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 패러디 문장이 주는 두근거림을 아는 사람이라면, 빈티지 의류를 입는 일이 주는 설렘에 대해 공감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사고 싶다고 해서 살 수 없는, 흉내 내 사기도 어려운…. 이 시간 선에서는 유일할지도 모르는 옷을 입는 기쁨에 대해 말입니다. 잘만 하면 저렴한 가격에 고퀄리티의 옷을 겟!할 수도 있으니 금상첨화지요.
이번엔 7년 차 빈티지 쇼퍼로서, 특히나 온라인 빈티지 쇼핑을 5년 가량 해온 사람으로서 나름대로 정립한 가이드라인을 소개해볼까 합니다.
어쩌면 이번이 최초의 온라인 빈티지 쇼핑일지도 모르는 당신! 당신은 네이버에서 검색한 '빈티지 샵'의 연관 검색어를 타고 타고 찾은 빈티지 쇼핑몰에서, 또는 인스타 #빈티지샵 또는 인스타 광고를 통해서…. 등등의 경로로 마음에 드는 빈티지 의류를 발견했습니다.
혹시 당신 역시 나처럼 남들이 입지 않는/못하는 옷을 입고 싶어서 빈티지에 입문했다면.
혹은 그 욕망의 불씨에 대해 아는 사람이라면.
선착순에 연연하지 말 것
마음에 드는 옷이 당장 팔려나갈까 봐 초조해 본 경험이 있거나, 곧 그 상실을 겪게 될 것입니다.
뒤늦게 sold out 문구를 보고 가슴이 철렁이는 경험은 몇 번을 겪어도 고통스럽지요. 저는 그를 피하기 위해 숍 업데이트 시간을 죄다 외워버린 적도 있지만….
이제는 의식적으로 업데이트 시간으로부터 한 시간의 여유를 두어 접속합니다. 다년간의 경험이 준 결론이 이렇거든요 : 아쉽게 헤어진 제품이 생기더라도 새로운 연은 찾아오고, 물욕은 상품 페이지 너머로 잊혀집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찬찬히 살펴보는 여유! 이염이나 오염이 있는지 살펴봅시다. 가격은 어떤가요?
심호흡을 크게 해봐도 지금 눈앞에 보이는, 판매 중인 이 옷이 제 연인 것 같다면.
우선 사이즈를 체크합시다.
옷은 입어보고 사야 한다는 오래된 경구(?)가 있지만, 너무 오래되었지요! 신체 사이즈를 제대로 안다면 온라인에서도 얼마든지 마음에 드는 옷을 구매할 수 있습니다. 줄자로 몸의 이곳저곳을 재어 기록해두세요. 특히 체크해야 할 부분들은,
어깨너비
가슴둘레
팔길이
허리둘레
엉덩이둘레
다리길이
정도가 되겠네요. (팁! 목둘레는 허리둘레의 ½ 정도입니다. 오프라인에서 잘 써먹을 수 있을지도)
좋아하는 옷의 치수를 재어 두는 것도 아주 큰 도움이 됩니다. 가슴 둘레 사이즈를 알아도 가슴이 딱 맞는 옷보다 펑퍼짐한 옷을 선호한다면, 그 여유로움이 수치상 어느 정도인지 알아두는 게 좋겠죠. 기준으로 할 옷이 마땅찮다면 본인과 신체 사이즈가 비슷한 모델이 있는 보세 쇼핑몰의 정보를 체크하는 것도 방법입니다.
이때 명심하세요! ‘어, 좀 작/크나…?’ 싶은 감을 무시하면 안 됩니다. 단면 34cm가 정사이즈인 허리 사이즈를 가진 사람이 33.5cm짜리 하의를 입으면 단추가 터지려 할 수 있고, 단면이 34.5cm가 되면 헐렁해서 원하는 연출이 어려울 수 있습니다.
tip : 어디 옷일까?
비전문가의 눈으로는 정/가품 여부를 확인하기 어렵지만, 브랜드를 아는 것만으로도 옷의 정보를 어느 정도 알 수 있습니다. 브랜드가 지향하는 이미지가 있는 것은 물론, 브랜드마다 마네킹 사이즈가 다르거든요. 55사이즈라고 해도 그보다 작은 체구를 가진 사람이 옷을 입었으면 한다면 좀 더 작은 사이즈를 55로 잡는 식입니다. 이런 부분은 입어보지 않으면 체감이 어렵지만, 브랜드를 검색해보며 어림짐작해보는 것만으로도 구매 결정에 도움이 되고, 알아가는 재미도 있을 거예요.
다만 남성복은 브랜드에 따른 마네킹 사이즈 차이가 거의 없다고 하네요. 원인이 뭔지는 알만하지요?
국가마다도 기준 사이즈에 차이가 있습니다. 일본 내수 브랜드 또는 제품이라면 일본인의 체구에 맞춰 옷을 만드는데, 그 골격이 한국인과 다르기 때문에 평소 s를 입던 사람은 m을 입어야 하는 경우가 종종 생기지요. 또한 체형에 따라 잘 맞는 옷이 달라지기 때문에, 이런 부분도 참고해두면 좋습니다.
새 옷을 살 때 수선을 염두에 두고 사지 않듯, 빈티지를 구매할 때도 같은 엄격함을 보여주세요. 백 보 양보해 바짓단 길이를 조절하는 것쯤은 괜찮을지 몰라도, 치맛단을 줄이거나 단추를 교체하게 된다면 들어가는 비용도 커집니다.
사이즈도 좋고, 내 옷 같다!
다음 항목을 체크해봅시다.
✔️ 집 근처 세탁소의 위치를 안다.
✔️ 속옷 등 손세탁이 필요한 세탁물은 내 손으로 그때그때 세탁한다.
✔️ 다리미 사용법을 알고, 잘 사용할 수 있다.
어떤 항목에, 얼마나 자신 있나요?
소재 확인
코트나 니트에 주로 사용되는 모, 캐시미어 등은 동물 유래 소재인 만큼 까다로운 관리를 필요로 합니다. 인조 퍼나 동물 모피는 물론이고 누에고치가 원료인 실크, 즉 비단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소재들은 기본적으로 드라이클리닝을 요구하지요. 퍼를 제외하고는 울 샴푸 등 전용 세제로 가내 물세탁이 가능하지만, 옷감이 상하지 않게 하려면 손세탁이 필수입니다. 독특하고 매력적인 촉감과 광택을 가진 벨벳은 꼭 드라이클리닝을 맡겨야 하니, 드라이클리닝 비용도 고려해 구매 결정을 내리는 게 좋겠지요.
반면 마에서 유래한 소재인 린넨은 세탁기로 세탁이 가능하지만, 잘 구겨지기 때문에 예민한 사람이라면 다림질이 필수일 겁니다. 익숙한 소재인 면이라도 ‘바삭한’이라는 형용사가 붙는다면 이 역시 구겨지기 쉽다는 뜻이니 무시할 수 없지요.
세탁 후 건조법도 중요합니다. 니트를 햇볕에 말렸다가는 쫄쫄이가 되고 말거든요.
대부분의 빈티지가 세탁 되지 않은 상태로 판매되므로, 이처럼 천차만별인 소재별 관리법을 대충이나마(자세한 건 검색 찬스!) 알아두어야 온전한 컨디션으로 개시할 수 있습니다. 물론, 이후에도 적절한 관리가 필요하고요. 망가지면 다시 살 수 없는 옷이니 말입니다. 그렇게 아껴줄 마음의 준비가 되셨나요?
입어봐야 알겠는데? 싶다면.
반품 가능여부 확인
인스타 마켓의 경우 반품을 받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시즌오프 세일 중인 온라인 샵1)에서도 반품을 받지 않고요. 그러니 공지란을 꼭 확인하세요! 저렴한 제품에 왕복 배송비를 지불하는 게 아까울지도 모르지만, 되팔거나 주변 사람에게 주기엔 애매한 빈티지 의류의 특성상 반품하는 것이 훨씬 낫습니다. (그리고 순전히 소비자 측면에서의 팁. 인터넷 쇼핑몰에서는 대개 반품이 가능합니다. 할인 상품이라도요…….)
1)시즌이 지날 때 50~90%가량 대폭 할인하곤 합니다. 가격이 애매해 고민하던 상품이라면 위시리스트에 담아둔 뒤 운명에 맡기는 것도 방법.
마지막으로,
진짜?
입었을 때 내가 기쁠 것 같은가요? 비슷한 옷을 입은 다른 누군가의 상을 스스로에게 비춰 보고 있지 않나요?
마음을 정했다면, 빠르게 겟! 해봅시다.
빈티지 의류를 구매하는 일은 그 자체로도 즐겁습니다. 내가 보이고 싶은 이미지를 트렌드보다 더 넓은 폭에서 구현할 수 있고, 내 체형에 대해 더 잘 아는 계기가 되기도 하지요. 그러나 언젠가, 당신 역시 그 즐거움 속에서 선득한 의구심을 품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많은 옷이 도대체 어디서, 언제부터 존재해왔을지 말입니다.
구제시장에서 쌓여 있는 (말 그대로의) 옷더미를 실제로 보진 못하더라도, 샵마다 매일 업데이트되는 십수 벌의 옷을 셈해보면 그 규모가 심상찮지요. 그것들이 몽땅 한때 사랑을 받다 버려진 옷이거나 데드스탁2)이라고 생각해보세요. 그리고 매년 수많은 옷이 그 위로 새로이 쌓이는 걸 상상해보세요.
2) 재고 상품
엘르의 2020년 연구에 의하면 매년 1000억 벌 이상의 옷이 만들어지며, 세계경제포럼에 따르면 2014년 소비자들은 2000년에 구매한 것보다 60% 이상 많은 옷을 샀다고 합니다.3) 더 많은, 더 새로운 ‘헌옷’들은 빈티지가 되어 새 쓰임을 갖게 되거나, 악성 재고가 되는 순환을 겪겠지요. '세상에서 사라진' 절판도서가 중고서점에 꽂혀 있듯, 빈티지 의류도 그렇습니다.
빈티지 쇼핑 역시 소비를 통해 자신을 증명하려는 경향의 일부임은 부정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이처럼 빈티지 의류가 지나온 시간을 생각하면, 옷이 만들어지고 소비되는 일을 좀 더 거시적인 시선에서 볼 수 있게 됩니다. 그러다 보면 유행이라는 빠른 물살 가운데서 고수할 나만의 잣대를 가질 수도 있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