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모든 걸음에 응원과 안녕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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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것도 쓰지 못하고 빈 페이지만 노려보기를 며칠째. 이제는 모니터 앞에서 턱을 괴고 졸기까지 합니다. 영감은 그림자도 없고, 동료들의 발소리만 들릴 뿐이에요. 아, 봄밤이 걸어온다. 오늘은 걸음 소리가 시무룩하네… 이런 생각을 하다가 또 옆으로 새고요. 여는 글은 아직 텅 비어 있는데요.

 

기왕 시작한 김에 말하자면, 봄밤의 걸음엔 기분이 들어 있어요. 오늘 같을 땐 분명 속상한 일이 있는 겁니다(대개 죽돌들에게 더 잘해주고 싶은데 마음처럼 안 될 때). 이어 들어오는 징타의 걸음은 보폭이 넓고 빠르지만, 결코 급하지 않아요. 그 안에 자기만의 속도와 여유가 있어서, 아무리 바빠도 헐레벌떡 사무실에 들어오는 법이 없습니다.

 

거품과 하라는 자주 땅을 보며 걷고, 아키는 점심시간에도 늘 종종걸음이에요. 그 속도는 퇴근길이 되어서야 비로소 느려집니다. 보이지 않는 책임을 많이 짊어진 사람들의 발이 대개 그런가요. 비고로와 장군이는 늘 하자의 맨바닥과 가장자리를 걷습니다. 시설을 살피는 사람들의 걸음은 늘 무언가를 지키고 있는 모양새예요. 그 사이를 무브가 두리번거리며 지나가요. 자산을 담당하는 무브에게는 하자의 모든 물건이 챙겨야 할 이웃이자 동료일지도 모르겠어요.

 

단감은 옆을 돌아볼 새 없이 올곧게 전진해요. 흡사 축지법 같은 속도로, 자기가 맡은 공간을 하루에도 수십 번씩 오가면서요. 반대로 지니와 메이는 느긋하게, 하늘과 낙엽을 보면서 걷고요. 그 옆에서 흐른은 비슷한 속도로, 계절 사이를 버티는 냥이들을 살피면서 걸어요.

 

우니는 출근길 내내 휴대전화 화면을 보면서도 단 한 번도 넘어지지 않고 사무실로 직진해요. 가야 할 곳을 정확히 알고 있는 사람의 걸음은 이런 모양일지요. 창문 너머로 보이는 비비의 퇴근길은 조금 급하면서도 동시에 꽤 기뻐 보이고요. 배차 간격이 긴 버스를 잡아타면 아기를 더 빨리 만날 수 있기 때문에요.

 

이렇게 모두가 각자의 걸음으로 걷는 동안, 저는 몇 주째 한 글자도 쓰지 못한 채 앉아만 있었는데요. 이상하게 여는 글 분량은 이렇게 채워졌어요. 아무것도 쓸 수 없는 마음으로 앉아 있어도 곁에 누군가 있다는 건 이런 모습일까요. 걸음 소리가 들릴 만큼의 거리라면 우린 꽤 가까이 있고, 생각보다 훨씬 더 같이 있는 것일지도요.

 

모든 걸음에 응원과 안녕을!

 

✨하자 판돌, 니나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