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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을까? 하고 싶은 일 계속해도
: 하고 싶은 일 2년 차부터 20년 차까지
하야티 | 김지현
“사람들을 춤추게 만드는 사람, 하야티입니다.”
인터뷰를 읽게 될 독자들에게 인사 부탁드려요.
안녕하세요. ‘사람들을 춤추게 만드는 사람’이라는 정체성으로 활동하고 있는 하야티입니다. 서울에서 ‘훌라당’이라는 훌라 수업을 운영하고 있고 전국 각지의 커뮤니티와 연계해서 훌라캠프나 원데이 클래스를 여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세계의 다양한 춤을 배워보는 수업인 ‘세모춤(세상의 모든 춤)’을 시작하기도 했어요.
하자와는 어떤 인연이 있으신가요? 처음에 어떻게 오게 되셨어요?
스무 살 때 주말로드스꼴라*에 입학하면서 오게 됐어요. 대학 입시를 준비하다가 떨어졌거든요. 원했던 대학에 가지 못하게 되어서 어떻게 하지? 하다가 언니랑 태국 여행을 갔는데요. 그때쯤 주말로드스꼴라에서 길별(교사)을 하게 된 언니가 입학을 제안해서 태국에서 자기소개서를 썼던 기억이 있어요. 주말로드스꼴라 입학을 시작으로 하자에서 청소년카페(하자센터 신관 1층 ‘카페그냥’) 운영진을 하기도 하고 여러 수업도 참여하면서 많이 돌아다녔네요.
*주말로드스꼴라: 여행대안학교 로드스꼴라(RoadSchola)의 주말학교. 로드스꼴라와 하자센터에서 2020년까지 운영. 길잡이 교사를 ‘길별’이라 부름.
아하. 10대 때가 아니라 스무 살 때 오신 거군요.
네. 저는 산청간디학교(간디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하자센터에 왔거든요. 산청 간디는 (다른 대안학교에 비해) 입시를 하는 비율이 높은 편이라 저희 학년의 90% 정도가 대입을 준비했어요. 그래서 덩달아 불안해지는 마음도 컸죠. 아무래도 대학에 떨어지고 ‘무중력’ 상태가 된 스무 살이었기 때문에 뭐라도 하나 잡히는 게 필요했어요. 그렇게 하자에 와서 3~4년 정도를 제 집처럼 드나들면서 살았습니다.
*산청간디학교(간디마을학교): 경상남도 산청에 있는 대안학교.
로드스꼴라 여행에서
하야티는 어떤 청소년이었나요?
지금도 그렇지만 저는 빨빨거리고 돌아다니는 스타일이어서 하자에서도 신관 본관 할 거 없이 1층부터 4층까지 다 돌아다녔어요. 카페그냥에서 활동했다가 하하허허홀에서 춤췄다가 거울방에서 요가 수업을 듣기도 하고 옥상 텃밭, 부엌, 하품방… 그렇게 여기저기 쑤시고 다녔던 청소년이었던 것 같아요. 하자뿐 아니라 다른 곳에서도 수업이나 워크숍이 열리면 재밌겠다 싶어서 가보기도 하고요.
“나는 사람들을 춤추게 만들고 그들과 함께 춤추는 것이 기쁘구나. 라는 걸 느꼈어요.”
언제부터 춤에 푹 빠지게 되신 걸까요?
저는 모든 사람이 원래 춤을 좋아했다고 생각해요. 아기들이 음악 나오면 자연스레 춤추고 하잖아요. 근데 자라면서 성향에 따라 다른 걸 더 좋아하게 되거나, 춤을 잊거나, 아니면 부끄러워서 숨기게 된다고 생각하는데요. 저는 초등학생이었을 때도 학교에서 하는 활동 중에 춤을 가장 좋아했고 중학교 때부터는 춤동아리를 만들어서 활동했어요. 고등학교 때는 춤동아리장을 하면서 춤을 안 좋아한다고 하거나 부끄럽다고 하는 친구들이랑 무대를 만들기도 했고요. 그렇게 제가 가장 많은 시간과 열정을 쏟는 일이 어쩌다 보니 춤이었던 거죠.
‘사람들을 춤추게 하는 사람’이라는 정체성은 어떻게 정의하게 되신 거예요?
예술가 중에는 ‘나의 한계를 넘어서 내 능력치를 최고 수준까지 끌어올리겠다’ 이런 욕망이 있는 사람도 있잖아요. 예를 들어 나는 영혼을 팔아서라도 기타를 잘 치고 싶다거나 아니면 하루에 6시간씩 연습하면서 한국 최고의 드러머가 되겠어, 이런 타입의 예술가들이요. 근데 저는 최고의 댄서가 되겠다는 욕심을 가져본 적은 없는 것 같아요. 제가 하고 싶었던 건 항상 즐겁게 춤추는 일인데 혼자 추는 것보다 같이 출 때 훨씬 큰 기쁨이 있었어요. 한국 사람의 특성상 춤을 안 추는 사람이 춤의 세계로 넘어가는 게 참 힘들잖아요. 그런 사람들을 끌어들였을 때의 기쁨과 그들이 춤추는 모습을 볼 때의 기쁨, 그들과 함께 춤출 때의 기쁨이 너무 커서 ‘나는 사람들을 춤추게 만들고 그들과 함께 춤추는 것이 더 기쁘구나’라는 걸 느꼈어요.
어떻게 보면 혼자 수련하는 것보다 다른 사람을 움직이는 게 더 어려운 일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혼자 연습하면서 나의 실력을 향상하는 것도 어려운 일이죠. 제가 만약 그걸(스스로를 갈고 닦아 어떤 경지에 도달하는 일) 잘하는 쪽이었으면 그걸 했을 거예요. 하지만 저에게는 사람을 움직이고 춤추게 할 수 있는 능력이나 에너지가 있다고 생각해요. 나는 사람들과 함께하는 일을 더 좋아하고 잘한다고 느껴서 이 일을 하고 있어요.
춤에 자신이 없거나 소극적인 사람들을 어떻게 춤추게 하시는지 궁금해졌어요.
일단 중요한 건 재밌어 보여야 해요. ‘저 사람 지금 진짜 재밌구나. 되게 행복해 보인다’ 이런 생각이 들도록. 왜냐하면 훌라당에 오시는 분들이 “저는 춤을 한 번도 안 춰봤지만 하야티가 춤추는 게 너무 행복해 보였어요. 저도 훌라를 추면 그렇게 행복해질 수 있을까 하는 마음에 왔어요”라는 얘기를 많이 하시거든요. 그래서 일단 내가 기쁘고 행복해야 해요. 그리고 그걸 잘 보여줄 수 있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제가 아무리 “야, 진짜 춤 재밌다니까. 춤추면 진짜 힐링이야” 이렇게 입으로만 이야기해봤자 소용이 없어요. 오히려 반발심만 생길 수도 있고요. 그래서 말로만 하는 게 아니라 내가 춤을 충분히 즐기고, 그 즐거움을 보여주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요즘은 어떻게 지내고 계세요? 굉장히 바빠 보여요.
요즘은 주로 훌라당 수업을 하는데 제가 주 5일 일할 수 있는 사람은 아니거든요. 그래서 일, 월요일에 집중적으로 수업을 하고 화, 수요일에는 수업을 하나씩만 해요. 그게 저의 고정된 유일한 일정이고요. 그 외에 춤을 배우기도 해요. 삼바도 배우고 오리타히티(Ori Tahiti)라고 하는 하와이의 이웃 섬인 타히티의 춤을 배우는 수업도 있고요. 잠깐이지만 소울, 왁킹 같은 다른 춤을 배우기도 해요. 목, 금, 토요일이 휴일인데 쉬는 경우가 잘 없어요. 내일(금요일)도 제주도에 출강을 가는데요. 제주도 다음에는 속초, 함평에도 가야 해요. 보통 주말에는 이렇게 지역에 수업이 있거나 외부 행사에 초대받아서 수업을 해요. 이외에는 쉬면서 재정비하거나 연락에 답장하는 그런 업무도 하고 있습니다. 그 와중에 틈틈이 노는 것도 잊지 않고요.
수업 진행중 하야티
일과 관련해서는 주로 수업과 공연을 하시는 건가요?
아무래도 수입 면에서 보면 공연보다는 수업이 제일 큰 부분이긴 한데요. 훌라당 수업 말고도 외부 초대로 수업하는 경우도 있고, 공연이나 지금처럼 인터뷰를 하거나 혹은 SNS 콘텐츠를 만드는 것도 저에게는 일 중의 하나예요. 인스타그램을 관리하는 것도 되게 큰 업무 비중을 차지하거든요. 작년에는 게시물을 거의 매일 올렸어요. 그렇게 해야 사람들에게 자주 노출이 되고 나를 잘 보여줄 수 있으니까요. 그래서 업로드를 위한 콘텐츠 제작이나 계정을 가꾸는 일에도 시간을 많이 썼죠. 올해부터는 이 정도 했으면 충분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힘을 좀 뺐어요. 그런 일이 어렵지는 않으셨어요? 너무 어렵죠~ 근데 재밌었어요. 다행히 저는 사람들의 관심을 받는 거나 나의 재밌는 부분을 보여주는 것을 좋아해서 즐길 수 있었어요.
“하와이? 하와이에 가면 훌라를 배워봐야겠는 걸? 하고 생각했어요.”
훌라를 배우기 위해서 하와이로 떠난 적이 있다고 알고 있어요.
22살쯤 글방(글을 쓰고 배우는 모임)에 참여하고 있었는데요. 글쓰기 스승인 어딘(로드스꼴라 대표 교사, 어딘글방의 글방지기)이 “이번 겨울 하와이에 갈 건데 너도 갈래?” 그러셨어요. 가볍게 던지신 이야기였는데 제가 ‘하와이? 하와이에 가면 훌라를 배워봐야겠는걸?’ 하고 생각했죠. 그전에도 훌라를 배운 적이 있지만 전부터 여행 가서 현지 춤을 배우는 걸 너무 해보고 싶었거든요.
그때 마침 하와이에서 청소년에게 훌라나 하와이 문화를 가르치는 일을 하시는 알로나 선생님이 하자센터와 연이 닿아 있었어요. 그래서 판돌*들의 도움을 받아 알로나에게 메일을 보냈고, 다행히 열린 마음으로 받아주셨어요. 하와이에 가서는 훌라만 딱 배우는 것보다는 하와이 사람들은 어떻게 사나, 를 보는 게 더 컸던 것 같아요. 알로나가 초등학교에 하와이 문화와 역사에 대해 수업하러 가시면 따라가서 구경하거나, 하와이 의례*를 배우기도 하면서 하와이의 삶을 느껴보는 게 저에게는 큰 배움이었거든요. 그 후에 한국에 와서 훌라를 더 배웠고요. 그때는 하와이 가는 것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는데요. 돌아보면 그 경험이 제가 훌라를 가르치는 데 있어서 스토리텔링이 되기도 하고 저라는 사람에 대해 말해주는 경험이 되어서 잘 다녀왔다고 생각해요.
*판돌: 하자센터 직원을 부르는 말. ‘판을 만들고 돌리는 사람’이라는 뜻.
*의례: 행사를 치르는 일정한 법식 또는 정해진 방식에 따라 치르는 행사.(표준국어대사전)
알로나와 하야티
훌라당 소개를 부탁드릴게요.
훌라당은 이름처럼 훌라를 배우는 곳이에요. 당(堂)이라는 글자에는 식’당’처럼 집이라는 뜻이 있잖아요. 그래서 훌라당은 훌라의 집이라는 뜻도 있고, 또 훌라당~ 발라당~ 이렇게 통통 튀는 저의 에너지를 담은 이름이기도 해요. 혹은 파티(Party), 정당으로서의 이미지도 있으면 재밌겠다 싶어서 이렇게 이름을 정하게 됐어요. 훌라당은 제가 언제 어디서 이렇게 다양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아주 다양한 지역에서 다양한 삶을 사는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에요. 서로 느슨히 연결되어서 서로의 삶과 훌라를 응원하는 그런 시공간입니다.
느슨히 연결된다는 건 커뮤니티의 역할도 한다는 것일까요?
훌라당에서는 수업을 시작하기 전에 꼭 돌아가면서 안부를 나눠요. 한 주 동안 어떤 일이 있었고 어떤 마음으로 지냈는지, 오늘 나의 기분이나 상태는 어떤지 이런 얘기로 수업을 시작하죠. 제가 매달 새로운 분들을 만나다 보니까 이 사람이 누구였는지 까먹기도 하는데 안부를 주고받으면 그 사람의 이야기가 들리고 보이잖아요. ‘저 사람 얼마 전에 퇴사했다고 그랬어’, ‘저 사람 식물 키운다고 그랬어’, ‘저 사람 얼마 전에 키우던 강아지가 떠났다고 했어’ 이렇게 서로를 더 기억하고 이해하게 돼요. 이야기하다가 연결점을 찾으면 ‘어? 저도 토마토 키워요’ 하면서 연결되기도 하고요. 훌라를 매개로 만난 사람들이 적당한 거리와 안전함을 느낄 수 있는 시공간에서 서로의 삶을 살짝 들여다보는 거죠. 나의 일주일을 돌아볼 일이나 내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곳이 없다고 느끼다가 훌라당에 와서 새로운 연결을 경험하게 되었다는 분들이 많이 계세요. 실제로 훌라당 밖에서 훌라당원(수강생)끼리 활동하거나 함께 놀러가기도 하는데요. 어떤 분들은 하와이 여행을 같이 가셨어요. 훌라당 밖에서 우연히 만나는 일도 많아요. 지하철을 탔는데 어떤 사람이 훌라 손동작을 연습하고 있네? “혹시… 훌라당?” 이렇게 만나기도 하는, 굉장히 넓고 느슨한 훌라당 유니버스가 있어서 저는 그걸 보는 게 재밌어요.
훌라당원들
하나의 수업을 열기 위해서는 어떤 과정이 있을까요? 수업 진행 외에도 많은 일이 있을 텐데요.
[홍보] 일단 SNS를 통해서 홍보하는 게 필요한데요. 홍보를 위해서는 그전에 지속적으로 나의 이야기를 보여주는 게 중요하니까 계속 나를 노출하는 것이 첫 번째 단계라고 볼 수 있어요.
[운영 관리] 그다음은 수업 시간을 정하고 장소를 섭외해요. 그리고 신청 현황을 관리하죠. 신청서를 확인하고 인원이 다 모이면 신청을 마감하고요. 몇 명을 더 모아야 한다면 추가적인 액션을 취해요. 환불 요청이 있을 때는 환불 규정 적용에 대해서 고민하기도 하고요. 또 재밌을 것 같은 일이 떠오르면 기획부터 준비, 오픈, 홍보, 진행하는 일까지 혼자 하고 있어요.
[수업 준비와 진행] 수업을 진행하는 건 짧은 시간이지만 그전에 수업 내용을 정리하고 참가자들에게 드릴 선물을 준비하기도 해요. 아! 그것도 있어요. 제가 강사로서 계속 트레이닝 받고 있기 때문에 수업을 받고 있기도 하거든요. 저의 선생님을 만나서 계속 새로운 인풋을 만들고 실력을 업그레이드하는 것도 제가 해야 하는 일 중의 하나죠.
[업무 관련 소통] 사실 가장 많이 하는 업무는 연락이에요. 제가 수업이 여러 개라서 수업 간에 교차 수강을 할 수 있도록 해놨거든요. 그럼 사람들이 “하야티, 저 이날 못 오는데 대신 이날 와도 되나요?” 하고 연락하면 확인하고 다시 연락을 드려요. 사람이 많으니까 하루에 몇 번씩 연락이 와요. 그리고 외부에서 수업 혹은 공연으로 협업 요청이 왔을 때 조율하는 연락도 하고, 훌라 커뮤니티 내에서 훌라인들과 계속 연결되기 위해 연락을 주고받는 일도 합니다. 실은 제가 연락하는 걸 너무 힘들어해요. 저는 휴대폰을 처음 가졌던 중학생 때부터 연락 안 하기로 유명했거든요. 그런데 연락을 너무 많이 해야 해서 부담될 때도 있어요.
[잘 놀기] 잘 노는 일도 하야티를 구성하는 것의 일부라고 생각해요. 만약 계속 일만 한다고 하면 지금의 제가 없을 것 같거든요. 그래서 잘 챙겨서 놀고 내가 어떤 사람인지 계속 스스로 자각하고, 보여주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계획이 망쳐졌을 때가 가장 큰 터닝 포인트죠. 어떻게 하지, 하다가 새로운 길을 열었으니까요.”
나의 커리어, 내 작업의 일대기를 그려본다면 전환점이 되는 것들이 있잖아요. 뭐가 있을까요?
첫 번째는 대학에 떨어진 것. 대학에 떨어져서 지금의 하야티가 있게 된 것 같아요. 공(空)의 세계가 열린 거죠. 원래 대학교에 들어가면 인생의 4년 혹은 그 이상을 대학 생활로 채우게 되잖아요. 대학에 떨어지면서 갑자기 (시간을 채울 것이) 텅 비어버리는 경험을 처음 하게 된 거예요. 그래서 그것을 어떻게 채울지 고민하고 괴로워한 것이 큰 계기였던 것 같아요.
또 하나는 하와이에 간 것이죠. 하와이에서부터 차츰차츰 연결돼서 한국에 와서 훌라 수업을 열게 된 거라서요. 하와이에 다녀오고서부터 본격적으로 훌라를 주변에 퍼뜨리게 되었고 지금 함께 활동하는 동료도 만나게 되었어요. 하와이에 갔다 온 게 삶에 훌라를 주요한 부분으로 들이는 데에 큰 역할을 했어요. 그렇게 두 가지 정도를 뽑을 수 있겠군요.
아, 생각해 보니까 코로나가 준 영향도 있어요. 왜냐하면 코로나 때문에 여행도 못 가고 운동도 못하고 하자센터 같은 곳도 전부 갈 수 없고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공(空)의 세계가 또 열린 거예요. 그때 너무 심심해서 훌라 지도자 자격증 수업을 듣기 시작했어요. 춤은 그전부터 계속 춰왔지만 강사 활동을 시작하는 데에 자격증이 큰 시동이었거든요.
정말 계획보다는 우연한 계기들이 있었네요.
심지어 계획이 망쳐졌을 때가 가장 큰 터닝 포인트죠. 대학에 가고 싶었던 계획이 망쳐졌고 또 재밌게 놀고 운동하려고 했던 계획이 망쳐져서 어떻게 하지, 하다가 새로운 길을 열었으니까요.
아무래도 하고 싶은 일을 하다 보면 진심이 될 수밖에 없잖아요. 그러다 보면 좌절이나 실망하는 일도 생길 것 같아요.
음. 일단은 없거든요. 저는 춤을 추고, 춤을 추게 만드는 일을 하는 것이 너무 만족스럽고 행복해서 어떤 일을 하든지 이거보다 더 좋을 수 없다고 생각해요. 물론 한국에서 댄서로 사는 것이 녹록지만은 않은 일이죠. 아무래도 예술이니까요. 예술인에 대한 지원이나 복지가 있지만 어떤 부분은 허술한 것도 맞고요. 코로나 때도 사람들이 예술은 효율적이고 생산적인 것 다음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더라고요. 그런 어려움(예술인으로서의 어려움)은 당연히 있지만요.
저는 댄서 일을 통해서 뭔가를 꼭 얻어야겠다는 욕심이 없는 것 같기도 해요. 지금은 제가 훌라로 생활을 유지하고 있긴 하지만 이걸로 안정적인 생활을 만들겠다는 목적이나 욕심이 없었어요. 그래서 좀 편안한 마음으로 하는 것 같아요. 제가 가진 최고의 목표는 ‘즐겁게 하는 것’이니까 댄서로 사는 게 힘들다면 그 목적에 위배되는 거잖아요. 그럼 댄서를 안하고 다른 일을 했겠죠. 예전에 다른 분야에서 풀타임으로 3개월 동안 일한 적이 있거든요. 일 자체는 좋았지만 바빠서 춤출 시간이 없는 점이 너무 힘들었어요. ‘내가 마지막으로 춤춘 게 언제였더라, 심장이 뛸 만큼 춤춘 게 언제였더라’ 생각하니까 우울해져서 그만뒀어요. 제 삶에 있어서 춤은 필수적인 요소니까 매일 출 수 있다는 것이 굉장히 행복하고 감사한 일이죠.
댄서의 일과 업계가 가까운 미래에 겪게 될 변화가 있을까요?
최근에 가장 큰 변화로 ‘스우파(스트릿 우먼 파이터)’가 있었거든요. 이전에는 댄서들이 좋은 인식이나 대우를 받지 못하다가 스우파 이후로 입지가 많이 바뀌었다고 해요. 사람들은 ‘좋아 보이는 것’을 추구하는데 스우파 이후로 춤이 좋아 보이는 것 중의 하나가 됐고, 춤추는 사람의 수나 춤의 영역이 늘어난 거죠. 그리고 요즘 이슈는 AI잖아요. 누가 누가 늦게 대체되나 이런 것들이 화두인데 춤은 그런 면에 있어서 가장 마지막에 있다고 생각해요. AI로부터도 그렇고 댄서 개인끼리도 고유한 그들만의 매력이 있기 때문에 서로가 대체되기 힘든 특징이 있다고 생각해요. AI의 영역이 늘어날수록 인간이 해야 할 일은 춤추는 일 같은 거라고 생각하기도 하고요.
훌라씬만 보자면, 제가 처음 훌라를 시작할 때만 해도 연령대가 높은 편이었어요. 40~60대 정도의 시니어분들이 주로 하는 춤이었고 강사들도 협회나 기관처럼 기성세대의 시스템으로 씬이 구성되어 있었어요. 지금은 청년층을 비롯해 다양한 연령층이 훌라를 알고 관심 갖게 되면서 강사들의 연령대나 수업하는 방식, 외부와 협업하는 방식도 다채로워졌어요. 저는 훌라의 세계가 점점 커질 거라고 생각해요. 앞으로 한국 훌라씬에서 어떤 일이 일어날지 너무 기대돼요.
거기에 하야티가 기여하신 바도 꽤 큰 것 같아요.
당연하죠. 물론 제가 활동할 수 있는 씬을 먼저 만들어 주신 선배들과 선생님들이 계시지만 새로운 훌라의 세계를 연 것에는 저의 역할이 굉장히 크다고 생각해요. 제가 훌라를 받아들이고 전달하는 방식이 새로웠고, 저를 통해 많은 사람이 훌라를 접하게 됐고 제 영향을 받은 강사님도 늘어났거든요. 여기에는 온전히 제 능력뿐 아니라 여러 운과 그동안 제가 만나온 사람들의 도움 덕분도 있지만요.
요즘 하야티의 일상에 대한 만족도는 어떨까요? 10점 만점이라고 한다면요.
300점, 300점이요. 근데 생각해 보면 저는 언제나 제 삶에 만족했어요. 훌라를 시작하기 전에 한 달에 30만 원 벌거나 스스로 확실한 정체성이 없을 때도 저는 행복한 인간이었거든요. 그때는 잘 노는 것에 대해서 만족했죠. ‘나는 적게 일하고 적게 벌지만 원하는 일을 원하는 만큼 하면서 알차게 잘 놀고 있어’ 하는 만족이 컸었던 시기가 있었어요. 지금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커리어도 쌓아가고 있고 동시에 잘 놀기도 한다는 데서 오는 만족이 있어요. 그래서 훌라당을 시작하고 나서 3년 동안은 육성으로 “정말 행복해”라고 많이 얘기했던 것 같아요. 훌라당이 항상 지금처럼 성황이었던 건 아니지만 늘 그렇게 감사했던 거 같아요.
훌라당 댄스 페스티벌
하야티의 긍정적인 에너지가 느껴지는 답변인데요. 이런 에너지는 타고 나신 걸까요?
가족력 아닐까 싶은데요. 이번에 ‘훌라당 댄스 페스티벌’을 준비할 때 엄마 아빠가 일을 도와주셨어요. 제가 전날까지 너무 힘들어하면서 새벽까지 일을 했거든요. 페스티벌이 끝나고 나서 (엄마한테) “정말 힘들게 고생했지만, 그래도 다행히 일이 잘 풀렸다”라고 이야기했는데, 엄마가 “그냥 고생 안 하고 일도 잘 안 풀리면 안 돼?” 이러시는 거예요. 그렇게까지 힘들게 무언가를 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시는 거죠. 무엇을 위해 너무 아등바등하지 않으면서 지금의 행복에 집중하는 성향은 가족의 영향이 큰 것 같아요.
저도 고등학생 때는 분명히 불안했거든요. ‘성인이 되고 잘할 수 있는 일을 찾아서 나를 먹여 살릴 수 있을까?’, ‘나는 무슨 일을 해야 하지?’ 이런 고민은 당연히 했고 대학에 떨어졌을 때도 너무 불안했고 막 울면서 ‘이제 어떻게 살아’라고 생각했어요. 근데 20대 초반에 하자 안팎에서 다양하게 사는 많은 사람들을 보면서 ‘저마다 각자의 방식으로 어떻게든 살아가는구나. 그리고 친구들과 함께 있다면 즐겁게 살 수 있구나’ 그걸 느끼면서 좀 안정된 것 같아요. 제가 만약 대학에 갔거나 회사에 다녔다면 저랑 비슷하게 사는 사람들만 만났을 수도 있죠. 그런데 학교나 회사가 아닌 곳에서 다양한 사람을 만나면서 친구들을 통해 ‘저렇게도 살 수 있구나. 아무리 하고 싶은 일이 없고 돈을 못 벌더라도 재밌게 살 수 있겠다’라는 마음을 느꼈어요. 제가 살던 동네가 서대문구의 ‘개미마을’이라는 달동네거든요. 거기에 같이 사는 식구들이 있었어요. 밖에서 힘든 하루를 보냈더라도 집에 가면 친구들이 “왔어? 한잔해.” 이러면서 맨날 노래 부르고 기타 치면서 같이 놀았어요. 새로운 친구도 많이 만났어요. 거기서 만난 다양한 세계, 연령대의 친구들이랑 잘 논 것. 그게 저에게 큰 영향을 줬네요. 넓은 스펙트럼의 사람들을 만나면서 낙관적인 성향이 더 강해진 것 같아요.
하야티와 가족들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게 불확실함을 재미나게 살아갈 힘이 된다고 생각해요.”
괜찮을까요? 하고 싶은 일 계속해도.
불확실함은(시대적 불확실성은) 우리가 바꿀 수 없는 거잖아요.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살아도 불확실하고 하고 싶은 일을 하지 않더라도 불확실해요. 그럴 거면 하고 싶은 일을 재밌게 하면서 불확실한 게 낫죠. 적성에 맞지 않아도 미래를 위해서 버티고 있는데 그 미래가 불확실하다면, 너무 억울할 것 같지 않나요? 저한테는 그게 더 큰 불안인데요.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게 불확실성을 재미나게 살아갈 힘이 된다고 생각해요. 무책임한 말일 수 있지만 주변을 보면 하고 싶은 일을 하는 사람들은 어떻게든 재밌게 살아가더라고요.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사람들과 연결되어 있다면 어떻게든 흐름이 생기고 길이 열리는 것 같아요. 제가 주변에서 느끼는 바로는 그래요.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먹고 살 수 있을까요? 하야티의 경우는 어떠신가요?
저는 시대적 흐름, 운, 상황, 저의 에너지 이런 게 잘 맞아서 잘 된 편이에요. 그래서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먹고 살고 있고 지금은 돈을 모으는 새로운 경험을 하고 있죠. 전에는 30만 원씩 벌어서 조금 모이면 하와이 가고, 모로코 가고 이렇게 돈을 모으지 않고 살았는데 지금은 돈을 모아도 보고 더 나은 수업을 위해 투자도 해보는 경험을 하고 있어요. 근데 이 상황이 지속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고 프리랜서와 저의 특성상 항상 왔다 갔다 할 거라고 생각해요.
저는 훌라당이 지금처럼 활성화되기 전에도 수입에 대해 큰 스트레스를 받지는 않았어요. 돈은 있다가도 없는 것이잖아요. 주어진 상황 안에서 적게 벌면 적게 쓰고, 대신 돈 안 들이고 놀 수 있는 걸 찾아서 최대한으로 놀았어요. 처음부터 돈을 벌어야겠다는 생각도 아니었고요. 처음 시작할 때는 수업을 알바랑 병행하려고 했어요. 수업으로 돈을 벌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으니까요. 하지만 그것도 상황이 받쳐줘야 할 수 있는 생각이에요. 제가 20대 초반에 월 30만 원, 50만 원 벌 때는 언니 집에 살면서 월세를 안 내도 됐었고, 부양해야 하는 가족도 없고, 큰 지출이 필요한 일도 없고, 친구들과 돈 없이 놀 수 있는 환경이었으니까요.
오히려 하고 싶은 일이 없는 사람도 있을 텐데 하고 싶은 일을 찾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저는 여러 흐름에 가볍게 휩쓸리면서 여기까지 왔는데 휩쓸리는 것에도 용기가 필요해요. 예를 들어 누가 하와이에 가자고 했는데 ‘하와이 가면 다음 달 생활비는 어떻게 하지?’, ‘하와이에 가려면 해야 하는 것도 많은데 갔다가 아무것도 못 얻어오면 어떡하지?’ 이런 불안을 갖고 계산하게 될 수도 있잖아요. 아니면 하자에 어떤 수업이 생겼대요. 근데 ‘차라리 그 시간에 알바를 하면 더 나을 텐데’ 혹은 ‘하고 싶긴 한데 좀 귀찮다. 낯선 사람들하고 있는 거 힘든데’ 이렇게 고민하면서 장애물을 스스로 만들 수도 있고요. 저는 그런 것보다는 그냥 ‘어, 이런 게 있네? 해야지’ 이런 느낌으로 했던 것 같은데요. 어떤 풀(Pool; 그룹이나 집단)에 있는 게 중요한 것 같긴 해요. 하자센터라는 풀도 그렇고 저는 다른 청년 단체도 되게 많이 기웃거리면서 이것저것 가볍게 많은 일을 했어요. 그렇게 하려면 제가 겪었던 것처럼 일상이 가득 차지 않은 공(空)의 세계도 필요하다고 느끼고요.
근데 또! 잘 노는 것도 되게 중요해요. 어쨌든 하고 싶다고 생각하는 일은 내가 즐거워하는 일인 거잖아요. 즐거운 일을 찾으려면 즐거워 봐야 아는 거니까요. 계속 즐거움을 추구하는 것을 잊지 않아야 해요. 생산적인 일이나 공부, 자격증, 일도 좋지만 잘 놀면서 내가 어떤 일을 즐거워하는지 알려면 많이, 잘 노는 게 중요해요. 피시방, 당구장 가는 것 말고 새로운 방법으로, 다양한 사람들과 잘~ 놀아보는 것도 방법인 것 같아요. 내가 기뻐할 수 있는 시기에 내가 기뻐하는 곳에 나를 두는 것이, 내가 기뻐할 수 있는 일을 찾는 방법인 것 같아요.
마지막으로 이 글을 읽는 청소년들과 나누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제가 청소년들에게 어떤 말을 해도 큰 도움은 안 될거라고 생각해요. 어른들이 저한테 아무리 뭐라고 이야기했어도 제가 안 들은 것처럼요. 나는 이렇게 살았다고 이야기할 뿐이지요. 이렇게 훌라를 추면서, 혹은 계획도 안 하고 흘러가는 대로 살 수도 있다는 거예요. 여러 가지 ‘이렇게 살 수 있다’의 한 버전인 거죠. 인터뷰를 읽는 청소년들의 삶도 ‘이렇게 살 수 있다’의 한 예시가 될 텐데, 그럼으로써 다른 사람들에게 용기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알았으면 좋겠어요. 저도 다른 삶을 보면서 ‘아, 저렇게 살 수도 있구나’ 느꼈거든요. 서로의 존재와 자기만의 사는 방식만으로도 응원이 된다는 걸 알았으면 좋겠어요.
:: 기획·편집_ 효빛(안효연)
:: 윤문_ 나무(성윤서)
:: 사진제공_ 하야티(김지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