띵가띵가♬ 적도의 ‘여름 악기’로 더위 나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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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수들이 알려주는 ‘흥 부자’ 악기들


 

1분 만에 배우는 작은 나팔 카주
상자 하나로 다양하게 변주되는 카혼
줄 4개의 경쾌한 하모니 우쿨렐레

 

여름이다. 바람은 드문드문하고 습기는 높다. 짜증이 솟구친다. 불불불이다. 낮의 불볕더위는 밤에도 가라앉지 않고 불면증이 온다. 집 바깥은 불야성이다. 한없이 게을러지고 한없이 눕고 싶다. 그래도 놀지 않을 수는 없다. 여름 개미가 열심히 일하는데 베짱이는 즐거웠더랬다. 사계절 여름이 지속되는 적도에서 시작된 악기들에서 베짱이의 즐거움을 배워보자.

 

■ 초급 단계 카주: 노래를 할 수 있다면 

김태춘이 이효리의 5집 <모노크롬>에 준 ‘묻지 않을게요’는 ‘뿌르르’거리는 악기로 시작된다. 떼쓰는 소리가 짜증 속 흥을 돋운다. “그대여 돌아와요 막차가 끊기기 전에…” 노래 부르는 이효리도 한껏 발랄해진다.
 

5일 뜨거운 오후 서울 마포구의 한 카페에서 만난 뮤지션 김태춘의 카주 교육은 1분 만에 끝났다. “노래하듯이 부세요.” 설명을 듣는 것보다 카주를 입에 대어보는 것이 더 간단하다. 중요한 건 불려고만 하면 안 된다는 것. “노래하듯이.” 카주에 ‘성대’가 있어서다. 안에 든 막인 ‘성대’를 건드려주면 소리가 울려 나온다. 관악기가 아니라 확성기쯤으로 보면 된다. 확성기이기 때문에 카주에 어떤 크기의 ‘나팔’이 붙어 있느냐에 따라 소리 크기가 달라진다.

 

김태춘은 10여년 전 대학 시절 친구가 옆 동아리방에 “굼불러 댕기는(굴러 다니는) 것”을 훔쳐온 것을 계기로 카주와 만났다. 이게 뭐야? 불어보니 재미났다. 그 뒤로는 죽 카주와 함께했다. 버스킹을 할 때 함께 하면 효과가 좋다. “그렇다고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건 아니다. 하지만 신기해하더라.” 1집 <가축병원블루스>에는 한 곡 빼고 모두 카주가 들어간다.

 

카주를 처음 만든 건 아프리카 사람이라느니 미국 인디언이라느니 하는 설이 분분하다. 공통적으로 멀리 있는 동료를 부르거나 사냥할 때 동물의 소리를 흉내내기 위해서 사용되었다고 한다. 김태춘은 유튜브에서 ‘저그밴드’(Jugband.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물건들을 활용해 연주하는 밴드를 가리키는 말)라고 검색하면, 카주가 연통, 빗, 빨래판 등과 어울리는 동영상을 볼 수 있다고 추천한다. 동영상에 등장하는 카주는 두루마리 화장지 심이다. 화장지 심에 비닐종이를 오려붙여서 만든 것이다. 이 ‘세상 간단한’ 악기는 소리가 나지 않는 경우 수리도 쉽다. 찢어진 막을 꺼내고 기름종이, 비닐봉투 등을 오려서 대체하면 된다.

 

물론 카주에도 기술이 있다. “혀를 날름거리면 강약을 조절할 수 있다.” 굳이 김태춘은 이렇게 덧붙인다. “그렇다고 기술이라고까지는 할 수 없다.”
 

■ 중급 단계 카혼: 끝없이 확장하는 두드림 

“이 악기가 어디서 왔는지 알아요?” 지난달 28일 인천 부평 기적의도서관의 한적한 오후, 조이폴리의 박광현씨가 네모난 상자를 가리키며 아이들에게 묻는다. 스페인, 한국, 브라질…. 여러 국가들이 대답으로 튀어나온다. 정답은 페루다. 상자를 두들기며 흥을 돋우는 연주에 집중력 낮은 네댓살의 아이들도 한 시간 이상을 즐겁게 놀았다. 교육과 연주가 끝나자 “앙코르”가 터져나왔다.

 

이들이 두드린 상자는 카혼. 스페인어로 ‘상자’라는 뜻이다. 18세기 스페인이 남미를 점령했을 때 춤과 노래를 금지했는데, 원주민과 흑인 노예들이 주변에 있는 상자로 연주하다 탄생한 악기라고 전해진다. ‘쩍벌’로 의자에 걸터앉아서 박스의 중간을 때리면 ‘쿵’, 박스의 테두리를 때리면 상자 속의 쇠줄이 울리면서 ‘짝’ 소리가 난다. 드럼의 베이스, 스네어 소리와 비슷하다.

 

조이폴리는 국내에서 동서양의 타악기를 연주하는 이들 12명이 모인 국내 최초의 카혼 앙상블이다. 이들은 크게 보면 ‘쿵’, ‘짝’ 두 개로 수준 높은 박자 감각을 활용하여 화려한 기교를 보여준다. 카혼 앙상블을 더 흥겹게 하는 것은 율동이다. 고개를 숙이고 발을 올리고 이쪽저쪽으로 함께 몸을 움직이면 관객들도 자연스럽게 따라하게 된다. 조이폴리는 카혼을 위해 창작곡도 만들었다. 장구로 치는 굿거리장단 같은 ‘코리안 박스!’, 볼레로·힙합·펑키 리듬이 다 들어간 ‘조이폴리’ 연주자들이 솔로로 주거니 받거니 하는 ‘츄츄츄’ 등이다.

 

퍼커션 연주자이자 조이폴리 단원인 김현빈씨는 “카혼은 의자도 되는데 이것 하나만으로도 큰 메리트”라고 말한다. 그의 카혼 예찬은 계속된다. “특별한 악기 관리법이 없어서 보관이 간편하다. 타악기가 해줘야 할 ‘쿵짝’을 심플한 세팅으로도 잘 낸다. 어떤 곡에나 어울려 장르에 구애받지 않는다.” 전문가로서도 만족스럽다. “세계 각지 연주자들은 이 작은 나무상자를 활용하여 끝없이 다양한 연주법을 선보인다. 질리지 않는 재미와 도전감을 매번 느끼고 있다.”

 

‘사각미인’ 카혼은 교육적 효과가 높다. 공인 카혼지도자과정 자격증이 1~3급으로 나눠 발급된다. 한 고등학교에서는 카혼으로 수학과 물리, 음악 융합교육도 한다. 무엇보다 즐거운 인생은 카혼과 어울린다. ‘카혼이 없으면 인생도 없고 카혼을 알면 인생을 알게 된다.’ 한국카혼협회장 조익환씨가 만든 말이라고 한다.

 

■ 고급 단계 우쿨렐레: 게으름뱅이도 10주면 된다 

아무래도 기타는 안 어울렸다. 일본인 뮤지션 하찌는 11년 전 일본 도쿄에서 ‘남쪽 끝 섬’을 녹음하다 고민에 빠졌다. 주변을 수소문해 우쿨렐레를 구해 곁들였다. 그래 이거다 싶었다. 우쿨렐레가 어울리는 풍경은 ‘남쪽 끝 섬’의 노래 가사에 그대로 나타난다. “언젠가 그대와 둘이서 어딘가 남쪽 끝 섬에서 쨍쨍한 태양에 불타고 시원한 바람에 춤추고 야자나무 그늘 밑에서 뽀뽀하고 싶소.”

 

카주와 카혼에 비해 현악기인 우쿨렐레는 어렵다. 그런데 하찌는 달랑 30분 연습한 뒤 ‘남쪽 끝 섬’ 녹음을 감행했다. 하찌가 으스대면서 덧붙인다. “원래 기타를 잘 치니까 가능한 거다.” 하찌는 서울 영등포 하자센터에서 10주 과정의 우쿨렐레 수업을 한다. 마지막 수업을 받는 수와 황, 시골(모두 예명)은 멜로디 운지를 할 정도로 수준급이 되었다.

 

우쿨렐레는 포르투갈의 작은 현악기인 브라기냐가 하와이로 건너가서 독자적으로 발전한 것이다. 브라기냐는 다섯 줄이지만 우쿨렐레는 네 줄이다. ‘우쿨렐레’는 하와이 말로 ‘벼룩이 뛴다’는 뜻인데 그 뜻대로 방정맞으면서 경쾌하다. “놀고 있다”는 말과 잘 어울리는 ‘띵가띵가’는 우쿨렐레의 소리를 옮긴 듯하다.

 

하찌는 “나이가 들어도 어린애 같고, 어두운 것, 심각한 것을 못하는데 우쿨렐레 소리가 나의 성격 같”단다. 하찌가 우쿨렐레를 처음 본 것은 로큰롤을 하던 35년 전이지만 본격적으로 시작한 것은 7년 전이다.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했는데 완전 좋아졌다.” 평생 해온 음악인데 미래를 몰라 헤매던 시기였다. “이 악기 때문에 산 것 같다. 그때 많이 위로받았다.”

 

우쿨렐레 워크숍을 위해서 ‘아름다운 해질녘에’를 만든 것을 비롯하여, 지금은 거의 모든 작곡을 우쿨렐레로 하고 있다. “한적한 지하철 문 옆에서 연주를 하기도 한다.” 지난해 나온 우쿨렐레 앨범 <하찌 우쿠 송즈>에 있는 ‘6호선’은 그렇게 탄생한 곡이다. ‘단6도’ 음계로 연주하는 곡이다. 3일 발매한 음원 ‘기적같이 만나’도 우쿨렐레 곡이다. 밴드 ‘9와 숫자들’의 드러머 유병덕과 송은지의 서정적인 목소리가 우쿨렐레를 만나면서 잔잔한 즐거움의 파문을 만든다.

 

하찌는 “가벼워서 언제라도 들고 다니기 좋은데 무엇보다 표현의 한계가 있는 점이 좋다”고 말한다. “낮은 G부터 높은 A까지 두 옥타브밖에 표현할 수 없다. 욕심을 내지 않게 된다.” 즐거움은 버리는 것에서 오는 것 같다. 하와이안이 다섯 줄 악기에서 줄 하나를 떼어버린 것처럼.

 

2017.07.09

[한겨레 구둘래 기자] anyo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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