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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을까? 하고 싶은 일 계속 해도
: 하고 싶은 일 2년 차부터 20년 차까지
레아 | 강유진
“하자작업장학교 고등과정을 다녔던 레아입니다. 대학을 졸업하고 소셜섹터에서 일하고 있어요.”
인터뷰를 읽게 될 독자들에게 인사 부탁드려요.
안녕하세요. 저는 2014년부터 2017년까지 하자작업장학교* 고등과정을 다녔던 강유진, 레아라고 하고요. 지금은 대학을 졸업하고 갓 취업해서 소셜섹터*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아직 일 경험이 많지는 않지만 오랫동안 고민하고 선택한 일을 하고 있기 때문에 이 인터뷰를 통해 청소년들에게 힌트를 줄 수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하자작업장학교: 하자센터에서 2001년부터 2022년까지 운영한 도시형 대안학교. 공연음악, 디자인, 영상, 춤 등 매체 중심의 작업과 교육이 이뤄짐.
*소셜섹터(Social sector): 사회적기업, 비영리단체 등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고 있는 조직이 모인 영역.
하자와 어떻게 인연을 맺게 되셨나요?
중학교 3학년이 되던 무렵에 대안학교와 홈스쿨링 사이에서 고민하다가 엄마와 언니의 추천으로 작업장학교에 오게 됐어요. 마침 제 친구도 로드스꼴라*에 입학하던 시점이라 “친구랑 같이 자취할 수 있을 텐데, 가보지 않을래?”라고 제안이 와서 작업장학교에 지원서를 넣게 됐죠.
*로드스꼴라(RoadSchola): 하자센터 공간에서 운영된 여행대안학교.
대안학교나 홈스쿨링을 고민하게 된 계기가 있을까요?
언니가 대안학교를 나와서 저도 자연스럽게 대안교육을 생각하게 됐어요. 하지만 잘 알지는 못했기 때문에 막연하게 일반 학교를 더 이상 다니지 않고 싶다는 생각으로 고민했어요.
하자에서는 어떤 경험을 하셨어요?
저는 작업장학교에서 공연음악을 전공했는데요. 벌써 10년이 다 되어가는 일이라 잘 기억나지 않지만 많은 행사에서 공연을 했어요. 311 후쿠시마 원전 사고 추모 행사* 그리고 416 행진*이 기억에 남아요. 작업장학교 졸업 후에는 하자센터 10대 연구소*에서 10대들의 프로젝트를 돕는 서포터로 활동하기도 했습니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 2011년 3월 11일 일본 동북부 지방을 관통한 대규모 지진과 그로 인한 쓰나미로 인해 후쿠시마현(福島県)에 위치해 있던 원자력발전소에서 방사능이 누출된 사고.(네이버 지식백과)
*416 행진: 416 행진: 세월호 참사와 관련해 참사 진상규명, 특별법 입법 등을 촉구하며 진행된 행진.
*하자센터 10대 연구소: 10대가 직접 조사하여 당사자 관점에서 청소년에 대한 사회적 지식을 만드는 청소년 참여형 인문사회연구소.
단원고등학교 4.16기억교실
레아는 10대 때 어떤 청소년이었나요? 지금과 비슷한가요?
비슷하지만 조금 더 단단해진 것 같아요. 청소년 때는 걱정이나 불안, 고민도 많았을뿐더러 그 모든 것을 어떻게 해소하고 해결해야 하는지 갈피를 잘 못 잡았어요. 그래서 우울증도 오래 앓았죠. 풀리지 않는 질문을 갖고 살면서 하루하루가 버거웠던 것 같아요. 그런데 그런 상태가 다른 사람들에게는 잘 파악되지 않았던 것 같더라고요. 그걸 뒤늦게 알게 됐어요. 제가 워낙 잘 웃고 다녔거든요. 그 점이 되게 위험했다는 생각을 해요. 조금 더 솔직하게 내 상태에 대해서 친구들, 어른들과 이야기하면서 “정말 답답하고 힘들다” 이렇게 이야기했으면 좋았을 텐데, 그게 잘 안됐던 것 같아서 청소년기는 저에게 애틋하기도 하고 힘들었던 기억으로 남아 있어요.
지금은 어때요? 그런 이야기를 나누는 어려움이 좀 줄었을까요?
똑같은 문제를 만났을 때 받아들이고 해결하는 프로세스가 달라진 것 같은데요. 그때는 말도 안 되는 사건·사고가 벌어지면 당황스럽고 ‘세상은 왜 이러지, 사람들은 정말 이상하다’라고만 생각했거든요. 근데 지금은 비통한 마음은 여전하지만 ‘어떻게 이런 문제가 다시 반복되지 않게 할 수 있을까’ 이렇게 가요. 친구들이랑 이야기도 많이 하고 짜증도 내고요.
“광장에서의 경험이 제게는 사회 전체와 인간 개인에 대해 생각할 수밖에 없도록 만든 것 같아요.”
대학에서 경제와 사회적경제*를 공부하신 것으로 알고 있어요. 대학 진학과 관련해 여러 고민도 있으셨을 것 같은데 그 과정을 들려주실 수 있을까요?
저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2년 동안 대학에 가지 않은 상태로 지냈어요. 대학에 가지 않아도 할 수 있는 게 많다고 생각했지만, 막상 지내보니 생각보다 많지 않다는 걸 느끼게 되더라고요. 그리고 학교에 가지 않는 만큼 제가 나서서 찾아보고 다녀봐야 했어요. 근데 당시에는 제가 할 수 있는 활동이 많지 않다고 느껴졌을뿐더러 많다고 해도 다양하지 않았고, 가는 곳마다 소위 ‘고인물’이 너무 많아서 이게 건강한 환경인지 계속 물음이 생겼어요. 그리고 한국 사회에서 소속을 명확하게 드러내지 않고 사는 것에 많은 어려움이 따른다는 것도 느꼈어요. 제 소속이 명확하지 않을 때 쏟아지는 많은 질문을 일일이 상대하기 귀찮은 것도 있었고요.
그래서 2년 정도 고민하다 전공을 선택하고, 대학에 가게 됐어요. 전공을 결정하는 건 어렵지 않았어요. 왜냐하면 저는 고등학교 시절에 교실보다 광장에 더 많이 있었기 때문에 아무래도 그때가 인상 깊을 수밖에 없고, 광장에서의 경험이 제게는 사회 전체와 인간 개인에 대해 생각할 수밖에 없도록 만든 것 같아요. 그 생각을 어떻게 풀어내느냐의 차이는 있겠지만 저는 전공을 정치와 사회로 집중해서 선택해야겠다고, 그게 제가 잘할 수 있는 거라고 생각했어요.
*사회적경제: 사회적 가치에 기반해 공동의 이익을 목적으로 생산, 소비, 분배가 이뤄지는 경제 시스템.(위키백과)
공부하던 시기에 레아에게 큰 영향을 준 일이나 기억에 남는 사람이 있을까요?
대학에서 1년 반 정도를 계속 같은 교수님과 일했어요. 교수님의 연구를 보조하는 시기였는데, 그 교수님이 저에게 가장 많은 영향을 끼친 분이에요. 제가 하고 싶은 일이 정확히 무엇인지 교수님을 통해서 배우고 알게 됐거든요. 교수님과 했던 연구는 주로 사회적경제, 사회적 가치와 관련되어 있었어요.
첫 번째로 같이 했던 연구는 국내의 다양한 사회적경제 관련 기관에서 사용하는 지표(기준)를 로우 데이터(Raw data, 원자료)로 모아서 그 데이터를 재분류하고 카테고리화하는 작업이었는데요. 양이 많아서 작업하다가 밤을 새웠어요. 하루가 어떻게 가는지도 모르고 끝내고 보니까 아침이었던 거예요. 그렇게 몰입해서 뭔가를 재미있게 했던 게 처음이었죠. 엄마한테 달려가서 “너무너무 재미있는 걸 찾았다. 이 일을 계속하고 싶을 것 같다.”라고 말했는데 그게 되게 인상 깊은 순간이에요. 그 경험을 할 수 있게 해주신 게 교수님이라 저에게 좋은 영향을 끼친 분으로 기억해요.
그렇군요. 학부생이 연구에 깊이 들어가는 경우가 많지는 않을 것 같은데 학과의 특성일까요?
학과의 특성도 있고 저는 운이 좋았어요. 저희 학교는 대학원생이 많이 없었기 때문에 제가 우연히 (연구 보조를) 할 수 있게 된 것이거든요. 만약 제가 서울에 있는 학교에 다녔다면 그런 경험을 하는 건 어려웠을 거예요. 본가가 있는 지역의 학교에 다녔기 때문에 사람이 없다는 측면에서 유리함을 가지지 않았나 싶어요.
대학 생활은 어땠어요? 작업장학교와는 많이 달랐을 텐데요.
저는 고등학교만 대안학교에 다닌 거라 일반 학교의 풍경은 익숙했어요. 고향에 있는 학교니까 지역의 정서가 익숙하기도 했고요. 그래서 적응에는 크게 문제가 없었지만 제가 사람을 크게 사귀고 싶어 하지 않았다는 것이 문제가 아니었나… (웃음) 저는 공부가 너무 하고 싶었거든요. 그래서 열심히 공부했죠. 코로나 때문에 4년 중 2년은 활동적으로 지내지는 못했지만 공부를 많이 하고 책을 읽고, 일을 시작하기도 했던 시간이었어요.
공부가 왜 하고 싶으셨어요?
저는 중학생 때까지 공부에 관심이 없었고 인문계 고등학교 커트라인만 맞추면 된다는 생각으로 벼락치기를 하고 그랬는데요. 크고 나서는 똑같이 텍스트를 많이 읽고 외우고 풀어도 재미있더라고요. 생각보다 ‘나는 책상에 앉아서 하는 공부가 잘 맞는구나’ 싶어서 더 해보고 싶었어요.
대학 학과 복도
“이런 일을 하는 업계 중 가장 젊고 빠르게 움직이는 곳을 가고 싶었어요.”
요즘은 어떻게 지내고 계세요?
아주 열심히 일하고 있어요. 제가 일하고 있는 곳은 ‘엠와이소셜컴퍼니’, 약칭으로는 미스크(MYSC)라고 해요. 사회혁신*을 추구하는 조직이고 그 방식으로 엑셀러레이팅(Accelerating)과 컨설팅, 임팩트 투자를 하고 있어요. 하나씩 말씀드리면 엑셀러레이팅은 스타트업이 잘 성장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활동을 말하는데요. 스타트업에 필요한 것들을 파악하고 저희가 여러 자원을 연계해서 제공하는 일을 하는 거죠. 사회혁신 컨설팅은 스타트업을 대상으로 제공하기도 하지만 대기업과 스타트업의 OI* 라든가 대기업과 저희 회사의 협업 지점을 찾아서 사회혁신을 조금 더 많이, 잘 만들어 낼 수 있는 방향으로 가도록 돕는 일이에요. 그리고 임팩트 투자는 임팩트를 창출하고 있는 스타트업들에 대한 투자인데요. 임팩트란 크게 사회에 창의적이고 긍정적으로 미치는 영향력을 말해요. 사회혁신 영역에서의 임팩트는 ‘사회를 변화시킬 만한 수준의 좋은 영향력’을 의미하는 것 같아요.
*사회혁신: 사회문제를 새롭고 효과적인 방법으로 해결하는 것.(서울특별시)
*OI(오픈 이노베이션, Open innovation): 기업이 필요로 하는 기술과 아이디어를 외부에서 조달하는 한편 내부 자원을 외부와 공유하면서 새로운 제품이나 서비스를 만들어 내는 것.(네이버 지식백과)
어렵네요. (웃음) 레아는 여기서 어떤 일을 하고 계세요?
일단 사회혁신을 지향하는 조직이고 크게 세 가지 축이 있다. 이 정도로 정리를… (웃음) 제가 하는 일은 들어가는 사업마다 다른데요. 주로 실무를 하면서 운영지원을 위한 서류 정리와 비용 정산을 하고요. 개별 스타트업 소통, 그리고 투자를 진행하기 위한 IR(Investor relations) 관련 업무도 하고 있어요. IR은 투자할 때 그 스타트업이 우리가 어떤 곳이라는 것을 투자자 대상으로 알리는 활동을 말해요.
지금 일하고 계신 업계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있으신가요?
저는 사회적경제를 메인 전공으로 가져갔기 때문에 사회적경제처럼 가치를 우선하는 생태계에서 일하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전공을 선택한 것부터가 이미 저의 출발점이었죠. 관심사가 계속 이어지다 보니 소셜섹터로 이어졌고, 이런 일을 하는 업계가 한국에 지리적으로 여러 곳이 있겠지만 가장 젊고 빠르게 움직이는 곳을 가고 싶었어요. 그게 성수동이었고 성수동에 있는 회사를 간 거죠.
질문에 대한 답을 알 것 같긴 한데요. (웃음) 일과 삶을 분리하는 편이신가요?
저는 늘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이라는 게 이상한 개념이라고 생각했어요. 삶이 조금 더 큰 집합으로서 일을 포함하니까, 일과 삶을 같은 저울에 올려둘 수 있는지 궁금증이 있거든요. 그래도 답변하자면 일과 여가가 분리될 수는 있어도 일과 삶이 분리되기는 굉장히 어렵고, 내가 즐겁게 할 수 있는 일을 잘하고 있을 때 오히려 삶이 더 윤택하게 느껴지는 효과가 있는 것 같아요. 반대로 삶을 잘 살아야 일도 지속 가능하게 할 수 있는 것 같고요. 그럼 레아의 여가생활은 어떠세요? 잘 못 즐기고 있죠. (웃음) 즐길만한 것을 찾아다니고 있고요. 일을 해보니 체력적으로 건강하게 계속 일하려면 여가를 잘 구축해 둬야 하는 거더라고요. 저는 일단 운동을 해야겠고요. 전시를 좋아해서 박물관과 미술관을 찾아다니는 게 저에게 리프레시되는 여가생활인 것 같아요.
많은 일을 하시겠지만 하나의 업무를 하는 과정에 대해 처음부터 끝까지 소개해 주실 수 있을까요?
가장 높은 비중으로 참여하고 있는 엑셀러레이팅 사업을 이야기할게요. 스타트업을 모집하고 선발해서 더 원활히 사업을 운영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업무인데요. 처음에는 기업과 함께 현황 진단을 해요. 현황 진단을 위해서는 먼저 저희 회사에서 공통 양식으로 사용하는 체크리스트가 있어요. 기업들이 항목별로 체크해 주시면 저희가 항목을 보고 지금 수익이 어떻게 나고 있는지, 비즈니스를 어떻게 진행하고 있는지, 내부적인 조직문화와 팀은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지 이런 것들을 한눈에 알 수 있게 돼요. 기업에서 작성해 주신 내용을 바탕으로 지금 사업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고 성과는 어떻게 나고 있는지 보는 거죠. 그 결괏값을 보면서 기업과 이야기를 나눠요. “OO기업의 현황은 지금 이렇게 보이는데 앞으로 투자는 어떻게 진행하실 계획인가요?”, “투자가 필요하다고 이야기해 주셨는데 계획은 어떻게 되나요?” 이런 식으로 이야기 나누면서 지금 기업에 필요한 사항과 우리가 제공해 드릴 수 있는 지점을 맞춰가요. 현황 진단이 마무리되면 이야기 나눈 합의점을 바탕으로 컨설팅과 프로그램을 제공해 드리고요. 사업을 마무리하는 시점이 되면 성과 공유 후에 종료가 됩니다.
방금 이야기해 주신 과정에서 재미를 느끼는 부분이나 어려운 부분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저는 행정 작업을 많이 하는 편이어서 사실 크게 재미가 있다고 느끼지는 않아요. 그리고 재미가 일을 지속하는 데 있어서 반드시 중요한 기준이 되어야 한다고도 생각하지 않거든요. 그래서 재미를 많이 느끼면서 일하지는 않지만, 팀이나 파트너들과 친밀감을 형성하게 되는 순간이 좋아요. 우리가 정말 함께 달려 나갈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들 때요. 그러기 위해서는 스몰토크도 많이 해야 하고 우리가 어떤 곳인지도 계속 어필해야 해요. 시간과 노력이 들 수밖에 없는데 그게 어느 정도 되기 시작하면 사업이 전체적으로 잘 굴러가는 것 같아서 그때 만족스럽다고 느껴져요.
어려웠던 순간은, (동료들이) "레아는 왜 이 일을 하냐. 이게 재미가 있냐"라고 물어보셨을 때예요. 저희 회사는 일하는 사람의 동기도 중요하게 생각하는데 저의 동기는 재미에서 오지 않다 보니 그런 것 같아요. 그러다보니 "재미는 없는데 계속하고 있어요"라는 답변을 하면서 무심해 보이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하는 곤란함이 있었어요. 저는 ‘재미’라는 동기부여가 크지 않아도 계속할 수 있는 사람이라서요. 여러 번 질문을 듣다 보니 ‘별로 재미는 없는데. 그게 그렇게 중요한가?’ 이런 생각을 하게 됐죠.
재미는 없지만 계속할 수 있는 동기는 무엇일까요?
저는 가치관과 신념으로 움직이는 사람이라 그런 것 같아요. 그래서 ‘내가 하는 일이 당장은 큰 변화를 만들어 낼 수 없어도 시간이 필요한 거라면 나는 오랫동안 이 일을 계속할 거야’ 이런 거라서 재미가 없어도 하지 뭐. 이런 마음이에요.
나무 심는 것처럼 하는 거네요.
맞아요. 우공이산*의 마음이기도 해요. 끝도 없이 산을 파고 계속해서 흙을 나르다 보면 언젠가 평평해지겠지, 나무 심는 일 재미는 없지만 언젠가 숲이 되겠지, 하는 마음으로 해요.
*우공이산(愚公移山): 우공이 산을 옮긴다는 뜻으로, 어떤 일이든 끊임없이 노력하면 반드시 이루어짐을 이르는 말.(국어대사전)
“제 가치관과 신념을 점점 구체화하면서 일로 풀어내고 있는 거죠.”
나의 커리어, 내 작업의 일대기를 그려본다면 전환점이 되는 것들이 있잖아요. 뭐가 있을까요?
제가 작업장학교에 입학하던 무렵에 발생했던 세월호 참사가 시작일 것 같아요. 그리고 2019년 대학교 입학, 2021년 연구 시작, 2023년 회사 입사. 이렇게 되는 것 같은데요. 성격이 굉장히 다른 꼭짓점들의 연속이기는 하지만, 저는 무엇을 할 때 크고 길게 보는 성향이 있거든요. 그런 성향은 고등학교 때부터 생겼다고 생각하고요. 저는 고등학생 때 제가 감당할 수 없는 사건·사고들의 현장에 가서 버티는 게 힘들었어요. 그 사건들이 모두에게 아주 중요한 사건이라고 해도 당시 저에게는 굉장히 힘들고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이기도 했으니까요. 너무 빠르게 봤다는 생각이 들죠. 제가 경험한 것들을 건강하게 잘 풀어내는 방법을 몰랐기 때문에 더 힘들었어요. 세월호 참사를 시작으로 ‘세상은 원래 말이 안 되는 일들이 너무 많이 벌어지는 거구나. 상식은 우리가 지향하는 정의이지 그게 반드시 현실에서 통하지 않는 거구나’ 이런 생각을 많이 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을 변화시켜 나갈 수밖에 없다고 점점 생각하게 됐어요. 왜냐하면 이렇게 계속 살 수 없으니까요. 너무 많은 사람이 억울하게 죽거나 비통한 사건·사고를 겪으면서 버티는 삶이, 그게 정말 삶인지에 대한 의문이 계속 있었어요. 그건 생존이고 살아내는 거지 우리가 즐겁게 누리는 삶은 아니라고 생각했고요. 그럼 ‘어떻게 세상을 변화시켜 나가고, 계속 더 좋은 방향으로 만들 수 있지?’를 고민하다가 대학교 전공을 선택하고, 일을 시작하고, 일을 통해 제가 가진 생각을 더 풀어내 보려고 했던 것 같아요. 제 가치관과 신념이 그때(고등학생 때)를 시작으로 만들어졌고 점점 구체화하면서 일로 풀어내고 있는 거죠.
그중에 가장 중요한 터닝 포인트를 하나만 고른다면요?
저는 그때요. 연구하면서 밤을 새웠을 때. 그때 아주 많은 데이터를 봤어요. 데이터라고 해서 단순히 숫자만 보는 건 아니에요. 예를 들면 어떤 기관에서는 ‘고용’이라는 카테고리를 측정하기 위해 올해 정규직 신규 입사자 수를 체크해요. 그런데 다른 기관에서 그 지표를 다르게 사용하기도 하거든요. 그렇게 많은 기관에서 사용하는 지표가 있으니, 그 데이터를 다 취합해서 다시 분류하는 거예요. 고용은 고용끼리, 매출은 매출끼리, 조직문화는 조직문화. 이런 식으로 몇 개의 카테고리가 완성되거든요. 서로 유사하거나 중복되는 것들도 많이 발생하고요. 저는 데이터를 통합하고 재분류하면서 측정 지표를 살펴보는 일의 재미를 발견한 거죠. 왜 이렇게 만들어졌는지, 앞으로 어떻게 하면 좋을지를 생각해 보면서 무척 즐거웠어요.
지금 회사에서 그런 측정이나 데이터 분류 관련 일을 하고 계시지는 않은 것 같아요.
맞아요. 하지만 그런 일을 할 수 있는 곳이라 들어간 거예요. 앞으로 그쪽의 일에 더 가까이 다가가려는 계획을 갖고 계신 거예요? 네. 제가 관심 있는 것은 측정이라는 분야고요, 임팩트 측정이 재미있어요. 저희 회사가 측정을 하고 있는 곳이라서 들어갔고 점점 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내거나 제안을 받고 있어요.
당장 그 일을 할 수 없기 때문에 오는 실망이라든지 그런 건 없으셨어요?
없었어요. 왜냐하면 측정은 경력이 있어야 할 수 있는 분야이고 원래는 석박사 학위를 갖고 있는 사람들이 주로 하는 영역이거든요. 그런데 학사를 졸업한 저에게 측정과 관련한 사업이나 기회가 온다면 그건 제가 정말 운 좋게 성취하는 것이 된다고 생각해요. 측정에 요구되는 역량이나 조건이 있기 때문에 당장 하지 못하더라도 괜찮고, 그것을 잘하기 위해 필요한 것들, 예를 들면 데이터를 잘 이해할 수 있는 역량이 필요하거든요. 제가 지금 만나고 있는 스타트업 팀들이 저에게 데이터를 주고 있는 셈이 되기도 해요. 이 팀이 실질적으로 어떤 문제를 갖고 있는지, 어떠한 임팩트를 내고 싶어 하는지를 잘 알아가는 것부터 시작해야 앞으로 측정을 잘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래서 지금은 0단계인 거죠. 1단계를 위한.
계속 공부가 필요한 분야라는 생각이 드네요. 특히 새롭게 알아야 하는 개념이 많을 것 같아요.
그렇죠. 제가 참여하고 있는 투자 성격의 사업은 투자 용어가 어렵기도 하지만 글로벌 사업이기 때문에 파트너와 영어로 미팅할 때 이해하기가 어려워요. 그러면 끝나고 조금 더 공부하고요. 처음엔 용어를 파악하는 게 가장 어려웠던 것 같아요. 투자 용어 말고도 엑셀러레이팅, 오피스 아워(Office hour), 데모데이(Demo day)가 무엇인지 하나도 몰라서 다른 분들께 계속 여쭤보고 검색했던 것 같아요. 이제는 조금 익숙하게 사용하지만요. 참고로 오피스 아워는 컨설팅이나 멘토링 하는 것을 말하고 데모데이는 스타트업이 비즈니스를 소개하거나 성과를 공유하는 행사를 뜻해요.
지금까지 레아가 진행했던 프로젝트 중에 ‘망했다’고 말할 수 있는 경험도 있을까요?
잘 기억나지 않기도 하지만, 어떤 순간이 바로 떠오르지 않을 만큼 운이 좋았던 것 같아요. 하지만 심리적으로 계속 좌절했던 경험은 있어요. 프로젝트가 망하거나 업무를 잘하지 못해서 오는 좌절감도 있지만 그것보다 저를 더 좌절시키거나 포기하게 했던 건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세상이 바뀌기는 할까? 사회는 나아질까? 사람들은 좋아질까?’ 이런 것이었어요. 이런 생각이 저를 더 위축시키고 힘들게 하지 않았나 싶어요.
프로젝트가 망할 수 있죠. 업무가 잘 안되기도 하고 내가 원하는 대학이나 기관에 들어가지 못할 수도 있어요. 그래도 ‘다음에 잘하지 뭐. 어차피 다 잘 안된다’라고 생각해요. (웃음) 원래 저는 아주 오랫동안 계속 ‘망한’ 상태로 있었던 것 같아요. 좌절하고 포기하고 싶은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잘 견디는 것 외에 할 수 있는 게 없다고 느낄 만큼 취약함에 몸을 맡기던 사람이었고요. 그런데 조금씩 나이가 들면서 배우는 건 ‘다음에 잘하면 된다. 어차피 잘 안되는 거고, 잘 됐으면 운이 좋았다’ 이거예요. 노력해도 안 되는 것이 너무 많으니까, 다음에 조금 더 잘해보고 안 돼도 크게 실망하지 않는 것으로.
요즘 레아의 일상에 대한 만족도는 어떨까요?
10점 척도라고 한다면 7일 것 같아요. 3을 뺀 것은 여가생활을 잘 즐기지 못하기 때문도 있고 업무량에서 오는 스트레스도 무시할 수 없어서요. 그래도 7만큼 만족하는 건 원하던 곳에서 제가 하고 싶은 일을 하려고 열심히 노력하고 있으니까. 거기서 오는 보람이 있어서요.
대학 시절 레아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지 않고 살 수 있는 사람인지 스스로 돌아보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요즘처럼 불확실한 시대에 하고 싶은 일을 계속 해도 괜찮을까요?
저는 확실했던 시대를 살아보지 않았기 때문에 세상이 나에게 명확성을 주기를 기다리기는 어렵다고 생각해요. 제가 고민을 하던 시기에도 세상은 불확실했고 지금도 여전히 모호한 것 같아요. 지금 우리가 느끼는 불확실성은 생존과 직결이 되어 있기 때문에 더욱 중요하게 고민되는 것 같기는 하지만요. 결국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지 않고 살 수 있는 사람인지 스스로 돌아보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저는 기능적으로 돈을 벌면서 지탱하는 삶이 저에게 재미와 행복을 주지 못할 것 같았어요. 그래서 저에게는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이 되게 중요했죠. 그리고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사는 것이 중요하다면, 저라면 그 일이 어떻게 세상과 연결되어 기여할 수 있을지, 좋은 영향을 미칠 수 있을지 생각할 것 같아요.
또 다른 관점이네요. 우선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지 않아도 괜찮은지, 내가 그렇게 살 수 있는 사람인지 생각해 봐야 한다.
하고 싶은 일을 안 해도 살 수 있는 사람들이 있잖아요. 그게 중요하지 않을 수 있죠.
그렇다면 하고 싶은 일이 없는 사람도 있잖아요. 하고 싶은 일을 찾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저는 항상 방향성은 있었는데 그 방향성을 어떻게 직업으로 풀어나갈 수 있을지 고민하는 시간이 길었어요. ‘세상을 조금 더 재미있고 행복하게 살고 싶고, 내가 살고 있는 세상이 조금 더 나은 방향으로 계속 갈 수 있으면 좋겠다’ 이런 아주 큰 방향성인데요. 이걸 계속 가져가면서 그렇게 하기 위해서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 엄청 오래 고민했죠. 고민했기 때문에 대안학교에도 가봤고 대학에 가지 않기도 했고, 가보기도 했던 것 같아요. 고민이 길면 계속해 볼 수밖에, 무너지지 않고 좌절하지 않으면서 계속해 보는 수밖에 없죠. 그리고 저도 여전히 고민하고 있어요. 끝나지 않을 것 같아요. (웃음) 그런데 지금 재미있는 일을 하는 것도 중요한 것 같아요. 저에게는 아니지만, 재미는 좋은 척도가 되니까요.
근데 레아도 재밌는 일이 있으시죠? (웃음)
네~ (웃음) 재미있는 일이 있죠. 측정할 때 정말 정말 재미있어해요. 오타쿠처럼. 하지만 지금은 그것 이외의 분야에서는 무엇도 크게 재미있지 않기 때문에 무엇을 해도 상관없다. 그런 마인드셋을 가져가고 있는 거죠.
마지막으로 이 글을 읽는 청소년들과 나누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너무 많이 걱정하지 말고 불안해하지 않으면 좋겠다고 이야기 해주고 싶어요. 쉽게 좌절할 수 있고 포기할 수 있지만 그래도 괜찮다고도 이야기 해주고 싶고요. 걱정과 불안, 좌절과 포기의 경험이 너무 많았던 사람으로서 결국 괜찮아지더라고요. 그리고 나를 더 잘 알고 나니까 삶을 조금 더 재미있고 즐겁게 살아볼 수 있겠다는 확신과 힘이 생기기도 했어요. 저는 제 또래의 여러 사람을 조금 빨리 떠나보내게 되기도 했는데요. 그러다 보니 ‘조금 더 살아보지’ 싶은 마음이 생기더라고요. 그게 어려운 거라는 걸 너무 잘 알고 있고 다른 사람이 이해할 수 없는 사각지대도 분명히 있겠지만, 저는 그래도 좀 잘 못 살아도 된다고 말하고 싶어요. 삶이 구리고 찌질할 순 있겠지만 그래도 같이 계속해 봤으면 하는 마음이 되게 커서요. 우울한 순간이 오고 힘들어지면 왜 살지? 이렇게 생각하면서도 친구들을 찾아가고 어른들을 찾아가 봤으면 좋겠어요.
:: 기획·편집_ 효빛(안효연)
:: 윤문_ 나무(성윤서)
:: 사진제공_ 레아(강유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