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고 싶은 일-기>는 하자 청소년들의 일상과 진로를 주제로 대화한 인터뷰 시리즈입니다. 청소년들이 하고 싶은 일을 위해 무엇을 하거나 하지 않으며(또는 하려고 하며) 일상을 지키고 있는지, 인터뷰이의 To do list를 함께 보며 이야기 나누었습니다.
2025년 일곱 번째 하고 싶은 일-기 기록의 주인은 '해파리'입니다. <공유작업실 OOEO> 4기 창작자로 하자와 연을 맺은 해파리는 극작과에 재학 중이지만 디자인 작업으로 돈을 벌기도 하고 영화, 연극 제작 프로젝트에도 참여하고 있다고 해요. 다양한 작업이 가능한 만큼 이제는 한 작업에 몰두하는 경험을 해보고 싶다는 해파리의 기록을 남깁니다.
- 안녕하세요. 소개 부탁드려요.
안녕하세요. 저는 해파리고, 만 스무 살입니다. 글쓰기와 디자인을 주로 하는데 최근에는 영화, 연극도 만들고 있어요. 서사가 있는 예술을 기획하거나 사람을 모으는 것 자체에 관심이 있습니다.
해파리의 To do list
□ 선택과 집중!
□ 취향의 근간 찾기
□ 개인전 열기
□ 어떤 종류의 워크숍이든 진행해보기
□ 배우고 싶은 운동 6개월 이상 지속하기
□ 취미 밴드 결성하기
□ 역사 공부하기
□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신춘문예 내보기
□ 연말 파티 열고 사람 잔뜩 초대하기
□ 유기 동물 관련 봉사 나가기
□ ADHD 검사 받아보기
□ 꾸준히 쓰기
□ 매주 영화 세 편 이상 보고 주에 한 번씩 영화 후기 작성하기
□ 매달 연극, 전시 다섯 곳 이상 다니기
□ 작업실 꾸리기
□ 생명체를 책임지고 키울 수 있을 정도의 안정적인 삶 이루기
□ 끈기 있게 일하기
□ 글과 디자인, 기획 중 무엇도 포기하지 않기
□ 맛있는 거 많이 먹기
- 하자에는 어떻게 처음 오게 되었나요?
하자는 원래 알고 있었는데 계속 못 오다가 작년에 공유작업실 4기로 오게 됐어요. 지금은 하자에서 영화 제작 동아리 ‘엉터리’와 연극팀 ‘우주적 사랑’에 속해 있습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현재 경기도 지역 특성화고 디자인과에 다니고 있는 17살 학생입니다.
저는 현재 꿈이 융합예술가인데요,
원래는 디자이너가 꿈이었으나 글도 쓰고 싶고 조형예술도 하고 싶고
이것저것 도전하는 삶을 원해서 융합예술가라는 꿈을 꾸게 되었습니다!
다름이 아니라 가지가지기획단이란 걸 알게 되었는데, 저도 너무 참여하고 싶어서 문의를 남깁니다.
가지가지기획단에선 이젠 멤버를 뽑지 않는 건가요?
정말 꼭 참여하고 싶어요…
아무래도 디자인 관련 커뮤니티가 많지 않고, 더해서 청소년 디자인 커뮤니티는 더더욱 없으니까요ㅠ
디자인소모임을 기획했지만 실패로 돌아서고
디자인관련 공동체에서 어떻게 함께 할 수 있을까 고민하다 발견하게 되어 문의 남깁니다!
- 2021년 해파리
- 인터뷰 준비하다가 발견했는데요. 2021년에 ‘가지가지 기획단’이라는 프로그램을 문의했던 기록이 남아있더라고요.
앗 그런 게 있어요? (웃음) 제가 특성화고 디자인과를 다녔는데, 주변에 디자인보다는 만화나 애니메이션 준비하는 친구가 훨씬 많았어요. 디자인을 같이 할 친구나 소모임을 만들고 싶었지만 잘 안 모이더라고요. 그래서 그런 프로그램에 관심이 많았던 것 같아요.
- 글쓰기, 디자인, 영화, 연극 등 다양한 작업을 하고 있다고 해주셨는데요. 원래 하고 싶은 게 많았나요?
그랬던 것 같아요. 주변에서는 뭐든 하나를 고르라고 하는데 저는 ‘이것도 좋고 저것도 좋은데’ 하는 마음이 늘 있었어요. 장녀라서 빨리 돈을 벌어야 하지 않을까 싶은 생각도 있었고, 그림에는 재능이 없는 것 같아서 ‘디자인은 어떨까?’ 했는데 디자인이 재밌더라고요.
✔️ To do list : 선택과 집중!
올해는 이것저것 많이 했어요. 엉터리(영화 동아리), 우주적 사랑(연극), 온실(연극)이 동시에 돌아가고, 학교 전시에도 참여하고, 중간중간 디자인 외주도 받으면서 정신 없이 지냈어요. 그러다 보니 퀄리티가 마음에 들지 않는 경우가 있더라고요. 아쉬운 마음이 들어서 선택과 집중을 하려고 해요.
영화 촬영 현장
- 그럼 지금은 극작과에 재학 중이시잖아요. 전공은 어떻게 결정하신 거예요?
사연이 긴데... 원래는 고1까지 미술 입시를 했어요. 특성화고 디자인과를 다니면서 영화 포스터 디자인에 관심이 있었는데, 시나리오 쓰는 일에도 관심이 생기더라고요. 초등학생 때부터 혼자 글을 써왔거든요. 그래서 영화과와 극작과 입시를 같이 준비했죠. 그런데 제가 시나리오를 쓰면 ‘소설적으로 쓴다’라는 피드백을 자주 받는 거예요. 영화를 볼 때도 저는 연출보다는 서사적으로 사고하더라고요.
그래서 문예창작과에 입학했지만 영화도 포기가 안 돼서 결국 반수해서 극작과에 갔어요. 문학도 여전히 좋아하지만요.
- 영화 제작 동아리 ‘엉터리’에서 만든 영화는 어떤 작품인가요?
아직 포스트(후반 작업) 단계이긴 한데, <거리의 소리>라는 영화예요. ‘소리’라는 캐릭터가 친구들과 함께 밴드를 하거든요. 그런데 밴드 경연대회를 일주일 앞두고 소리가 갑자기 사라져요. 남은 친구 둘이 기다리다가 대회 이틀 전 연락이 와서 결국 찾아 나서기 시작하는 이야기예요. 올해 안에 완성하고 싶고, 11월에 있는 하자 청소년 동아리 연합 축제에서 시사를 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영화 <거리의 소리> 촬영
- 좋아하는 영화나 책, 작가가 있다면?
제 인생 영화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2022)>예요. 제 삶을 설명하자면 꼭 이 영화 같거든요. 나와 동일시할 수 있는 부분이 있는 영화라 더 좋아하는 것 같아요.
서이제 작가님도 좋아해요. 영화과 출신이고 지금은 소설을 쓰시는데, 저는 솔직한 문체를 좋아하거든요. 그분의 문체가 그런 솔직함을 담고 있다고 느꼈어요. 젊은작가상 수상집에 실린 <두개골의 안과 밖>은 도축 당하는 닭의 시점에서 쓰인 소설인데, 처음에는 그걸 인지하지 못하고 읽었는데도 신선한 충격을 받았어요. 이후에 재독을 여러 번 했는데요. 내용을 알고 다시 읽으니까 더 생생하게 느껴졌어요. 다른 작품들도 읽어보니 자가복제적이지 않으면서도 솔직하게 잘 쓰는 작가님이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 해파리가 생각하는 ‘나’는 어떤 사람인 것 같아요?
저는 해파리 같은 사람이에요. 해파리가 가진 속성 중에 흘러가는 것도 좋고, 독을 품고 사는 것도 좋아서요. 근데 또 말랑말랑하잖아요. 나에게 무례하게 다가오면 독을 뿜지만 기본적으로는 말랑하고 친절한 사람이 되고 싶거든요. 요즘은 해파리를 빼고는 저를 설명하지 못할 정도예요. 선물로도 해파리 관련된 것을 많이 받고요. 무언가 좋아하는 게 나의 특징이 되는 것도, 사람들이 그걸 보고 나를 떠올리는 것도 좋은 것 같아요.
해파리가 촬영한 해파리
✔️ To do list : ADHD 검사 받아보기
요즘 ADHD와 관련된 글이나 정보가 많이 보이는데 볼 때마다 저랑 관련이 있는 것 같다고 느껴져요. 평소에도 손을 가만히 못 두고 대화하다가 주제를 휙휙 바꾸거든요. 진지하게 검사를 받아봐야겠다고 생각해요. ADHD 적금을 만들어야 하나도 고민하고 있어요. (웃음) 그냥 산만한 아이일 수도 있지만 깜빡하고 뭔가를 놓칠 때도 많거든요. 그런 것들이 나아졌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제가 ADHD라고 해서 나쁜 것도 아니고요. 아니면 다행이고 맞으면 또 어떤가 싶어요.
- 해파리의 삶에 중요한 것 세 가지와 각각의 이유를 알려주세요.
가족 : 가족 때문에 하게 된 것도, 포기한 것도 많아요. 앞서 이야기한 영화 ‘에에올’을 좋아하는 이유도 가족과 연결되어 있어서거든요.
좋아하는 걸 충분히 좋아하는 것: 저는 덕질하는 사람이기도 해요. 시간이 흘러서 애정이 식을 때도 있지만 다시 돌아간다고 해도 여전히 좋아할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지금 충분히 좋아해야겠다는 생각을 해요. 배우를 예로 들면 어떤 논란이 생길 때 마음이 달라지잖아요. 그런데 한 친구가 “네가 걔를 좋아할 때 너무 행복해 보였어. 그러니까 좋아하는 게 맞는 거야”라고 말해줬어요. 그 말이 마음에 남아서 지금 좋아하는 걸 최대한 많이 좋아해야겠다는 생각을 해요. 디자인이든 글이든요.
관계: 가족도 친구도 모두 관계잖아요. 관계로 이루어진 게 많다고 생각하고, 주변에 좋은 관계가 많아서 오래 유지하고 싶어요. 그리고 떠나간 관계를 보면 “우리는 왜 그렇게 친했을까, 나는 왜 좋아했을까” 생각하기도 해요. 제가 쓰는 이야기들도 대부분 관계를 포함하고 있고요. 어릴 땐 친구가 자주 바뀌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진득하게 보는 친구들이 생겼어요. 이제는 ‘이 사람만큼은 나에게 영원히 남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죠. 살아갈수록 그런 사람들이 더 생기기도 하고요. 그래서 관계가 가장 재밌는 주제라고 생각해요.
✔️ To do list : 취향의 근간 찾기
평소에도 ‘나는 이걸 왜 좋아할까?’ 생각하거든요. 아니면 사람들이 많이 좋아하는 걸 보고 ‘사람들은 왜 이걸 좋아할까?’라는 생각을 하기도 하고요. 제가 영화 <13일의 금요일>에 나오는 제이슨이라는 살인마가 쓴 가면의 모양새를 좋아하거든요. 동물의 숲에 나오는 이요라는 캐릭터도 좋아하고요. 최근에 아는 언니랑 이야기를 하다가 언니가 “이걸 왜 좋아하는데?”라고 물어봤어요. 그때부터 깊이 생각하게 됐어요. 남들과는 다른 취향의 이유를 찾는 게 창작자로서 재산이 되지 않을까 싶어서요. ‘이제는 기록을 해야겠다’라고 생각했죠.
- 요즘 하는 고민이 있어요?
“뭐 해 먹고 살까” 그 생각이요. 이제는 어느 정도 해탈했어요. 뭐든 해 먹고 살겠지, 살아지겠지 하는 마음이에요. (웃음) 그래도 ‘내가 뭘 하게 될까’ 하는 걱정도 있고 기대되는 마음도 있어요. 그리고 하고 싶은 게 너무 많은 것도 고민이에요. 배부른 소리 같지만 그래서 더 걱정돼요. 대부분 하나를 깊게 파는 사람들이 많잖아요. 근데 저는 취향이나 스타일 자체가 중구난방이거든요. 그게 나의 스타일이겠거니 생각해요. 조금 더 시간이 지나면 길이 보일까 싶기도 하고요. 저랑 비슷한 사람이 있어서 같이 이야기할 수 있다면 좋을 것 같아요.
✔️ To do list : 끈기 있게 일하기
진득하게 제 프로젝트를 끌고 가고 싶어요. 원래 ‘브라켓 매거진(@b.racket.mag)’이라고, 혼자 만드는 독립 매거진이 있었는데요. 재밌었는데 바빠져서 결국 못 하게 되었거든요. 그럴 때 계속 끌고 갈 수 있도록 선택과 집중을 해서 하나만 남기자고 생각해요. 일회성 프로젝트를 많이 하다 보니 얕게만 작업하게 되는 것 같은데, 넓고 깊게 하고 싶어서요. 기간을 정해서 한 작업에 몰두해 보자고 생각했고, 그런 시간을 가져봐야 하지 않을까 싶어요.
- 올해 계획이나 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벌려둔 일들을 잘 마무리하는 게 최우선이에요. 연극, 영화도 잘 마무리 짓고요. 일뿐 아니라 사람들과의 관계도 잘 맺거나 떠나보내야 하는 것들이 있어요. 저는 원래 관계가 끊어지는 걸 무서워했거든요. 지금은 좋아하는 것에 충실하자는 생각을 하게 됐고, 어느 시점이 지나면서 사람을 바라볼 때 순수하게 응원하는 마음이 생긴 적이 있어요. 전에는 열등감이 있었지만 이제는 마음 놓고 응원할 수 있겠다 싶은 감정이요. 그런 생각을 하면서 떠나가는 관계도 잘 마무리해야겠다고 느껴요. 같이 뭔가 해냈던 사람들이 소중하지만, 그들에게도 내가 소중했을까 생각하면서 내가 해가 되지 않으려면 끊어내는 게 맞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하는 거죠. 해가 지날 때마다 문득 드는 생각인 것 같아요. 관계의 맺고 끊음에 대해서요.
- 진로나 미래와 관련해서 또래들과 나누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저는 기독교 집안에서 자랐고 저도 종교가 있어요. 그 (종교) 커뮤니티와 예술 활동할 때의 커뮤니티는 굉장히 결이 달라요. 예술하는 사람들은 자기 확신이 있는 사람이 많더라고요. 반면 교회에 있는 사람들은 등 떠밀리듯 뭔가 하는 사람이 (상대적으로) 많고요. 주변 사람들과 이야기할 때 ‘너는 하고 싶은 게 있어서 좋겠다’라는 말을 종종 들었거든요. 만약 그런 고민을 하는 사람이 있다면 뭔가 많이 봤으면 좋겠고 계속 보라고 응원하고 싶어요. 영화나 예술일 수도 있고 잡지, 시사교양 프로그램, 세상 돌아가는 것 등 상관없이요. 많이 보다 보면 관심 있는 걸 자각하는 힘이 생길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런 과정이 10대, 20대 언제든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러다 보면 “이 사람은 이런 것도 했네”라고 느끼게 되고, 그런 경험이 저를 열심히 하게 만들더라고요. 최대한 많이 보고 사람도 많이 만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