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초에는 외출할 일이 급격히 줄었다. 몸도 마음도 물 먹은 코트 같아 납작 엎드려서 통과하는 겨울. 이 계절에는 하늘의 채도만큼이나 하루의 오고 감이 뿌옇게 느껴진다. 질문 가득한 1월이 온몸을 누른다. 나를 누르고 있는 것의 정체는 1월이겠지? 그래야만 한다. 그래야 다음 달이 되면 저절로 침잠한 상태에서 놓여날 수 있을 테니까. 하지만 그러지 못할 거라는 불안함에 무기력해진 나는 정말로 힘이 없다.
지금 내게 최대의 적은 계절이다. 가족들도 주변 친구들도 추위를 잘 안 타는 체질이 많아서, 겨울에 나는 보통 유난스러운 입장이 되곤 한다. 지난여름이 찬장 안쪽 보관된 병에 담겨 있으면 좋겠다. 유리병 안에는 과숙된 토마토처럼 더위에 익어 설탕과 함께 절은 내가 담겨 있을 것 같다. 한 입만 떠먹으면 이 겨울을 날 힘이 생길 것 같은데. 그것을 달라고 누구에게라도 요구할 수 있다면 좋았을 것이다.
지난주에는 먼 친척의 장례식장에 다녀왔다. 모여 앉은 사람들이 고인보다는 자기 사는 이야기를 나누는 게 낯설게 느껴졌다. 다른 사람들은 이런 자리에서 무슨 이야기를 나누나. 살면서 장례식장에 조문 다닌 횟수가 아직 한 손안을 맴도는 나는 비교할 대상이 많지 않았다. 적어도 오늘은 그런 생각을 했다. 그리운 사람 이야기를 하면 좋을 텐데, 하는. 눈이 벌게진 사람들과 비교적 표정이 잠잠한 사람들이 서로의 이야기를 나누었다.
거기에서 나는 구석에 앉아 가벼운 두통을 느끼고 있었다. 점점 졸음이 쏟아졌다. 굴러떨어지면 들어갈 수 있는 토끼 굴이 있으면. 살며시 당겨오는 손에 몸을 맡기는 것만으로도 갈 수 있는 캄캄한 구덩이를 하나 가지고 싶다. 슬픔 없는 이야기를 하고 싶다. 사람들이 할 수 있는 건 언제나 자기 이야기뿐인지도 모른다. 그건 대부분 슬플지도 모른다. 누군가를 잃은 것에 관한 말도, 자기 삶을 털어놓는 말도 슬픔의 권한 바깥으로 벗어나지 못하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원래 어려운 걸까? 슬픔 없는 이야기를 하는 것.
그런 생각을 하다가 오랜만에 허수경 시인의 시집을 다시 꺼내 읽었다. 우연히 마주친 한 구절 때문이었다. ‘한참 동안 그대로 있었다/썩었는가 사랑아’ 「공터의 사랑」이라는 시는 시집에 수록된 첫 번째 시다. 시집의 첫 장부터 마지막 장까지 상처 앓는 몸 하나가 걸어가는 것만 같았다. 나는 시집의 출발점이었던 공터에 앉아서 겨울밤 동안 상처를 이고 걸어가는 운명을 짊어진 몸을 멀리서 지켜보는 듯했다. 희망 없이도 걸어가는 사람의 몸은 깨지고 조각나 있는데 그 틈으로 빛이 새어든다는 걸 말해주는 시. 사랑이 남긴 흔적. 잔인함과 환함이 새겨진 삶. 세월 속으로 사랑이 떠나갔다고 말하는 시를 생각했다.
사람들이 이야기를 좋아하는 건, 어쩌면 겨울밤을 걸어가는 몸만으로는 살 수가 없어서인지도 모르겠다. 자꾸 꿈속에 삶을 나눠 담는 것이다. 겨울에 바깥으로 손을 뻗어 여름을 달라고 할 수 없고, 슬픔 한복판에서 슬픔 아닌 것을 달라고 할 수도 없지만, 이야기에서는 나의 삶에는 없는 무언가를 가져갈 수 있다. 나는 겨울이 나에게 용서를 구하는 이야기를 상상한다. 그러면 나는 겨울을 용서하겠다고 말할 수 있었을 텐데.
그러나 겨울은 아무런 잘못 없이 겨울의 일을 한다. 이대로 썩을지 어쩔지 모르는 나만 한참을 그대로 있는 것이다.
모든 의욕을 잃고 늘어진 나를 그러모아 던지고 싶다. 좋은 곳으로. 펑 튀어 나가고 싶다. 붉은 말의 해라고 하니 말의 마음으로. 활짝 펼친 초원처럼 굳건히 내달릴 수 있는 곳으로. 그건 어쩐지 씽씽 달리는 마음일 것 같고, 상쾌할 것 같다.
답답하지만, 나 자신과의 문제를 해결하는 가장 빠른 길은 언제나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것이다. 불안 속에서 자기 자신을 미워하거나, 체념하듯 포기하는 대신 객관적인 내 상태를 인정하는 것. 내가 제대로 쳐줄 만한 노고에만 지쳤으면 하고, 만화 주인공처럼 믿을 수 없는 초인적인 힘으로 매일 같이 무언가를 이뤘으면 좋겠다. 이 욕심을 꺾기가 무엇보다도 어려웠다.
지난 일기 속에는 상처받았을 때 상처받았다고, 속상할 때 속상하다고 말하기 어려워했던 내가 한 장 한 장 쌓여 있다. 지난달 스케줄러를 한 칸 한 칸 채우면서 이 일을 다 해낼 수 있을지 몹시 긴장했던 나를 기억하고 있다. 나에 대한 욕심과 이상을 내려놓고, 나의 지난 근황을 어떤 인물의 것으로 여긴대도 그 사람이 지쳐있는 게 그렇게 못마땅하고 받아들이지 못할 일이 될까?
누구나 자기 힘만으로는 갈 수 없을 때가 있다. 내 안의 것을 소진하면 그렇게 된다. 그럴 때는 바깥에서 빌려오면 된다. 사랑하는 것들이 다 나를 떠난 것 같아도 끊임없이 바깥으로 손을 뻗을 때. 시간이 흐르는 것이 내게 무엇을 줄 것이며, 세상이 다시 내게 사랑을 돌려줄 예정인지 전혀 모르는 채로도 가능하다. 봄이 뭔가를 데려온다는 보장 없이도 기다릴 수 있다. 추워 움츠린 품 안으로 싹이 트는 일을. 그런 식의 안간힘이라면 어떨까? 턱없이 무거운 겨울이 나에게 누름돌이 되어준다. 허렁허렁해진 몸은 이 삶에 기꺼이 매여있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글 · 사진_ 운(하자글방 후속모임, 둥글레차)
포항에서 태어났다. 돌아갈 바다가 있어 어디로든 갈 수 있다. 문학을 사랑한다. 쓰는 일이 읽는 일을 넘어설 수 있을까? 답을 내리기 위해 평생을 바칠 수도 있을 것만 같다.
글감: 나에게 없는 것
제가 들고 온 글감은 '나에게 없는 것'입니다.
나에게 없는 것.. 뭐가 있을까요?
나에게는 없는 그것을 누가 가지고 있었나요?
혹은 반대로 나에게 있는 건 뭘까요?
‘나에게’에 초점을 맞출 수도,
'있는 것/없는 것'에 초점을 맞출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새해에는 결심, 다짐 이런 걸 하기 좋죠?
목표를 세웠거나 도전할 방향을 정했다면..
내게 무엇이 필요한가에 대해서도 생각하셨을 것 같아요.
그렇게도 글감과 겹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글감 어렵네요.. 글감은 내가 쓰고 싶은지보다는
다른 작가의 글로 읽고 싶은 것을 고르게 되네요.
마감 무사 기원합니다. _운
후속모임 〈둥글레차〉
하자글방 후속모임은 정규 과정 이후에도 스스로 글감과 마감을 굴려가며 글쓰기 공동체를 꾸려가고 있습니다. 2024년 가을학기 하자글방 후속모임 〈둥글레차〉는 어느덧 세 번째 해를 맞이했습니다. 매달 모임을 통해 서로의 글을 합평하고, 한 권의 진(Zine)으로 엮어내며 이야기를 더해가고 있습니다.
From. 하자글방
하자글방은 함께 읽고 쓰고 합평하며 자신만의 이야기를 발견해가는 청소년 글쓰기 커뮤니티입니다. 정규 과정 이후 3개의 후속모임이 진행 중이며 후속모임에서 나온 글 가운데 일부를 나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