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Newsletter
- Search
괜찮을까? 하고 싶은 일 계속해도
: 하고 싶은 일 2년 차부터 20년 차까지
짐승 | 유승연
“안녕하세요. 필름 메이커이자 영화를 만드는 사람인 유승연, 하자 이름은 짐승이라고 합니다.”
인터뷰를 읽게 될 독자들에게 인사 부탁드려요.
안녕하세요. 필름 메이커이자 영화를 만드는 사람인 유승연, 하자 이름은 짐승이라고 합니다. 주로 단편 영화 작업을 하고, 퀴어* 영화를 만들고 있어요. 최근에 작업한 <유언비어>는 동성혼이 법제화된 미래의 한국 이야기를 담은 SF적인 코미디 영화이고, 전작인 <할리보다 좋은>은 바이크를 타려는 20대 여성의 청춘을 담은 이야기입니다. 또 ‘어슬렁’이라는 락밴드 활동도 하고 있고요. 요즘은 트럼펫을 취미로 불고 있는, 노는 걸 좋아하고 제일 잘 하는 한 사람입니다. (웃음)
*퀴어(Queer): 성소수자를 포괄적으로 일컫는 말.
하자와는 어떤 인연이 있으신가요? 아주 오래된 것으로 알고 있어요.
맞아요. 제가 올해 하자 10년 차거든요. 중3 때 학교 진로 선생님께서 어떤 공문을 보여주면서 여기 참여해 보라고 제안해 주신 적이 있어요. 그게 하자센터 2층에 있는 미니극장을 활성화하는 ‘버려진 극장 살리기’라는 프로젝트였어요. 영상에 관심이 있었어서 영화와 관련된 외부 활동을 할 수 있다는 생각에 기뻐하면서 참여하게 되었죠. 그때 하자에서 ‘미니극장 영화제’를 준비하면서 상영회 기획부터 영화 선정도 하고 청소년들끼리 모여서 의제*를 선정하는 활동을 했어요. 그런 경험이 처음이라 정말 재밌게 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하자가 제 꿈을 찾아줬는데요. 갑자기. (웃음) 영화제에서 상영할 청소년이 만든 영화를 찾아보다가 서울영상고등학교라는 특성화 고등학교를 알게 됐어요. 그때 처음 청소년에게 영화를 가르쳐주는 학교가 있다는 걸 알게 되어서 나중에 그 학교로 진학하게 되었어요.
*의제: 회의 등에서 의논할 문제
하자이름이 짐승인데. 짐승은 무슨 뜻이에요?
짐승이 무슨 뜻이냐, 제가 하자에 처음 왔던 때 육체미를 강조하는 콘셉트의 아이돌인 ‘짐승돌’이 유행이었는데요. 어떤 그룹에 승호라는 멤버 별명이 ‘짐승호’인 거예요. 그래서 아무 생각 없이 ‘나는 승연인데 그럼 짐승연인가?’ 이러고 짐승이 됐어요. 지금 다른 곳에서는 하놀(하루 종일 놀고 싶다)이라는 이름을 쓰긴 해요. 짐승은 좀 부끄러워서요. (웃음) 그래도 저의 에너지와 나름 잘 어울리는 닉네임이라 하자에서는 짐승이라는 이름을 계속 쓰고 싶어요.
청소년기에 하자 말고 다른 곳에서도 활동을 하신 적이 있나요?
21살에 서울시 여성가족재단에서 ‘여성이시네(Cine)’라는 청년 여성 영상 제작 프로젝트에 참여했어요. 거기서 <낙서>라는 영화를 만들었는데 그 영화가 서울국제여성영화제 초청 상영을 하게 되면서 네이버에 검색하면 나오는 ‘감독’ 딱지를 갖게 됐죠.
저는 영화를 좋아하고 고등학교에서도 영화를 배웠지만 대학을 영화과로 가지는 않았어요. ‘영화과라는 정해진 루트를 거쳐야만 내가 영화를 만들 수 있나?’ 이런 의구심이 많이 들었던 것 같아요. 그리고 영화과에 진학하게 되면 헤드(리더) 자리는 남자들이 대부분 차지하고 있는 상태에서 여성들끼리 뭉치기도 어렵고 내가 원하는 소재로 마음 편히 영화를 만들기가 힘들 것 같다는 걱정이 있었어요. 고등학교에서는 친구들이랑 ‘너는 배우 해’, ‘너는 카메라 잡아’, 이런 식으로 여성들끼리 영화를 만드는 게 당연했거든요. 영화과는 안 갔지만 영화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은 항상 있었던 것 같아요. 그러다가 여성이시네에서 완전히 여성들만 모인, 그간 제가 작업해 왔던 편안한 자리에서 다시 한번 영화를 만들 수 있게 돼서 (영화 제작의) 불씨가 살아났죠.
“학교가 그렇게 재밌지 않았어요. 그래서 하자에서 하는 활동에 더 매달렸던 거 아닐까요?”
대학에서 미디어 아트를 전공하셨는데요. 영화과랑은 어떻게 다른가요?
미디어 아트는 컴퓨터로 할 수 있는 모든 작업을 다 해요. 사운드적인 작업도 하고 AR, VR, 3D도 하고 영화랑은 좀 다르죠. 영화는 서사(이야기)를 다루는 매체고 실사 촬영을 기반으로 하고 있는데 미디어 아트는 더 폭넓은 영상을 다루니까요. 사실 제가 하고 싶은 거랑은 달랐어요. 저는 영상으로 이야기하고 싶은데 갑자기 그걸 조형적으로 표현해야 하는 거예요. 왜 들어갔지? 맞아, 그때는 4차 산업혁명 같은 게 떴거든요. (웃음) 학교가 그렇게 재밌지 않았어요. 그래서 하자에서 하는 활동에 더 매달렸던 거 아닐까요?
서울영상고등학교에서 영화를 배웠다고 하셨어요. 고등학교 생활은 어땠어요?
너무 재밌었어요. 일단 제가 국영수 공부를 좋아하지 않았고 중학교 2학년 때 수행평가로 영상을 처음 만들어 보면서 영상의 문법이 저에게 너무 편안하다는 걸 알았거든요. 그래서 일찍부터 영상 쪽으로 가야겠다고 마음을 먹고 특성화 고등학교에 진학했어요. 국영수 배우는 것처럼 다큐멘터리도 만들고 영화 제작도 배우고 그랬답니다.
고등학생 때 청소년을 주인공으로 한 재밌는 영화를 많이 만들었어요. 한번은 날라리 청소년과 공부만 하는 청소년이 친구가 되어가는 과정에 대한 <순간의 꽃> 이라는 영화를 만든 적이 있는데 저희 학교가 기독교 학교이기도 하단 말이에요. 그래서 그런지 약간 엄근진(엄격, 근엄, 진지)한 분위기가 있었고 학생들이 만드는 작품도 퀄리티는 높았지만 청소년의 시선이라던가 유머가 들어있는 작업은 별로 없었어요. 근데 제가 작업했던 영화는 학생, 청소년들이 가볍고 편안하게 공감하기 쉬운 이야기를 다루고 있었죠. 그리고 그 결과물을 대강당에서 상영했는데요. 그 영화가 학교에서 거의 처음으로 욕이 들어간 대사가 자연스럽게 나왔던 영화였거든요. 그래서 그 대사를 듣자마자 전교생이 갑자기 막 웃으면서 박수를 치는 거예요. 그 경험이 되게 짜릿했고 ‘나는 영화로 사람들을 재밌게 하고 싶고 이게 내가 잘할 수 있는 거구나’ 하고 깨달았습니다.
고등학교를 특성화고로 간 게 좋은 선택이었네요. 사실 청소년기에 학교가 아닌 곳에서 활동을 한다는 게 쉽지 않잖아요. 정보가 없을 수도 있고 동기가 없을 수도 있으니까요. 짐승은 어떤 동기로 이런 활동을 하신 거예요?
어릴 때부터 제가 좀 특이하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어딘가 특이한 면이 있는데 그게 제가 살던 동네의 분위기에선 잘 표출되지가 않았고 학교와 학원만 왔다 갔다 하는 생활을 하면서 ‘뭔가 이상한데. 이게 아닌 것 같은데’ 하는 생각이 항상 있었어요. 그래서 학교에서 진로와 관련해서 공유해 주는 정보나 위클래스를 잘 활용해 보려고 노력했던 것 같아요. 그런 식으로 ‘나를 표현할 수 있는 수단이 뭐가 있을까. 내가 좀 이상한 것 같은데 왜 이상한 건지 알고 싶다’, 이상하다는 건 나쁘다는 게 아니라 어떤 말을 자꾸 하고 싶은데 친구들의 관심사랑은 다른 것 같고 이런 걸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자꾸 다른 것들을 살펴봤던 것 같습니다.
요즘은 어떻게 지내고 계신가요?
제가 9월에 유학을 가요. 그걸 기다리면서 영어 공부를 조금 하고 있고요. 최근에는 여성 영상인 네트워크 ‘프프프’*에서 단편 영화 협업 프로젝트를 진행하게 되어서 <유언비어>라는, 동성혼 법제화 이후 대한민국의 이야기를 다룬 퀴어 영화를 제작했습니다. 올해 상반기는 그렇게 보냈던 것 같아요.
*프프프: FFF, Feminist Filmmakers Forever, 여성 영상인 네트워크
“해야 할까? 말아야 할까? 지금 바쁜데, 언제 들어가지? 그러다가 시간이 다 간다고 생각해요.”
짐승의 활동을 쭉 봤더니 영화감독이면서 밴드 활동도 하시고 디자인에 사진도 찍고, 심지어 연극에서 연기도 하셨더라고요. 게다가 유튜버까지. 이 모든 걸 할 수 있는 원동력은 무엇일까요?
일단 뭔가 생각이 나거나 호기심과 흥미가 생기면 바로 도전을 하는 편이에요. 지금 제 옆에 트럼펫이 있는데 요즘 배우고 있거든요. 재즈 공연을 보러 갔다가 너무 재밌어 보여서 다음 날 바로 트럼펫을 샀어요. 이런 식으로 고민하는 시간이 절대적으로 적어요. ‘해야 할까? 말아야 할까? 지금 바쁜데, 언제 들어가지?’ 그러다가 시간이 다 간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고민은 배송을 늦출 뿐” 이런 말도 있잖아요. 일단 지르고 보면 그다음 3개월까지는 행복하니까 3개월까지 열심히 하다가 이제 생각하는 거죠. ‘이거 계속 해야 할까?’ 그렇게 흥미를 오래 유지하지는 못하지만 뭐든 처음에 강하게 스타트를 끊으면서 잡기(여러 재주)에 능해진 것 같아요. 흥미가 아예 죽는 게 아니고 나중에 또 살아나기도 하고요. 조금씩 여러 구덩이를 파다 보면 나중에 돌아와서 ‘나 이거 옛날에 했었잖아’ 하고 다시 구덩이를 파는 게 쉬워지는 것 같아요. 트럼펫을 시작한 지 2개월밖에 안 됐지만 저는 트럼펫을 불 수 있는 사람이 된 거잖아요. 그것만으로도 약간 용감해지는 느낌.
밴드 어슬렁
일과 취미의 영역이 있다고 한다면 짐승에게 영화는 일이고 다른 것들은 취미일까요?
저는 일과 취미가 같은 영역에 붙어 있어서 그걸 확실하게 분리하기는 어려운 것 같아요. 그리고 저는 운 좋게도 제가 좋아하고 재밌어 하는 일을 하고 있기 때문에 크게 스트레스를 받지 않거든요. 일을 취미같이 재밌게 하고요. 하지만 취미도 하다 보면 더 잘하고 싶어지니까 가끔 일처럼 느껴질 때도 있잖아요. 그래서 경계가 좀 모호한 편인 것 같긴 해요.
짐승에게 일은 어떤 의미인가요?
어렵다. 1(일)은 2전에 있는 거요. (웃음) 진짜요. 그런 것처럼 일에 대해서 너무 심각하지 않으려 한다는 거죠. 저는 가벼워야 어디든 갈 수 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심각하게 고민하면 길을 잃어버리거든요. 일이라는 게 가끔은 나한테 돈벌이 수단일 수도 있고, 사람들과 하는 일일 수도 있고, 좋아서 시작한 것일 수도 있는데. 필요한 거지만 너무 많은 의미를 부여하려고 하지 않아요. 이거 어려운 질문이네요.
“프리랜서로 일하는 건 되게 외로운 일인 것 같아요. 그래서 커뮤니티에 들어가게 된 거고요. 나와 비슷한 일을 하는 사람들을 찾는 게 중요하지 않을까요?”
외주 작업을 꽤 많이 하셨잖아요. 이제 시작하는 창작자들은 내 작업으로 어떻게 먹고 살 수 있는지가 궁금할 것 같아요. 시작이 가장 어려울 것 같은데 짐승은 어떻게 시작하게 된 거예요?
저는 고등학교 때부터 영상을 만들었으니까 감사하게도 졸업하고 제가 활동했던 곳에서 많이 불러주셨어요. 제 포트폴리오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유스보이스도 그렇고 다음세대재단도 그렇고요. 그래서 원하는 답이 아닐 수 있지만 발이 넓으면 기회를 얻는 데 유리하다고 말하고 싶어요. 그리고 자기 작업을 계속 얘기하고 다니는 게 좋아요. 저는 부끄러워서 얘기 안 했던 시절이 있는데 언제부턴가 어디 가면 ‘이런 일 없으세요? 저 요즘 완전 한가한데’ 이렇게 얘기를 하고 다니기 시작했어요. 프리랜서로서의 삶이 불안할 때는 책을 찾아보기도 했고요.
어떤 책이 도움이 됐어요?
뭐였더라, 박초롱 작가님의 <우리 직업은 미래형이라서요>라는 책이요. 제가 했던 고민과 비슷한 고민이 나오고 계약서는 어떻게 쓰는지, 불공정 계약은 어떻게 대처하는지, 어떤 식으로 지속 가능하게 일을 할 수 있는지 나와 있어서 도움이 됐어요. 프리랜서로 일하는 건 되게 외로운 일인 것 같아요. 그래서 ‘프프프(여성 영상인 네트워크)’에 들어가게 된 거고요. 나와 비슷한 일을 하는 사람들을 찾는 게 중요하지 않을까요? 그런 곳에서 일이 연결되고 클라이언트도 만나고 다른 사람이 못하는 일은 내가 할 수 있게 되기도 하고 그러니까요.
이제 작품 이야기를 해보려고 해요. 데뷔작 <낙서>는 어떤 영화인가요?
중학생 때 한 대기업이 저희 학교 교실을 빌려서 시험 장소로 쓴 적이 있어요. 근데 제 책상에 앉았던 사람이 책상에 있는 이름표를 보고 성희롱 낙서를 하고 간 거예요. 그래서 그 경험을 영화로 만들었죠. 신고해서 범인은 잡았지만 증거 불충분으로 흐지부지하게 끝났기 때문에 어른이 될 때까지 그 경험에 대해서 의문을 품고 있었거든요. 그러다 그걸 영화로 만들게 되면서 그때 받은 상처와 사회를 향한 답답함이 많이 해소된 것 같아요. 제가 만드는 영화는 보통 유쾌하고 가벼운데 그 영화는 좀 무거운 편이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한테는 의미가 있는 작업이에요.
영화 <낙서> 스틸컷. ⓒ유승연
이 영화로 여성영화제 초청도 받으신 거잖아요. 이때 감독으로서는 처음으로 영화제에 참석한 거죠?
너무너무 재밌었어요. 이 맛에 영화 한다니까. 영화제가 너무 좋아요. 영화감독이라고 불러줘서 좋아요. 왜냐면 영화감독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잖아요. 약간 슬프고 고달프고 돈 없고. 다 맞는 말이야 근데. 그렇지만 영화제에서는 영화를 사랑하는 사람들끼리 서로의 작품을 축하하고 대우해 줘서 좋아요. 큰 영화제라 레드 카펫도 걷고요. 그런 게 좋아요, 명예. 명예를 얻어서 기뻤습니다. (웃음) 근데 제가 너무 영화제 경험 얘기를 안 했나요? 작업실에서 혼자 작은 컴퓨터로 작업하던 영상을 압도적으로 큰 스크린을 통해 보게 되고, 그걸 받아들이는 관객의 모습을 보는 게 굉장히 좋은 경험이었죠. 몰입하는 순간이라는 게 되게 아름답잖아요. 근데 그 대상이 내 영화라니! 너무 짜릿하죠. 또 다른 영화 제작의 동력이 되기도 하고요.
관객 이야기 하셨으니까, 창작자에게는 피드백이 원동력이 되는 경우가 많잖아요. 짐승도 기억에 남는 피드백이 있을까요?
저 자신이 가장 좋은 피드백을 주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전 제 영화가 너무 재밌거든요. 그래서 그냥 ‘내가 재밌으니까 만들어야지’ 하는 마음이 계속 있는 것 같아요. 난 진짜 웃긴데, 내 영화. (웃음) 지난 주에 ‘썸머 프라이드 시네마’에서 <할리보다 좋은>을 상영했는데요. 작년 11월 이후로 처음 상영한 거라 저도 9개월 만에 봤는데 너무 재밌고 잘 만들었다 싶었어요. 왜 이게 더 넓은 영화제에 가지 못했을까 그런 생각도 하고요. 물론 좋아하는 만큼 제 작업을 누구보다 미워할 수도 있어요. ‘난 천재야!’ 와 ‘난 쓰레기야…’의 반복 속에서 저의 작업을 사랑하고 꾸준히 이어가려고 노력 중입니다. 그게 창작자의 숙명 같아요.
“용기가 필요한 사람들이 있으니까, 제가 조금만 가시화되는 활동을 해도 사람들이 큰 힘을 얻는다는 게 제 모든 활동의 원동력인 것 같아요.”
나의 커리어, 내 작업의 일대기를 그려본다면 전환점이 되는 것들이 있잖아요. 뭐가 있을까요?
이것도 될지 모르겠는데 2019년 퀴어퍼레이드(서울퀴어문화축제)에 닷페이스가 설치한 ‘고백부스’라는 게 있었어요. 작은 부스 안에 카메라가 설치되어 있어서 그 앞에서 아무 말이나 하면 되는 거였는데요. 거기에서 아무 생각 없이 말했는데 그 말이 바이럴 돼서 65만 명이 본 거예요. 그게 “엄마 아빠, 나 퀴퍼 왔어. 나 이번에 행진하려고 바이크 산 거야 미안해. 근데 내 돈 주고 샀으니까 안 미안해.” 이런 내용이었거든요.* 저는 아직 부모님께 커밍아웃을 안 했는데 그것 때문에 엄청 당당해졌어요. 너무 웃겨. 약간 뒷걸음질 치다가 엄청난 말을 해버린 그런 느낌인 것 같아요.
제 모습을 보면서 누가 용기를 얻는다는 게 너무 신기해요. 좋은 일이라고 생각하고요. 더 용기가 필요한 사람들이 있으니까 그렇게 조금만 가시화되는 활동을 해도 사람들이 큰 힘을 얻는다는 게 제 모든 활동의 원동력인 것 같아요. 그냥 전 이렇게 태어나 버렸기 때문에 이 에너지를 누군가한테 주면서 전달하면서 살아갈 수밖에 없다는 걸 어느 시점 깨달아 버린 거죠. 그래서 제가 더 가볍고 재밌는 얘기를 만들고 싶어 하는 것 같기도 하고요. 사람들에게 쉽고 빠르게 다가갈 수 있으니까요.
유튜브 채널 ‘닷페이스’ 영상 "엄마 나 사실 놀러 간다 하고 퀴퍼 왔어" 캡처
그리고 또 하나의 전환점은 영화 <할리보다 좋은>인데요. 저는 퀴어이기 때문에 아주 오래전부터 퀴어 영화를 찍고 싶었어요. 근데 고등학교를 기독교 학교로 다니면서 제가 진정 하고 싶은 이야기를 숨기며 작업해 왔고, 졸업 후부터 하고 싶은 이야기를 맘껏 담아 영화를 만들 수 있었죠. 그게 2021년에 제작한 <할리보다 좋은>이라는 영화예요. <할리보다 좋은>은 좋아하는 것을 향해 달려가는 '영주'라는 인물에 대한 이야기예요. 영주는 바이크를 타고 싶어 하는 청년 여성이자 퀴어인데요. 가족들은 영주가 바이크 타는 것을 반대해요. 이유는 딸이기 때문이죠. “남동생도 안 타는 바이크를 네가 왜 타냐.”라고 하면서요. 그래도 영주는 굴하지 않고 몰래 바이크를 사고, 다양한 일을 마주하게 돼요. 이 영화는 저의 자전적인 이야기에서 시작한 영화라 주인공 영주는 저와 많이 닮아있어요. <할리보다 좋은>을 통해서 소수자에 대한 이야기도, 바이크와 청년 여성의 성장 이야기도 할 수 있었기 때문에 저에게는 여러모로 의미가 있는 영화예요. 이 영화를 제작하고 제 안의 많은 가능성과 장점을 확인했죠. 꾸준히 퀴어 영화를 찍어야겠다고 다짐했어요. 제 영화는 ‘퀴어 이슈를 당연하고 자연스럽게 그려서 새롭다’라는 관객분의 피드백도 기억에 남아요.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서 자신감과 깊이가 생기는 것 같아요.
올해 작업한 영화 <유언비어>도 저만의 색깔을 듬뿍 담아 좋은 사람들과 즐겁게 제작했어요. 감사하게도 올 11월에 서울국제프라이드영화제* 상영 기회를 얻어서 관객분들에게 보여드릴 수 있게 되었답니다. 궁금하다면? 꼭 보러오세요. (웃음)
*유튜브 채널 ‘닷페이스’ 영상 "엄마 나 사실 놀러 간다 하고 퀴퍼 왔어"
*2023 서울국제프라이드영화제 2023.11.02-11.08
영화 <할리보다 좋은> 포스터. ⓒ유승연
일을 하다가 좌절하거나 실망한 경험도 분명히 있었을 것 같아요. 그럴 때 힘든 마음이나 감정을 어떻게 다루려고 하셨어요?
아무래도 인간관계에서 좀 그런 게 있었던 것 같아요. 영화 만드는 건 사람을 너무 많이 만나는 일이라서… 윽. 아직 극복하지 못해서 그래요. (웃음) 약간 부딪히는 일이 있었고 그게 제 부족함으로 인한 갈등이어서 오랫동안 회피했던 시절이 있어요. 자책을 많이 했죠. 그냥 직면하면 되는데 그런 문제가 생겼을 때 들춰보는 게 좀 어렵더라고요. 내가 완벽하지 않다는 것을 받아들여야 ‘나도 실수할 수 있고 그게 당연한거다’ 이렇게 편해지는 것 같아요. 그래서 너무 온 힘을 쏟지 말 것, 이게 저의 해결책인 것 같기도 합니다. 힘이 덜 들어가 있어야 이런저런 생각도 하면서 여기저기 흘러갈 수 있는데 너무 무겁거나 진지해지면 오만해지기도 쉬우니까요. 그래서 너무 힘이 들어가는 걸 경계하려고 노력 중이이에요. 그리고 모든 사람들을 만족시킬 수 없다는 걸 빨리 깨달아야 할 것 같아요. 감독이라는 자리는 책임자의 자리니까 단호해야 하는 순간에서는 단호해져야겠죠. 그런 게 어려운 사람들은 감독을 하기가 어렵겠네요. 근데 또 유연하고 단단하게 하는 사람도 있으니까요. 각자 스타일이 다르죠. 저도 계속 배워가고 있어요. 영화 촬영장은 단편 영화 기준으로 (스태프가) 15명, 장편으로 가면 200명도 넘어가요. 그 인원을 통솔한다는 거 자체가 미친 짓이죠. 감독들이 왜 성격이 더러운지 약간 알 것 같기도 해요. 근데 전 성격이 더러운 감독이 되고 싶지 않아요. 그러니까 많이 수련하고 노력하겠습니다.
짐승은 그럼 지금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는 거죠?
너무나요. 제가 이런 어른이 될 줄 몰랐어서 너무 행복해요. 크게 욕심을 부리지 않아서 그런 것 같기도 해요. 제가 ‘미래에 뭐가 되고 싶으니까 이걸 위해서 엄청 노력해야지. 이게 되기 전까지는 난 아무것도 아니야’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지만 전 이미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으니까요. 그리고 하고 싶은 일이 천만 영화 찍기 이런 게 아니라 그냥 영화 찍기였고 영화를 찍었으니 저는 이미 행복한 사람인 것 같아요. 제가 해내고 싶은 작은 기준들이 있고 그걸 달성했기 때문에 행복한 거죠. 앞으로 더 행복해지려면 기준들을 조금씩 높여가면서 그때그때 행복을 찾아야 하겠고요.
롱런*하는 게 중요한데 롱런 하려면 힘을 빼야한다 그런 이야기일까요?
네. 처음부터 숨 가쁘게 뛰면 쉽게 지쳐버리니까요. 이제는 제게 필요한 것과 행복을 주는 것들을 얼추 알기 때문에 조금씩 그 재미를 찾아가며 멀리 걸어가고 싶어요.
*롱런(Long run): 어떤 지위나 상태를 오래 지속하는 것
여성영상인네트워크 FFF 프로젝트 영화 <유언비어> 촬영 현장
“좋아하는 일 안 하면 뭐 할 거예요, 근데? 하기 싫은 일 하면서 살 거야?”
괜찮을까요? 하고 싶은 일 계속해도.
그거 안 하면 뭐 할 거예요, 근데? 하기 싫은 일 하면서 살 거야? 한국 사회가 구조상 하고 싶은 일을 쉽게 할 수 없고 고통과 인내를 감내하도록 돌아가고 있기 때문에 ‘하고 싶은 일 하자’를 계속 말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영화 에에올(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을 봤을 때 그랬어요. 서로에게 친절하자는 메시지가 대두되는 영화였는데 그게 너무 당연한 말인데도 그렇게 들으니까 그 사실이 확 느껴졌거든요. 그래서 하자도 꾸준히 이런 얘기를 해야한다고 생각하고 그러다보면 어떤 사람들은 분명 힘을 얻지 않을까요? 근데 진짜 뭐 할 거야, 좋아하는 일 안 하면? 좋아하는 일을 해도 불행하고 안 해도 불행하면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불행한 게 낫지 않나요?
반대로 하고 싶은 일이 없는 사람도 있잖아요. 짐승도 그런 때가 있었어요? 뭐를 하고 싶은지 모르겠다 싶은 때.
그러니까요. 그게 진짜 더 힘들지. 저는 하고 싶은 건 있는데 그걸 해도 되나라는 고민을 했던 편이라서 하고 싶은 게 없었던 적은 없는 것 같아요. 전 래퍼가 되고 싶었어요. (웃음) 그래서 중학교 때 혼자 랩 가사를 쓰고 했답니다. 근데 하고 싶은 게 없어도 좋아하는 건 있지 않을까요? 좋아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하면 무조건 하고 싶은 게 생길 텐데요. 좋아하는 음악이라도 있다면 음악 감상이 좋아하는 일이 될 수도 있겠고 음악쪽 엔지니어가 될 수도 있고 분명 하고 싶은 게 생길 수도 있어요. 그리고 할 수 있는 게 생기는 것도 중요한 것 같아요. 뚜렷하게 하고 싶은 게 없어도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좋아하는 거랑 맞닿아질 때 더 즐겁게 할 수 있지 않을까. 짐승은 중학생 때 영상 수행평가를 해보고 그게 좋아서 하고 싶은 일을 찾게 된 거죠? ‘좋으니까 한 번 더 하고 싶다’ 이런 생각이었죠. 어떻게 보면 운도 있는 것 같아요. 그렇네요. 운을 얘기 안 할 수가 없어. 저는 운이 좀 좋은 편이에요. 지금 로또도 3주 연속 당첨 되고 있어요. 5천 원이긴 하지만.
(웃음) 그렇네요. 마지막 질문이에요.
근데 하고 싶은 일 얘기를 한 번 더 해야 될 것 같아요. 사람들이 너무 진지한 거 아닐까요? 꼭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아야 될까? 일단 하기 싫은 일도 하다가 진정 하고 싶은 일을 찾는 것도 너무 멋지지 않나? 사람들이 막 후회하잖아요. ‘내가 나이가 몇인데 지금 이거를…’ 이러면서. 그거 완전 “Bullshit”이다 (라고 말하고 싶어요.) 하고 싶은 일이 생겼을 때 ‘하고 싶은 걸 하면서 살자’는 마음을 갖고 있다 보면 언젠가 할 수 있지 않을까요? 그래서 하자의 메시지가 의미 있다고 생각해요. ‘옛날에 하자에서 하고 싶은 일 하면서 살자고 했지. 그래 난 지금 42세지만 하고 싶은 일을 찾아서 마운틴 클라이밍을 하겠어.’ 이럴 수도 있잖아요.
이제 진짜 마지막으로. 혹시 못다 한 이야기가 있으신가요?
어~ 하자에게 너무 고마워요. 하자야, 너로 인해 내가 있었고 나로 인해 요즘 네가 있는 것 같다. 이러고. (웃음) 이 자리에 계속 있어줬으면 좋겠다. 이 공간으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치유되고 가능성을 발견하고 용기를 얻게 되었으니 앞으로도 100년간 이런 활동을 하면서 이 자리에 있는 그런 공간이 되길 바란다. 백 년? 가보자고.
이 글을 읽는 청소년들과 나누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너무 무거워지지 마세요. 가벼워지세요. 하자 청소년들이 생각이 많아요. 생각이 많은 사람만 모이나봐. (웃음) 가볍게 둥실둥실 떠다니다가 또 재밌는 데서 만나고 재밌는 이야기를 합시다. 요즘 세상이 너무 힘든데 지치지 마시고 우리가 꾸준히 얘기를 하다 보면 미래가 바뀔 수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계속 이어가다가 또 만나요. 사랑해요.
:: 기획·편집_ 효빛(안효연)
:: 윤문_ 나무(성윤서)
:: 사진제공_ 짐승(유승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