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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을까? 하고 싶은 일 계속해도
: 하고 싶은 일 2년 차부터 20년 차까지
하루 | 민지은
“어린이작업실 모야(MOYA) 프로젝트 매니저 하루입니다.”
인터뷰를 읽게 될 독자들에게 인사 부탁드려요.
안녕하세요. 도서문화재단씨앗에서 ‘어린이작업실 모야(MOYA)’의 프로젝트 매니저(PM)로 일하고 있는 하루입니다. 공공도서관 어린이실*에 새로운 공간을 기획·조성·확산하는 일을 하고 있어요. ‘공간 기획자’라는 명칭이 제가 하는 일 전체를 포괄하지는 않는데요. 한 번에 설명할 수 있는 이름을 찾기가 어렵네요.
*공공도서관에는 보통 어린이 전용 공간인 ‘어린이실’이 있음.
하자와는 어떤 인연이 있으신가요?
대학 졸업한 해에 처음 와서 판돌*로 8년 정도 일했어요. 처음에는 하자작업장학교 교사 채용에 지원했는데요. 교사 대신 (하자센터 내) 다른 팀에서 인턴으로 일해보면 어떻겠냐는 제안을 받고 기획자로 일을 시작했어요. 라이프디자인캠프*라는 열흘짜리 큰 프로그램의 런칭(출시)을 돕는 일을 했죠. 캠프를 같이 준비하면서 3개월 정도 일해본 후에 계속할지 결정하자고 이야기했던 기억이 나요. 3개월 후에 “하자에서 계속 일할 생각이 있어요?”라고 물어보셔서 그렇게 하기로 했죠.
*판돌: 하자센터 직원을 부르는 말. ‘판을 만들고 돌리는 사람’이라는 뜻
*라이프디자인캠프: ‘만나고(Meet), 만들고(Make), 움직이자(Move)!’라는 슬로건 아래 청소년들이 먹을 것, 탈 것, 쓸 것, 입을 것을 직접 생산하는 워크숍으로 구성, 10일 동안 진행된 캠프.
하루는 사범대를 졸업하신 것으로 알고 있어요. 전공은 무엇이었나요?
저는 사회과교육과였고, 세부 전공으로 역사교육을 공부했어요. 평소 예술에도 관심이 많아서 미술사를 복수 전공했는데, 자연스럽게 예술 교육이나 예술적 경험으로 관심이 이어졌어요. ‘왜 학교에서는 창의 교육이나 시민적 역량을 기르는 교육이 잘 이루어지지 않을까?’ 이런 고민을 하면서 대학 생활을 했어요. 그러다 보니 대안교육에도 관심이 많았고요.
휴학했을 때 희망제작소*라는 곳에서 인턴으로 일한 적이 있는데요. 그때 희망제작소에서 발간한 보고서나 책을 많이 읽었어요. 그중에 교육을 사회적으로 바라보면서 문제의식을 갖고, 해결 방법을 논의하는 책도 있었거든요. 짧은 시간이었지만 (책을 보면서) 그 조직이 지향하는 가치를 알 수 있었고, 조직의 분위기를 보면서 처음으로 이런 영역에서 일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선생님이 되는 것 보다 교육을 조금이라도 변화시키고 싶다는 생각을 한 거죠. 지금은 제도권 교육의 변화는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하고, 그게 꼭 필요한가에 대한 질문도 있지만요. 그때는 공교육 변화에 대한 생각을 많이 했어요.
*희망제작소: 시민들의 아이디어 제안과 후원, 참여로 열린 연구와 실천을 지향하는 독립민간연구소.
대학 시절 하루
“기웃거리면서 듣고 아이디어도 이야기하니까 그 팀에서 같이 일하자고 제안해 주신 거예요.”
하루는 하자에서 오랜 시간 어린이를 만나오셨는데요. 처음부터 어린이와 관련된 일을 하지는 않으셨더라고요.
그렇죠. 라이프디자인캠프 후에 맡은 일이 ‘비청소년 멤버십’ 관련 사업이었어요. 청소년이 만나면 좋을 만한 어른들을 하자에 초대해서 공간을 쓰게 하거나 반상회를 여는 식의 실험적인 사업이었거든요. 굉장히 힘들고 고민이 많았죠. 대학 졸업 후 처음 일을 하면서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언제 끼어들어야 하는지, 무엇을 어떻게 정리해야 하는지 전혀 몰랐거든요. 하자에 일을 알려주는 시스템이 있지도 않았고요.
그러다 우연한 기회로 생각하는 청개구리(이하 ‘생청’)* 프로젝트를 함께 하게 됐어요. 생청은 창의, 놀이, 작업 등이 키워드인 어린이 프로젝트인데요. 제가 멤버십 사업을 할 때 다른 팀에서 이미 생청을 진행하고 있었어요. 그러다 생청에서 어린이의 놀이를 돕는 ‘청년 놀이활동가' 그룹을 만든다고 하는 거예요. 저는 멤버십 담당자니까 그 그룹을 멤버십에 초대하고 싶어서 자꾸 기웃거렸어요. 기웃거리면서 듣고, 아이디어도 이야기하니까 그 팀에서 저를 놀이활동가 TF*팀에 들어오면 어떻겠냐고 제안해 주셨어요. 그렇게 TF팀에 속해서 한 해 동안 놀이활동가 프로젝트를 진행하게 된 거죠. 그때 많이 배웠고 진짜 재미있게 일했어요. 프로젝트를 잘 마치고, 다음 해에 생청을 담당하던 분이 퇴사하시는 바람에 제가 생각하는 청개구리 사업 전체를 담당하게 됐어요. TF팀의 다른 분들은 각자 맡은 업무가 있었거든요. 그때가 2015년이었는데요. 제가 아직 사회초년생이니까 기획이나 축제 분야에 경험이 많은 ‘뭉’이라는 판돌과 같이 일하게 됐어요. 너무 재미나게 일했죠. 우연한 기회가 굉장한 걸 만든다는 생각이 들어요.
*생각하는 청개구리: 2012년부터 2017년까지 하자센터와 한국암웨이가 펼친 어린이창의인재 육성사업. 어린이가 자율적으로 배우며 어울려 노는 환경과 문화를 조성하기 위해 팝업놀이터를 중심으로 다양한 프로젝트를 진행함.
*TF(Task force): 목표를 달성하기 위하여 각 부문에서 인재를 모아 일을 진행하는 일종의 특별 기획 팀.(네이버 어학사전)
정말 우연히 어린이와 관련된 일을 시작하신 거네요. 어린이를 만나는 일이 즐겁다는 것은 언제 발견하신 거예요?
놀이터 사업을 하면서부터요. 생청에서 팝업 놀이터* 프로젝트를 했어요. 서울시청 광장, 서울어린이대공원, 서울숲 같은 공공장소에 놀이터를 만들어서 몇천 명, 많게는 1만 명까지 들어오는 대규모 행사였는데요. 그 안에 들어가는 놀이 콘텐츠를 기획하는 과정이 재미있었어요. 시민들이 참여하면서 놀이터를 만들어 가는 장면을 보는 것도 즐거웠고요. 제가 직접 워크숍을 진행하거나 어린이들을 가르치지는 않았지만, 어린이들의 놀이를 촉진하는 사람들을 옆에서 도우면서 어린이를 관찰하게 된 것 같아요. 어린이들의 놀이와 작업을 기록하기도 했고요. 그러면서 기록과 관찰의 중요성을 알게 되었죠. 그 일이 되게 흥미로웠어요.
*팝업 놀이터(Pop-up Playground): 특정한 시간과 장소에 잠시 열렸다 사라지는 일시적인 놀이터.
하자센터-한국암웨이 '생각하는 청개구리' 팝업 놀이터
요즘은 어떻게 지내세요? 굉장히 바빠보여요.
지금도 하자에서와 마찬가지로 PM으로 일하고 있는데요. 전국에 도서관이 있으니 전국구로 일하고 있어요. 공공도서관, 어린이실이라는 접근성 높은 공간에 어린이의 작업 경험을 확산시킬 수 있어서 너무 즐겁게 일하고 있습니다. 물론 바쁘기도 하고요. 제가 대학원에 다니고 있어서 일주일 중 5일을 일하면서 남은 이틀 중 하루는 대학원 가고, 하루는 교회에 가요. 쉬는 날이 없는 거죠. 그래도 전시나 좋은 공간 보러 다니는 건 제가 하는 일이랑 연결되어 있어서 틈틈이 시간 내서 가고 있어요.
도서문화재단씨앗은 어떤 일을 하는 곳인가요? 여기서 하루의 역할도 궁금해요.
저희 재단의 미션은 어린이·청소년이 자신의 세계를 확장하고, 발견하고 또 성장하는 사회를 만드는 거예요. 공공시설인 도서관이 어린이·청소년에게 그런 기회와 환경을 제공할 수 있도록 새로운 공간을 제안하는 일을 하죠. 도서관 안에서 이루어질 수 있는 새로운 콘텐츠와 운영 모델을 제안하는 일도 하고요. 저희가 직접 실험적인 도서관을 운영하기도 해요. 성남에도 있고(라이브러리 티티섬) 혜화에도 있어요(제3의 시간).
제가 하는 일은 공공도서관에 새로운 공간과 콘텐츠를 조성·제공하고, 조성 후에도 도서관에서 그 공간을 잘 운영할 수 있도록 협업하면서 돕는 일이에요. 공간 확산 프로젝트라고 생각하시면 돼요. 그중에서도 저는 어린이 파트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제 사업 외에도 저희 팀에서는 스페이스 티(space T)라고, ‘트윈세대’ 전용 공간을 도서관 안에 조성하는 프로젝트를 하고 있어요. 지금 담당하는 모야(MOYA)는 어린이가 창작하고 작업하는 공간을 도서관에 넣는 일이에요.
어린이 작업실 모야(제3의시간 도서관) ⓒ도서문화재단씨앗
‘트윈세대’는 낯선 용어인 것 같아요. 잠깐 설명해주실 수 있을까요?
트윈세대는 12~16세 청소년을 말하는데요. 보통 5학년 정도 되면 사실상 어린이라고 보기 어려워요. 접하는 미디어나 생활 환경이 달라지고, 정신적인 능력도 추상화되는 시기거든요. 근데 또 고등학생과는 달라서 사실상 사이에 끼인 세대예요. 사회적으로 이 연령대의 아이들이 갈 데가 없어요. 어린이는 놀이터에서 놀면 되는데, 이 나이대의 아이들은 독립된 공간을 원하니까요. 제가 생청에서 어린이 작업장*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4~6학년 아이들을 만났는데요. 그들이 원하는 게 ‘아지트’였어요. 우리만의 공간이 필요하다고 하는데, 갈 데가 없죠. 도서관 입장에서는 이때(12세~16세)부터 아이들이 눈에 잘 띄지 않게 되는 것 같아요. 도서관에 잘 오지 않아요. 그래서 저희 팀에서는 청소년들이 다시 도서관에 와서 머물 수 있도록 편안하고 아름다운 공공의 장소를 만드는 일을 하고 있어요. 100평에서 150평 정도의 전용공간인데, 청소년이 책만 읽는 게 아니라 책 읽고 영화를 보거나 음악을 듣기도 하고, 무언가 만들기도 하면서 자기 탐색을 할 수 있는 멋진 공간입니다.
*어린이 작업장: 청소년으로 진입하는 시기의 어린이들이 안전한 공간에서 관계를 맺고, 다양한 삶의 기술 및 태도를 배우고 익힐 수 있도록 지원하는 어린이 놀이 및 작업 프로젝트.
“저는 호기심을 못 참는 사람이라 궁금하면 끝까지 파야 하거든요. 너무 궁금한 거죠. 왜 이렇게까지?”
현재 대학원 재학 중이라고 잠깐 이야기해 주셨는데요. 대학원은 어떤 계기로 가게 되셨나요?
하자에서 퇴사하기 전에 대학원에 붙었어요. 원래는 퇴사하고 대학원에 가면 되겠다고 생각했는데요. 이직을 하게 되면서 일과 공부를 병행하게 된 거예요. 저는 (하자에서 일하는 동안) 현장에서 경험하고 본 것을 정리하며 균형적인 시각을 갖고 싶었어요. 어린이의 창의적인 경험, 개방적인 환경과 놀이, 이런 부분에도 관심이 있었고요. 그래서 대학원에 갔어요. 교육학이라는 게 굉장히 넓은 분야지만 나름대로 길을 찾아가고 있죠.
일관성 있게 일을 이어가고 계신 것 같아요. 하루의 일을 계속 이어지게 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저는 20대 초반에 인문학, 예술, 교육에 관심이 있었어요. 소름 돋는 게 대학생 때 다이어그램을 그리면서 ‘인문, 예술, 교육 세 개가 겹치는 어딘가라면 나는 재밌게 일을 잘할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한 게 기억나요. 지금까지 관련된 일을 해왔다고 생각하고요. 어린이를 자세히 들여다본 게 여기까지 오게 한 힘인 것 같아요. 놀이터 사업을 하면서 놀이하는 아이들을 봤는데 너무 몰입하는 거예요. 특히 만들면서, 무언가를 계속 쌓고 변형시키고 (그 과정에) 몰입하는 걸 보면서 흥미로웠고 이유가 궁금했어요. 저는 호기심을 못 참는 사람이라 궁금하면 끝까지 파야 하거든요. 너무 궁금한 거죠. ‘왜 이렇게까지 몰입할까?’ 그러다 어린이 작업장을 만들고 일주일에 한 번씩 같은 어린이 그룹을 만나면서 이 아이들에게 작업이 어떤 의미인지 육성으로 듣게 된 거예요. ‘작업이라는 게 이 아이들에게는 엄청난 의미구나’ 이걸 알게 된 게 컸어요. 그러면서 어린이가 작업하는 공간을 만들게 됐고, 그게 지금의 일로 연결됐어요. 제가 해온 일 전체는 어린이를 면밀하게 들여다보고 관찰하면서 그들의 경험을 의미 있는 교육적 현상으로 본 것 아닐까 싶어요. 최근에서야 든 생각인데, ‘나는 그런 현상을 관찰하는 일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구나’라는 걸 알았어요. 그동안 관심 있게 보면서 해온 일이 다 연결되어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하자센터 어린이 작업장 어린이의 말들
나의 커리어, 내 작업의 일대기를 그려본다면 전환점이 되는 것들이 있잖아요. 뭐가 있을까요?
생각하는 청개구리를 맡았던 게 가장 큰 전환점이었던 것 같아요. ‘어린이’라는, 평생 연구하고 싶은 대상을 만났으니까요. 생청 안에 다양한 프로젝트가 있었지만 저에게 가장 많은 영향을 준 건 어린이 작업장이었어요. 어린이 작업장을 하면서 일주일에 한 번씩 직접 아이들을 만났거든요. 1년 동안 어린이들의 목소리를 매시간 기록해서 회고하고, 그 목소리를 바탕으로 다음을 기획했어요. 그때 굉장히 진하게 아이들과 교감하고 소통했던 것 같아요. 아이들에게 몰입하는 경험을 주고 그 과정을 저도 같이 겪은 거죠. 그 일이 저에게 자양분이 된 것 같아요. 어린이 작업장을 3년 정도 했거든요. 그러면서 어린이들의 목소리를 듣고 관찰하는 훈련을 많이 했어요. 현장 경험과 연구를 같이 가져가고 있는 지금 돌아보면 그게 씨앗이 된 것 같아요.
조금 더 이전에는 희망제작소 인턴 경험이 커요. 제가 처음 희망제작소 사무실 공간에 들어가자마자 한 생각이 ‘나는 이런 곳에서 일해야겠다’였어요. 꼭 비영리 분야나 연구소에서 일해야겠다는 것보다는 일터의 분위기가 편안했던 것이 크게 인상에 남은 것 같아요. 그때 접한 책이나 경험이 사회를 보는 시각이나 문제의식을 갖는 데 도움을 주기도 했고요.
그전에는 대학 시절의 교환 학생 경험도 있어요. 미국에서 교환 학생으로 지내면서 세상이 너무 넓다는 걸 알았거든요. 백인, 미국인 중심의 사회에서 철저히 소수자가 되어보는 경험도 흥미로웠어요. 그러다 보니 난민이나 이주민에 대해서도 관심을 갖게 돼서 귀국했을 때 이주민을 지원하는 일을 한 적도 있어요. 그때의 경험, 참여한 수업이나 프로젝트를 통해 시야가 완전히 넓어지면서 ‘교사는 하지 않아도 되겠다’고 생각했죠.
미국 교환학생 시절
다양한 일을 하고 계실 텐데요. 하루가 하시는 일 중에 하나의 과정을 쭉 소개해 주실 수 있을까요?
어린이실 기획으로 예를 들어 말씀드리면, 최근에 저희가 작업실 조성뿐 아니라 공공도서관 파트너를 찾아서 어린이실 전체를 새롭게 조성하는 프로젝트를 시작했어요.
[공모 오픈과 선정] 어떤 공간을 만들겠다는 상이 생기면 그 안을 갖고 어떤 도서관이 선정되면 좋을지 내용을 기획해서 공모를 오픈해요. 저희가 기금을 지원해서 공간을 조성하는 것이기 때문에, 공고를 오픈하면 전국의 도서관이 공모를 보고 우리가 이런 걸 만들고 싶다고 지원을 해주세요. 그러면 그중에 파트너를 선정하는 거예요.
[리서치] 선정 후에는 리서치 기간을 가져요. 예를 들면 그 도서관의 이용자 현황은 어떤지, 도서관에서 어떤 경험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봐요. 도서관 측에서도 어린이 이용자들이 어떤 경험을 하고 있는지 이용 행태를 보셔야 하니까요. 이용자들의 숨은 니즈가 뭘까? 왜 도서관에 오지 않는 걸까? 이런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 리서치를 하는 거예요. 리서치는 우리가 만들고 싶은 도서관을 위한 레퍼런스(참고자료)를 찾는 것과 현장 탐방, 인터뷰를 모두 포함해요.
[설계 및 콘텐츠 기획] 그러면 이제 컨셉이 나와요. 도서관과 저희 재단이 같이 만들고 싶은 도서관의 모습, 그 안에서 일어나야 할 어린이들의 경험에 대한 콘셉트를 발굴해요. 그 콘셉트를 갖고 건축팀이 들어와서 설계를 하시고요. 설계하는 동안 저희와 도서관은 콘텐츠를 같이 기획해요. 어떤 책을 넣자, 책은 어떻게 넣자, 재료나 도구는 이렇게 하자. 이런 식으로 구체적인 콘텐츠 기획을 합니다. 운영을 어떻게 해갈지도 이야기해요. 저희가 직접 운영하는 게 아니라서, 어떻게 안정적으로 운영해 가실 것인지 계속 소통합니다.
[시공, 오픈 이후 과정] 최종 디자인이 결정되면 시공에 들어가게 되는데, 공간 조성이 완료된다고 끝이 아니라 운영자분들이 호기심을 갖고 아이들의 경험을 들여다보면서 새로운 시도를 지속해 나가실 수 있도록 독려하는 역할도 하죠. 여러 차례 모임을 조직해서 운영자분들끼리 만나는 자리를 만들거나 저희가 새로운 콘텐츠를 개발해서 넣어드린다든지, 조성 후 시간이 지났다면 가구를 리뉴얼해 드린다든지, 후속 프로세스가 있어요. 그 공간이 정말 이용자 중심으로 잘 운영될 수 있도록 모든 지원을 같이 합니다.
어린이 작업실 모야(MOYA) ⓒ도서문화재단씨앗
“스스로 안정감이 있으면 다른 사람을 볼 때 조바심이 아니라 고마움이 느껴지더라고요.”
하루가 하고 계신 일의 매력은 무엇일까요?
어린이가 새로운 탐색과 성장의 기회를 만나고, 모험할 수 있는 영감의 공간을 만든다는 것 자체로 자부심이 있어요. 전국에 이런 공간을 점점 늘려가는 것도 너무 뿌듯한 일이고요. 이 일의 목적이나 비전, 대상 모든 게 저에게 잘 맞아요. 조직적인 측면에서는 제가 호기심을 갖고 해보고 싶은 부분을 동료와 충분히 논의하고 시도할 수 있고, 유연하면서도 효율적으로 일하는 곳이기 때문에 만족도가 높아요. 하는 일의 특성과 조직이 일하는 방식, 분위기가 전부 매력인 것 같아요.
지금 일하고 계신 업계가 미래에 겪게 될 변화가 있을까요?
저는 ‘제3의 공간’에 대한 요구가 계속 늘어날 거라고 생각해요. 제3의 공간은 집도 학교도 아닌, 새로운 탐색을 하면서 영감을 얻고 느슨한 관계를 맺을 수 있는 공간을 말해요. 하자도 그런 공간이라고 할 수 있고요. 사람들의 취향이 점점 더 뾰족해지고 ‘나’를 찾는 일이 일종의 시대정신*이 되어버렸기 때문에, 제3의 공간에 대한 니즈는 더 많아질 거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디지털 경험이 어린이·청소년의 삶에 무차별적으로 들어오고 있는 상황에서 실물 경험과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일, 내 경계를 넘어보는 일에 대한 니즈는 더 많이 생겨날 거라고 봐요. 좋은 쪽으로 니즈가 있을 것 같다는 막연한 희망과 기대가 있죠. 지금은 누구나 다 크리에이터가 될 수 있는 시대잖아요. 인류 역사상 아이들에게까지 뭔가를 창조할 수 있는 기술과 도구, 환경이 이 정도로 주어진 시대는 없었거든요. 결국 아이들도 주체가 돼서 뭔가 생산하고 표현하는 방향으로 시대가 흘러가고 있는데요. 저는 이 기점에서 아이들이 디지털 쪽으로 함몰되지 않고 자신의 중심을 오프라인에 든든하게 가져보는 경험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오프라인 경험이 중요하고, 실물로 뭔가 만들어 보면서 문제를 발견하고 해결해 보는 경험이 중요할 것 같아요. 온라인이나 스마트폰은 그냥 내가 버튼 한 번 누르면 되는, 노력이 필요하지 않은 시대를 만들어요. 사실은 그 이면에 우리가 모르는 노력과 기술이 너무 촘촘하게 들어가 있는데 볼 수가 없는 거죠. 많은 사람이 이런 이슈에 경각심을 갖고, 인공지능이나 가상 세계에 관심을 가질수록 오프라인 경험에 대한 니즈도 커질 거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그래서 더 많이 각광받을 거라고 생각하죠. 그렇게 돼야만 하고요. (웃음)
*시대정신: 한 시대의 사회에 널리 퍼져 그 시대를 지배하거나 특징짓는 정신.(표준국어대사전)
도서문화재단씨앗 <책, 풀, 톱 : 2023 도서관과 작업실 컨퍼런스> 중에서
일을 하면서 좌절하거나 실망한 경험도 있으셨나요?
일 자체는 크게 어려운 것은 없었는데, 제가 어렵게 생각했던 건 관계적인 부분이에요. 관계란 두 가지가 있을 수 있는데요. 내가 나와 맺는 관계, 다른 사람과 맺는 관계가 있어요. 그중에 큰 건 ‘나와 맺는 관계’인 것 같아요. 나와의 관계가 건강하면 다른 사람과의 관계도 괜찮을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근데 내가 나를 봤을 때 실망할 수 있잖아요. 나와 다른 장단점을 가진 사람과 일할 때, 상대가 내가 못 해내는 부분을 너무 잘 해낸다거나, 내가 인정받지 못하는 부분에서 인정받는 모습을 보게 돼요. 특히 그 사람이 나랑 비슷한 연차일 때 ‘나는 커뮤니케이션도 못 하는 것 같고, 꼼꼼하지도 않고, 용두사미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었거든요. 그럴 때 저는 ‘저 사람이 잘하는 영역이 있고, 내가 잘하는 영역이 있다’는 생각으로 빨리 돌아와요. 그러면서 ‘내가 이 조직에 기여할 수 있는 건 뭐지? 내가 더 잘할 수 있는 건 뭐지?’ 이렇게 질문을 돌려요. 스스로 안정감이 있으면 다른 사람을 볼 때 조바심이 아니라 고마움이 느껴지더라고요. 내 단점을 보완해 준다고 생각하게 되니까요. 그래서 나의 장단점을 잘 보면서 내가 기여할 수 있는 일을 찾고, 쓸데없는 비교 의식에 나를 허비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런 것은 일하는 과정에서 훈련하게 되신 건가요? 맞아요. 생각 회로를 계속 돌려보면서 나의 장점이 있고 저 사람의 장점이 있다, 저 사람도 단점이 있다, 그리고 저 사람도 나를 그렇게 보고 있을 수 있다, 라고 생각했어요. 그러면 협력할 때 훨씬 더 좋은 합이 나오는 것 같아요.
“몰입하는 경험이 또 다른 이정표를 만들어낼 수 있어요. 진심으로 한 경험은 나에게 태도로 남거든요.”
마지막 파트인데요. 요즘 하루의 일상에 대한 만족도는 어떤가요?
80%? 원래는 거의 100%인데요. 제 몸을 관리하는 게 굉장히 중요하다는 걸 30대 중반이 넘어가면서 알게 됐거든요. 20을 빼는 건 좀 심했나? 90%? 모르겠어요. (웃음) 아무튼 일에 대한 만족도는 더할 나위 없습니다. 제 인생에서 이렇게 좋은 조직을 또 만나기는 힘들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업무 커뮤니케이션의 효율성이나 유연성, 일을 연속·지속해서 할 수 있는 부분이라든지, 구성원도 너무 훌륭하고 배울 점이 많은 분들이라 즐거워요. 그래서 일에 대해서는 100%, 일상에서는 20%를 빼야 할 것 같긴 하네요. 최근에 ‘내가 일을 건강하게 하고 있나?’ 이런 질문을 했거든요. 일을 하면서 대학원에 다닌다는 게 쉽지 않아서 그런 것 같아요. 시간이 없으니 일상을 가꾸는 면의 만족도는 떨어지는 거죠. 더 건강하게 일할 방법을 고민해 보고 있어요.
괜찮을까요? 하고 싶은 일 계속해도.
어린이들의 작업을 들여다보면, ‘저 경험이 아이들에게 어떻게 남을까?’ 고민하게 돼요. 근데 저는 스스로를 뛰어넘을 만큼 뭔가에 몰입하고 애정을 갖고 집중하는 경험은 어떠한 방식으로든 태도로 남을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내가 내 인생의 어떤 구간에서 하고 싶은 일로 끝까지 가봤다, 풀고 싶은 문제를 풀어봤다면 그 일을 계속 못 하게 되더라도 반드시 인생에서 가치 있는 경험으로 전환될 거라고 생각해요. 저는 너무 감사하게도 제가 하고 싶은 것이 지속 가능한 일로 연결되고 있는 상태인데요. 누군가는 그러지 않을 수 있잖아요. 춤을 추다가 잘 안돼서 카페를 열거나 할 수 있죠. 근데 어떤 시기에 전심을 다해서 전폭적으로 나를 던져보는 경험은 누구에게나 필요하고, 그 경험이 주는 충만감이 있다고 생각해요. 몰입하는 경험이 또 다른 이정표를 만들어 낼 수 있어요. 진짜 진심으로 한 경험은 나에게 태도로 남거든요. 여기서 중요한 건 하고 싶은 일을 ‘고민하면서’ 하는가, 예요. 생각을 하면서 하고 있는지가 중요한 것 같아요. 그래서 저는 청소년에게 몰입하는 경험을 더 줘야 한다고 생각해요. 기승전 작업실이네요. (웃음)
하고 싶은 일이 없는 사람도 있을 텐데 하고 싶은 일을 찾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지난 학기 대학원에서 배운 이론 중에 ‘우연 이론’이라는 게 있어요. 어떤 진로에 진입한 사람들을 살펴보면 어릴 때부터 계산되거나 계획된 어떤 길에 들어서는 경우보다, 우연한 만남이나 사건을 통해 진로를 선택하는 경우가 훨씬 많다는 거예요. 그렇다면 우연한 만남이나 사건이 어떤 사람에게는 그 사람의 진로를 확 변화시키는 계기가 되는데 왜 누군가에게는 같은 사건이 와도 그냥 지나가는가, 라는 거거든요. 우연한 계기를 붙잡을 힘이 있다면 (어떤 사건도) 그냥 지나치지 않게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결국 우리 삶을 변화시키는 건 되게 우연한 것일 수 있는데 그 우연을 붙잡으려면 그냥 호기심을 믿고 가봐야 하는 것 같아요.
청소년들에게 정말 해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스마트폰을 내려놓으라고 말하고 싶어요. 물론 저에게도 해당하는 말일 수 있지만요. 그 만남(일상을 바꿀 우연한 기회)은 휴대폰 안에 없어요. 사전 탐색 정도는 될 수 있겠죠. 근데 결정적인 건 그 안에 없고 밖으로 나가야 해요. 나가서 사람을 만나고 현장에 가봐야 진짜 뭔가가 생겨요. 현장에서 겪는 생동감이나 문제의식이 사람에게 어떠한 정서를 불러일으켜서 그 사람을 움직이는 거거든요. 제가 좋아하는 책이 아즈마 히로키의 <약한 연결>이라는 책인데요. 진짜 추천드려요. 일본의 굉장히 유명한 철학자가 쓴 책인데, 되게 얇답니다? (웃음) 시작은 자기계발서처럼 시작해요. “너만의 새로운 검색어를 찾을 수 있어!”라는 이야기를 하는데, 새로운 검색어를 찾으려면 다른 장소로 몸을 이동해야 한다고 말해요. 저는 그 말에 완전히, 100% 동의해요. 액정 안에서는 못 찾아요. 저는 스마트폰 현상을 심각하게 생각하는 편이라, 종종 과학적인 사실들을 찾아보곤 하는데요. 스마트폰을 계속 보면 뇌가 피로해져서 무언가를 더 알아가고자 하는 호기심과 동기를 죽이게 된다고 해요. 그러니까 의식적으로 스마트폰을 멀리하고, 우연한 만남에 마음을 맡기고 호기심을 따라가 볼 수 있는 경험을 할 수 있는 공간을 찾아가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마지막으로 이 글을 읽는 청소년들과 나누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뭐랄까, 복을 빌어주고 싶은 마음이 들어요. 저도 청소년기와 대학 시절을 보내고 지금은 40대를 향해 가고 있는… 오마이갓. 그런 와중에 있는데요. 지금의 청소년은 제가 청소년이었던 시대보다 더 많은 정보와 자극이 있는 시대 속에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제 청소년기보다 더 복잡하거나 위험하거나, 불안한 부분이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사람 한 사람 모두의 삶이 가치 있고 그 시절이 너무 귀하기 때문에 애틋한 마음이 드는 것 같아요. 그래서 축복, 복을 빌어주고 싶은 마음이 있어요. 너무 자신을 낮게 보지 않고 가치 있게 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고요. '나는 가치 있는 사람'이라는 가장 기본적인 믿음을 가졌으면 좋겠어요. 내가 나를 믿으면 그때부터는 자연스레 길이 열리는 게 있거든요. '아, 내 호기심이나 관심을 따라가도 되겠네'라고 말할 수 있는 스스로에 대한 신뢰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스마트폰에 시간을 덜 썼으면 좋겠어요. 오프라인에서 사람들 만나는 기회가 너무너무 중요해요.
:: 기획·편집_ 효빛(안효연)
:: 윤문_ 나무(성윤서)
:: 사진제공_ 하루(민지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