로 함께하는 팀들을 보는 재미가 있었어요.* 그때는 제가 스무 살 초반이었기 때문에 어떤 일을 해야 할까 고민하던 때였거든요. 그 팀들은 제가 막연하게 생각했던 일을 해내고 있었어요. 신선한 경험이었죠. 그리고 전 파니라는 이름도 너무 신기했어요. 이런 이름들이 하자에서 만난 의미 있는 것 중 하나예요. 판을 돌리는 사람이라는 뜻의 판돌도 그렇고, 죽돌*도 그렇고, 사람들 이름도 그렇고요. (웃음)
*하자센터에는 각자가 스스로 지은 하자이름(별칭)을 부르는 문화가 있음.
*커리어위크는 디자인 스튜디오, 문화작업자, 사회적기업 등 다양한 현장에서 종사하는 팀을 만나 활동하는 형식으로 운영됨.
*죽돌: 하자센터에서 활동하는 청소년을 부르는 말.
“공부가 재밌지 않으니까 재밌고 멋있어 보이는 걸 해보려고 노력한 것 같아요.”
장수는 특성화고에서 어떤 전공을 공부하셨어요?
컨벤션* 기획이요. 해성국제컨벤션고등학교라는 컨벤션 특성화고였거든요. 그래서 고등학생 때 코엑스, 벡스코같은 컨벤션센터를 많이 둘러봤고 국제행사나 회의를 기획하는 법을 배웠어요. 어떤 계기로 그 학교에 가게 되신 거예요? 제가 쌍둥이 동생이 있는데 동생이 이 학교에 너무 가고 싶다는 거예요. 그때가 중국어가 유망해지고 글로벌한 게 뜨던 시기였거든요. 그래서 멋있어 보였나 봐요. 동생과 학교를 같이 가게 됐죠. 제가 다녔던 중학교 선생님은 반대하셨는데요. 상업계 고등학교가 특성화고로 바뀌던 시절이라 부정적 인식이 남아있어서 그런 것 같아요. 중학교 성적이 나쁘지 않았기 때문에 아깝다고 생각하신 것 같기도 하고요. 근데 막상 고등학교에 갔는데 다들 공부를 너무 잘하는 거예요. 정말 상위권 학생들이 모여 있어서 제 성적은 하락했고요. (웃음) 그러다 학교 밖에 관심을 두게 되었던 것 같아요.
*컨벤션(Convention): 산업, 학술, 정치 등 다양한 분야에서 정보교환을 목적으로 하는 각종 집회, 회의, 연구회, 전시회, 문화예술공연, 체육행사 등의 행위.(국토연구원)
그럼 장수는 10대 때 어떤 청소년이었어요?
학교 밖이 더 재밌던 학생이었어요. 대학생 때도 쭉 그랬고요. 해야 하는 건 하면서도 더 재밌고 멋있는 것, 뭔가 "우와" 할 만한 게 없을까 하면서 (학교 밖을) 계속 기웃거렸어요. ‘커서 뭐 하지?’ 이런 고민도 많이 했죠. 청소년기에는 공부가 재밌지 않으니까 학교 밖에서 재밌고 멋있어 보이는 걸 해보려고 더 노력한 것 같아요. ‘친구들은 다 공부하지만 나는 다른 거 해야지’ 이런 마음도 있었고요. 하자에 와보니 그런 일(재밌고 멋있는 일)을 하는 사람들이 있었어요. 그래서 그런 어른들을 만나고 싶었던 것 같아요. 다른 학교 학생이나 또래를 만나고 싶은 마음도 있었고요.
그때의 장수는 지금의 장수와 비슷할까요?
그때가 호기심이 더 많았던 것 같아요. 사실 지금은 우물에 갇힌 듯한 느낌을 받아요. 청소년 때는 뭘 해도 다 모르는 것들이었거든요. 근데 어느 정도 아는 게 생기고 나니까 저에게 익숙한 것만 쫓게 되는 거예요. 나는 이것에 관심이 있고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 누군가에게는 전혀 그렇지 않은 모습을 보면서 요즘은 ‘내가 너무 내 세계에 갇혀있나?’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나부터 지속 가능하게 일하고 싶고, 그런 일터를 만들고 싶다고 생각하게 됐어요.”
대학 졸업 후 아쇼카 한국이라는 비영리 단체에서 일하셨어요. 여기서는 어떤 경험을 하셨어요?
아쇼카는 사회 문제를 해결하는 사람들을 지원하는 글로벌 비영리 단체예요. 당시 아쇼카에서는 사회 혁신가들이 모여 있는 헤이그라운드*라는 빌딩의 공용 공간을 운영하고 있었는데요. 저는 그 공간의 운영과 그곳의 프로그램, 행사 기획을 돕는 ‘커뮤니티 어시스턴트’로 6개월 동안 인턴으로 일했어요. 그때가 2018년이었는데 조직문화* 관점에서의 커뮤니티 개념이 확산되면서 커뮤니티 매니저* 같은 직무도 막 생겨나기 시작한 시점이었거든요. 일을 하면서 아무래도 인턴은 기간이 정해져 있다 보니 ‘내가 나가면 이 일이 이어지지 않겠구나’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일에 몰입하는 동력이 떨어지기도 했고요. 그래서 ‘나부터 지속 가능하게 일하고 싶고, 그런 일터를 만들고 싶다’고 생각하게 됐어요. 그게 인사 직무를 선택한 계기가 됐죠. 조직을 세팅하고 기반을 만드는 일이니까요. 원래 HR(인사) 업무가 신입을 잘 안 뽑는데 아쇼카 근무가 종료되고 현재 회사에 좋은 기회가 있어서 바로 시작하게 됐어요. 2018년도 말에 인턴으로 시작해서 지금까지 계속 다니고 있습니다.
*헤이그라운드(HEYGROUND): 성수동에 위치한,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체인지메이커들이 함께 일하고 성장하는 코워킹 커뮤니티 스페이스.
*조직문화: 조직행동에서 주요하게 다루고 있는 개념으로 개인과 집단, 그리고 조직의 태도와 행동에 영향을 주는 공유된 가치와 규범.(위키백과)
*커뮤니티 매니저: 조직의 구성원들이 최적의 일터에서 근무할 수 있도록 돕고 조직 내에서 다양한 활동을 하며 공동체성을 강화할 수 있도록 돕는 역할. 세부적인 역할은 조직마다 다름.
2018년 당시 장수가 근무한 ‘아쇼카 한국’ 커뮤니티 공간
요즘 일상은 어떠세요?
평일에는 회사 일을 하고 주말엔 시셰퍼드 코리아*라는 환경단체의 활동이 많아요. 그래서 주말에는 바다에 자주 다니죠. 시셰퍼드 코리아에서 저는 SNS 운영을 담당하고 있는데요. 다른 활동가들과 같이 캠페인을 기획, 실행하고 교육 행사를 열기도 해요.
환경단체 활동은 어떤 계기로 시작하신 거예요?
취미로 스쿠버 다이빙을 배웠는데 시셰퍼드 코리아에서 다이버를 찾고 있더라고요. 그래서 SNS 운영 말고도 정기적으로 수중 쓰레기, 폐어구(버려진 낚시·조업 도구)를 건져 올리는 일을 하고, 해변에 있는 쓰레기를 수거하는 일도 꾸준히 하고 있어요. 제가 물을 좋아해서 바다를 청소하고 서핑도 하면서 사람들과 시간을 보내죠.
*시셰퍼드(Sea Shepherd): 해양 생태계를 지키고 서식지 파괴를 막으며 직접 행동하는 글로벌 해양환경단체
이런 활동도 정보를 알아야 할 수 있잖아요. 주로 어떻게 정보를 얻으세요?
저는 스무 살때 아르바이트를 하면서도 알바 사이트에 굉장히 자주 드나들었어요. 투잡, 쓰리잡을 하면서 또 다른 거 없나 계속 찾아봤거든요. 찾아야 알지, 안 그러면 몰라요. 알바 찾을 때는 알바몬, 알바천국, 잡코리아를 다 봤고 아쇼카에서 일을 시작하고 나서는 소셜섹터*에 연결된 회사나 조직을 많이 찾아봤어요. 이 영역에 어떤 생태계, 어떤 판이 만들어져 있는지 궁금했거든요. 시셰퍼드 같은 경우에는 책을 통해서 알게 됐고요.
*소셜섹터(Social sector): 사회적기업, 비영리단체 등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고 있는 조직이 모인 영역.
책 읽고 기록하는 것도 좋아하시는 것 같아요.
저는 뭐든 기록하고 정리해 두고 싶은 욕구가 큰 사람이라, 노션*으로 모든 기록을 다 디지털화해서 정리하고 있거든요. 책 읽는 것도 노션으로 정리하는데요. 밑줄 친 부분이나 책에서 소개한 내용들, 아니면 내용에 대한 코멘트를 기록하기도 해요. 예전에 ‘빌라선샤인’이란 커뮤니티에 속한 적이 있는데 거기서 노션 기록이나 회고하는 방법론을 접하게 된 뒤로 지금은 습관이 됐어요. 아쇼카, 하자센터, 시셰퍼드도 그렇고 어떤 주제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 모인 커뮤니티에 속하면 여러 사람을 통해 이어지더라고요. 정보도 그렇고 연결된 사람을 통해 일을 소개받기도 하고요.
*노션(Notion): 메모, 업무, 위키 및 데이터 베이스를 한 곳에서 처리할 수 있는 서비스. 앱 및 웹으로 사용할 수 있음.
장수의 노션 페이지 캡처
“크리에이터들이 속한 조직에서 조직의 토대를 만드는 팀의 일원으로 일하고 있어요.”
지금 근무하고 계신 회사와 장수의 업무에 대해 소개 부탁드려요.
스튜디오 리코는 웹툰, 애니메이션, 음원도 만들고 웹툰을 글로벌로 서비스하는 조직이에요. 저는 ‘B스튜디오’팀에 소속되어서 일하고 있어요. 조직의 기초나 토대를 만든다고 해서 저희 팀을 베이직 스튜디오(Basic Studio), ‘B 스튜디오’라고 부르거든요. 제 업무는 조직에 사람이 있기 때문에 해야 하는 모든 일을 하는 건데요. 일할 사람을 뽑는 채용부터 시작해서 들어온 사람이 잘 적응할 수 있게 돕는 온보딩*, 그리고 구성원이 일에 잘 몰입하고 성장하기 위한 지원, 복리후생*에 대한 지원도 해요. 일하는 공간과 기기 등 환경을 세팅하기도 하고요. 퇴사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절차도 다룹니다.
저희 팀 말고도 ‘웹툰 스튜디오’, ‘사운드 스튜디오’가 있어요. 스토리 기획을 하고 연출하는 곳이 ‘프리 프로덕션 스튜디오’, 글로벌 로컬라이징(현지화)하는 팀은 ‘로컬라이제이션 스튜디오’ 이런 식으로 팀이 나뉘어 있죠.
*온보딩(On-boarding): 배에 올라탄다는 뜻으로 기업 및 조직에 잘 정착함을 의미함. 새로운 직원이 잘 적응할 수 있도록 온보딩 교육을 실시함.(네이버 오픈사전)
*복리후생: 조직이 구성원이나 그 가족들에게 제공하는 혜택.(네이버 지식백과)
인사 직무는 어느 회사에나 있지만 지금 계신 곳은 IT 계열 조직이잖아요. IT나 콘텐츠 업계에도 관심이 있어서 선택하신 건가요?
원래 콘텐츠에 관심이 많았어요. 읽고 보는 것을 좋아해서요. 제가 하는 일은 콘텐츠를 만들어 내는 사람들을 지원하는 일인 거죠. 이 조직의 특수한 점은 직원분들을 콘텐츠를 만드는 크리에이터이자 아티스트라고도 볼 수 있다는 거예요. 이런 사람들이 회사의 구성원인 조직은 잘 없거든요. 그래서 그런 부분에도 흥미를 느껴요.
여러 업무를 하고 계실 텐데요. 인사담당자가 하는 하나의 업무를 쭉 소개해 주실 수 있을까요? 그리고 그 과정에서 장수가 재밌다고 생각하시는 부분은 어떤 것인지 궁금해요.
채용을 이야기해 볼게요.
[채용 공고] 우선 채용 TO, 그러니까 어느 팀 어떤 직무에 몇 명이 필요하다는 게 나오면 공고를 만들어요. ‘어떤 사람을 모집할 것인가’에 대한 기준을 만들고 직무를 설정하죠. 그다음 그것을 게시하고 홍보해요. 채용하고자 하는 인원이 인턴인지, 신입인지, 아니면 경력직인지에 따라 전략이 달라져요.
[심사] 그 후에 채용 니즈에 맞는 사람들을 추려서 서류 심사를 하고 과제를 보기도 해요. 그리고 면접을 보면 최종 합격을 하는 인원이 생깁니다.
[온보딩] 그때부터 새로운 사람이 조직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온보딩을 해요. 이것도 그냥 하는 게 아니라 온보딩 프로그램을 만들어서 진행해요. 온보딩을 잘 완료하는 것까지가 채용의 흐름이에요.
초반에는 지원자들을 검토하고 만나는 일이 가장 재밌었어요. 면접관으로서 면접을 보는 건 아니지만 그 자리에 동석할 수 있거든요. 특히 코로나 이후에는 계속 비대면 면접을 하게 돼서 거의 모든 면접에 들어가고 있어요. 그러면 지원자 분들이 다 너무 다르고, 신박하고, 잘하는 분들은 왜 잘하는지 알겠고. 그런 것들이 보이는 거예요. 또 면접관 분들, 그러니까 저희 회사의 리드님들(팀장 등 상급자)이 면접에서 질문을 하시는데 어떤 질문이 좋은 질문인지도 보이는 순간이 있었어요. 그때 가장 재밌고 많이 배울 수 있었죠.
그렇다면 인사 업무에서 어려운 부분은 어떤 걸까요?
코로나 이후로 저희는 리모트 근무(원격 근무)와 오피스 근무 중에 선택해서 근무하고 있는데요. 그러다 보니 인사 업무는 더 복잡해졌어요. 사람들이 사무실뿐만 아니라 집이나 다른 공간에서도 일을 하다 보니, 그런 걸 세팅하는 업무를 직방으로 맞은 거예요. (웃음) 그렇게 코로나 같은, 뜻하지 않는 시대의 변화를 겪으면서 겪는 어려움이 있어요. 그리고 인사 업무를 하면 주변 친구들이 이직이나 취업 관련해서 저에게 많이 물어봐요. 도움이 되고 싶지만 답을 줄 수 없어서 어려워요. 왜냐하면 이 사람이 뭐가 딱 부족해서가 아니거든요. 물론 채용할 때는 객관적인 지표로 판단하지만, 면접관마다 평가가 다를 수도 있으니까요. 근데 결과는 딱 합격, 불합격으로 나누어지니까 그런 질문에 답을 못하겠더라고요.
나의 커리어, 내 작업의 일대기를 그려본다면 전환점이 되는 것들이 있잖아요. 뭐가 있을까요?
일단 하자센터와의 만남, 하자를 처음 알게 된 17살 때의 포인트가 있죠. 그리고 아쇼카에서 일하게 되었던 것과 지금 이 조직에 온 것까지가 큰 덩어리예요. 세 개 중에 가장 오래 이어지고 있는 건 하자센터인 것 같아요. 친구랑 대화하다가 오늘 하자에 간다고 하니까 아직도 가냐고 하더라고요. (웃음) 판돌들이나 하자에서 만났던 친구들이랑도 계속 연락하고 있으니까 하자를 꼽을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그때 제가 느끼기에는 정말 어른이었는데 지금은 친구가 된 관계같은 것들이 좋더라고요.
지금 일하고 계신 업계가 미래에 겪게 될 변화가 있을까요?
저희 회사에 있는 분들은 어떤 작품의 스토리를 만들고 그림으로 그리고 그걸 또 영상으로까지 구현하는 사람들이거든요. 작사·작곡도 하고요. 이런 창작이나 콘텐츠와 관련된 플랫폼은 계속 많아지는 것 같아요. 웹툰같은 경우에도 작은 플랫폼이 많아지고 있고 창작자들이 활동할 수 있는 커뮤니티 사이트도 많아지는 걸 보면 ‘누구나 창작 욕구가 있는데 그런 욕구를 풀어내기가 점점 수월해지고, 창작물을 공유할 채널도 많아지고 있다’고 느껴요. 그래서 채용할 때도 창작자들이 모여 있는 사이트를 통해서 홍보하고 있죠.
“활동가로 활동하면서 해양환경 문제가 너무 중요하다는 걸 계속 실감하게 되는 것 같아요.”
앞서 시셰퍼드 코리아 이야기를 해주셨잖아요. 활동가로서의 정체성은 장수라는 사람의 몇 퍼센트를 차지할까요?
앞으로를 생각하면 점점 더 커질 것 같아요. 시셰퍼드를 알고 나서 환경 문제가 더 가깝게 다가왔거든요. 환경 문제는 전 세대, 전 지구에 걸친 문제지만 한 개인으로서는 너무 멀게 느껴졌었어요. 저는 바다를 좋아한다고 하면서 바다가 얼마나 중요하고 필요한지 잘 몰랐던 것 같아요. 근데 바닷속에 들어가고, 해양 생태계 관련 캠페인이나 시셰퍼드 글로벌의 활동을 보면서 너무 중요한 문제라는 걸 계속 실감하고 있어요. 시셰퍼드를 알기 전에는 누가 저한테 비건이 뭐냐고 물었을 때 대답을 못 할 정도로 동물이나 환경에 관심이 없었어요. 근데 이제는 비건 지향을 하고 있거든요. 제가 그렇게 변하는 게 신기해요. 동물을 막 좋아하는 사람은 아니었는데 동물에 대한 감정도 많이 변했고요. 활동하면서 연결된 사람들이나 단체 네트워크도 많아져서 그것도 너무 재미있어요. 이 사람들과 쭉 이어지고 싶다는 생각이 커서 앞으로도 활동가로서의 정체성이 계속 커질 것 같아요.
시셰퍼드 코리아 퍼포먼스
같이 활동하는 분들과의 즐거움도 큰가 봐요.
네. 지금 활동가들이 너무 좋아요. 저희가 지금 18명인데 18명이 다 각자 본업을 두고 파트타임으로 자원 활동을 하고 있거든요. 그래서인지 다 비슷한 사람들이 모인 거예요. 본업은 다 다르지만 한 다리 건너면 알 만한 사람들이 모여 있어요. 하자센터를 아는 사람도 있고요. 하자센터 어디 가서 소개하려면 못하잖아요. 어렵잖아요. (웃음) 하자뿐 아니라 그런 감수성이나 공동체에 대한 이해가 잘 통하는 사람들이 모여 있어서 더 안정감을 느끼고 활동하는 것 같아요.
거의 마지막 질문이에요. 요즘 장수의 일상에 대한 만족도는 어떤가요?
저는 대체로 만족해요. 그러니까 불만족스러운 것을 찾자면 딱히 떠오르지 않는 거죠. 저에게는 다양한 일상과 정체성이 있잖아요. 활동가, 회사원, 다이버로서의 일상, 발레도 오래 하고 있어서 무용가로서의 일상도 있고요. 조카가 둘이나 있어서 돌봄 노동을 하는 이모로서의 정체성도 있고요. 이런 다양한 일상과 정체성이 서로 보완해 주는 게 많아요. 그래서 더 좋고 만족하는 것 같아요.
“하고 싶은 일을 찾아서 한다고 해도 그게 언제까지나 하고 싶은 일은 아니겠더라고요.”
괜찮을까요? 하고 싶은 일 계속해도.
완전 괜찮다고 얘기하고 싶어요. 사실 하고 싶은 일을 찾아서 한다고 해도 그게 언제까지나 하고 싶은 일은 아니겠더라고요. 그래서 일단 하고, 그다음 하고 싶은 일을 찾아간다. 그게 제가 하고 있는 게 아닐까 싶어요. 저는 언젠가 조직 밖에서 일하고 싶긴 해요.
그건 장수의 ‘그다음 하고 싶은 일’인가요?
네, 언젠가 조직 밖에서, 그리고 서울 밖에서 일하고 싶어요. 현실적으로 생각해 보면 답이 잘 안 나와서 아직은 모르겠지만요. 일단 오늘 이야기한 것들을 하면서 20대를 잘 지나보내고 있다고 생각하죠.
하고 싶은 일이 없는 사람도 있을 텐데 하고 싶은 일을 찾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하고 싶은 일이 없지 않을 거라고 일단 생각해요. ‘하고 싶다’라는 마음이 꼭 100이어야 하는 건 아니더라고요. 하고 싶은 마음이 1이어도 하고 싶은 거일 수 있어요. 100만큼의 확신이 있어야 하는 게 아니라 1, 2, 3 만큼이라도 있으면 하고 싶은 것일 수 있다는 거예요. “나는 이 일을 진짜 120만큼 하고 싶어.” 이런 사람은 드문 것 같아요. 아주 작은 숫자의 마음이어도 하고 싶은 건데 그걸 내가 너무 몰라줄 수 있는 거거든요. 지나치기 쉽다고 생각해요. 저도 하고 싶은 게 너무 많고 나는 꼭 이 일을 해야겠다, 이런 사람은 아니에요. 이게 진짜 나라고 하나로 얘기할 수 있는 것도 없고요. 그러니까 지금 엄청 하고 싶은 게 있는 건 아니어도 일단 한번 해보고 싶다, 이런 작은 마음이 어딘가에 숨겨져 있을 수 있어요.
마지막으로 이 글을 읽는 청소년들과 나누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나이와 상관없이 친구를 많이 만들었으면 좋겠어요. 인원을 늘리라는 뜻이 아니라 연결 지점을 많이 만드는 게 좋더라고요. 학창 시절에는 정말 친해야 친구라고 얘기할 수 있었는데 지금은 꼭 친구라고 부르지 않더라도, SNS를 통해서라도 연결된 사람들이 있는 게 좋은 것 같아요. 그 사람들을 통해 내가 하고 싶은 일에 대해 힌트를 얻을 수도 있고 그 사람을 따라서 무언가 해보면서 이건 나랑 맞다, 아니다를 판단할 수도 있거든요. 저한테는 그게 길잡이가 되어준 것 같아요. 누군가를 통해서 뭔가를 한번 해보면 나는 이미 그걸 해본 사람, 할 줄 아는 사람이 되잖아요. 이런 식으로 연결지점이 더 잘 이어지게 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